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지키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

#2025-07-01


#1

난 그냥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 이동했을 뿐이다. 내 주관적인 적성 그 외에는 어떠한 의미 부여도 가치 판단도 하고 싶지 않다.

#2

이직을 고민하면서 가장 핵심으로 생각한 질문은 이것이다. ‘내 인생에서 직장과 관련하여 단 하나를 잡는다면 무엇을 잡을 것이냐?’ 돈인가, 명예인가, 여유인가, 전문성인가, 꿈인가.

난 신이 아니기에 일을 하면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 돈도 명예도 여유도 전문성도 꿈도 모든 것을 갖고 싶지만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당연히 무엇인가는 놓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잡지도 못하면서 돈도 명예도 시간도 안정성도 이것저것 다 가져가려고 억지로 잡고 버티다가 고통받고 넘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정말 여유가 없고 힘들고 생존이 위기인 상황이라도 일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3

인문계를 가긴 싫고 영어를 못하니 외고는 못 가고 과고를 목표로 준비했는데 운이 좋아서 붙었다. 아니, 그만큼 간절하기도 했다. 과학이 하고 싶어서라는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아닌 ‘인문계 가기 싫다’라는 현실적이고 쫓기는 압박이었기 때문에 그런 단기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목숨이 걸려 있을 때 기적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하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학교도 가지 않고 하루에 3시간씩만 자면서 공부했던 이 단기적 성공의 경험은 내 인생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큰 독으로 작용하게 된다.

*사람은 좋아하는걸 쫓아갈때보다 끔찍한것에서부터 도망칠때 제일 강해지는것같다고 느꼈는데 이사람두 그렇게 적었네..

실제 대학교 입시 때가 되니 꿈과 희망이 없이 자라 온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다들 직업적 꿈을 따라 목표를 따라 자기소개서 쓰고 스펙을 쌓고 가고 싶은 과를 넣는데, 나는 이러한 것들이 아무것도 없었다. 진로와 적성과 관련해서 꿈도 희망도 없는 나는 대학이 원하는 인재가 아니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는 입시에서 실패와 고통을 겪고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4

휴학은 예상치도 못하게 1년 반으로 늘어났고, 인생을 허비하고 있단 생각에 군대조차 못 가는 병신이란 생각에 내 자존감을 바닥을 기었다. 친구들은 이미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헌혈을 해서 가산점을 받고 나서야 14년 6월에 입대를 할 수 있었다.

당시의 나는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 조급했다. 군대에서 빨리 나약한 정신머리를 고치고 내 길을 찾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하였고, 글씨체 연습도 하고, 독서도 다시 열심히 하면서 내 모든 것을 갈아엎었다. 그러나 결국은 또다시 선택에 있어서 비겁한 선택을 하고 말았다.

생각의 시작부터가 너무 현실적이었고 어떻게 보면 비겁했다.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것 그리고 한 방에 끝날 수 있는 것을 선택하자. 하지만 그 당시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경험이 부족했다 생각한다. 내 인생 자체가 저렇게 살아왔으니까.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노력만큼 투자해서 성과를 내 왔으니까. 그렇게만 목표를 잡아 왔고 그러한 성공의 맛만 봤으니까. 이번에도 그러고 싶었다. 계속해서 꾸준하게 하는 것이 아닌 한 방! 한 번만 또 열심히 올인해서 끝내고 싶었다. 이 진로의 고민을 아니 앞으로의 인생의 고민을….

그 결과 정말 나에게 어울리는 고시를 보기로 결심했다. 내 학창 시절을 곁에서 접한 사람이면 모두가 이해 못 할 결정이었다.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 생활에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그런 적성과 관련한 문제는 뒤로 밀어 두었다. 내가 노력하면 고시는 붙을 것 같으니까. 대한민국에서 공부로 인생 역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들었으니까. 앞서가는 친구들을 따라잡을 유일한 방법이니까. 비싼 로스쿨 등록금, 의전 등록금 없이도 빠르게 사회적 계급을 얻을 수 있으니까. 붙으면 안 잘리고 연금도 나온다니까. 공부는 자신 있었고 공무원이 어떤 직업인지는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사무관이 뭔지도 모르고 공무원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닌 합격자가 되고 싶은 괴상한 고시생이 탄생했다.

지금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한심해서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다. 아니, 그 수준을 넘어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앞으로 평생을 할 직업인데, 무슨 일을 하는지, 생활은 어떠한지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그냥 공부가 할 만하니까 결정한 상황. 그런데 슬프게도 한 번 더 생각하니 어이가 없지 않고 너무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나는 학교에서 자라면서 한 번도 내 적성에 관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거나 멘토링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시험기간이라서 공부하고, 고등학교 가야 해서 공부하고, 대학교 가야 해서 공부했을 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도 직장을 얻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그럼 공부를 할 만한 직장을 택한 것뿐이다. 너무나도 합리적이고 너무나도 이성적이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5

어떠한 성향이 옳고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 이 단체는 이러한 성향이었는데 나는 그와 다른 성향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실제로 현실에서 누군가는 직장에 잘 다니고 누군가는 힘들어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사람의 성향이 그만큼 다양하고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각 조직마다 메인 특성이 존재하고 이와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무언가 맞지 않아 직장을 다니는 데 고통을 느끼기 마련이다.

#6

연수원 입교 전 맞지 않는 점을 말하며, 나열한 특징들이 모두 연수원 입교 후 공무원이라는 단체가 되면서 엄청나게 더 강해졌다. 분명 300명이 넘는 동기들은 각양각색의 특색을 지니고 있을 테고 일부가 저러한 거지 전부 저러한 것이 아닐 텐데 왜 더 강해지고 그쪽으로 극단적으로 발달했을까.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으며 눈치를 많이 보고 이미지 관리를 중요시한다’, ‘관습과 규칙을 중요시하고 의문 없이 일단 따른다’ 이 두 가지 특성 때문이다.

공무원이라는 단체가 되니 개인의 색깔이 더욱 지워지고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단체의 특성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와 맞지 않는 단체의 특성을 받아들일 만한 성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힘들었다. 밖에서 1대1로 만났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적절한 관계가 형성되었을 수도 있는 사이이지만 연수원에서 ‘나’와 ‘공무원 집단’으로 만나게 되니 그 누구와도 친해지기가 힘들었다. 그러한 의심마저 들었다. 지금 친한 사람들도 만약 연수원에서 만나게 되었어도 친해졌을까.

이러한 상황에 대해 그래프로 설명을 드리는 게 편할 것 같다. 사람의 성향을 나타내는 가상의 X축 그래프를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자. 나는 좌측 끝단에 있는 사람이다. 내가 연수원 입교 전에 만난 사람들은 그래프의 중앙 정도에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와 놀아 주느라 내가 있는 좌측으로 더욱 다가왔었을 것이다. 그들의 성향은 어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느 정도 물론 중앙 쪽으로 다가갔다. 그렇기에 친해질 수 있었고 큰 고통은 없었다. 하지만 공직이란 단체에 들어가게 되었고 단체의 특성은 우측 끝단에 존재했다. 중앙에 있던 사람조차 모두 우측으로 흡수가 되었다. 그리고 집단이기에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좌측 끝단에 있기에 집단과 나는 이제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연수원 때 있던 재밌는 일화도 있다. 연수원 중 우즈베키스탄으로 해외 연수를 간 적이 있다. 당시 심정은 국외추방 당하는 기분이었다. 맞지 않는 조원들과 10일간 해외에서 같이 생활해야 한다니 너무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실제로 스트레스로 현지에서 장염에 걸려 고열과 설사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아무튼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해서 현지 유적지를 탐방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무리와 떨어져 있었고, 혼자 구경하다가 나무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곳에서 일하시는 현지인 3분 정도가 내 주위로 다가와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도 그분들도 짧은 영어로 겨우겨우 의사소통을 했지만 너무나도 즐거웠고, 서로 소리 내며 웃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조원 중에 기존부터 친하던 친구가 ‘영어 잘하나 보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친해지냐? 넌 참 신기하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같은 언어를 써도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이렇게 마음속으로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 것이다. ‘사람의 성향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구나’라고 더더욱 체감한 순간이었다.

*진짜외로웠을듯 글만봣는데도 느껴짐 ..

아직까지 나는 속으로 ‘그냥 적당히 일하고 안정적으로 살면 되겠지’, ‘뭐 내가 언제나 여러 사람하고 친하게 지냈나. 대학 때도 친구 없었는데 혼자 잘 지내면 되지’ 하고 있었다. 스스로 외로움을 타지 않고 혼자서 잘 놀고 또 놀면서 잘 살 수 있을 거라 너무 편하게 생각했다. 진짜 외로움이 얼마나 힘든지 몰랐고 나 스스로의 적성과 욕망을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7

안정이란 ‘변하지 않음’에서 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매력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처음에는 변하지 않는 일상, 변하지 않는 수입, 변하지 않는 직책 속에서 위안을 얻으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진정한 안정이란 단지 외부 조건이 바뀌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나 스스로를 지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임을.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것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이 없이는 진정한 안정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왜 안정적 조건이 나를 불안하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지 점차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안정과 불안정을 고민하던 중, 나는 한 문구가 떠올랐다.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그 문장은 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키고,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더 큰 변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것이 내가 공직을 떠나기로 한 이유 중 하나였다. 안정된 환경 속에서 나를 정체시키기 보다는, 불안정한 도전 속에서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 훨씬 나답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게 나에게 있어 진정한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 불안정이란, 세상과 비교해 변화할 수 없어 뒤처지는 그 상태였고, 반대로 나에게 있어 안정이란 끊임없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성장할 수 있는 상태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8

모든 것을 나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부담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나만의 안정감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나에게 안정이란 이제 정해진 조건이나 자리가 아니다. 나의 가치관과 성장, 그리고 나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도전이 안정의 또 다른 형태임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이 변해도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힘, 그것이 내가 찾은 새로운 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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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 5급 사무관을 때려치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