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
#2026-07-30
가치는 자유의지로 선택했고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당신에게는 본질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가치는 목적지가 아닌 방향성이다. 언제든 가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지만 가치를 달성해서 끝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가치는 전적으로 당신의 통제권 안에 있으며 외부적 요인들에 의존하지 않는다. 가치의 주된 기능은 거친 바다의 등대처럼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다.
소중한 가치를 알고 가치를 기준으로 삶을 평가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좋은’ 삶이란 가치에 부합하는 삶이고, ‘좋은’ 행동은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행동이다. 느낌으로 행동을 판단하는 것과는 다르다. 느낌을 바탕으로 행동을 판단하면 불쾌한 생각과 감정을 줄이거나 통제하는 것이 좋은 행동이 된다. 그 차이가 중요한 이유는 좋은 가치의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 좋은 느낌의 요건을 충족하는 것보다 훨씬 자신의 통제권 안에 있기 때문이다. 가치를 기준으로 누군가를 돕는다면 그를 돕고 싶어서 돕는 것이지만, 느낌을 기준으로 누군가를 돕는다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돕는 것이다.
가치는 ‘성공하기’처럼 주변 사람들의 기대나 바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일요일에 교회 가기’처럼 할 일 목록에 적었다가 쉽게 완료하고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사랑받기’처럼 당신의 통제권을 벗어난 것도 아니다. 가치가 자신의 통제권 안에 있어야 한다는 말은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은 본래 사랑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사랑받기 위해 항상 더 노력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사랑받기’는 처음 두 조건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사랑받는 것은 스스로 일으킬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가 될 수 없다. 사랑스럽게 행동하기로 선택할 수는 있지만 사랑받는 것을 당신이 선택할 수는 없다. 가치가 자신의 통제권 안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가치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개념과 연결된다.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의 가치를 선택한다면 좋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권력을 무심코 양도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느낌과 원칙이 행동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된다.
무엇이든 가치가 될 수 있다. 신념의 옹호, 진정성, 자율성, 연민, 창의성, 소통, 청렴, 신뢰, 자연 모두 가치가 될 수 있다. 당신을 살아있게 하는 것, 설레며 하루를 시작하게 만드는 것,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라. 거기서 출발해라. 가치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으며 옳은 것도 틀린 것도 없다. 당신이 선택했기에 옳다. 당신의 가치를 변명할 필요는 없다. 의미 있는 삶을 즐길 사람도 당신이고, 가치에서 멀어진 삶을 살며 괴로워할 사람도 당신이다. 주변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당신의 삶을 살아낼 사람은 당신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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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느낌을 바탕으로 행동을 판단하면 불쾌한 생각과 감정을 줄이거나 통제하는 것이 좋은 행동이 된다. 그 차이가 중요한 이유는 좋은 가치의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 좋은 느낌의 요건을 충족하는 것보다 훨씬 자신의 통제권 안에 있기 때문이다.
느낌으로 행동을 판단한다는 건, “이 행동을 하면 기분이 나아지나?“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면 좋은 행동이란 곧 ‘불쾌한 감정을 줄여주는 행동’이 돼버린다. 누군가를 도울 때, 느낌을 기준으로 하면 나는 ‘죄책감을 안 느끼려고’ 돕는 것이다 도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내 불편한 기분을 없애는 게 목적인 것이다. 반면 가치를 기준으로 하면, 나는 ‘그를 돕고 싶어서’ 돕는다.
겉으로 하는 행동은 똑같이 ‘돕기’인데 하나는 나를 괴롭히는 감정에서 도망치는 거고, 다른 하나는 내가 소중히 여기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가 훨씬 내 통제권 안에 있다. 왜냐하면 ‘내 기분을 좋게 만들기’는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지만, ‘내 가치대로 행동하기’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집착하는 것들은 “남들과 다르게 보이면 안전하지 않다”, “사랑받고 인정받아야 한다”, “이상하게 보이면 안 된다” 등 통제권 밖의 가치이다. 이를 내려놓고, 통제권 안의 가치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예를 들어 ‘내 몸과 머릿속 신호를 존중하기’와 ‘사람들과 진짜로 연결되기’는 둘 다 통제 안에 있다. 결과(‘저 사람이 날 어떻게 볼까’)가 아니라 행동(‘나는 정직하게 나를 표현했다’)에 삶의 채점 기준을 두면 삶의 주도권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잘 지내고 싶은 사람이 되기’는 어떨까? ‘잘 지내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건, 내가 다가가고 싶고, 함께 있고 싶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건 상대의 반응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존재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지만 ‘잘 지내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만약 ‘남들이 나와 잘 지내고 싶어 하게 만들기’로 읽으면, 이건 통제권 밖의 문제다. 왜냐하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느끼느냐는 또 상대의 몫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정하고 진솔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보면 통제권 안에 있고, ‘남들이 나를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들기’로 보면 통제권 밖으로 나가는 셈이다. 방향을 바깥쪽(남의 인식과 평가)이 아니라 안쪽(내 태도와 행동)으로 두자.
#출처
책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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