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근데 기꺼이인)

투자 (근데 기꺼이인) #

#2020-09-06 14:49:11


좋고 싫음은 개인의 능력이 아닙니다. 다만 좋다고 느끼는 감정과 능력 사이에 우호적인 관계가 있음은 분명합니다. 특히나 좋고 싫은 감정이 외부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생긴 것이 아니라면, 즉 내면에서 자연스레 발현된 기분이라면 신뢰할 만합니다. 훈련 때문에 그 사람의 감정이 완전히 무시되는 것도 폐해입니다. 심한 경우 특이한 재능이 훈련에 깔려 사라져버리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위험성은 스스로 자진해서 부과한 엄청난 양의 훈련보다는 사회통념에 의해 강압적으로 부과된 훈련일 때 더욱 커집니다.

지적 생활은 훈련을 필요로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해왔습니다. 이 훈련은 필수불가결한 동시에 내적인 감정을 충분히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적 훈련의 기준은 내적인 법칙성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이 훈련의 주체는 자기 자신입니다.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훈련을 쌓는 주체성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타인의 의견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잘못된 게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내적인 욕망을 따라가는 데 우리는 필연적으로 거부감을 느낍니다. 정신의 거부반응입니다. 특별히 선천적으로 정신이 무능력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몸에 밴 일상이라는 습관, 나날의 고민들에 짓눌려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을 뿐입니다. 이런 종류의 거부반응에는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이런 기분에 휩싸였다면 자기반성과 충분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미술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상의 편한 생활에 길들여져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재능을 깨닫지 못합니다. 혹은 그 재능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미술이라는 지적 활동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그러던 어느날 “지금 당장 너의 평범한 생활에서 벗어나 화가가 되는 건 어떤가?“라는 하늘의 음성이 들렸다고 가정해봅시다. 과연 그는 이 음성에 네, 라고 답할 수 있을까요? 후천적으로 익숙해져버린 일반인의 습성이 이 음성에 긍정적인 답변을 들려주는 게 가능할까요? 아마도 그의 삶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안 돼, 그림은 아무나 그리는 게 아냐. 넌 재능이 없단다. 설령 있더라도 이제 시작하려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너를 단련하고 다듬어야 되는지 아니? 너 같은 게으름뱅이에겐 무리야. 헛된 꿈은 여기서 접자. 넌 더 이상 젊지 않아.”

이것은 사실 하늘의 음성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감춰진 실체가 참다못해 토해내는 외침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정신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안의 목소리인 동시에 대자연의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우리가 타고난 본성으로부터 떠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쉽지 않습니다. 가볍지도 않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고, 화가가 되고 싶고, 음악가가 되고 싶지만 생업이라는 절체절명의 숙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직업을 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렇게 한 해, 두 해, 십 년이 흘러버리면 우리는 예전의 찬란했던 재능은 사라지고 없다는 자포자기에 다다릅니다. 재능을 버리고 생업을 택하는 건 나약한 인간의 한계인지도 모릅니다. 그 한계에 절망한 나머지 우리는 이 지루한 일상의 습관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지적 생활의 정신적 기반은 훈련입니다. 이 훈련은 매우 독특해서 정답은 없습니다. 참고서도 없습니다. 각자의 개성을 따라가는 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즉 독창성입니다. 자기 개성에 맞는 독창적인 훈련을 찾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독창적인 지적 훈련은 상황에 따라, 나의 성장속도에 따라 행동규범에 변화를 줍니다. 마치 진보한 민주국가에서 법률이 끊임없이 개정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흘러간 세월을 돌이켜봤을 때 가장 씁쓸한 것은 돌아오지 않는 귀중한 시간들이 눈깜짝할새에 지나가버렸음에도 지적 훈련이 턱없이 결여되어 있음을 깨닫고 후회하게 될 때입니다. 그 때문에 아주 가끔 찾아오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어이없이 상실하곤 합니다.

“나는 인생이라는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여 어떤 일에 대해서도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갖췄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실행에 옮기기 전 나는 필요한 훈련을 끝마쳤으며, 결국 내가 원하는 수준의 성공을 맛보았다.“라고 만년에 고백할 수 있는 삶은 흔치 않습니다. 그들이야말로 행운을 타고난 사람입니다.

(중략)

이를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지성의 광채와 이를 뒷받침하는 고귀한 정신력은 무엇이 먼저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강인한 정신력이 지적 능력을 성장시키고, 성장한 지적 능력은 정신을 단련시킵니다. 이 둘은 동시에 진행되며, 동시에 서로를 잉태하는 인간의 가능성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