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핌 #
#2026-08-18
헤로인 중독이라는 것은 미리 계획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자각하지도 못한 채,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녀의 고통 정도로는 ‘충분히 아프지 않다’는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반발이었다.
일단 그 거짓말이 몸에 어떤 안도감을 가져오자, 몸은 그 상태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세이디는 자신의 감정이 모두 진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통도 실제였다. 다만 그것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타인의 판단과 기준이 끼어들지 않도록 치워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날, 내 앞에 앉아 있는 세이디를 바라보며 나는 한 가지 사실에 감사했다. 그녀는 이제 거짓말의 무게를 내려놓을 만큼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결코 입 밖에 내지 못할거라 여겼던, 가장 극단적인 진실을 꺼내놓은 것이다. 이것은 우리 존재 전체를 위협할 것만 같은 거대한 도약이다. 많은 내담자들은 이 순간을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뛰어내리는 순간 필수적이라고 믿어왔던 안전망, 즉 타인의 존재는 점점 작아진다. 이전에 머물던 자리에서는 ‘사람들이 나를 붙잡아 주지 않으면 나는 죽을 거야. 그러니 그들이 나를 붙잡고 싶도록 만들어야 해’라고 느꼈다.
그런데 이제는 남들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자신의 실제 경험을 직면하고 껴안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에 다다르고 있었다. 여전히 두려웠지만, 자신의 본모습에 도달하는 그 감각은 깊고도 강렬했다.
이 인식은 세이디에게 중요한 전환을 가져왔다. 아쩌면 마거릿이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붙잡아 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수개월 동안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여전히 그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주 작은 틈이 생겼다.
‘누군가가 나를 구해줘야만 해’에서 ‘어쩌면 내가 나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로 향하는 사고의 전환은 트라우마 생존자에게는 상상조차 어려운 변화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세이디는 치료를 시작한 이후 줄곧 나를 엄마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그날 내가 우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고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비로소 실감했다고 했다.
자신을 걱정하는 타인의 마음을 느끼며, 세이디는 자신도 돌봄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치유와 경계 설정의 핵심에는 안전한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보살핌을 받는 경험이 있다.
부서진 모성 관계는 곧 트라우마가 된다. 그 치료제는 신뢰할 수 있는 다른 성인과의 안전한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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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 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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