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
#2018-07-15 15:31:48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허둥대며’ 일하는 미국인들을 겨냥해 “오늘날에도 그들은 휴식을 부끄러워하며, 한참 동안 생각에 몰두할 경우엔 양심에 문제가 있다는 핀잔을 들을 정도다. 그들은 한쪽 손목에 시계를 찬 상태에서 생각에 잠긴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니체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미국인들의 ‘부지런함’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의 게으름을 경멸한다. 사실 이게 바로 미국인들이 유럽에 대해 오만해지는 한 가지 주요 이유가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 2004년 9월 5일자는 직장 내 스트레스로 미국인들의 몸이 망가질 정도라고 보도했다. 미 근로자 1명이 연간 일하는 시간은 1,800시간을 넘어 독일인 1명보다 350시간이나 많으며, 미 직장인 스트레스 해소 비용은 3,000억 달러(360조 원)로 한국의 2005년 예산 132조 원의 2.7배나 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미국인들의 눈엔 유럽인들이 펑펑 놀기를 좋아하는 게으른 사람들로 보일 게 분명하겠다. 그러나 미국인은 이중적이다. 유럽인에 대해선 게으르다고 욕하면서도 자신들보다 더 부지런한 일본인에 대해선 ‘경제동물’, ‘일벌레’라고 폄하한다.
최근 『유러피언 드림』이라는 책을 낸 제레미 리프킨은 미국과 유럽의 차이 중 대표적인 것으로 게으름에 대한 철학을 꼽았다. 미국인들은 끊임없이 생산적인 것을 가장 행복하게 생각하며 게으름을 도덕적인 문제로 간주하는 반면, 유럽인들은 게으름을 탐내고 부러워한다는 것이다.
유럽인들 중에서도 가장 일을 적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인들의 게으름엔 나름의 철학이 있다. 프랑스의 반(反)노동주의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책은 칼 마르크스의 사위인 폴 라파르그가 1883년에 출간한 『게으를 수 있는 권리』로,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프랑스 노동자 계급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이 책에서 라파르그는 인간 소외를 없애기 위해 노동자는 하루 3시간만 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게으름뱅이 철학의 기본 원칙은 노동과 놀이를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한 역사학자는 프랑스인들의 의식 밑바닥에는 “노동은 신성한 가치가 아니라 고역 또는 고문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travail)을 뜻하는 라틴어 트레팔리움은 고문의 한 수단이었으며, 전통적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는 노동을 통해 인간이 성장한다고 역설한 프로테스탄트적·자본주의적 가치관의 세례를 덜 받은 나라라는 것이다.
영국의 게으름 운동가 톰 호지킨슨은 “내가 보기에 게으름뱅이는 현재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사유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즘엔 누군가를 게으르다고 말할 경우에, 단지 고용주가 요구하는 일을 믿고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그런 평가를 내리는 걸 볼 수 있다. 우리는 세상만사에 의문을 던지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 결과 무정부주의와 자유의지론에 가까운 정치관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시인인 바이런·키츠·셸리 등은 빈둥대고 지내면서 시를 썼으며, 그들의 시는 무수한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켰다는 게 게으름 운동가들의 주장이다.
『시사저널』 통신원 류재화는 2004년 10월 28일자 기사에서 프랑스에서 일고 있는 게으름 찬양 붐을 보도했다. 주 35시간 근로제 탓에 이미 일하지 않는 나라로 낙인찍혔는데, 이젠 게으름뱅이 나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고 프랑스 우파 성향 언론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불만은 우파 성향 언론을 넘어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돼, 이제 프랑스의 주 35시간 근무제는 철폐 위기에 몰렸다. ‘유러피언 드림’을 역설하는 제레미 리프킨은 주 35시간 근무제가 실업률을 낮췄다고 칭찬했지만, 아무래도 옛날 통계자료에 근거한 것 같다. 주 35시간 근무제는 99년 사회당 정권 시절 고용증가를 위해 도입됐지만 최근 오히려 실업자를 늘리고 경기를 침체시킨 주범으로 지목돼 왔기 때문이다. 도입 당시 노동부장관 마르틴 오브리는 “노동시간을 10% 줄이면 추가 비용 없이 약 7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프랑스의 실업률은 현재 10%에 근접한 수준으로 프랑스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실업률 상위국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주 35시간 근무제는 프랑스의 투자 환경 중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어 외국인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비판받고 있다. 업무 분화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대기업에서는 근무시간 축소에 따른 결원을 다른 직원으로 대체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우나, 기업이 작을수록 각자에게 맡겨진 업무를 다른 직원이 수행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제도가 일률적으로 도입된 공기업에서는 민간 기업에서보다 더욱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 인접 나라의 노동시간 연장 경향도 프랑스의 주 35시간 근무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2004년 12월 9일 프랑스 총리 장 피에르 라파랭은 국정연설에서 “주 35시간으로 제한했던 노동규정을 개혁하겠다”며 “고용업체들은 자체적으로 직원들과 연장 근무 문제를 협상해 주 48시간 한도 이내에서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자유롭게 추가 노동시간, 임금, 노동조건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며 “이를 통해 국민들은 더 많은 복지와 일자리뿐만 아니라 경기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이것은 “10%에 가까운 실업률을 겪고 있는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의지”라며 “프랑스 국민은 자신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더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2005년 2월 15일자는 “주 35시간 근로제는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개혁 조치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위기의 프랑스』라는 책을 쓴 경제전문가 티모시 스미스는 “프랑스의 복지 제도는 실업자가 아니라 이미 직장이 있거나 장기 근로를 마치고 퇴직한 기득권층의 이익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주 35시간 근로제 철폐에 대해 프랑스의 기업주들은 환영을 표한 반면, 노동단체들은 반발했다. 3월 9일 수십만 명의 노조원들은 파업시위를 벌였는데, 여론조사 결과 근로자의 56%가 반대의사를 나타냈으며 찬성률은 18%에 불과했다. 그러나 프랑스 노동자의 8%만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는 현실에 비추어 그들의 힘은 겉보기와는 달리 그리 강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겠지만, 이미 상원 승인 절차를 거친 주 35시간 법정 근무제 개편법안은 3월 22일 찬성 350 대 반대 135의 압도적 비율로 프랑스 하원을 통과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가 성인강림축일(부활절부터 만 7주 지난 50일째) 공휴일인 5월 16일을 휴일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하자 그날 교사와 버스운전사, 우체국 직원 등 수백만 명이 파업을 벌여 90여 개 도시에서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 운행에 차질이 빚어졌고 공공서비스가 일부 마비되는 일이 벌어졌다.
프랑스의 주 35시간 근로제가 무너진다 해도 프랑스인을 포함한 유럽인들의 게으름 예찬론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게으름 피우며 사는 건 영원한 희망일 것이기에 삶이 각박할수록 더욱 그 희망에 매료되지 않겠는가.
한국에서도 주 5일 근무제가 점차 본격화되면서 게으름 예찬론이 영향력을 더해가고 있다. 2004년 7월부터 공공부문과 1,000인 이상 사업장에 시행되던 주 5일 근무제(주 40시간제)는 2005년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연월차 휴가일수를 조정하고 생리휴가 무급화를 도입하는 기업이 확대되고 있다.
또 2005년 3월부터는 전국 모든 초·중·고교에서 주 5일 수업제를 월 1회 실시하게 되었다. 『서울신문』 2005년 3월 22일자 1면 머리기사 「26일 초중고 첫 토요휴업」은 이를 반기는 가정들에겐 ‘황금의 날’이지만, 맞벌이 집은 ‘근심의 날’이라고 보도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게으름과 종교적 신앙심은 상호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부지런하고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신앙심도 강하다. 이는 미국과 유럽을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미국은 점점 더 강한 종교적 신앙심으로 무장해 가는 반면 유럽은 세속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과거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인들의 부지런함과 개신교의 초고속 성장도 상호 무관하진 않은 것 같다.
한국에서도 주 5일 근무제는 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04년 12월 CBS가 창사 50주년을 맞아 전국 목회자 29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주 5일 근무제가 교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한 응답이 57%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게으름’의 정의에 만인이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게으름의 내용을 살펴보면 여러 유형이 있을 수 있다. 게으른 사람도 모든 일에 다 게으른 게 아니고, 부지런한 사람도 모든 일에 다 부지런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휴대폰 없인 못 살겠다는 ‘게으른 사람’을 생각해 보자. 이 사람은 일 자체엔 게으르지만 사람을 만나고 행사에 참석하는 일엔 매우 부지런하다. 늘 스케줄을 맞추느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사람을 워낙 좋아해서 그러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여야만 사람 사는 보람을 느낀다는 것일 뿐,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일에도 열성이다. 이 사람은 유행에도 매우 민감하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 혼자서 해야 할 일에 대해선 매우 게을러 늘 일을 질질 끄는 버릇을 갖고 있다.
이건 결코 극단적인 예가 아니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은 게으른 사람인가, 부지런한 사람인가? 게으름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매우 부지런하게 뛰는 사람은 또 어떻게 보아야 할까? 다른 건 게을러도 섹스나 먹는 일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지런한 사람들도 많다. 다른 건 부지런해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걸 매우 싫어하고 유행을 비웃는 게으름뱅이도 있다.
혹 주변에 악명 높은 게으름뱅이가 있으면 잘 살펴보시라. 어떤 일엔 대단히 부지런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일 중독’ 환자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엔 엄청나게 게으르다.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시간만 나면 열심히 놀러 다니는 것도 부지런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거다. 놀아야 할 시간에도 일만 하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너무 게을러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또 하나 살펴볼 것은 ‘지속성’의 문제이다. 느린 사람은 게으르고, 빠른 사람은 부지런한 것인가? 느리지만 꾸준히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과 빠르지만 쉽게 금방 손 털고 일어서는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라. ‘느림의 철학자’인 피에르 쌍소는 “지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특성 가운데서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에너지가 결코 고갈될 줄 모른다는 점이다”라고 말했지만, 그를 정작 화나게 만든 건 ‘빠름’이라고 하는 속도일 것이다.
게으름 예찬론자들은 과도한 노동예찬론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충만한 나머지 다소의 과장을 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라파르그만 하더라도 “노동자 계급의 머릿속에서 지배 계급이 새겨 넣은 편견을 말끔히 지워 버려야 한다”는 목적으로 문제의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으며, 1935년에 나온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도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이 현대 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또 이들의 게으름 예찬론은 매우 부지런한 정신 노동에 의해 탄생되었다는 것도 감안할 필요가 있겠다. 과연 무엇을 위한 게으름이며 부지런함인가 하는 것도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예찬론자들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이들이 예찬하는 게으름의 높은 경지에 이르자면 그건 무위(無爲)에 가까운, 거의 도(道) 닦는 수준의 것으로 보통사람들에겐 오히려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다. 적어도 명상의 수준이다. 파스칼(1623~1662)이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한다”고 말했다고 해서, 불행을 막기 위해 외출을 삼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상식 수준에서 중용을 택하자면, 노동을 예찬할 것도 없고 게으름을 예찬할 것도 없다. 강요된 ‘노동의 종언’이 외쳐지고,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해 노동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수십만·수백만 명이 줄 서 있는 상황에선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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