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고 선하게 살아가는법 #
#2026-07-21
#1
집단의 구성원은 다른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는지 아니면 불쾌함을 느끼는지 늘 의식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미움받기보다는 사랑받기를 원한다. 이는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우리 안에 자리 잡은 공동체 지향성의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양육자의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며 그것이 음식, 안전 그리고 생존에 필요한 모든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배운다. 그렇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지닌 본능적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기대에 맞게 행동하면 사랑과 인정을 보상받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다 성인이 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받아들여지고 싶고, 동료들의 인정을 갈구하며, 집단 내 다른 구성원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욕구의 조율’을 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대다수가 인식하지 못하는 더 큰 희생을 치르게 되는데, 바로 정서적 자립심을 서서히 잃어가는 것이다. 집단에 매이지 않는 이향인은 집단이 끌어당기는 힘과 자기 내면에서 발생하는 힘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 그들은 ‘틀린’ 생각을 하거나 ‘잘못된’ 감정을 느끼는 데 두려움이 없는데, 옳고 그름을 공동체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단의 인정이 필요하지 않기에 그들은 태생적으로 자립이 가능한 존재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혐오하는 일이 드물고, 다른 사람을 부끄럽게 하거나 죄책감에 몰아넣는 일도 없다.
#2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향인은 개인적 결정을 내릴 때 자기 자신을 믿는 법을 배운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삶을 가능한 한 즐겁고 알차게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무엇을 잘할 수 있고 무엇을 잘하지 못하는지도 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발표를 훌륭하게 해냈다면 그들은 그 사실을 스스로 안다.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 곱씹지 않고, 누군가가 잘했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렸다가 그 말이 진심인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자기인식과 자립심은 이향인이 인생의 방향을 선택할 때 단호하고 주도적이며 자신감 있게 나아가도록 해준다.
*그 선을 정하기 전인 어린 이향인은 자신이 이 결정을 내릴만큼 성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그럴때는 다른 사람이 보내는 호감의 시그널이나 불쾌함의 시그널이, 성숙한 상태의 자신이 내릴 만한 결정을 미성숙한 자신이 선택할수있도록 돕는 경우도 있음을 경험적으로 깨닫는다. 그리고 그 선택 대신 자신의 결정을 믿고 행동하는 일은, 충돌을 피하고싶은 성향상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고하여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충돌을 최소화할수있도록 최선을 다했음을 자신이 이해하였을때, 그리고 자신의 결정을 믿는 시도가 설령 잘못된 선택으로 타인과 충돌한다해서 필요함을 자신이 납득할수있을때, 그때는 충돌에 책임을 지고 자신의 결정을 실행해보는것이 꼭 필요할 것이다. 부딪혀보지않으면 아무리 성숙의 자산을 사고와 책을 통해 모아도 현실적인 성숙이 어렵기 때문이다.
#3
그녀는 폭력적인 남편과의 양육권 분쟁에 휘말려 있었다. 변호사와 친구들, 가족들은 남편을 상대로 한 이 소모전이 그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때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향인 환자들에게 내가 늘 하는 조언을 똑같이 해주었다. “그냥 손 떼고 나오세요. 돈도 복수도, 당신 마음의 평화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이향인의 우선순위 목록에서 마음의 평화는 늘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들은 타인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용납할 수 없고, 갈등과 대립을 뼛속 깊이 혐오한다. 굴복하기보다는 애초에 싸움에 끼어들지 않기를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쟁심이 없어서 이기고 지는 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4
카프카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고독은 언제나 나를 지배하는 힘을 발휘한다. 겉으로 드러난 자아는 잠시 흩어지고 그 속에 감춰진 더 깊은 내면이 드러날 준비를 한다. 내가 스스로 고독을 선택할 때, 내면이 조금씩 질서를 찾기 시작하며 나는 그 외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이향인이 진정한 본모습으로 돌아갈 때 느끼는 안도감과 만족감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동체 지향인들은 홀로 있을 때조차 집단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어도 여전히 집단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반면 이향인은 혼자일 때 철저히 혼자다.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의 생각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행동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지 고민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왜 자신이 그 자리에 끼지 못했는지 따지지도 않는다.
#5
이향인은 결코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사실 이향인에게 사람은 매혹적인 존재다. 그래서 이향인은 비록 집단 전체와는 친밀감이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집단을 이루는 개개인과는 일대일로 유대를 형성할 수 있다. D.H.로렌스는 이향인의 이런 성향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진정한 의미에서 타인과 어울릴 줄 아는 사람만이 우주에 홀로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남들에게 질척거리며 군중 속에 묻어갈 뿐이다.” 우정에 있어서 이향인은 양보다 질을 중시한다. 그들은 집단이 어떻게 집단적으로 사고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직장이나 공동체 사회의 생태계에 잘 어울리지 못한다. 게다가 여럿이 함께하는 활동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나 공동체 지향인들이 편안해하는 다정한 분위기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아주 가까운 친구 한두 명, 그리고 평생 파트너 한 명이면 연결과 동반에 대한 이향인의 욕구는 충족될 수 있다.
#6
이향인은 공동체 지향인들처럼 누군가의 허락이나 승인, 인정이나 찬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신의 결정이나 행동의 정당함을 누구에게도 설득할 필요가 없는 그들은 불필요한 대화나 방해 요소에서 자유롭다. 또한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잘보이려는 욕구에 지배받지 않기 때문에, 명확한 경계를 설정해 자신의 정신적 에너지와 시간을 지킬 수 있다. 그들은 어떤 일이 사소하고 어떤 일이 의미 있는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두 가지 모두를 위해 시간을 낼 줄 안다. 지위란 언제나 사회적 집단 안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측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향인은 그런 집단에 매여 있지 않아서 자신의 선택이나 생활 방식, 소유물의 가치를 남과 비교해 가늠하지 않는다. 이는 곧 이향인들이 ‘소외될까 봐 두려워하는’ 심리 없이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향인의 결정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라서, 그들은 그 선택에 충분히 만족한다. 또한 외부의 인정 없이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칭찬을 좋아하는데… 남이 기뻐하는걸 보면 기분이 좋아서일까? 내가 도움이 되었다는 긍정적인 감정을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타인과 감정적으로 어느정도는 연결된 세미 이향인일까? 아니면 자신의 선택 외에도 타인의 시그널도 어느정도 판단에 넣는 어린 이향인인걸까? 아니면 이 책에서는 이향인의 외향/내향인과의 차이를 관점으로 설명해야 처음 소개하는 개념인 ‘이향인’이라는 개념을, 개념 수립시 의도한 대로 독자에게 이해시킬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너무 ‘타인과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을 다루지 않아서 내가 이해에 혼란이 오는 것일까?
#7
이향인은 소외 불안 심리가 없고 지위를 드러내는 표식들에도 무심한 까닭에 대체로 다른 이들의 경제적 성공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주위 사람과 생활 수준을 비교하며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지도 않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탐내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돈을 버는 일은 안전장치, 즉 목표라기보다 삶을 편하게 만드는 수단이라서 집단과는 사뭇 다른 경제적, 직업적 우선순위를 갖기도 한다. 그래서 이향인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할 경우에는 대체로 불행하고 성공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재능과 동기에 맞게 직업을 선택하면 오히려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일에서 큰 만족을 얻는다. 또한 그들은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생활 방식을 희생하는 일도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향인이 반드시 금욕적이거나 검소하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명확히 구분하기 때문에 소유하는 물건의 범위가 좁고 선별적이지만, 사치를 즐기는 이향인들도 많다.
#8
집단에 속하게 됐을 때 자신을 지워버리거나, 자신의 진짜 욕망과 집단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되곤 한다. 자기 삶과 인간관계를 책임지려면 집단의 필요를 고려하되, 집단의 일방적인 목소리에 휩쓸리지 않는 강한 내적 자아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과 공동의 관심사, 열정, 일을 통해 얻는 즐거움과 정서적 지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법을 배우며 흥미를 느낀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너무 오랫동안 개인적 욕구를 생각해보지 않은 탓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집단의 암묵적인 요구 사항을 구분하지 못하기도 한다.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소속감을 유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 집단의 욕구와 더 잘 맞아떨어지도록 끊임없이 조율해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하지만 개인과 집단의 경계가 흐려지면, 자신이 원하는 것과 집단이 원하는 것을 구별하는 능력도 함께 사라진다. 공동체 지향인들은 함께 있는 것에서 개인의 주체성 상실을 보상받을 만큼 충분한 기쁨을 얻는다. 하지만 자아와 타인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지 않는 이향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9
이향인들은 집단의 의견에 의존하지 않고 무엇이 타당한지 스스로 판단하기 때문에 모든 정보는 반드시 그들 머릿속에 있는 ‘합리/비합리’ 필터를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메커니즘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주된 기준으로 자리잡는다. 그래서 이향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정보를 소화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지만 이런 과정 덕분에 시사나 문화,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한 다수의 견해를 수동적으로 흡수하는 대신, 자신이 이해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의견을 형성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 동료와 상사, 친구와 이웃, 때로는 가족에게조차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걱정하며 시간을 허비한다. 그뿐만 아니라, 소중한 정신적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이 상황에서 무엇이 적절한 행동이고, 어떤 말이 옳으며, 누구와 대화해야 하는지를 사회적 예법에 맞춰 따져보는 데 쏟아붓는다. 존 레논은 이러한 점을 꼬집으며 다름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생은 당신이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 바쁜 와중에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반면 이향인은 그런 사회적 규범에 얽매여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이향인은 다른 계획을 세우거나 남의 계획을 궁금해하느라 바쁘지 않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을 온 힘을 다해 살아간다.
#10
소속감이 없는 사람은 외딴섬에서 혼자 살고 소속감이 있는 사람은 본토에서 사는 것과 같다. 이향인은 본토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통용되는 규칙에 주의를 기울이고 최대한 따르려 하지만, 그들은 언제까지나 그곳에 잠깐 들린 관광객일 뿐이다. 그 규칙은 다른 곳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11
군집적 사고는 주로 ‘현재’에만 존재하며 시대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기본 토대로 하여 움직인다. 보통 뉴스, 정치, 대중문화 그리고 뜬소문 등이 사람들 사이의 ‘공유된 경험’을 만드는 기본 재료가 된다. 반대로 어제의 뉴스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잘 두지 않는다. 하나의 집단으로서 ‘정신적 동기화’ 상태를 유지하려면 집단 구성원 모두가 계속해서 다음 대상으로 관심을 계속 옮겨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군집적 사고는 현재라는 순간에 끊임없이 집단적 관심을 기울인다. 군집적 사고에서 벗어난 이향인들은 역사와 시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르게 인식한다. 그들에게 현재의 개인적 경험은 그것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의 경험과 연결되지 않으며 과거의 기억도 집단적 서사에 의해 흐려지지 않는다. 시대의 문화, 규범, 유행 같은 것들과도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들의 기억은 더욱 개인적이며 다른 이들의 기억과 같은 시점에서 겹칠 일도 거의 없다. 요컨대, 이향인은 ‘공동의 기억’보다 자기 자신과 시간 속을 항해하는 ‘개인적 여정’에 집중한다. 그 결과 이향인의 시간 감각은 종적으로 움직인다. 즉, 오늘은 어제의 결과이고, 내일은 오늘의 결과이다. 그래서 이향인에게 매 순간, 그리고 모든 기억은 이전 것 만큼이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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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 이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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