생각의끝엔

생각의끝엔 #

#2021-02-18 04:16:40


사람은 재능을 펼치면서 살고,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산다. 재능을 펼치는것에는 남들이 필요할수도 있고 필요없을수도 있나? 아니다. 무조건 필요하다. 재능은 상대적이기 때문이고 펼칠 도화지, 즉 사회가 있어야 펼칠수있기 때문이다.

재능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맛에 예민한사람, 앎에 예민한사람, 음악과 그림에 예민한 사람, 자신의 감정에 예민한사람, 타인의 감정에 예민한 사람 등등. 예민하다는것은 그만큼 선명하게 느낄수있는 능력이 있음을 말한다. 음악에 예민해서 좋은 음악과 그냥그런음악이 다르게 들리는 사람은, 남들은 만들지못하는 좋은 음악을 만들어서 재능을 펼치고 돈을 번다. 앎에 예민해서 남들보다 선명하게 알고자하는 사람은 공부를해서 지식을 습득하고 그를 활용함으로써 재능을 펼치고 돈을 번다. 그중에서 같은 재능을 가진 남들보다 더 재능있는 더 예민한 사람은 더 많은 재능을 펼쳐서 더 많은 돈을 번다. 그리고 이는 재능이 덜한 사람, 돈을 덜 가진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재능이 있는건 변하지않겠지만 그를 펼칠 도화지가 없는 셈이기 때문이다.

재능이 꼭 돈으로서만, 즉 직업으로서만 의미를 갖는건 아니다. 돈이랑 관련없는 재능을 가진 사람도 재능을 펼치며 산다. 자신의 감정에 예민한 사람은, 자기 감정을 깊이 이해하는법를 탐구해서 그를 자기자신에게 적용하고 적용한 자기자신을 사회로 내보내 살게한후 추이를 본다. 끊임없이 문제를 발굴해내고, 답을 찾고, 보완해서 사회로 나가기를 반복한다. 사회가 없으면 업그레이드된 자기자신을 테스트할 도화지가 없는것이다. 타인의 감정에 예민한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서 사회를 유연하게 이어준다. 왜냐하면 남들의 감정이 자기들은 다 구별되고 느껴지고 보이기때문에, 즉 공감을 너무 잘하기때문에 사회속의 남들과 자신을 맞추고, 사회속의 남들을 서로 맞추고싶어한다. 이 사람들이 사회를 상당 부분 돌린다. 자기보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서 섞여 살수있는것은 이 사람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

이는 무슨 결론으로 이어지는가? 글의 맨 처음에 사람은 재능을 펼치면서 살고,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산다, 라고 했는데 사실 뒤의 말은 필요없는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디까지를 재능이라고 할수있을까? 이를테면, 숨쉬기 같은것을 재능이라고 볼수있나? 맛을 느끼는 능력이 아예 없는건 아니지만 토나옴/아님 정도로 구별하는것도 능력이 없는게 아니니 재능으로 보아야 하는가? 맛을 어느정도로 구별할수있다고 쳤을때, 얼마나 예민하게 구별할수있어야 그걸 재능으로 볼수있는가? 만약 그 범위를 딱 <50% 이상>으로 본다면, 모든 분야에서 딱 <(평균-10)%>의 재능을 가진, 즉 재능이 있다/없다 의 이분법적 시선으로 보았을때 재능이 전혀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안하면서 그저 사람과 상호작용만 하고 살다 죽는 셈일까? 마지막으로, 사회는 그럼 재능있는 사람들의 도화지 용도일뿐인가? 타인은 딱그정도의 의미인가?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유없이 (상호작용중 하나인) 사랑하고 사는데, 그리고 그걸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사랑은 쓸모없는것일까? 쓸모없는건 맞지. 그런데 본능은 왜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도록 설정되었을까? 왜 자신의 감정에 예민한, 그 재능이 꽤 뛰어난편에 속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생각을 많이 한 결과물이 모두들 사랑하고살라고 하는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