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왜 소아 백혈병을 고쳐주지 않는 걸까? (스켑틱 19호) #
#2019-09-21 01:33:11
나는 허플링 박사와의 대화가 끝날 무렵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주장을 이해하고 싶지만, 솔직히 말해서 당신의 관점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이 소아 백혈병을 고쳐주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무고한 아이들이 끔찍한 고통을 받고, 부모들은 자식을 잃고 영원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개입할 능력이 있는 신이 왜 그런 일을 하지 않을까요?” 허플링은 답했다. “나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많은 철학적 용어를 동원하더라도 유일한 답이 “신은 신비로운 방법으로 역사하신다.“와 “누가 신의 뜻을 알겠는가?‘라면 설득력이 없다. 내가 보기에 유일하게 논리적인 결론은 신이 존재하지 않거나, 다수의 신(좋은 신과 나쁜 신)이 존재하거나, 아니면 신이 악에 대해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과정 신학(process theology)의 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이 끝나고 활발한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며칠 뒤에 토론의 사회자였던 아담 터커는 필자의 대리인을 통해서 그 날의 토론에 대한 약간의 불만과 함께 내가 더 철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의사를 전해왔다. 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귀하가 토론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철학자와 과학자의 사고방식에 본질적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철학이 모든 과학의 기반이 되는 토대를 제공하고 과학자가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방법을 철학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궁극적으로 실증적 증거, 확고한 사례, 그리고 검증할 수 있는 가설을 필요로 합니다. 위대한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이를 추측과 반박(conjecture and refutation)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악에 대한 실제 사례와 그에 대해 과학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한 반면, 브랑이언은 정의와 삼단논법에 기초해 철학적 주장을 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바로 앞에서 말한 사고방식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나느 악의 문제가 기독교의 신에 대한 믿음에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는 - 결정적인 한 방은 아니더라도 기독교 신앙을 후퇴시키기에 충분한 - 강력한 주장을 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나는 아담으로부터 악의 문제와 이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잘 담고 있는 사려 깊고 분명한 답변을 받았다. 그 내용을 여기에 소개한다.
[지난번 토론에서 허플링 박사가 지적했고 당신도 인정하는 것처럼, ‘만약’ 신이 존재하더라도 그는 직접적인 실증적 증거를 얻을 수 있거나 실증적 과학이 적용되는 형태의 존재는 아닐 것입니다. 신의 존재에 관한 문제는 불가피하게 철학적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증적 증거를 계속해서 요구하는 것은 논점 회피이며, 금속 탐지기로 탐지할 수 없다고 하여 플라스틱이나 기타 비금속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논리적입니다. 우리는 목적에 맞는 적절한 도구를 사용해야 합니다. 형이상학에 대하여 손을 내젓고 잘못된 묘사를 하는 것 역시 논점 회피이며 사려 깊지 못한 행동입니다. 실증적 증거와 검증 가능성에 대한 당신의 요구가 과학적 근거가 아닌 당신의 철학적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토론의 주제는 악의 존재가 기독교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인가였습니다. 허플링 박사가 지적한 대로 필연적으로 특정한 본성을 신에게 부여하게 되는 신의 존재에 대한 다양한 독립된 주장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신에 대한 긍정적 주장들로 틈새의 신(God of gaps) 논증과 다르지 않게 당신이 잘못 해석한 것들입니다(나는 당신이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토론에 참여한 청중에게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 잘못된 해석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장들에 따르면 악의 실재는 선한 신이 존재한다는 우리의 지식에 비추어 평가됩니다. 왜 신이 특정한 악의 발생을 허용하는가는 확실히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토론의 주제와 맞지 않습니다. 허플링 박사가 논증했듯 이런 질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겨둘 수 있고, 신의 존재 여부와 무관한 문제입니다. 두 문제 간에는 논리적 연관성이 없습니다.
더욱이 회의론자이자 불가지론자로서 나는 당신이 “나도 모릅니다.“라는 솔직한 대답을 인정하기를 기대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순수한 선 그 자체, 전지전능 등과 같은 신의 본성은 악의 문제와는 독립된 논쟁을 통해 도출된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 우리는 “글쎄, 내가 신이라면 그렇게는 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전지한 존재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조금이라도 알고자 한다면 스스로 전지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는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왜 신이 특정한 악을 허용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무지가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이 같은 논지를 설명하는 데는 단순한 예시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나의 큰아들은 한쪽 신장 기능을 잃은 채 태어났습니다. 아이가 두 살이 되었을 때 우리는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 체내에 염료를 투입하여 모든 신체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병원 관계자들은 아이를 검사대에 묶고 혈관주사를 놓을 자리를 찾기 위해서 45분 동안이나 주사바늘을 찔러댄 후 검사를 시작했습니다. 땀과 눈물에 젖은 아들은 “아빠, 왜 이걸 못하게 하지 않아요?“라고 묻는 눈길로 옆에 서 있는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토록 가슴 아픈 광경에 눈물 흘렸던 일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나는 아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알았고 자신의 몸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바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궁극적으로 아들을 위한 일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제시한 예는 고전적 신학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단지 신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안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말의 요지는 신과 우리가 가진 지식의 차이가 저와 두 살 짜리 아들 사이의 차이와 질적으로 다르다는 말입니다. 신은 우리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의 지식은 무한한 존재와 동일하며, 이는 곧 신 그 자신이 지식이라는 의미입니다. 저와 신이 가진 지식의 차이는 단순한 양적 차이가 아닌 질적 차이입니다. 나는 결코 신에 근접할 정도의 지식을 배울 수 없습니다. 신은 학습이나 삼단논법 같은 것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영원한 현재 안에서 모든 것을 압니다. 아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 고통이 아들을 위한 것임을 내가 알 수 있다면, 설사 우리가 영원히 그 이유를 알거나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신은 악의 존재에서 얼마나 많은 선을 끌어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무지가 근거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무지는 또한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틀렸음을 결코 입증할 수 없습니다. 이와 다른 주장을 고수하는 것은 그릇된 결론에 이르게 되는 비논리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주장이 가진 설득력 때문에 나는 이에 답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그날 바로 답변을 보냈다. 그 내용을 여기에 소개한다.
[먼저 당신은 신의 지식이 얼마나 되는지, 더 나아가 신이 전지한지 어떻게 아십니까?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이는 단지 주장일 뿐입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말한 대로 “증거가 없이 단언하는 주장은 증거 없이 일축할 수 있습니다.“우리 두 사람이 표명한 대로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이 모든 주장은 순전히 철학적인 주장으로 이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없습니다. 우리는 철학이라는 도구로 출발할 수는 있지만 멀리 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추론이 토끼굴에 빠지지 않으려면 과학이 필요합니다.
“모든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다. & 소크라테스는 총각이다. = 소크라테스는 결혼하지 않은 남자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우주에는 시작이 있었다 & 모든 시작에는 원인이 있다. & 선행하는 원인이 없는 제1원인이 있어야 한다. & 그러한 원인 없는 원인이 신이다. & (여기에 20단계 추가) = 예수는 당신의 죄 때문에 죽었으며 이모의 심장병을 고쳐주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더욱이 당신은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을 세우는 데 증거와 검증 가능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주장에 철학적 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증거가 중요하다는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는 것입니까? “작동한다고!“는 어떨까요. 증거와 검증 가능성은 철학적 가정일 수도 있지만,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을 얻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에 좋은 가정입니다. 예방접종은 효과가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알까요? 증거, 검증 가능성, 실험, 역학 연구를 통해서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과학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결과 이제 범죄라 할 정도로 무지한 부모가 예방백신을 반대하면서 아이의 접종을 거부하지 않는 한 전염성 질병으로 사망하는 아동은 없습니다. 예방 접종을 받지 않은 아이가 질병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접종받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집단 면역률 90%가 무너지만 전염성 질병이 발발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종교는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을 얻는 데 무엇을 제공할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도? 기도는 효과가 없습니다. 기도의 효능을 검증하려는 모든 과학적 시도는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저 일화들이 있을 뿐이며, 일화는 데이터가 아닙니다. 허플링 박사가 기적에 관한 몇몇 증거가 존재한다고 말하고 질의응답 시간에 청중 한 사람의 심장병이 치유된 기적을 이야기할 때, 나는 수백만의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시바의 화신이라고 믿는 인도의 정신적 구루이자 성자이며 수도자인 쉬르디사이 바바의 예를 들어 반박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의 기적과 마찬가지로 그가 공중에 떠오르고, 타인의 마음을 읽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어가는 환자를 치료하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감동적인 일화들을 증언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계에서는 이 기적들을 언급될 가치도 없는 가짜 기적으로 낙인찍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기적들이 가짜라는 것을 어떻게 아나요? 야훼가 행하는 기독교의 기적과 사이 바바 같은 사기꾼의 속임수를 나는 데 어떤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검증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어느 것도 진짜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회의주의를 기본적 태도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절단된 팔다리를 다시 자라게 하는 것 같은 확실한 기적이 행해지고 누구나 그 기적을 볼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신이 암을 치료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팔다리도 자라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마뱀도 그 정도는 하니까요.
계시는 어떨까요? 남부복음주의신학교의 홈페이지에는 계시가 지식을 얻는 주요 수단으로 가장 눈에 잘 띄는 위치에 있습니다. 누구의 계시일까요? 모세? 잔 다르크? 예수? 조셉 스미스? 마호메트? 짐 존스? 오사마 빈 라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예언자와 계시는 너무 많고, 우리가 무엇을 믿을 수 있을지 검증할 방법은 없습니다. 예를 들면 당신이 모세와 예수의 계시는 받아들이면서 나머지 다른 예언자들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대체 어떤 표준적 기준을 적용해야 할까요? 질의응답 시간에 누군가가 예수가 실제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제자들이 그를 이해서 목숨을 바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지도자, 부족, 민족, 이념, 종교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짐 존스의 추종자들, 데이비드 코레시의 추종자들, 조셉 스미스의 추종자들, 20세기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 21세기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100년 전쟁 때 잔 다르크를 따른 프랑스 군대 등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사례는 예수의 이야기와 다를 뿐 아니라 서로 모두 다릅니다. 중요한 점은 이들 모두 추종자 집단이 자신들의 믿음만이 유일하고 참된 믿음이며 다른 믿음은 모두 거짓이라는 신념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토론 중에 허플링 박사는 글로 의견을 교환할 것을 제안했다. 나는 허플링 박사에게 ‘왜 신은 소아 백혈병을 고쳐주지 않을까?‘라고 묻는 이 글에 답하기를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