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네트워크 #
#2024-12-31
#1
머스크는 러시아인들이 받아내려 했던 터무니없는 가격을 곱씹으면서, 제 1원리(First Principles-다른 경험적 데이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명한 진리’)에 입각한 사고를 동원해 그 상황에 대한 기본 물리학을 파고들었고 거기서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려나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완제품이 기본 재료비보다 얼마나 더 비싼지 계산하는 ‘바보 지수idiot index’를 개발했다. 제품의 ‘바보 지수’가 높으면 보다 효율적인 제조기술을 고안하여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로켓은 ‘바보 지수’가 극도로 높았다. 머스크는 로켓에 들어가는 탄소섬유와 금속, 연료 및 기타 재료의 원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방법을 사용한 완제품의 제작비용은 머스크가 계산한 원가보다 최소 50배 이상 비쌌다. 인류가 화성에 가려면 로켓 기술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했다. 중고 로켓, 특히 러시아의 오래된 로켓에 의존해서는 기술을 발전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는 노트북을 꺼내 중형 로켓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모든 재료와 비용을 세세히 나열하며 스프레드시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뒷자리에 앉은 캔트렐과 그리핀은 술을 주문하며 웃었다. “우리의 저 천재백치께서는 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요?” 그리핀이 캔트렐에게 물었다. 머스크가 몸을 돌려 “이것 좀 봐요, 여러분”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만든 스프레드시트를 보여주었다. “이런 로켓을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캔트렐은 숫자를 살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헐, 내 책을 다 빌려가더니만 결국 이러려고 그랬군.” 그러고는 승무원에게 술을 한 잔 더 달라고 했다.
#2
킴벌은 일론과 저스틴, 아기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네바다는 뇌사 판정을 받은 상태로 3일 동안 생명유지장치를 달고 생을 유지했다. 마침내 호흡기를 끄기로 결정했을 때, 일론은 아기의 마지막 심장 박동을 느꼈고 저스틴은 아기를 품에 안고 죽음의 떨림을 느꼈다. 일론은 주체할 수 없이 흐느꼈다. “마치 늑대처럼 울었어요.” 그의 어머니는 말한다. “늑대처럼….” 일론이 도저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다고 해서 킴벌은 부부가 베벌리윌셔 호텔에 머물도록 조처했다. 호텔 지배인은 그들에게 프레지덴셜 스위트를 내주었다. 일론은 그에게 호텔로 가져왔던 네바다의 옷과 장난감을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일론이 가까스로 집에 가서 한때 아들의 방이었던 곳을 보기까지 3주가 걸렸다.
일론은 슬픔을 조용히 감내했다. 퀸스대학교에서 사귄 친구 나베이드 패룩은 그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로스앤젤레스로 날아와 곁을 지켰다. 패룩은 말한다. “저스틴과 나는 그간의 일에 대한 대화에 일론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그는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들은 대신 영화를 보고 비디오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랜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패룩이 물었다. “기분은 어때? 잘 견디고 있는 거지?” 하지만 일론은 그런 대화 자체를 완전히 차단했다.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그를 알고 지내온 사이였기에 그가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패룩의 말이다.
반대로 저스틴은 자신의 감정에 매우 솔직했다. “남편은 내가 네바다의 죽음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말한다. “그는 내가 감정을 숨김없이 털어놓으면서 감정적으로 자기를 조종하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저스틴은 그가 그렇게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 어린 시절에 발달된 방어기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어두운 상황에 처하면 감정을 차단해버려요. 그에게는 그것이 생존을 위한 방법인 것 같아요.”
#3
요하네스버그에서 출발한 비행의 첫 번째 구간을 마치고 노스캐롤라이나 주 랠리에 도착했을 때, 에롤은 델타항공 담당자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아드님께서 손자 네바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일론은 그 내용을 직접 말할 자신이 없었기에 항공사 담당자에게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에롤이 전화를 받자 킴벌은 상황을 설명하며 말했다. “아버지, 오시면 안돼요.” 킴벌은 아버지에게 발길을 돌려 남아공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했지만, 에롤은 거부했다. “아니다, 이미 미국에 도착했으니 로스앤젤레스에 가봐야 되겠다.”
에롤은 베벌리윌셔 호텔 펜트하우스의 규모를 보고 놀랐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마도 그때까지 내가 본 호텔 방 중 가장 놀랍지 않았나 싶어요.” 일론은 넋이 나간 듯 보였지만, 복잡한 심정으로 애정에 목말라 있기도 했다. 그는 거칠고 거만한 성격의 아버지가 그런 나약한 모습의 자신을 보는 것이 불편했지만, 아버지가 떠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결국 그는 아버지와 그의 새 가족이 로스앤젤레스에 머물 것을 종용하기에 이르렀다. “남아공으로 돌아가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가 말했다. “제가 여기에 집을 사드릴게요.”
킴벌은 깜짝 놀랐다. “아냐, 아냐, 좋은 생각이 아니야.” 그가 일론에게 말했다. “형은 아버지가 얼마나 음흉한 인간인지 벌써 잊었어? 그러지 마, 형. 이건 자학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동생이 설득하려고 애쓸수록 일론은 더욱 슬퍼졌다. 수년 후, 킴벌은 어떤 갈망이 형에게 그런 동기를 부여했는지 다시 한 번 되짚었다. “아들이 죽는 것을 지켜본 일이 아버지가 곁에 있기를 원하도록 이끈 게 분명해요.” 그가 내게 말했다.
#4
어느 날 에롤이 보트에 올라 있을 때 일론으로부터 메시지 한 통이 날아왔다. “상황이 좋아지기는커녕 엉망이 되고 있으니” 에롤에게 남아공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이었다. 에롤은 그렇게 했다. 몇 달 후, 그의 아내와 아이들도 남아공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 협박도 하고 보상도 하고 논쟁도 벌이고 별의별 시도를 다 했지요.” 일론이 나중에 한 말이다. “그런데 그는…” 머스크는 오랜 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말도 안 되게도, 더 나빠졌어요.” 인적 네트워크는 디지털 네트워크보다 복잡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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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 일론 머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