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로

토로 #

#2026-10-21


슬픔은 힘겹고 골치 아픈 작업의 시작이다.

가장 힘들고 골치 아픈 일은 당신 자신에게, 그리고 모든 것에 정직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것이란 당신과 당신이 잃어버린 사람, 지난날 그와 함께한 일과 그가 없기에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일을 말한다.

슬픔은 날것의 진실로부터 맹공격을 받는 일이기에 진실 자체와 맺고 있는 관계를 바꾸지 않고서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떤 이는 슬픔으로 인해 더 정직해지고, 어떤 이는 덜 정직해진다.

생명력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슬픔을 이겨내는 사람들은 가장 정직하게 살아온 이들이다.

로웬스타인 부부를 만나면 모순되는 두 가지가 그들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부모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을 겪었다. 테러 집단이 자행한 폭력에 자식을 잃었으니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삶을 으스러지도록 껴안는다. 수전의 작업실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오늘을 즐기라는 의미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적혀 있다.

삶의 모든 면을 받아들이는 능력, 기쁘고 축하할 것과 심술궂고 부당한 것을 함께 받아들여 그대로 삶에 통합시키는 로웬스타인 부부의 능력은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정직의 핵심이다. 정직은 진실의 모든 측면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태도다. 슬픔에 관한 한 자신을 파멸시킬지 모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똑바로 쳐다봐야 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은 대개 그러지 못한다. 자신을 파멸시키려는 것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나쁜 것은 깊이 생각하거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나쁜 것을 피하기로 마음먹을 수는 있지만, 그러면 좋은 것도 잃게 될지 모른다. 불쾌한 진실을 멀리하기 위해 일종의 진실 여과기(언짢은 것들이 자신 깊이 파고들지 못하게 하는 내적 메커니즘)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메커니즘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려는 경향이 있다. 접근을 막아야 할 것이 악마든 아니든 그러하다.

그 결과 진실 여과기는 유쾌한 진실도 걸러내 버린다. 그래서 누군가를 잃은 고통을 느끼지 않겠지만 마음껏 기뻐하지도 못할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슬픔에 젖어 지내는 사람은 큰 고통을 못 느낀다기보다는 큰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방어적인 진실 여과기의 단점이다.

로웬스타인 부부는 아들에게 일어난 일과 관련한 불쾌한 진실을 피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진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바다, 손자 손녀와의 여행, 부부가 함께하는 생활처럼 오늘 두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좋은 진실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슬픔은 이 진실 여과기를 거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실 여과기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말을 하는 것이다. 비록 자신에게뿐일망정 어떤 식으로든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슬픔을 아주 잘 이해했던 셰익스피어는 이런 믿음을 아주 분명하게 표현했다.

슬픔을 토로하라. 그러지 않으면 슬픔에 겨운 가슴은 미어져 찢어지고 말 테니. (맥베스Macbeth 4막 3장, 던컨 왕의 아들 델컴의 대사)

슬픔만이 아니다. 정서적 건강을 되찾는 중요한 방법은 모두 정직한 말하기와 관련이 있다.

정직함이 사적인 감정을 공개적으로 고백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직은 정직하고자 하는 다짐일 뿐이다. 그 누구보다도 당신 자신에게 말이다.

그러니 슬픔을 이야기하라.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슬픔을 말하라. 빈 뒤뜰이나 샤워 커튼에 대고 슬픔을 이야기하라. 혼자 있는 차 안에서, 숲 속을 걸으면서 슬픔을 큰 소리로 외쳐라. 이것이 슬픔의 토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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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 슬픔의 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