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 공부법 #
#2025-07-05
#1
정전기학에 관한 내용처럼 어려운 부분을 만나면 저만의 요령이 하나 있었습니다.
뭐냐면 처음 두세 문단이 이해가 안 되더라도 내용 전체를 읽어요. 처음에는 전체를 흐릿하게 이해하지만 다시 읽으면 조금 나아지고 계속 그러다 보면 전부 이해가 되지요(예외도 있는데 그건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그다음 책에다 요점을 적어놓으면 완성됩니다. 가령 타원형 축전기의 정전용량 계산 같은 건 건너뛰는데, 내용 전체를 읽어보면 그런 기능이나 복잡한 계산은 뒤에 다시 나오지 않는 지엽적인 사안임을 이미 알기 때문이지요. 복잡한 책들을 많이 읽다 보니, 배워야 할 핵심 부분과 응용이나 지엽적인 부분(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과는 무관한 부분)을 본능적으로 구분할 줄 알게 되었어요. 이런 독창적인 방법 덕분에, 책에서 흥미로운 주제가 무언지를 늘 스스로 간파해냈죠. 하지만 미적분은 달랐습니다. 저로서는 이해불가였어요!
#2
“네가 공부를 많이 했으니 내가 오랫동안 잘 이해를 못했던 문제가 있는데, 네가 설명해주면 좋겠구나.” 제가 그러겠다니까, 아버지는 말을 이었습니다. “원자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이할 때 광자라는 빛 입자를 방출한다고 알고 있다.” 저는 맞는 말씀이라고 했지요. 아버지는 다시 말씀하길, “그럼 원자에는 미리 광자가 있다가 나오는 거니? 아니면 원자에 처음엔 광자가 없는 거니?”
저는 광자의 개수는 보존되지 않고 전자의 운동에 의해 생겨난다는 걸 설명해드렸습니다. 설명이 잘 되진 않았어요. 내가 내는 소리가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는 식으로 설명했지요. 어린애가 ‘낱말 가방’에 낱말이 바닥나서 더는 어떤 낱말, 가령 ‘고양이’를 말하지 못하는 상황과는 다릅니다. 원자에는 그런 낱말 가방 같은 ‘광자 가방’이 없습니다. 더는 잘 설명하기 어려웠지요. 아버지는 당신께서 이해하지 못하는 걸 제가 설명하지 못한다며 아쉬워하시더군요. 아버지가 실패한 셈이죠. 그런 걸 알아내라고 아들을 그 잘난 대학에 보내놨더니만, 알아내질 못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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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로스알라모스에 가서 유명한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과학자들을 만나서 정말 기뻤어요.
로스알라모스는 매우 민주적이었어요. 오펜하이머의 연구실에서 열리는 회의에선 누구든 아무에게나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거든요. 자기 위치를 알아야 하는 위계질서와는 거리가 멀었죠. 매우 훌륭한 조직이었어요. 새로운 환경에서 그처럼 많은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은 일찍이 없었는데도, 그 분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그 많은 사람을 로스알라모스로 모아 놓았을 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비밀을 어떻게 지킬지 등등 그 거대한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또한 세부사항에도 신경을 썼으니까요. 가령, 저를 부르기에 아내가 결핵 환자라고 말했더니 아내를 잘 돌봐줄 병원을 직접 찾아줬어요. 로스알라모스에 모인 사람이 아주 많았는데도, 그는 늘 그런 식이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을 챙겼죠.
또한 매우 깊이가 있었습니다. 누가 무슨 연구를 하든 훤히 꿰뚫고 있었어요. 그러니 무엇이든 전문적인 논의를 함께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요약해서 결론을 내리는 데도 뛰어났죠. 우리는 그의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멋진 사람이었어요.
#4
윤리 문제라면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원래 이유, 즉 독일의 위협을 막겠다는 이유에서 저는 이 시스템을 개발하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프린스턴에서, 이어서 로스알라모스에서 폭탄 제조에 뛰어들었죠. 폭탄을 재설계하려는(원한다면 ‘더 나쁜’ 폭탄을 만들려는) 온갖 시도도 했는데, 우리는 늘 그게 실현되는지 보려고 연구했습니다. 전부 힘을 합쳐 무척 열심히 참여한 프로젝트였는데, 다른 여느 프로젝트처럼 추진하기로 한 이상 성공하기 위해 계속 노력했어요. 그런데 제가 비윤리적이었던 건 처음 시작했던 이유를 그만 잊었던 거예요. 독일이 패망해서 이유가 바뀌었는데도 그 일을 왜 계속해야 하는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전 그냥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시겠어요?
거기서 교훈을 하나 얻었습니다. 어떤 걸 하는 이유를 계속 되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상황이 바뀔 수 있으니까요. 미국의 베트남 전쟁도 윤리적 실수의 마찬가지 사례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이유가 옳았던 그르던 전쟁이 진행되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해요. 원래 목적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저의 윤리적 약점이었습니다.
#5
현시대의 엄청난 곤경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감을 느끼십니까? 인류 전체를 여러 번 멸망시킬 수 있는 폭발물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입니다.
저로서는 어떤 걸 느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올바른 질문인 것 같습니다. 느낌은 어떤 행동을 시작하기 위해 중요하긴 합니다. “이렇게 느끼니까 이러저러하게 해야 한다.”고 우린 여기니까요.
하지만 저는 지난날을 후회하면서 고민하진 않아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죠. 선한 의도로 많은 일을 했지만 지옥에 간 사람한테 윤리적 책임감을 느끼는지 물으면 어떻게 답할까요? 글쎄요, 각 단계마다 그는 옳은 일을 한다고 여겼을 겁니다. 인간이 불행해지는 건 무지와 이해의 부족이에요. 심각한 문제인데, 인간사에서 아주 흔한 일이고요. 저라고 남달리 그걸 더 깊게 이해하고 있지도 않아요. 한 가지 잘못한 게 있다면 앞서 말했듯이 제가 독일이 패망했을 때 다시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겁니다. 설령 다시 생각했더라도 어떤 결론을 내렸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다시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는 옳지 않았어요.
대부분 젊은 시절이지 않았나요?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가 스물넷이었고 떠날 때는 스물여덟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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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 리처드 파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