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마음과 불확실한 사랑 #
#2026-06-29
#1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움직이는 것은 합리적인 이성의 힘이라고 흔히 착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비합리적인 기분이나 느낌이 훨씬 더 자주, 그리고 강하게 나를 움직입니다. 이성적 판단과 상관없이 나는 기분 내키면 무슨 일이든지 합니다.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조그만 일에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아주 기분이 안 좋으면 엉뚱한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자기실현self-actulization이라는 동기도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내가 가진 잠재력들의 완전한 실현’이 자기실현의 교과서적 정의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보다 ‘내가 가진 잠재력들을 최대한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또 실제로 결과보다 과정을 통해서 자기실현의 욕구가 더 많이 충족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과가 좋으려면 과정이 튼튼해야 합니다. 신경증neurosis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게도 과정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다가 인생을 낭비합니다. 설령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노력하는 과정을 겪어본 사람들은 결국에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내가 자기실현을 잘하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한 가지 힌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실현이 제대로 되고 있다면 나는 내 삶의 진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뻔히 보이는 것을 아니라고 나 자신에게, 남에게 우긴 적이 있지 않습니까? 우기고 있다면 자기실현의 취약점을 감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실현의 욕구가 강한 사람은 솔직할 뿐만 아니라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남의 기대나 의견과 같은 외부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행동하려 합니다. 인생이 문제 해결의 연속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기보다는 해결하려고 애씁니다. 나와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편견을 줄이려고 합니다. 세상에 빠져 허덕이기보다는 세상이라는 바다를 유유히 헤엄쳐나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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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음은 마치 순두부 같습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흔들리고 쉽게 뭉그러집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오래 남습니다. 이렇게 여린 마음을 잘 보호하기 위해 누구나 마음의 경호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마음의 경호실에서는 다양한 경호 작전들을 평소에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부릅니다. 방어기제는 ‘두렵거나 불쾌한 정황이나 욕구 불만에 직면하였을 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하여 자동적으로 취하는 적응 행위’를 말합니다.
방어기제 중에는 ‘아는 것으로 풀기intellectualization’가 있습니다. 어떤 불편한 느낌을 피하기 위해서 지적인 행위를 과도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는 것으로 풀기’의 예로는 병에 대한 불안을 그 병에 대해 책이나 인터넷으로 조사해서 지식을 쌓아 해결하려는 행동을 들 수 있습니다. 심해지면 ‘건강염려증hypochondriasis’이 됩니다. ‘건강염려증’은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내 몸에 무슨 병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꾸 걱정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제를 몸으로 돌려 마음을 달래려는 시도입니다.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증도 그렇습니다. 하루 종일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면서 온갖 다이어트 정보들을 수집하고, 관련 기사들을 샅샅이 읽는 것도 비슷한 행동입니다. 그래야 책임, 죄책감을 면하고 분노와 같은 자기 속에 숨어 있는 본능적 욕구가 터져 나오는 것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아는 것으로 풀기’로 병에 대한 불안을 해결하려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환자들을 만나면 의사 입장에서는 아주 머리가 아픕니다. 의사와 경쟁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지하철 승객이 자기가 직접 운전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려 하지 않습니다. 시선이 외부 세계에 가 있습니다. 사람보다는 물건에 집착합니다. 매사에 숲을 보려하지 않고 나무 한 그루를 붙들고 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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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애는 매우 가까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자신을 아주 많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상대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에 빠지면 상대에게 의존하고 상대에게 헌신적이 됩니다. 내가 그의 사람임을 내놓고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의 움직임으로 보면 연애는 사실 미친 짓입니다. 자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상태가 아닙니다. 자아가 현실을 검증하는 기능이 고장을 일으킨 상태입니다. 그래서 연령, 환경, 학력의 차이를 무릅쓰고, 가족의 반대에 시달리면서, 심지어는 가출을 하면서까지 그를 따릅니다. 그를 갈구합니다. 그와 같이 생각하고 느끼고 숨쉬기를 원합니다. 여기까지는 차라리 단순합니다. 만약에 이런 나를 그가 받아들일 수 없다면? 내가 그에게 하는 만큼 그가 나에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 사랑은 계속됩니다. 사랑은 이렇게 비현실적입니다.
사랑은 열정적 행위입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열정적인 사랑을 원합니다. 사랑에 의존할 수 있어서입니다. 열정적 사랑은 서로 의존하는 공생 관계가 된다는 것이고 공생하는 관계가 된다는 것은 경계 없이 나를 그에게 무방비로 맡긴다는 뜻입니다. 남에게 나를 맡긴다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입니다. 위험해지는 느낌이 들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이유 없이 조급해지고 불안하고 화가 납니다. 성숙한 관계로 오래가기 위해서는 마음속의 작은 파도로 만족하고 거센 파도로 변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열정적 사랑은 결국 실패로 끝납니다. 신혼여행지에서 흔히 보는 커플룩은 쌍둥이 흉내입니다. 한창 좋은 시절의 젊은 연인이나 신혼부부는 신체 일부가 붙은 ‘샴쌍둥이’가 되고 싶어 하지만 불가능합니다. ‘일심동체’라는 말은 무지개처럼 헛된 꿈입니다.
누구나 사랑을 통해 상대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능력을 기르게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더 이해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관계는 상대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랑은 돌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만을 돌보고 자신을 방치한다면 그것은 반쪽의 사랑입니다. 피학적 사랑입니다. 자신만을 돌보고 상대를 돕지 않는다면 역시 반쪽의 사랑입니다. 가학적 사랑입니다.
#4
인연은 불확실하며 사랑은 달아나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사랑의 필연적인 진행 과정은 시작, 지속, 그리고 해체입니다. 사랑은 낯선 사이로 만나서, 친근감을 느끼다가, 서로 끌리며, 낭만적 애정 관계를 만들고, 결혼 생활이나 동거를 하다가, 갈등이 생기고, 사랑이 식으면, 헤어지는 것으로 끝납니다. 사랑은 ‘영원’이 아닙니다.
사랑은 한 가지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애정, 욕망, 호기심, 자존심, 소유욕이 엉켜 있는 복잡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동전의 뒷면에는 미움이 이미 새겨져 있습니다.
사랑은 생각만이 아니고 행동입니다. 사랑은 늘 이성이 지배하는 머리와 열정이 가득 찬 가슴이 서로 다투는 갈등입니다. 사랑은 자신이 잘 달래야 하는 감정입니다. 상대가 처음부터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속으로는 자꾸 나와 같은 사람이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에 쉽게 속지 말고 사랑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속이지 마십시오. 사랑은 결국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5
결혼하기 전에 상대에 대해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평생을 고통 속에 살거나 이혼하기 쉽습니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두 사람이 같이 사는 관계라고 해서 따로 살며 가끔 만나는 연애 관계보다 의미 있게 깊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의미 있는 관계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알고 서로를 배려하며 서로에게 책임 있게 행동하는 관계입니다. 결혼을 통해서 얻는 것이 있고 잃는 것도 분명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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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 프로이트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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