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감각

공동체 감각 #

#2026-07-02


#1

어떤 상황이 자신에게 어떠한지를 먼저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어떠한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타인들을 위해 자신이 어떻게 공헌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은 건강한 인격,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다. 이처럼 늘 자신뿐 아니라 타자도 생각할 수 있는 것, 타자는 자신을 지지하고 자신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그들에게 공헌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 자신과 타자는 상호의존적이지만 그것은 결코 자기 희생적인 방식이 아닌 형태로 타자에게 공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들러는 이런 생각을 ‘공동체 감각’이라 불렀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안도감을 느낀다고 설명한다.

#2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라는 것은 자신이 속한 가족·학교·직장·사회·국가·인류……에 이르는 모든 집단, 과거·현재·미래의 인류, 나아가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은 것을 모두 포함한 우주 전체를 가리킨다. 아들러는 이것을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라고 말했다. 아들러는 단 한 번도 기존 사회를 언급한 적이 없다. 아들러 심리학은 결코 사회 적응의 심리학이 아니다. 아들러는 “사회제도가 개인을 위해 존재하지 그 반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분명 아들러는 개인이 구제받기 위해서는 공동체 감각을 가져야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스의 도적 프로크루스테스가 여행객을 자신의 침대에 눕혀 만일 몸이 침대보다 짧으면 억지로 잡아 늘이고 길면 침대에서 튀어나온 부분을 잘라 죽였다고 하는 이야기처럼, 개인을 이른바 사회라는 침대에 눕히고 잡아 늘이거나 잘라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불어 개개인이 사회 통념이나 상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 통념이나 상식 자체가 본디 잘못된 것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는 객관적인 세계에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세계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의미 부여는 그 하나하나가 개인에게 특유한 것으로 그중 어느 것이 옳은지 혹은 그른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보았듯 우리 인간은 홀로 고립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완전히 사적인 혹은 개인적인 의미부여(사적 감각)가 아닌, 보다 보편적인 판단에서의 ‘건전한 상식’을 가지는 것이 유용하고 중요하다고 아들러는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러나 건전한 상식과 개인적인 상식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들러는 굳이 ‘공동체 감각‘이라는 어려운 말을 사용한 것이다. 실제로 지금 우리가 속한 사회 통념에 맞추는 것이 좋을지, ‘아니오‘라고 말해야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을때 우리는 보다 큰 공동체를 생각해야 한다. 때로는 기존 사회 통념이나 상식에 완고하게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될 때도 있다. 실제로 아들러 심리학을 공부한 대다수가 나치에 대한 태도를 결정해야 했을때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수많은 아들레리안(아들러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이 나치의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아들러는 이 공동체 감각만이 인류를 구원하고 인간이 정신적으로 건강한지를 테스트하는 유일하고 타당한 방법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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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너무 어려운데 또 중요해서 읽다가 울고싶었다 ㅠ

#출처

책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