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2026-10-22
슬픔의 위안이라는 책에서 인간은 짝, 가족, 친구, 집단, 국가로 이루어진 연대의 원에 속함으로써 안전감을 얻는다고 했다.
최근에 나는 슬픔을 느꼈고. 짝이라는 원이 부서졌으니까 다른 원을 강화해서 단단한 유대를 맺기 시작했나?
가족과는 기존보다 조금 가까워졌다. 친구와도 조금 가까워졌다. 집단과는 거리를 유지하였다. 국가와도 거리를 유지했을것이다. (손대지 않음)
가족이나 친구와 거리를 충분히 좁혔나? 하면 그렇지 않다. 부족한 외로움은 혼자 휴식하면서 보냈다.
가족과는 왜 충분히 좁히지 않았을까? 친구는 내가 충분히 스스로 통제가능하지 않은 상태에서 날것의 모습을 보였을때 관계를 잃을지 아닐지를 판단할 수 없어서 그 위험성이 있다고 쳐도 가족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외로움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일수있는 솔직함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면서, 진심으로 사랑하고 걱정하는것이 위로와 안전감을 전달하는것으로 변환될때 발신자의 사려깊음이 크게 관여함에 따라 손실이 엄청 커진다는걸 느꼈다.
나는 진심을 다했지만 그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상대가 진정 원하는것인지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다. 충분히 생각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가족이 나에게 진심을 다할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수많은 이야기와 시간과 감정을 나누면서 어느새 전달되었다.
하지만 나의 상태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법을 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상태를 들여다보고 중간 정도의 연대를 꾸려가고있는 ‘일상’을 다시 돌릴수있는 수준으로 올리는 것은 나 스스로가 충분히 할 수 있다.
결국은 나는 연대가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거리를 뒀었다. 다시 연대하는 일상으로 돌아가 사람들과 섞이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고 느껴진다. 아무래도 짝도 갖고싶고, 가족과도 진심을 나누고 싶고, 친구도 더 만들어서 자주 즐겁고 싶고, 회사에서도 에너지를 더 긍정적으로 사용하고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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