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후의 고요

혼돈후의 고요 #

#2025-09-02


#1

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리스는 뚜렷이 기억한다. 당시의 통증은 뱃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듯했다. 어머니에게 이렇게 고통스러운 게 정상이냐고 묻자, 어머니는 그렇다고 답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무래도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의사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다. “자궁 내막증입니다.” 의사는 그것이 염증성 여성 질환이며 전 세계 여성 10퍼센트에게 발생하는 만큼 비교적 흔한 병이라고 설명했다. 그중 다수가 사춘기부터 갱년기까지 질환을 안고 살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증상을 다스린다고 덧붙였다. 위로하려는 양, 매릴린 먼로 역시 그 병을 앓았지만 그래도 온 세상이 찬사를 바치는 여자가 되지 않았냐고 하기까지 했다. ‘멍청한 소리도 다 있지! 매릴린 먼로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비극적으로 사망했는데.’ 진료가 끝나자 아직 10대였던 알리스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난 평생 동안 고통을 겪을 거야. 난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지 못할 거야. 난 아마 아이를 갖지 못할 거야.’

그때부터 알리스는 홀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견디기 어렵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고통은 고립을 추구하는 성향과 고독감의 주된 원인이었다. 자신의 문제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스는 금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질병maladie이라는 단어는 <말하지 못하는 고통mal à dire>에서 온 게 아닐까?’

그러나 탈출구를 찾아보지도 않은 채 자궁 내막증을 감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알리스는 과학에 몰두했고 가능성 있는 설명을 찾았다. 한 이론에 따르면 자궁 내막증을 일으키는 것은 유전자 속 특정 배열, 남아 있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DNA라고 했다. 먼 옛날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서로 짝을 짓고, 사랑을 나눠 반은 사피엔스, 반은 네안데르탈인인 혼종 자식을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더 이상 두 종의 결합으로 자손을 남길 수 없는 새로운 시기가 왔다.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여전히 남아 있으니,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 코드에는 평균적으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유전자 1.8퍼센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가설을 확인하려고 알리스는 자기 게놈을 분석해 봤다. 그리하여 자신의 DNA에는 네안데르탈인 조상에서 유래한 서열이 1.8퍼센트가 아닌 2.7퍼센트나 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문제의 원인이 이거였군. 머나먼 내 사피엔스 조상님들은 네안데르탈인과 <좀 지나치게> 사랑을 많이 나누었던 거야. 내 고통의 근원은 거기 있고 내가 열쇠를 찾을 곳도 거기야.’ 그때부터는 병을 길들이는 게 인생의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이 나올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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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이 강렬한 동기가 되어, 알리스는 성과를 냈고 동 세대 가장 촉망받는 젊은 과학자들 반열에 올랐으며, 국립 과학 연구 센터의 장학금을 얻어 〈자궁 내막증과 고대 다른 인류들의 유전자 흔적의 관련성〉이라는 주제로 첫 박사 논문을 썼다. 그 연구로 국제적으로 명망 높은 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알리스에게 메달이나 영광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더 이상 아프지 않고, 그 끔찍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전 세계 2억 명의 여자들을 치료할 방법을 찾는 것, 원하는 것은 그뿐이었다.

‘내 인생 전체의 방향을 좌우한 것은 고통이었어*.’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뱃속의 불길이 갑자기 잠잠해진다. 알리스는 깊은 숨을 들이켠다. ‘됐어, 지나갔어. 한바탕 폭풍처럼.’ 알리스 카메러는 로켓의 둥근 창 바깥을 내다본다. ‘그리고 지금 난 전속력으로 대기권을 가르고 있지.’

알리스는 회상에 잠긴다. 하늘을 나는 열정을 전해 준 것은 아버지였다. 그 환상적인 감각을 처음 맛본 날이 기억난다.

열여섯 살 때였을 것이다. 어느 일요일, 친구들끼리 놀러 갔다가 발목에 탄력 있는 줄을 묶고 다리 꼭대기에서 허공으로 뛰어내렸다. 감각은 강렬했지만 너무 빨리 지나갔다. 그럼에도 그 경험 이후 병 생각을 덜 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경험을 되풀이했다. ‘비행은 내 자질구레한 신체적 문제들을 잊게 해줘.’ ‘비행은 육체와 영혼의 상처를 일시적으로나마 치료해 주는 특효약이야.’

알리스는 또한 자연 속 모든 날아다니는 것들을 몰입하여 관찰했다. 잠자리, 나비, 새, 물론 박쥐도. 방학 때면 아침 일찍부터 망원 렌즈가 달린 카메라와 지향성 마이크를 들고 집을 나서 날아다니는 동물들을 찍고 그 노랫소리를 녹음했다.

그러다가 알리스는 한층 수준 높은 경험을 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함께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했다. 카이로 근처 기자 고원의 피라미드들 위로 뛰어내리던 감명 깊은 추억이 가슴에 남아 있다. 1분 30초의 자유 낙하. 마술적인 장소 위에서 겪은 마술 같은 경험. 하지만 자유 낙하에서는 비행의 감각이 바람의 굉음에 방해받았다. 낙하산을 펼친 후 하강이 느려지고 안정화될 때에야 소음은 멎었다. 그때 알리스는 생각했다. ‘상황에서 멀찍이 떨어져 높이서 볼 때에야 충분히 거리를 두고 지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 있구나.’

알리스는 덜 시끄럽게 날 방법을 계속해서 찾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느 날 인도양의 레위니옹섬 상공에서 패러글라이딩을 가르쳐 주었다. 둘은 함께 생뢰만 위로 튀어나온 언덕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 고요히 하늘을 미끄러지는 믿기 어려운 감각을 맛볼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레위니옹섬에 서식하는 놀라운 새 열대조들이 가까이 와서 짹짹거리며 인사하는 장면까지 목격했다. 다음에 손댄 것은 글라이더였지만, 엄청난 소리를 내며 뒤흔들리는 플라스틱 조종실에서는 비좁은 느낌이 들었다. 소형 비행기와 헬리콥터도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그 잠시의 도피는 며칠간 고통에서 놓여나게는 해주었지만 결코 새처럼 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던 중 배에 장착한 예비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았다. 그는 즉사했다. ‘높이 오르고자 하는 열망 끝에 날개가 불타 추락한 이카로스 같아.’ 알리스는 돌연 비행 체험을 그만두었다.

*고통은 사람을 약하게 만들어서 손에힘이풀리니까 쥐고있던것들이 많이없어지는데 오히려 좋은게 시간이지나서다시펴봣을때도있는것들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이건잡아야겟다고생각햇던거니까 나한테더중요했던게뭔지 알수있다.

근데 역효과는 … 그이유로 맹목적이게되는게있다 왜냐면 explainable이 아니니까?? 나에게 중요한것 리스트를 대전제로 몇개 박아놓으면 판단이 엄청 쉬워진다. 그래서 하나만 추가돼도 난이도가확내려간다. 근데 잘못박아놓으면 파내기가좀어렵다. 특히 나의 생각(논리)으로 넣지 않은 항목이 많은 경우에 리스트중에 멀빼야대는지를 판단하는게 굉장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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