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에관한 고찰 #
#2019-10-15 22:58:55
히친스는 아이러니에대한 릴케의 관점을 좋지않게 생각한다. 히친스가 생각하는 아이러니는 역발상,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것. 이는 자연스럽게 한 관점에서만 사물을 보는것에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릴케가 생각하는 아이러니는 기본값들을 뒤집어 생각하는것. 마찬가지로 역발상. 릴케는 이런 역발상이 단발적인 환기? 혹은 새로운측면에서 생각해봄으로써 자신이 미처 생각지못햇던면을 한번쯤 바라보는것이지만 딱 그만큼의 의미가있다는 입장이다. 즉 새로운시각은 새로운만큼 단발적이며 그 깊이가 기본값들에 견줄수없다는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김동리의 만월 이라는 시에서 이런 관점을 매우 깔끔하게 제시한다. ‘행운이 비운을 낳고 비운이 행운을 낳는다고해서 행운보다 비운을 원할 사람이 있을까.’ 단발적인 아이러니를, 단순히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좇는 사람들의 명치를 가격하는 말이다.
나는 히친스의 아이러니와 입장을 같이하고, 또 릴케나 김동리의 만월 에서 다루는 아이러니를 비판하는 시각에 공감한다.
릴케나 김동리의 시가 단발적인 아이러니를 비판했다면, 결국 히친스의 아이러니는 그 비판에서 제외되는것이다. 히친스의 아이러니는 단순히 단발적인 역발상이 아니기때문이다. 그는 기본값을 탈피하기이전에 기본값이 옳다는것을 증명하는 방향의 수많은고찰을 한다.
그의 아이러니는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온 결론이다.
히친스가 구축한 아이러니를 향해 가는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기본값, 즉 비아이러니가 아닐까? 기본값은 기본값이라는 이유로 그 권위를 인정받는 경향이 있어서 비판으로부터 어느정도 보호받는다. 히친스는 정공법으로 권위를 고찰하고 아이러니를 구축한다. 그의 고찰은 단발적이지않다. 오히려 권위를 고찰하기위해 더 원칙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어쩌면 릴케와 김동리의 시가 비판하는것은, 아이러니 그 자체라기보다는 아이러니가 도출되는 과정일것이다. 빈약하고 단발적인 고찰을 통해 도출된 아이러니는 기본값에 상응하는 권위를 가질수없다. 그들이 말하는 아이러니는 히친스와같이 정공법으로 도출한 아이러니와는 다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