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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8 ⋯ 운명의 형태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은 아버지의 모든 걸음, 베어 무는 모든 것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아버지는 수년 동안 오토바이를 몰고,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마시고, 물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 때마다 큰 배로 풍덩 수면을 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에 한계를 설정하는 자기만의 도덕률을 세우고 또 지키고자 자신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반세기 동안 거의 매일 아침 어머니에게 커피를 만들어주었고, 자기 학생들에게 헌신적이었다. 그들은 명절 때 우리 집에 식사하러 오고, 때로는 우리 집에서 살기도 했다. 우리 집 식탁에는 아버지가 떨리는 손으로 새긴 수천 개의 작은 숫자들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우리 세 자매에게 수학의 논리를 이해시키려 노력하며 보낸 무수한 밤들의 물리적 기록이다. 암울한 현실일 수도 있는 것들이 아버지에게는 오히려 인생에 활력을 가득 불어넣고, 아버지가 크고 대범하게 살도록 만들었다. 나는 평생 광대 신발을 신은 허무주의자 같은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려 노력해왔다. 우리의 무의미함을 직시하고, 그런 무의미함 때문에 오히려 행복을 향해 뒤뚱뒤뚱 나아가려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그것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내 주의를 끌었던 이유다. 결코 승리하지 못할 거라는 그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혼돈을 향해 계속 바늘을 찔러 넣도록 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가 우연히 어떤 비법을, 무정한 세상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어떤 처방을 발견한 게 아닐까 궁금했다. 게다가 그는 과학자였으므로, 나는 무엇이든 끈질기게 지속하는 일에 대한 그의 정당화가 내 아버지가 심어준 세계관에도 들어맞을 수 있을 거라는 작은 가능성을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무언가 핵심적인 비결을 찾아냈을지도 몰랐다.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 가장 암울한 날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비결, 신앙 없이도 믿음을 갖는 비결 말이다. “낮이나 밤이나 호스로 물을 뿌려. 낮이나 밤이나.” 해는 뜨고 지고, 뜨고 지고, 데이비드의 동료 두 사람은 고무 덧신을 신고서 물고기들의 살덩이를 향해 호스로 물을 뿌렸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불굴의 기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창밖에는 그들의 선지자가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있고, 공기 중에는 먼지가 희부옇게 드리워 있으며, 이 난장판을 어떻게 다시 수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차가운 물과 불확실성을 정면으로 고스란히 받아내며 적어도 당장은 이것들을 마르지 않게 하겠다는 단호한 의지.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어떤 말을 속삭였을까? 자기가 평생 해온 작업의 파편들을 쓸어 담을 때,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 물고기들을 던져버릴 때, 이튿날 밤 작은아들 에릭을 침대에 뉘일 때, (영원히 끝나지 않을, 엄청난 양의) 번개와 세균과 지각변동이 잠복한 채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을 때, 자신에게 계속 박차를 가하기 위해, 그 모든 일의 허망함에 짓눌려 으스러지지 않기 위해 그는 정확히 어떤 말을 자신에게 들려주었을까? 나는 시카고로 옮겨 갔다. 친구 헤더가 몇 주 동안은 자기 집 남는 방에서 지내도 되니 거기서 앞으로 뭘 할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친절한 제안이었다. 나는 시카고가 좋았다. 시카고의 추위가, 시카고의 익명성이. 나는 누구든 될 수 있었다. 컨버스 스니커즈를 신고, 탄산화 생성물이 약간 포함되어 있는 듯한 까끌까끌한 보도를 따라 걸었다. 나는 폴짝 뛰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람둥이가 아니라,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 우주적 정의가 실행되는 대상이 아니라, 고향에 행복한 가정이 있는 사람이. 그러나 헤더가 남자친구와 시내로 외출한 밤, 도시의 자주색 불빛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올 때면 나는 그 모든 것의 현실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내 인생에 생긴 공백을, 내가 품은 희망의 빛이 나를 더 따뜻이 데워줄수록 점점 더 넓어지고 차가워지기만 하는 그 공백을 말이다. 그래서였다. 나는 절박했다. 단순하게 말하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책에서,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일을 정당화하는 그 정확한 문장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절박했다. 그는 갈수록 더욱더 내 아버지와 비슷한 소리를 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매번 숨 쉴 때마다 자신의 무의미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거기서 자기만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심지어 절제에 관한 에세이에서도 그것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왜 그토록 약에 반대했을까? 그건 약이 사람을 실제보다 더 강력하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혹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약이 “신경계가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8 예를 들어 알코올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로는 몸이 차가울 때도 따뜻하게 느끼도록 하고, 아무 근거 없이 기분 좋아지게 하며, 인격 수양의 핵심을 차지하는 제한과 자제에서 해방되었다고 느끼게 한다.” 달리 말하면, 자신에 대한 낙관적인 관점은 자기 발전에 대한 저주라는 것이다. 자신을 정체시키고 자기 발달을 저해하고 도덕적으로 미숙하게 만드는 길이자 멍청이가 되는 지름길이다. 이런 게 정말 그의 세계관이라면, 그가 그렇게 자기 과신을 경계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그런 집요함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모든 게 사라지고 부서지고 희망이라곤 없는 최악의 날에조차 어떻게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밖으로 나가게 한 것일까? 마침내 나는 가장 유의미한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손에 넣었다. 그것은 《절망의 철학》이라는 제목의 작고 검은 책이다. 책에서 데이비드는 과학적 세계관이 골치 아픈 점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 그 세계관이 보여주는 것은 허망함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우리가 붙인 불은 숯을 남기고 죽는다. 우리가 지은 성들은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다. 강은 바닥을 드러내고 사막의 모래만 남긴다. (…) 어느 쪽으로 눈을 돌리든 생명의 과정을 묘사하려면 기운 빠지게 하는 은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데이비드는 청교도답게 손을 게으름에서 벗어나게 하라고 권한다. “활동적인 야외 생활과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건강과 함께” “영혼의 고통은 사라진다.” 그는 우리 몸이 일으키는 전기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시기에 쓴 한 강의 요강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행하고, 돕고, 일하고, 사랑하고, 싸우고, 정복하고, 실제로 실행하고, 스스로 활동하는 데서 온다.” 내 생각에는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그가 말하려는 요점 같다. 여정을 즐기고 작은 것들을 음미하라고 말이다. 복숭아의 “감미로운” 맛, 열대어의 “호화로운” 색깔, “전사가 느끼는 준엄한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운동 후 쇄도하는 쾌감 등. 그러면 나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면 어떻게 하라는 걸까? 데이비드는 나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동정심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절망의 철학》의 최종 결론은 절망이 선택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절망이 청소년기에 자연스럽게 거쳐 가는 단계라고 생각하기는 해도 그런 감정을 떨쳐내지는 못하는 사람들은 경멸한다. 나는 익숙한 수치심이 나를 덮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버지가 엄청 차가운 호수에 풍덩 뛰어들었다가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만면에 띠고 큰 숨을 내쉬며 수면으로 치솟는 모습을 볼 때 느꼈던 바로 그 감정이었다. 나는 왜 아버지처럼 저렇게 살 수 없는 걸까?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뭘까? 그 답을 찾으려는 필사적인 마음에 나는 계속 책을 읽으며, 위생과 유머, 외교, 평화주의에 관한 그의 비판문과 시, 강의 노트, 알코올과 립스틱과 전쟁에 관한 논쟁을 뒤졌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오후 나는 발견했다. 공포에 대한 해독제, 희망에 대한 처방을 말이다. 그것은 그가 ‘진화의 철학’이라 이름 붙인 강의 요강의 제일 밑에 묻혀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그날 하루의 강의를 내가 풀고자 했던 그 난제, 바로 과학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바쳤다. “이러한 인생관은 염세주의로 이어지는가?” 강의가 끝나갈 무렵 그는 학생들에게 일종의 마술 같은 주문을 걸었다. 혼돈이 주는 냉기를 떨쳐버리는 한 가지 방법을 말이다. 특별한 활자체로 된 여덟 개의 단어.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나는 경악했다. 이거였다. 내 아버지가 즐겨 쓰는 바로 그 비법. 오늘날까지도 아버지 책상 위 액자 속에 담겨 있는 바로 그 단어들. 다윈이 외친 투쟁의 권유. 내 아버지와는 다르게—반항적이고, 희망과 신념이 가득한 사람으로—보였던 데이비드지만, 결국 그에게도 내게 알려줄 새로운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늘 들어왔던 말을 또다시 상기시키는 것밖에는. 장엄함은 *존재*해. 네가 그걸 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 나는 스탠지에게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그 지진과 바늘에 대한 나의 집착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건 왜 그러는지에 관한 집착이야”라고 나는 말했다. “한 사람을 계속 나아가도록 몰아대는 건 뭘까?” 그때 그 친구가 한 말은 “흠”이 다여서 나는 맥이 좀 빠졌지만, 다음 날 오후 이메일을 통해 좀 더 긴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네가 말한 그 이야기 말이야.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정교한 뭔가를 쌓아 올렸다가… 그 모든 게 다 무너지는 걸 목격한 그 사람… 그 사람은 계속 나아갈 의지를 어디서 다시 찾았을까 하는 그 질문.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파괴되지 않는 것은 낙관주의와는 전혀 무관해. 낙관주의에 비하면 훨씬 더 심오하고 자의식은 훨씬 덜하지. 우리는 그 파괴되지 않는 것을 온갖 종류의 다른 상징과 희망과 야심 등으로 가리고 있어. 이런 상징과 희망과 야심은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인정하라고 강요하지 않으니까. 음… 만약 그 모든 잉여를 제거한다면(혹은 제거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파괴되지 않는 그것을 찾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가 일단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카프카는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 그는 우리가 파괴되지 않는 것을 낙관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해주지 않아), 그것은 실제로 우리를 찢어발기고 파괴할 수도 있어.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거지…. 나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경이로운 개념이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비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밀고 나아가는 것이 미친 짓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해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 개념은 단지 내가 그것을 거역한다면 나를 부숴버리겠다고만 약속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잘 들어맞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그의 회고록으로 돌아갔다.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는, 아마도 그전까지는 내게 불활성 상태로 있었을 개념에 생기를 불어넣은 이 새로운 단어로 무장한 채, 나는 그 개념이 데이비드가 쓴 글들 속 어딘가에 잠복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 증거를 찾아 나섰다. 그 증거는 긴 발췌문 속에 묻혀 있었다. 지진이 있고 겨우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샌프란시스코가 입은 피해의 규모를 조사하려 애쓰고 있을 때 데이비드 본인이 쓴 개인적인 에세이○에서 발췌한 글이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창조하기 시작한 이래, 사람이 노력해서 이룬 결과가 그토록 처참하게 파괴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엄청난 규모의 재앙 앞에서 그렇게 푸념하지 않는 인간을 만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평범한 한 남자가 자기 자신에게 그토록 희망차고, 그토록 용감하며, 그토록 자신과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는 모습을 보여준 일은 그전엔 결코 없었다. 왜냐하면 결국 살아남는 것은 사람이고,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도 사람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불에 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 지진과 화재가 준 교훈이다. 그가 지은 집은 무너지기 쉬운 카드로 지은 집이지만, 그는 집 밖에 서 있고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다. 위대한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그보다 더 경이로운 일은 도시가 되는 것이다. 도시란 사람들로 이루어지며, 사람은 영원히 자신이 창조한 것들보다 높이 올라가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보다 더 위대하다.이 얼마나 경이롭고 분발을 요구하는 투쟁의 권유인가.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위로이자, 어깨를 움켜쥐는 손길인가. 그런데 작은 문제가 하나 있다. 그가 쓴 단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신도 그 문제를 발견할 것이다. 그 진주알을 만든 최초의 작은 모래알 하나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이 말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 결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다. 사악함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그가 경고했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 자기 경력을 바쳐 맞서 싸워왔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자, 그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가치가 있다고 말했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다.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까! 그조차도 절망에 완전히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면 그 거짓말이 진실이기를 믿어야만 했던 것이다. 출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024-12-31 ⋯ 진전의 가시화

Q. 우리가 시간 관리를 좀 더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요? A. 저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진전의 가시화’라고 생각합니다. 대개의 경우 일이 얼마나 진척됐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죠. 그런데 이메일 답장 같은 쉬운 일이라면, 1000통의 이메일에 답장한다고 해도 자신이 답장한 이메일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반면 어려운 문제를 처리할 때는 마치 30시간은 헛되이 보냈고 마지막 30분만 유용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30분 동안에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죠. 일이 진척된다는 감각은 한눈에 파악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 생각에 관건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가?”인 겁니다. 일의 진전 여부를 가시화할 수 있다면 다른 많은 것은 작은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 펜으로 적으면서 일을 한다면 자신이 처리한 일의 증거물이 남습니다. 자신이 밟아 온 경로를 볼 수 있는 거죠. 이처럼 발전의 기록이 눈에 보이도록 하는 방법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일에서 탁월함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관찰과 정련, 적응과 인내가 요구된다. 저명한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자제력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기 바란다. > 저는 소설 쓰기 모드에 돌입했을 때 새벽 4시에 일어나 5-6시간 동안 작업합니다. 오후에는 10킬로미터 달리기나 1500미터 수영을 한 다음(혹은 두 가지를 모두 한 다음), 책을 읽거나 음악을 감상하지요. 밤 9시에는 잠자리에 들고요. 이런 루틴을 변화 없이 매일 지속합니다. 반복 자체가 중요합니다. 반복은 일종의 최면이니까요. 제 자신의 깊은 내면에 접근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겁니다. 하지만 6개월-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런 반복적 생활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정신력과 체력이 요구되지요. 이런 의미에서 장편 소설을 쓴다는 건 생존 훈련과도 같습니다. 예술적 감성만큼 체력이 절실한 일이지요.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집중력을 단련하고 창의적 에너지를 모으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자신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쏟는지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대변한다.에 20분~1시간만이라도 고독을 위한 시간을 비워 두면 어마어마한 변화가 찾아온다. 이 시간, 고요한 평온 속에서 우리 마음은 나무 위의 원숭이처럼 활기가 넘치게 된다. 마음에 고요가 찾아오면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파악할 수 있고, 매일의 업무와 인터넷 생활의 불협화음 속에서 잃어버렸던 자신만의 창조적 목소리에 다시 귀 기울일 수 있다. > 책: 루틴의 힘


2024-12-31 ⋯ 좀비를 줄 세우는 방법

일론 머스크가 물려받은 유산과 혈통은 그의 뇌 배선과 어우러져 때때로 그를 냉담하게도, 충동적이게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리스크에 대한 극도로 높은 수준의 내성으로 이어졌다. 그는 리스크를 냉정하게 계산할 수도 있었고, 열정적으로 수용할 수도 있었다. “일론은 리스크 그 자체를 원합니다.” 페이팔PayPal 초창기에 머스크의 파트너로 일했던 피터 틸은 말한다. “그는 리스크를 즐기는 듯합니다. 때로는 정말 리스크에 중독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머스크는 태풍이 몰려올 때 가장 강력한 생기를 느끼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나는 폭풍을 위해 태어났어요. 그러니 고요함은 나에게 적합하지 않지요.”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이 한 말이다. 일론 머스크도 마찬가지다. 그는 일과 연애 양 측면에서 폭풍과 드라마를 끌어당기는 힘, 때로는 갈망을 발달시켰다(그래서 그가 그렇게 부부 또는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이리라). 그는 위기나 데드라인, 할 일의 폭증과 같은 상황에서 번성했다. 복잡하고 난해한 도전에 직면하면, 그로 인한 긴장으로 종종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심지어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그에게 활력도 불어넣었다. “형은 드라마를 끄는 자석과 같아요.” 킴벌이 말한다. “드라마가 그의 강박이자 삶의 주제입니다.” 예전에 내가 스티브 잡스에 관해 취재하던 당시, 그의 파트너였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꼭 그렇게 비열하게, 꼭 그렇게 거칠고 잔인하게, 꼭 그렇게 매번 드라마틱하게 굴었어야 했을까?” 인터뷰 말미에 해당 질문과 관련해 본인은 어떻게 다른지를 묻자, 워즈니악은 만약 자신이 애플을 경영했더라면 그보다는 좀 더 온화하게 처신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직원 모두를 가족처럼 대했을 것이고, 즉결로 해고하거나 그러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후 잠시 멈추었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만약 내가 애플을 경영했더라면, 매킨토시 같은 것은 결코 만들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일론 머스크에 대해서도 유사한 질문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괴팍하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를 전기차의 미래로, 그리고 화성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2022년 초, 스페이스X에서 31차례나 로켓을 성공적으로 발사했고, 테슬라의 자동차가 100만 대 가까이 팔렸으며, 머스크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등극한 기념비적인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으며 머스크는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자신의 충동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사고방식을 위기 모드에서 다른 것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가 나에게 한 말이다. “대략 지난 14년 동안 위기 모드로 살아왔거든요. 아니 거의 평생을 그랬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그것은 새해 결심이라기보다는 아쉬움을 담은 말이었다. 그런 맹세를 했음에도 그는 세계 최상의 놀이터라 할 수 있는 트위터의 주식을 비밀리에 사들이고 있었다. 머스크는 나중에 자신이 아스퍼거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밝히고 심지어 농담까지 하곤 했다. 아스퍼거증후군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한 형태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으로, 사회성과 인간관계, 정서적 연결, 자기 조절 능력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렸을 때 실제로 그런 진단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어머니의 말이다. “하지만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그 말이 맞겠지요.” 그의 그런 상태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악화되었다. 그의 절친한 친구 안토니오 그라시아스에 따르면,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는 괴롭힘을 당하거나 위협을 받는다고 느낄 때면 어린 시절에 얻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가 뇌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부분인 변연계를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그 결과 그는 사회적 신호를 잘 포착하지 못했다. “나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말하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곤 했어요.” 그의 말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이 항상 진심은 아니라는 것을 오로지 독서를 통해 배웠어요.” 그는 공학, 물리학, 코딩과 같은 보다 정확한 주제를 선호했다. 모든 심리적 특성이 그렇듯이 머스크의 특성 역시 복합적이고 개별화되어 있었다. 그는 특히 자녀와 관련해서는 매우 따뜻해질 수 있었고, 혼자 있게 되면 불안감을 심하게 느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일상적인 친절이나 따뜻함,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만들어내는 감정 수용기가 없었다. 그는 공감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다. 덜 전문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그는 개자식처럼 굴 수도 있었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이 더 돈독했던 아버지는 일론에게 우리의 제한된 감각과 머리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조종사 중에는 무신론자가 없는 법이지요.” 그의 말이다. 일론은 나중에 이렇게 덧붙였다. “시험 시간에는 무신론자가 없는 법이지요.” 하지만 일론은 일찍부터 과학이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있으므로 창조주나 신성을 불러내 삶에 개입시킬 필요가 없다고 믿게 되었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일론은 무언가 빠졌다는 생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존재에 대한 종교적 설명과 과학적 설명 모두 ‘우주는 어디에서 왔으며 왜 존재하는가?’와 같은 정말 중요한 질문을 다루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물리학은 우주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었지만, 그 존재의 이유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가 스스로 ‘청소년기의 실존적 위기’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어졌다. “나는 삶과 우주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란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우울해졌지요.” 훌륭한 책벌레들이 그러하듯이, 그는 독서를 통해 이런 의문을 해결했다. 처음에 그는 불안한 청소년의 전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니체나 하이데거, 쇼펜하우어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책을 읽은 것이다. 이것은 일론의 혼란을 절망으로 바꾸어놓았다. “십대들에게는 니체를 읽으라고 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론은 말한다. 머스크의 그런 청소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공상과학 소설은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였다. 유쾌함과 풍자가 넘치는 이 이야기는 머스크가 나름의 철학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그의 진지한 표정에 익살스러운 유머를 더해주었다. “그 책은 내가 실존적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었어요. 그 책을 읽는 순간 모든 부분에서 미묘한 방식으로 놀랄 만큼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이 소설에는 초공간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외계 문명에 의해 지구가 파괴되기 몇 초 전에 지나가는 우주선에 의해 구조되는 아서 덴트라는 인간이 등장한다. 덴트는 자신을 구해준 외계인과 함께 “불가해성을 예술로 바꾼” 머리 두 개 달린 대통령이 통치하는 은하계의 다양한 구석구석을 탐험한다. 은하계의 주민들은 “생명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며 슈퍼컴퓨터를 만들지만, 그 컴퓨터는 700만 년 이상이 지난 후 그 질문에 대해 ‘42’라는 답을 내놓는다. 당황한 외계인들이 어리둥절해하며 법석을 떨자 컴퓨터는 응답한다. “확실히 답이 그렇게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문제는 여러분이 질문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교훈은 머스크에게 그대로 각인되었다. “나는 그 책을 통해 의식의 범위를 확장해야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을 더 잘 던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우리 의식의 범위를 우주로 확장해야 하는 거지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일론은 때때로 다소 거칠고 쓴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지와 비슷한 웃음이었다. 일론이 사용하는 일부 단어와 그가 응시하는 방식, 빛에서 어둠으로 그리고 다시 빛으로 갑작스럽게 변하는 모습은 그의 가족들에게 그의 내부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에롤을 떠올리게 한다. “일론이 나에게 들려준 끔찍한 이야기의 그림자가 자신의 행동방식에서 드러나는 것을 보곤 했어요.” 일론의 첫 번째 부인인 저스틴의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신이 성장한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해주었지요.” 이따금 그녀는 감히 “당신이 아버지로 변하고 있어요”와 같은 말을 입에 올렸다. “사실 그것은 그가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경고하는 우리의 암호였어요”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그러나 저스틴은 항상 자녀에게 감정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일론이 아버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에롤을 보면 정말로 주변에서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반면에 좀비가 창궐하는 대재앙이 발생한다면 일론의 팀에 속하고 싶을 거예요. 일론이라면 좀비를 줄 세우는 방법을 알아낼 것이기 때문이죠. 그는 매우 냉혹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승리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에요.” 출처 책 일론 머스크


2024-12-31 ⋯ 인테그리티

1998년 워런 버핏은 플로리다대학교에서 MBA 학생들에게 사람을 고용할 때 살펴보는 3가지를 언급하였다. 지능이 좋은지(머리가 잘 돌아가는지, 똑똑한지, 어리바리하지는 않은지), 일을 선도적으로 열정을 갖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지(시키는 것만 하는지, 해야 할 것들을 알아서 챙기는지), 그리고 integrity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머리도 좋고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열정도 있으나 integrity가 없는 자는 회사를 망칠 사람이다. integrity가 없는 사람을 고용하면 직원들을 게으름뱅이, 멍청이로 만들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테그리티란 자신이 옳다고 믿거나 생각하는 것을 말과 행동을 통해 일관성 있게 실천하는 것이다. 인테그리티를 완벽하게 실천하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꾸준히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 > 책: 세이노의 가르침


2024-12-31 ⋯ 인터넷, 지속 가능한 에너지, 우주여행

머스크는 여름이 끝날 무렵 스탠퍼드대학원에 진학하여 재료과학을 공부할 계획을 세웠다. 여전히 커패시터에 매료된 그는 그것으로 전기자동차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었다. “첨단 칩 제조 장비를 활용하여 자동차의 주행거리를 늘리기에 충분한 에너지 밀도를 가진 고체 소자 울트라 커패시터를 만들어볼 생각이었어요.” 그는 말한다. 하지만 등록기간이 가까워지면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스탠퍼드에서 몇 년을 보내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는데 그 커패시터가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지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사실 대부분의 박사학위는 무의미해요. 실제로 그 부류 가운데 세상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머스크의 말이다. 그 무렵 그는 마치 ‘만트라’처럼 되새기고 되새길 인생의 비전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인류에게 진정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어요. 그리고 세 가지를 떠올렸지요. 인터넷, 지속 가능한 에너지, 우주여행.” 1995년 여름, 머스크는 그중 첫 번째인 인터넷이 그가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 전 웹이 상업용으로 개방되었으며, 8월 초에 브라우저 스타트업 넷스케이프Netscape가 IPO를 단행해 하루 만에 시가총액 29억 달러의 기업으로 날아오른 상황이었다. 머스크는 사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졸업반 시절에 구상한 인터넷 기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하나 갖고 있었다. 뉴욕 및 뉴잉글랜드 지역 전신전화 회사인 나이넥스NYNEX의 한 임원이 학교 강연회에 와서 옐로페이지(미국의 업종별 전화번호부-옮긴이)의 온라인 버전 출시 계획에 대해 밝혔을 때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빅옐로Big Yellow’라는 이름의 그 온라인 버전은 인터랙티브 기능을 갖추어 사용자들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정보를 맞춤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임원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머스크는 나이넥스가 진정한 인터랙티브의 구현 방법을 전혀 모른다고 생각했다(결과적으로 그것은 올바른 판단이었다). 그는 킴벌에게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게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킴벌은 사업체 목록과 지도 데이터를 결합할 수 있는 코드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버추얼 시티내비게이터Virtual City Navigator’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탠퍼드대학원 등록 마감일 직전, 머스크는 노바스코샤 은행의 피터 니콜슨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토론토로 갔다. 버추얼 시티내비게이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계속 추구해야 할까요, 아니면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게 나을까요? 스탠퍼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니콜슨은 애매하게 둘러말하지 않았다. “인터넷 혁명 같은 것은 일생에 단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니콜슨은 머스크와 함께 온타리오 호숫가를 따라 걸으며 말했다. “대학원은 나중에라도 뜻만 있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지.” 머스크는 팰로앨토로 돌아와 렌에게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다른 모든 것은 보류하기로 했어. 지금은 인터넷의 물결에 올라탈 때야.” 하지만 그는 사실 자신의 베팅에 보험을 들었다. 스탠퍼드에 정식 등록하고 즉시 휴학을 신청한 것이다. “실은 제가 최초로 인터넷 지도와 전화번호부를 갖춘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습니다.” 머스크는 재료과학과 담당교수인 빌 닉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마 실패할 겁니다. 실패하는 경우 다시 돌아오고 싶습니다.” 닉스는 머스크가 학업을 연기하는 것은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렇지만 머스크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머스크 형제는 수익금 가운데서 아버지에게 30만 달러를, 어머니에게 100만 달러를 드렸다. 일론은 50평짜리 콘도를 구입하고 당시 가장 빠른 양산차인 맥라렌 F1 스포츠카를 100만 달러에 구입하는 등 나름대로 궁극의 사치를 부렸다. 그는 그의 집에서 차가 배달되는 모습을 촬영하게 해달라는 CNN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YMCA에서 샤워를 하고 사무실 바닥에서 잠을 자던 제가 이제 100만 달러짜리 차를 갖게 되었습니다.” 머스크는 트럭에서 차가 내려지는 동안 이렇게 말한 후 거리를 이리저리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충동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분출한 이후, 그는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부에 대한 취향을 경솔하게 과시하는 것이 꼴사나운 짓임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차를 구입한 것을 보고 건방진 제국주의자의 전형적인 행동방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제 가치관이 변했을지 모르지만, 저는 제 가치관이 변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가 변한 걸까? 새롭게 얻은 부로 그는 자신의 욕망과 충동에 거의 제약을 받지 않게 되었지만, 그런 상황은 항상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진지하고 사명감 넘치는 강렬함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작가 마이클 그로스는 실리콘벨리에서 티나 브라운의 번지르르한 잡지인 <토크>에 새로 부자가 된 테크노브랏techno-brat, 즉 기술 열풍을 타고 벼락부자가 된 젊은 리더들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었다. “날카롭게 비판해도 될 만한 허세 가득 찬 주인공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로스는 몇 년 후 이렇게 회상했다. “하지만 2000년에 만난 머스크는 삶의 환희가 넘치는, 너무 호감 가는 인물이라 비판할 수가 없었지요. 그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기대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심했지만, 편하고 개방적이며 매력적이고 재미난 인물이었어요.” 출처 책 일론 머스크


2024-12-31 ⋯ 인적 네트워크

머스크는 러시아인들이 받아내려 했던 터무니없는 가격을 곱씹으면서, 제 1원리(First Principles-다른 경험적 데이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명한 진리')에 입각한 사고를 동원해 그 상황에 대한 기본 물리학을 파고들었고 거기서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려나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완제품이 기본 재료비보다 얼마나 더 비싼지 계산하는 '바보 지수idiot index'를 개발했다. 제품의 '바보 지수'가 높으면 보다 효율적인 제조기술을 고안하여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로켓은 '바보 지수'가 극도로 높았다. 머스크는 로켓에 들어가는 탄소섬유와 금속, 연료 및 기타 재료의 원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방법을 사용한 완제품의 제작비용은 머스크가 계산한 원가보다 최소 50배 이상 비쌌다. 인류가 화성에 가려면 로켓 기술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했다. 중고 로켓, 특히 러시아의 오래된 로켓에 의존해서는 기술을 발전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는 노트북을 꺼내 중형 로켓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모든 재료와 비용을 세세히 나열하며 스프레드시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뒷자리에 앉은 캔트렐과 그리핀은 술을 주문하며 웃었다. “우리의 저 천재백치께서는 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요?” 그리핀이 캔트렐에게 물었다. 머스크가 몸을 돌려 “이것 좀 봐요, 여러분”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만든 스프레드시트를 보여주었다. “이런 로켓을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캔트렐은 숫자를 살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헐, 내 책을 다 빌려가더니만 결국 이러려고 그랬군.” 그러고는 승무원에게 술을 한 잔 더 달라고 했다. 킴벌은 일론과 저스틴, 아기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네바다는 뇌사 판정을 받은 상태로 3일 동안 생명유지장치를 달고 생을 유지했다. 마침내 호흡기를 끄기로 결정했을 때, 일론은 아기의 마지막 심장 박동을 느꼈고 저스틴은 아기를 품에 안고 죽음의 떨림을 느꼈다. 일론은 주체할 수 없이 흐느꼈다. “마치 늑대처럼 울었어요.” 그의 어머니는 말한다. “늑대처럼….” 일론이 도저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다고 해서 킴벌은 부부가 베벌리윌셔 호텔에 머물도록 조처했다. 호텔 지배인은 그들에게 프레지덴셜 스위트를 내주었다. 일론은 그에게 호텔로 가져왔던 네바다의 옷과 장난감을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일론이 가까스로 집에 가서 한때 아들의 방이었던 곳을 보기까지 3주가 걸렸다. 일론은 슬픔을 조용히 감내했다. 퀸스대학교에서 사귄 친구 나베이드 패룩은 그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로스앤젤레스로 날아와 곁을 지켰다. 패룩은 말한다. “저스틴과 나는 그간의 일에 대한 대화에 일론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그는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들은 대신 영화를 보고 비디오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랜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패룩이 물었다. “기분은 어때? 잘 견디고 있는 거지?” 하지만 일론은 그런 대화 자체를 완전히 차단했다.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그를 알고 지내온 사이였기에 그가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패룩의 말이다. 반대로 저스틴은 자신의 감정에 매우 솔직했다. “남편은 내가 네바다의 죽음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말한다. “그는 내가 감정을 숨김없이 털어놓으면서 감정적으로 자기를 조종하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저스틴은 그가 그렇게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 어린 시절에 발달된 방어기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어두운 상황에 처하면 감정을 차단해버려요. 그에게는 그것이 생존을 위한 방법인 것 같아요.” 요하네스버그에서 출발한 비행의 첫 번째 구간을 마치고 노스캐롤라이나 주 랠리에 도착했을 때, 에롤은 델타항공 담당자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아드님께서 손자 네바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일론은 그 내용을 직접 말할 자신이 없었기에 항공사 담당자에게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에롤이 전화를 받자 킴벌은 상황을 설명하며 말했다. "아버지, 오시면 안돼요." 킴벌은 아버지에게 발길을 돌려 남아공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했지만, 에롤은 거부했다. "아니다, 이미 미국에 도착했으니 로스앤젤레스에 가봐야 되겠다." 에롤은 베벌리윌셔 호텔 펜트하우스의 규모를 보고 놀랐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마도 그때까지 내가 본 호텔 방 중 가장 놀랍지 않았나 싶어요." 일론은 넋이 나간 듯 보였지만, 복잡한 심정으로 애정에 목말라 있기도 했다. 그는 거칠고 거만한 성격의 아버지가 그런 나약한 모습의 자신을 보는 것이 불편했지만, 아버지가 떠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결국 그는 아버지와 그의 새 가족이 로스앤젤레스에 머물 것을 종용하기에 이르렀다. "남아공으로 돌아가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가 말했다. "제가 여기에 집을 사드릴게요." 킴벌은 깜짝 놀랐다. "아냐, 아냐, 좋은 생각이 아니야." 그가 일론에게 말했다. "형은 아버지가 얼마나 음흉한 인간인지 벌써 잊었어? 그러지 마, 형. 이건 자학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동생이 설득하려고 애쓸수록 일론은 더욱 슬퍼졌다. 수년 후, 킴벌은 어떤 갈망이 형에게 그런 동기를 부여했는지 다시 한 번 되짚었다. "아들이 죽는 것을 지켜본 일이 아버지가 곁에 있기를 원하도록 이끈 게 분명해요." 그가 내게 말했다. 어느 날 에롤이 보트에 올라 있을 때 일론으로부터 메시지 한 통이 날아왔다. “상황이 좋아지기는커녕 엉망이 되고 있으니” 에롤에게 남아공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이었다. 에롤은 그렇게 했다. 몇 달 후, 그의 아내와 아이들도 남아공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 협박도 하고 보상도 하고 논쟁도 벌이고 별의별 시도를 다 했지요.” 일론이 나중에 한 말이다. “그런데 그는…” 머스크는 오랜 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말도 안 되게도, 더 나빠졌어요.” 인적 네트워크는 디지털 네트워크보다 복잡하기 마련이다. 출처 책 일론 머스크


2024-12-31 ⋯ 인간의 사교적인 행동을 배우려는 다른 행성의 관찰자

그는 아버지처럼 공학에 끌렸기에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했다. 그가 느낀 엔지니어의 본질은 어떤 문제든 물리학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파고들어 해결책을 찾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공동 학위 과정을 밟아 경영학도 전공하기로 했다. “경영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경영학을 공부한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지요.” 그는 말한다. “내 목표는 물리학의 감각으로 제품을 설계 및 제작하는 것, 그리고 경영학을 전공한 보스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었어요.” 그는 정치적이지도 사교적이지도 않았지만 학생회 임원 선거에 출마했다. 그의 선거 공약 중 하나는 이력서를 화려하게 채우기 위해 학생회 활동을 하려는 학생들을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그의 선거 공약 중 마지막 약속은 다음과 같았다. “만약 내가 이력서에 이 경력을 써 넣는다면, 공공장소에서 물구나무를 서서 이 공약서 50부를 씹어 먹겠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낙선했고, 덕분에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 학생자치회 유형의 학생들과는 어울릴 필요가 없었다. 대신 그는 과학적 힘과 관련된 영리한 농담을 하고 ‘던전앤드래곤’ 게임 및 비디오 게임에 탐닉하며 컴퓨터 코드 작성을 좋아하는 일단의 컴퓨터광 무리에 편안히 섞여들었다. 렌은 머스크가 훗날의 경력 형성과 관계된 세 가지 분야에 집중했다고 회상한다. 중력을 측정하든 중력의 속성을 분석하든 그는 늘 렌과 로켓 제작에 적용되는 물리 법칙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화성에 갈 수 있는 로켓을 만드는 것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렌의 말이다. “물론 나는 그가 환상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요.” 머스크는 전기차에도 집중했다. 그와 렌은 종종 푸드 트럭 중 하나에서 점심을 급히 해결하고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쉬곤 했는데, 그때마다 머스크는 배터리에 관한 학술 논문을 읽곤 했다. 마침 캘리포니아 주에서 2003년까지 차량의 10퍼센트를 전기자동차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는 법령이 막 통과된 시점이었다. 머스크는 “내가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주역이 되고 싶어”라고 말했다. 머스크는 또한 1994년에 접어들며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한 태양광 발전이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나아가는 최선의 길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의 졸업논문 제목은 〈태양광의 중요성〉이었다. 기후변화의 위험성뿐만 아니라 화석연료 매장량이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도 그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그는 “사회는 곧 재생 가능한 동력원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라고 썼다. 논문의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미래의 발전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태양 전지판에 햇빛을 집중시켜 생성한 전기를 마이크로파 빔을 통해 지구로 다시 보내는, 거울들이 달린 위성이 포함되었다. 교수는 “느닷없이 제시한 마지막 수치만 제외하면 매우 잘 쓴 흥미로운 논문”이라는 평가와 함께 98점을 주었다. 레시는 나중에 일론이 약간 무심한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는 파티에 참석하는 것을 즐겼지만, 완전히 파티에 빠지지는 않았어요. 그가 진정으로 탐닉한 것은 오로지 비디오 게임이었지요.” 레시가 보기에, 일론은 그 많은 파티에 참석하면서도 인간의 사교적인 행동을 배우려는 다른 행성의 관찰자처럼 근본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며 물러나 있었다. “일론이 조금 더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레시는 말했다. 출처 책 일론 머스크


2024-12-31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소피.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할 것이 남았어. 내가 처음으로 마을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던 계기, 그 오두막 뒤에 있던 귀환자 말야. 정해진 성년식보다 조금 더 빨리 지구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그 남자에게 몰래 찾아가 물었어. 혹시 지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그는 슬픈 진실을 말해주었지. 지구에서 그가 사랑했던 사람과 그의 쓸쓸한 죽음에 관해. 그가 남겼던, 행복해지라는 유언에 관해. 나는 말했어. 당신의 마지막 연인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겠냐고. 나는 그에게 지구로 다시 함께 가겠냐고 물었어. 떠나겠다고 대답할 때 그는 내가 보았던 그의 수많은 불행의 얼굴들 중 가장 나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소피, 이제 내가 먼저 떠나는 이유를 이해해줄 거라고 믿어. 그럼 언젠가 지구에서 만나자. 그날을 고대하며, 데이지가. 스펙트럼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때의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너무나 괴롭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숨기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지막 이야기에는 거짓이 있다. 할머니는 그 행성에서 구조 신호를 발신한 적이 없다. 할머니의 셔틀이 구조된 장소는 망망대해 같은 우주의 진공 한가운데였다. 할머니는 무리인들의 행성에서 10년을 보냈다고 했지만, 실제로 할머니가 구조된 건 조난 이후 40년 만이었다. 시공간 여행의 시차를 고려하더라도 할머니는 20년 이상을 다시 혼자가 되어 떠돌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오랜 시간동안 할머니는 대체 무엇을 한 걸까? 어쩌면 할머니는 어떻게든 행성에서 멀리 떠날 방법을 찾아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구도 그 행성의 위치를 추적할 수 없을 장소에 도달한 다음에야 마침내 구조 신호를 보낸 것인지도. 어쨌든 모든 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할머니는 단 한 번도 그 시간의 빈틈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준 적이 없다. “루이는 정말로 죽었을까요?” 그런 질문에도 할머니는 빙긋 미소만 지었을 뿐이다. 행성의 위치에 대해 어떤 단서조차 내놓지 않겠다는 할머니의 고집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완고했다. 정부와 기업, 연구소에서 수도 없이 사람을 보내 할머니를 설득했지만 할머니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수십 년의 고독과 외로움에 지쳐 상상 속에서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던 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만은 아닌 셈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다시 만날 때는, 우리는 더는 유약한 이방인이 아닐 것이다. 루이와 할머니의 관계는 재현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 탈출 때 할머니가 협곡에서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 뭉치의 종이뿐이었다. 할머니의 말대로 종이 위의 색채들은 마치 누군가 수백 종의 물감을 흩뿌려놓은 것처럼 다채로웠다. “이건 루이가 나를 기록하고 관찰한 일기였어. 일종의 연구노트라고 할까. 내가 그들을 관찰하고 탐색한 것처럼 루이에게도 나는 연구대상이었던 셈이지. 어쩌면 그들은 내가 아주 먼 곳에서 온, 도구가 없어 무력한 학자임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할머니는 나에게 루이가 쓴 기록의 내용을 읽어주셨다. 지구에 돌아온 이후로 할머니는 여생을 색채 언어의 해석에만 몰두했다. 내용의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시간을 들여가며 알아낼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평범한 관찰 기록이었다. 그러나 그중 잊히지 않는 한 문장만큼은 지금도 떠오른다. “이렇게 쓰여 있구나.” 할머니는 그 부분을 읽을 때면 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숨을 거두기 전 할머니는 연구노트의 처분을 나에게 맡겼다. 나는 기록의 사본을 남기고, 원본은 할머니와 함께 화장했다. 찬란했던 색채들이 한 줌의 재로 모였다. 나는 할머니의 유해를 우주로 실어 보내 별들에게 돌려주었다. 공생 가설 만약에 뇌 속의 ‘그들’이 인간에게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유입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마치 기생충이나 미생물이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전염되듯 말이다. 그들은 공기 중에 분포해 있거나, 바이러스처럼 환경에 널리 퍼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감염을 위한 최초의 접촉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상자 속의 아이들이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그들’을 받아들일 기회가 없었던 것이라면? 어쩌면 가장 중요한 특성은 인간 밖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빈은 그 증거를 확인하려 하고 있었다. 수빈은 영상에서 소리 데이터를 추출해서 전환기에 넣었다. 그냥 듣기에는 다른 평범한 아기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울음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의 유무가 아기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여기서는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들의 대화가 아닌 아기들의 욕구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배고파」 「졸려」 「무서워」 수빈은 다음에 일어난 일 역시 알고 있었다. 그 아기들은 사람들이 기대한 대로 성장하지 않았다. 상자 속의 아기들은 이타성을 획득하지 못했다. *재밌게 읽어서 하는 말이지만 인간의 '이타성'이 '그들' 즉 외부로부터 온다는 가정을 증명하는 위 부분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상자 속에 집어넣는 실험> 설정은 좀 거슬린다. <태어난 아이들을 충분히 빨리 상자 속에 집어넣음 -> 접촉이 일어나지 않음>인건데 거슬리는 부분은 '충분히'이다. 얼마나 빨리 집어넣었길래 혹은 접촉이 어떻게 일어나길래? 미토콘드리아처럼 공생한다고 했으면 의문이 안들었을것 같음. 빈틈없는 논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인데 내 눈에 보이는거면 매끄럽지 않은 진행이 맞는 듯하지만. 뭐 중요한가? 사실 이 말도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ㅎ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기술 발전만 보고 달리니까 다른 중요한 가치를 인간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판. 예전에 유튜브에서 돌고래와 소통하는 실험을 봤던 게 생각났다. https://youtu.be/1NfgR7LZ3sI?si=q9eMkyp5v9k_bI03 ![image](https://github.com/user-attachments/assets/f150b7ea-0701-4b02-9abe-9b222cd11389 감정의 물성 나는 보현의 서랍장 위에서 수십 개의 감정의 물성 제품들을 발견했다. 하나같이 전부 ‘우울’이었다. 그 옆에는 병원에서 처방받아 온 항우울제가 있었다. 나는 이제 그녀가 우울에 빠져 죽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살아남고 싶은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널 이해 못 하겠어.” 보현은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발목이 잡혀 있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녀를 억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건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우울체’가 그녀의 슬픔을 어떻게 해결해주는가? “물론 모르겠지, 정하야. 너는 이 속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테이블 위의 휴대폰이 울렸다. 보현은 말을 이어갔다. “어떤 문제들은 피할 수가 없어. 고체보다는 기체에 가깝지. 무정형의 공기 속에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짓눌려. 나는 감정에 통제받는 존재일까? 아니면 지배하는 존재일까? 나는 허공중에 존재하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해. 그래. 네 말대로 이것들은 그냥 플라시보이거나, 집단 환각일 거야. 나도 알아.” 보현은 우울체를 손으로 한 번 쥐었다가 탁자에 놓았다. 우울체는 단단하고 푸르며 묘한 향기가 나는,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동그랗고 작은 물체였다. “하지만 고통의 입자들은 산산이 흩어져 내 폐 속으로 들어오겠지. 이 환각이 끝나면.” 우울체 하나가 탁자 위를 굴러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게 더 나은 결론일까.” 나는 시선을 피했고 그 순간 보현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어지는 진동 소리가 짧은 비명 같았다. 잠시 뒤 그녀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달칵 닫혔다. 휴대폰의 진동이 멈췄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 허공을 가득 채운 침묵이 느껴졌다. 보현을 무슨 말로 위로해야 했을까? 나는 순간 보현을 위로할 수 있는 어떤 언어도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가슴속에서 빠져나가버린 듯 싸늘했고, 나는 그게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실재하는 감각임을 알았다. 그제야 어설프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머물렀다 사라져버린 향수의 냄새. 무겁게 가라앉는 공기.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 오래된 벽지의 얼룩. 탁자의 뒤틀린 나뭇결. 현관문의 차가운 질감. 바닥을 구르다 멈춰버린 푸른색의 자갈. 그리고 다시, 정적. 물성은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는가. 나는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떨구었다. *결말이 이해가 안돼서 여러번 읽었는데 그래도 이해가 안된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