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과 안정감 #
#2026-08-17
엄마와의 관계에서 세이디는 경계를 늦출 수 없었고 그것은 지속적인 불안으로 이어졌다. 그녀의 경험을 보면 호흡법이나 마음챙김을 통해 ‘더 평온한 상태‘에 이르는 것으로는 관계성 트라우마나 불안을 치유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안전한 관계’라는 환경이 필요하다.
우리는 관계 안에서 안전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타인의 기분을 살피고, 주변에 잠재한 위협 요소들에 주의를 기울인다. 미묘한 단서와 표정의 변화를 읽어내고, 위험의 낌새를 멀리서도 감지한다. 과잉각성 상태에 놓인 우리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사로잡힌 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작은 일에도 쉽게 놀라며, 지나치게 분석하면서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가슴을 졸인다.
그 반응을 보이는 동안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순응 반응은 우리가 느끼는 불안을 가린 채 돌봄을 제공하고, 기분을 맞추고, 사람들과 섞이는 방식으로 그 불안을 조절하려 한다.
“불안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몸의 자율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인데, 순응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감각을 잃어버린 상태다. 주의가 늘 타인의 생각과 감정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순응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불안 때문에 과도하게 기능하고 지나치게 헌신한다. 적정선을 알지 못한 채 자기 경계를 무너뜨리며 스스로를 희생한다.
순응 반응이란 타인의 기대에 동화되는 동시에 자기 자신과의 연결을 끊는 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이렇게 더 깊은 곳의 진정성은 덮어씌워 놓고, 머릿속에서는 끝없는 토론이 벌어진다.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며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만,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근거만큼 반대편의 근거 또한 충분해 결론은 나지 않는다.
순응하는 사람들은 사실 자기 밖에서 자신을 찾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혼란스럽고 어지러우며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계를 세우거나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면 어떻게 될까? 그 순간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큰 불안을 느낀다. 순응 반응이 제공하던 안전감이 사라지면 무언가 나쁜 일이 벌어질 것 같고, 그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순응 반응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불안을 어떻게 관리하든, 사람들은 여전히 실망하고 화를 낸다. 우리가 그들에게 맞춰준다고 해서 그들 역시 우리에게 맞춰주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 우리 몸은 또다시 부조화의 감각을 느낀다. 불쾌한데도 웃고,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남의 일을 대신 떠맡고, 온전한 자신이 아닌 어떤 ’버전’으로 살아간다. 이런 내적 갈등은 종종 의식 아래에서 흐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지속적인 불안을 만들어낸다.
치유를 위해서는 ‘느껴야‘ 한다. 표면 아래에 깔려 있는 불안과 그동안 외면해 왔던 모든 감정들을 말이다. 처음에는 엄청난 고통이 따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몸의 감각과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것들을 느껴야 한다. 그것만이 진정한
그럴 때 우리는 결국
#
#출처
책 포닝
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