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고 끔찍한 것들 #
#2026-10-18
#1
상실을 다룬 회상록을 읽거나 비통한 이야기를 들으면 삶이 얼마나 혼란스러워질 수 있는지, 한 사람은 떠나고 남은 사람은 다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사소한 것들 중 어느 것이라도 좋으니 당신의 경우를 떠올려보라. 잘 자라고 키스할 때 건네는 짧은 말과 평범하지만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사건들, 말보다 먼저 쿡쿡 터져나오는 웃음과 둘만 알아듣는 아주 독특한 말을, 함께 나누는 사소한 것을 말이다.
이별은 우리에게 다가올 때 남겨질 사람의 삶에서 이런 사소한 많은 것들을 앗아간다.
사소한 것들을 잃는 일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것들이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관련 있는 사소한 것들을 가장 많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이가 떠난 뒤 잃게 되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소소하고 평범한 것들이다. 가장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우리 삶이라는 피륙 속에 가장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
#2
한 사람의 삶을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분명하게, 가장 감동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은 소지품이다. 물건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우리의 중요한 일부다.
사람은 떠나면서 많은 물건을 남긴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이 떠난 뒤 그가 매일 사용한 대수롭지 않은 물건은 강렬한 감정을 일으킨다. 사랑하는 사람의 향기가 밴 옷은 다른 무엇보다 세차게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과거와 연관이 있는 냄새만큼 완벽하게 과거를 되살아나게 하는 것은 없다.
개인의 소지품은 주인이 떠나고 나면 중요하다 못해 신성해지기까지 한다. 어쩌다 화장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양말 냄새를 맡더라도 당신은 미친게 아니다. 반대로 아무 냄새도 맡고 싶지 않아도 미친 게 아니다. 절대로.
삶이 결국에는 커다란 전체로 수렴되는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진다면, 소지품은 최종 합계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사람들은 장차 자신의 것이라고 부르게 될 것은 까다롭게 고른다. 누군가는 늘 같은 머그컵에 커피를 타고 또 누군가는 아끼는 모자나 독특한 열쇠고리가 있다.
이런 것들은 언제까지나 마음에 남아 그 주인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가 떠난 뒤에는 더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의 물건은 되는대로 손에 잡히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버리기 쉽지 않다. 오래되어 말라버린 면도크림 깡통을 내던지려다가도 “이건 그이 거였어” 하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깡통을 든 채 “잘 가라, 면도크림아” 하고는 혼자만의 장례식이라도 치르듯 슬퍼하게 된다. 하찮은 물건을 버리는 행위가 떠난 사람을 다시 놓아버리는 듯이 느껴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소유였던 잡동사니 하나하나를 문 닫은 벼룩시장의 물건처럼 언제까지나 간직할 수는 없지만, 한때 그사람의 소유였던 물건은 그게 뭐든
#
#3
모루는 대장장이가 쇠를 단련할 때 쓰는 도구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항상 그들을
이런 순간은 스스로 아주 잘 견디고 있다고 자만할 때 느닷없이 찾아와서는 당신을 우스꽝스러운 꼴로 만든다. 꽃 한 송이, 홈런 한 방, 탄산음료 한 컵.
사랑하는 이를 잃고 만나는 아름다움은 심장을 꿰뚫는 검과 같다.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하지 않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삶의 가장 멋진 순간들이 모루의 표적이 될것이다. 햇살이 따스하고, 식사가 완벽하고, 물이 기분 좋게 따뜻할 때 떠나간 이가 그런 것들을 함께 즐기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것이 심장을 꿰뚫는 검처럼 느껴질것이다.
태어나는 모든 이들은 이중의 시민권을 갖는다. 건강한 이들의 왕국에서 하나, 병든 이들의 왕국에서 하나. 우리는 적어도 얼마 동안은, 결국 저 다른 곳의 시민으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모루가 떨어지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동료 시민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 그것은 직접 경험하고난 뒤에만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다.
슬픔에 빠진 다른 사람을 보면 예기치 않게 이미 겪은 일들이 모두 떠오를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은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슬퍼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결여되어 있을지 모르는 공감 능력을 얻는다. 공감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이 시대가 약화시키는 한 가지 본능을 회복시킨다.
우리는 자극은 과도하고 윤리는 힘을 잃은 문화에서 산다. 우리는 과학기술에 의지해서 순전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순전히 개인주의적으로 보내는 시간을 늘려간다.
#
최근의 모루.
아파트 온수가 끊긴 일. 추석 선물이 마사지기로 정해진 일. 사식으로 채선당 콜라보 메뉴가 나온 일. 갑자기 청소하다가 옛날 다이소 영수증이 나온 일. 커피화 팝업이 인스타에 뜬 일. 한번씩 뜨는 커플툰. 흑백리뷰. 더들리.
못가고있는 장소.
롯데백화점. 포폴로피자. 북촌.
극복한 장소.
킴스클럽. 지하철. 집. 화장실. 다이소 등등 기타 집앞들.
#
#출처
책 슬픔의 위안
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