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주는 신호

기분이 주는 신호 #

#2026-08-28


상실, 질병, 대인관계 문제, 고립, 체계화된 불평등의 현실을 실감하면 우리 감정은 축 가라앉는다. 그 외에도 기운이 소진되는 무수한 일들이 감정을 무너뜨린다. 심지어 인생의 전환기나 겨울철에 온종일 어둑한 날들이 지속되는 것처럼, 좋고 나쁨을 평가할 수 없는 일에 감정이 허물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조한 기분은 적응의 결과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충족되도록 도와준다. 기분이 저조해지는 건 개인이 어딘가 잘못되거나 나약해서가 아니라, 주변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보다 해를 입을 위험성이 더 크다는 것을 알려주는 변화다.

(맞아. 상실했을때 그대로 널부러져 있으면 안되잖아? 감정을 느끼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만날 인연을 준비하고… 그래야하잖아? 아프지 않았으면 내가 글을 썼을까? 책을 읽었을까? 엄마 아빠에게 괜히 연락했을까? 나를 보살피고자 했을까? 연인의 상실이, 거기서 오는 슬픔이 행동의 동력이 된것이다)

그런데 인생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전환기에도, 심지어 스스로 원한 변화라도 당장은 보상이 줄고 위험성과 불확실성이 상대적으로 커져서 경보가 울릴 수 있다. 새로운 보상을 찾아내고 수확하려면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므로, 인생의 전환기에는 스스로 바라는 변화와 원치 않은 변화 모두 그런 이유로 저조한 기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전환기의 이런 상황은 껍질보다 몸이 더 커진 소라게와 비슷하다. 자라난 몸에 맞는 새 껍질을 찾으려면 원래 있던 껍질에서 나와야 하고, 그러려면 익숙한 껍질이라는 보상을 스스로 포기해야 한다. 그래야 더 큰 새 껍질을 찾아서 앞으로 더 오랫동안 편안히 지낼 수 있다.

나는 다정했던 전남편과 큰 갈등 없이 결혼생활을 하며 안락함과 편안함을 얻었지만, 늘 기분이 가라앉은 채로 살았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밝히도록 내 등을 떠민 건 그 고요한 고통이었다.

축 처진 기분으로 살면서 느낀 괴로움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는 게 인생을 뒤집는 변화보다 더 괴롭다는 결론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래서 나는 변화를 택했다. 이 변화가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내게 중요한 가치에 부합하는 나다운 삶이 주는 보상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마침내 내내 저조한 기분으로 살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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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 정신 나간 세상에서 아픈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