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인가 #
#2026-07-30
꼬리표가 없는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이라는 말에 따라붙는 수식어와 명사들을 모두 떼어내면 무엇이 남는가. 잠시 그저 자기 자신이 되어보아라. 여러 자아가 당신의 인식을 흐려놓지 않을 때 그저 존재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느껴보아라. ‘신경질적인’, ‘성취 지향적인’, ‘재미있는’, ‘야심 찬’, ‘감각적인’ 같은 수식어는 더 이상 없다. 당신 마음에 생긴 공간을 가만히 보아라. 모든 꼬리표를 다 떼어내니 어떤가? 자신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으니 홀가분한 기분이 들 것이다. 당신을 묶어두던 닻이 사라져서 비로소 온전히 현재의 순간에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달았을 수도 있다. 꼬리표와 이야기는 단지 일관성을 유지하고 우리를 묶어두기 위해 고안된 것들이다. 어쩌면 당신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 괴로울 수도 있다. 무엇을 알아차렸건 평상시와는 다른 느낌이길 바란다. 그것은 곧 평상시의 경험들이 꼬리표나 이야기로 진하게 채색되어 있었다는 뜻이고 앞으로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눈가리개를 벗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부여한 정체성들을 놓아버리면 기존의 이야기에 부합되는 모습이 아닌 본모습 전체가 드러난다. 예를 들면, 무명가수의 노래를 즐겨 들으면서도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에 공감할 수도 있고, 뭐든 잘하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을 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일 수도 있다. 상대성 이론을 쉽게 이해하면서도 누군가 말해주기 전에는 자전거에 기어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다.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울 때 이 모든 진실들이 공존할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이제 자신을 완전히 놓아보아라.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여기건 그것으로부터 물러서라. 현재에 머물며 생각들, 느낌들, 꼬리표들, 이야기들을 관찰해라. 일관성 있는 자아에 집착하지 말고 그것들이 머물거나 흘러가는 것을 관찰해라. 그 모든 것에 초연한 기분이 어떤가? 일관성의 부담을 털어낸 기분이 어떤가?
꼬리표와 이야기로 규정되는 자아로부터 벗어나 관찰하는 자아로 옮겨가는 과정에는 관점의 변화가 따른다. 마치 평지에서 높이 솟아오른 산을 쳐다보다가 어느 순간 하늘에서 비행기를 타고 산을 내려다보는 것과 같다. 산 자체는 변함이 없지만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 평지에서 산을 바라보면 정복하기 힘든 거대한 대상처럼 느껴지고 두려움과 무력감이 밀려들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마음이 편안해지고 경외심까지 든다. 분명히 인식해야 할 점은 조망수용이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조망수용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따라오는 생각들, 감정들, 꼬리표들을 바꾸려 애쓰지 말고 다른 관점에서 보아라. 평지가 아닌 하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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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내가만약 지금 생활이 불만이라면 리셋했을때 어떤 점을 고치고 싶을까?
첫번째는 식사다. 식사패턴에는 불만이 없다. 정확히는 있지만 이상향일 뿐이고 지금이 최적임을 안다. 아침에 약간의 과자를 먹고, 점심을 요기만 할 정도로 먹고, 샌드류나 비스킷 과자를 한봉지 먹으면서 오후를 보낸 다음, 저녁을 먹는 것이다. 주말에도 아침에 약간의 과자를 먹고, 점심을 적당히 먹고 간식을 먹으면서 오후를 보낸 다음 저녁은 가볍게 먹는 것이다. 이 식사습관에서는 약속이 있으면 하루이틀 관리해주면 좋아하는 옷을 입을 수 있다. 평소에도 적당히 만족스러운 아웃핏을 내는 착장을 마련했으므로 이 착장만 입고 다니면 타협 없이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지금의 환경이 지금의 식사습관을 유지하기 어렵게 하는가? 딱히 그렇지 않다. 어차피 점심은 요기할정도로 먹는다. 굶어야하는게 아니기때문에 같이 구내식당 밥을 먹고, 한번씩 배달음식을 먹고, 한번씩 편의점 샌드위치를 먹는 지금에서 바뀔 필요가 없다. 거짓말하거나 발버둥치거나 감춰야할 부분이 없다.
두번째는 옷이다. 옷도 불만이 없다. 새로운 회사에 들어간대도, 새로운 사람들과의 약속에 나간대도 나는 이렇게 입고 다닐 것이다. 즉 관성에 따라서 차려입지 않는게 아니라 나는 원래가 반팔 티셔츠가 블라우스나 셔츠보다 잘어울리고, 치마나 슬랙스보다 청바지가 잘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다른 의류 카테고리보다 저렴한 편이어서 마련하기 어렵지도 않다.
세번째는 성격이다. 새로운 회사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나는 바꾸고싶은 이미지가 있을까? 놀랍게도 이부분또한 딱히 생각나는게 없다. 나는 여전히 이정도로는 섞이려는 노력을 할것이고, 또 이정도로는 내 공간을 유지하려 할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부정적인 감정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나는 식사를 할때마다 내가 남긴 양을 숨겨야한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이유는 ‘왜 이렇게 조금 드시냐’는 말을 듣고싶지 않아서였다. 근데 그 말을 왜 듣고싶지 않아할까? 평소 먹는 양은 괜찮은 편이지만 점심에 먹는양만 본다면 먹는양에 비해 마르지 않았다고 보일것같다는 생각을 하고, 남들이 그렇게 생각할것에서 약간의 수치를 느끼는것같다. 그렇다면 그건 또 왜일까? 그러게. 그럴 필요가 없는것이다. 나는 그냥 점심을 조금먹는 사람이다. 쌤들이랑 안다니고 나대로 뒀으면 아마 사식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식을 먹는 날에도 불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식을 안먹는게 무조건 좋은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과자만 먹으면 밥을먹고싶을것이고 나에게 온전히 맡겨두면 나에게 필요한 만큼보다 밥은 적게, 과자는 많이 먹을 것이다, 그러면 내 마음이 내 몸과 싱크가 맞지 않아서 결국엔 많이 먹고 과식해서 속이 안좋아질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제한은 딱 적정선이다.
불만이 없는건 이미 알고있다. 중요한건 나는 그냥 점심을 조금먹는 사람이고 그건 문제가 없지만 그사실을 숨기려한다는게 문제다. 그 이유는 먹는양 대비 뚱뚱하다고 생각할수도있기 때문이고 그게 싫기 때문이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뭐 어떤가? 그게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그렇다면 결론이 나왔다. 나는 점심을 조금먹는 사람이고 그사실을 숨기려한다. 이는 현실의 측면에서 숨길 필요가 없지만, 거기서 수치와 같은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도 사실이다. 나의 그 느낌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글을 써내려가면서 크게 이상한게 아니라는 느낌 또한 조금더 강화하게 되었다. 그러면 지금 이순간에도 그 사실이 부끄러운가? 누군가가 먹는양대비 마르진 않았군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숨기고싶고 부끄러운가? 아마 운동하고 건강식을 먹으면 괜찮을것이지만 내가 그걸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배달음식을 먹는 저녁시간이 좋고 간식을 고르는 시간이 좋고 간식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 시간이 행복하다. 이게 내 선택이 아니라 이곳으로 떠밀려온거라해도 나는 지금이 만족스럽다. 그래서 나는 정말정말로 이제 남을 속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출처
책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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