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신뢰 #

#2026-10-22


#1

남에게 밧줄을 던져줄 때는 반드시 한쪽 끝을 잡고 있어라.

이 말의 의미는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슬픔에 빠진 이에게 입증할 수 없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그분은 더 좋은 곳으로 갔어요"라고 한다면, 이때 이 사람은 밧줄의 반대쪽 끝을 잡고 있지 않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은 곳으로 갔는지는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다.

반면 “당신이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겠어요"는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말이다. 누군가가 다른 쪽 끝을 잡고 있으리라 믿고 붙잡을 수 있는 밧줄이다. “밤새도록 휴대전화를 쥐고 있다가 당신 전화번호가 뜨면 언제라도 받을게요"라고 말해준다면 한결 더 낫다. 이는 그 사람이 알 수 있는 사실이고 또 할 수 있는 일이다. 신뢰해도 되는 밧줄이다.

밧줄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은 그저 말장난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체로 대화할 때 습관적으로 주고받는 격의 없는 과장된 표현과 우아한 거짓말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나 슬픔에 빠졌을 땐 말이 더욱 중요해진다. 아무것도 쉽게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친한 친구나 연인, 지인이 하는 말조차도.

이별의 슬픔에 빠졌을 때 신뢰가 위기를 맞는 것은 예사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삶의 기본적 평안에 대한 중요한 믿음을 상실한다. 한순간 아름다웠던 인생을 온통 뒤흔들어놓는 일이 다음 순간 일어났기 때문이다.

어떤 말과 행동을 믿어야 할지를 두고 극도로 예민해지는 이 비극의 시간에, 어려울 때 버팀목이 되어주리라 생각했던 누군가를 실제로는 의지하고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반대로 묘하게도 한 번도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누군가에게 끌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던지는 가장 기본적인 밧줄인 사소한 말씨나 행동거지를 유심히 지켜보다 보면, 정직과 연민을 갖춘 신뢰할 만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내밀 수 있는 단 하나의 단단한 밧줄이 보살펴주겠다는 약속이라면 그대로도 좋다. 작아도 괜찮다. 슬플 때는 지킬 수 있는 작은 약속이 지킬 수 없는 큰 약속보다 낫다. 생의 기본적인 평안에 대한 신뢰는 밧줄에 배달려 안간힘을 쓸 때 조금씩 회복될 것이다.

#2

슬픔의 모든 측면을 정직하게 면밀히 살피고 똑바로 응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머릿속이나 마음속에서 “거기는 가지 말자"고 마음먹는 곳이 적어도 한군데는 있을 것이다.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않으면 된다. 그래도 괜찮다. 그게 당신이 부인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슬퍼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그 고통스러운 작업이 지루하게 길어지는 사이사이 숨을 고르고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 부인은 바로 그 휴식이 될 수 있다.

슬픔을 처리할 때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부인이 아니다. 자신이 겪는 슬픔의 여러 측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자신만의 시간표를 짜는 것은 유익하다. 이는 슬픔의 여러 영역 중에서 당신에게 자율권이 있는 유일한 영역이기도 하다.

언제 처리하고 싶은지는 물론이고, 어떤 면을 처리하고 어떤 면을 절대 처리하고 싶지 않은지 정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못 견디게 두려워서 언제까지나 비밀로 해두고 싶은 것을 부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처리할 수 없는 것들 중에는 슬픔을 정직하게 대면할 때 꼭 필요치 않은 것도 많다.

#3

슬픔에 잠겨 지내는 동안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악의로 생기는 것은 거의 없다. 감정적으로 녹초가 되어서 생기고 특정 문제에 무지해서 생기는 것이다.

슬픔에 잠기면 머리는 평소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가장 근원적인 논리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항상 곁에 있던 사랑하는 이가 떠나가 버렸다. 뇌는 이 상실을 계산할 수 없고, 따라서 일시적인 정신착란이 일어난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비탄에 빠진 이들은 상실을 겪고 처음 느끼는 슬픔을 좀처럼 슬프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초현실적인, 악몽 같은, 충격을 받은 느낌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별의 슬픔은 실제로 일종의 혼란 상태다. 모든 생각이 제자리를 벗어났는데, 항상 곁에 있던 누군가가 그 자리에 없는데, 어떻게 당신의 뇌만 제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있겠는가? 슬픔에 젖어 있는 동안에는 정신이 위태로워진다. 감정을 담당하는 신경이 무방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소한 충돌이나 삐걱거림이 잔혹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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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 슬픔의 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