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것은 엄마는 나의 솔직한모습을 원하지않는다. #
#2019-10-08 13:42:28
아이는 자라서 자아가 형성된다. 엄마없이 밥도먹고 엄마가 사준옷말고 다른것도 사입고, 엄마가 가르쳐주지않은것을 배우고, 엄마가 싫어하는것도 좋아하고, 엄마가 모르는것을 배우고, 엄마가 주지않은돈을 벌어쓴다. 아이는 혼자서 엄마가 만들어준 자아를 리모델링 혹은 재건축한다.
어느날 엄마는 아이가 제멋대로 재건축해버린 본인의 자아를 보고 약간 놀란다. 납득함도 잠시,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함을 알게된후 많이 놀란다.
이내 서글퍼한다. 본인이 사랑했던, 예전의 반려동물같던 존재가 사라졋기때문이다.
본인없이는 살수없는 존재를 본인없이 살수있도록 성공적으로 키웠으나 본인없이 사는것을 생각해본적없다, 는 상투적이지만 모순적인감정을, 옛날에 자기가 이름지어줫던 낯선존재를 보면서 느낀다.
어릴때의 나를, 본인이 엉덩이에 로션을 발라주고 챱 하고 때리면 웃던 존재를 자꾸 떠올리는걸보면 내가 자랏다는걸 부정하고싶어하는거같은데도 엄마는 종종 몰래 내 일기장을 본다. 엄마는 나를 궁금해하나? 자란건 싫지만 일단 자랏으니 이전의모습에서 어떻게든 갱신해야겟다는생각일까?
하지만 확실한것은, 엄마는 내가 어릴때부터 꾸준히 가져온특성을 내보였을때 좋아한다. 이를테면 화가났을때 눈가에 주름이패는 모양이나, 김밥먹을때 단무지 다 빼고 먹는다거나, 피자먹을때 가장자리를 달라고한다거나 할때말이다.
말하자면 변한것이 당연하지만, 안변했으면 좋겠고, 안변한모습에 기쁨을 느끼는거다. 난 엄마가 내 몸에 로션을발라준다거나 밥을먹여준다거나 하는것을 전혀 상상할수없다. 아마 엄마도 지금의 나에게 그러고싶은 마음은 아닐것이다. 연애감정과 폭은 달라도 맥락은 같지않을까? 그때의 걔가 좋앗던거지, 지금의 걔를 사랑하는것은아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걔를 완전히 다른사람으로, 별개로 떼놓고보지도 못한다. 관계가 달라졋음이 당연하지만 달라짐에 슬퍼한다. 당연하다고 납득했다가도 막상 얼굴보고만나서 달라짐을 몸소 깨달으면 슬퍼진다.
엄마도 그때의 나를 사랑하는것이다. 연애감정보다 훨씬 큰 사랑이거나, 차원이 다른 사랑이라서 차마 숨기지못하고 자기도모르게 내뱉는것일테다. 왜냐하면 그런말을 나에게 하는것이 재건축된 자아를가진 나에게 뻘쭘한일, 좀 심하게 말하면 무례한일임을 모르진않을것이기때문이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나? 사랑했던 마음이 변한것일까? 아기때는 그런고민을 안한다. 그때의 감정을 기록해놨으면 읽어보면서 음… 사랑이었군…. 혹은 음… 사람과 타인에대한 이렇다할 개념 없이 그냥 지형지물로 생각했군… 같은걸 판단할수있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때는 일기를 안썻고 쓰기시작한때에도 ‘오늘은 아빠랑 문구사를 가서 레미레미 도레미 수첩을 샀다. 아빠 사랑해~’ 이런거밖에없어서 알 방도가 없다.
사랑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나는것? 엄마가 계속 생각나진않는다. 엄마가 생각날때가 있긴하다. ‘아기때 느꼈던 고통이랑 같은고통을 느낄때’ 나는 엄마가 생각난다.
말하자면 ‘아픈데 내힘으로 해결불가할때’ 같은 고통이다. 내힘으로 해결가능할때는 생각안난다. 이를테면 생리통때문에 배아프면 화를 내면서 게보린을 사먹으면된다. 얼마전 자동차와 경미한 접촉사고가나서 발이 깔려서 차주분과함께 정형외과에 간적이있었다. 대기시간이 길었고 피곤해서 침대에누워있고싶었다. 무서웟고 발도아팠다. 어떻게해야 안아플지 알수가없었다. 그일을 엄마한테 얘기하진않았지만 그때 엄마가 생각낫다. 얘기안한이유는 잘모르겠다. 그냥 엄마를 놀라게하는게? 신경쓰이게하는게 싫었던것같다
그렇다. 나에게 엄마는 가뭄에 콩나듯 의지하고싶어지긴하지만 그보다도 놀라게하지않아야하는존재, 신경쓰이게 하기 싫은 존재인거다.
초중학생때는 엄마에게 혼나는게 무서워서 나를 숨겼다. 욕쓰는것, 학교에서 넥타이 안하고다니는것, 재시걸린것, 학원에가지않은것 등등. 그러다보니 그게 주객전도돼서, 무서워서 의식적으로 나를 숨기는게아니라 엄마가 나를 모르는게 익숙하고편해져버려, 혼나든 혼나지않든 모든걸 숨기게된다. 엄마가 화내는것이 무섭지않은데도말이다. 그렇게 어느새 거슬리지않으면 만사ok인 대상이된다.
살다보니 엄마말을 안들어도 지구가 무너지거나 하지않기때문이다. 엄마한테 회초리를 맞는게 아픈일이지 무서운일이 아니게된다. 그렇게 변하는게 자라는걸까?
엄마는 나를 아이로 보지만 나는 엄마를 엄마로 안보는거같다. 적어도 내가 처음 엄마한테 배운 엄마라는 존재로 안보는거같다.
엄마가 회초리를 들면 뺏으면 안맞을수있지않나… 라고 생각하는것은 패륜일까?
내 앞의 사람이 회초리를들엇을때 맞기싫으면 뺏는게 맞다. 엄마가 앞에 서있어도 뺏으면된다. 이것이 별개이든 아니든 적어도 나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다. 엄마는 이사실을 알고싶어할까?
엄마앞에서는 엄마를 엄마로 봐야한다. 내가 사회적자아에서 나혼자쓴일기나 내 사상을 떠벌리고 다니지않는것처럼, 내 개인적인자아와 사회적/가정적자아는 엄연히 다르다. 어떤 두가지도 융합하면 이상해진다. 낯설어진다.
비록 엄마가 모르는새에 배운거라도 엄마앞에선 모른다고 하는게 낯설지않은거다. 엄마를 필요로해야한다. 그게 엄마와 아이의 관계다. 내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자아가 다르고 달라야만하듯이 결국 가정적자아도 마찬가지다. 자꾸 탈피하려하지말고 가정적자아를 다지는게 맞는거같다.
이것이 사회성을 기르듯 가정성을 기르고, 사회속의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듯 가정내의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