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고 당기는 협상 #
#2024-12-31
#1
신규 가입 고객의 이름을 모니터링하던 중, 머스크는 이름 하나에 시선이 머물렀다. 바로 피터 틸이었다.
그는 엑스닷컴과 같은 건물에 있다가 지금은 거리 아래쪽으로 사무실을 옮긴 컨피니티Confinity라는 회사의 창업자 중 한 명이었다. 틸과 그의 주요 공동창업자 맥스 레브친은 모두 머스크만큼이나 열정적이었지만, 비교적 절제된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들이었다. 엑스닷컴과 마찬가지로 컨피니티도 개인 간 결제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컨피니티의 시스템은 페이팔PayPal이라고 불렸다.
2000년 초 인터넷 거품이 꺼질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던 무렵, 엑스닷컴과 페이팔은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고객이 가입하고 친구를 추천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양사 모두 엄청난 보너스를 지급하는 미친 경쟁을 벌이고 있었지요.” 틸의 설명이다. 나중에 머스크는 이렇게 표현했다. “어느 쪽이 먼저 돈이 바닥나는지 끝까지 가보자는 경쟁이었어요.” 머스크는 비디오 게임에 쏟던 열정으로 경쟁에 임했다. 반면에 틸은 냉정하게 계산하고 리스크를 완화하는 편을 좋아했다. 두 사람 모두 네트워크 효과(먼저 규모를 키우는 회사가 더욱 빠르게 성장하는 현상)로 인해 어느 한 회사만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따라서 ‘모탈 컴뱃’ 게임식의 경쟁으로 치닫는 것보다는 합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머스크와 신임 CEO 빌 해리스는 팰로앨토에 있는 그리스 레스토랑 에비아의 별실에서 틸과 레브친을 만났다. 양측은 각자의 고객 보유 현황을 적은 메모를 교환했는데, 머스크는 거기에 평소처럼 나름의 과장을 섞어 넣었다. 틸은 머스크에게 잠재적 합병조건을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 물었다. 머스크는 “합병된 회사의 90퍼센트는 우리가 소유하고 10퍼센트는 당신들이 소유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레브친은 머스크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진담인가? 두 회사의 고객 기반은 거의 비슷했다. 레브친은 말한다. “머스크는 농담하는 게 아니라는 듯 매우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 무언가 아이러니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았어요.” 머스크는 나중에 레브친의 말을 인정하며 말했다. “사실 우리는 게임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점심을 먹고 나오며 레브친은 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거래는 절대 성사될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냥 우리끼리 다음 행보를 밟기로 하죠.” 하지만 틸은 사람을 읽는 데 더 능숙했다. 그래서 레브친에게 말했다.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에요. 머스크 같은 친구는 인내심을 갖고 상대해야 해요.”
#2
밀고당기는 협상 과정은 2000년 1월 내내 계속되었고, 머스크는 저스틴과의 신혼여행을 연기해야 했다.
엑스닷컴의 주요 투자자였던 마이클 모리츠는 샌드힐로드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양측이 만나도록 주선했다. 틸은 머스크의 맥라렌을 함께 타고 샌드힐로드로 향했다. “그래서, 이 차의 특별한 장점은 무엇인가요?” 틸이 물었다. “한번 보시죠.” 머스크는 그렇게 답하곤 추월차선으로 들어가 가속페달을 있는 힘껏 밟았다. 갑자기 뒷차축이 부러졌고 차가 빙글빙글 돌다가 갓길 경사면에 부딪힌 후 비행접시처럼 공중을 날았다. 차체 일부가 찢어졌다. 평소 자유주의를 실천하던 틸은 안전벨트를 매고 있지 않았지만, 다친 데 없이 빠져나왔다. 그는 지나가던 차를 얻어 타고 샌드힐로드의 세쿼이아 사무실까지 갈 수 있었다. 머스크도 다치지 않았고, 차를 견인시키기 위해 30분 정도 그 자리에 머물렀다가 세쿼이아로 왔다. 그는 해리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고 회의에 참석했다. 나중에 머스크는 웃으며 말했다. “적어도 내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틸에게 보여준 거죠.” 틸은 동의한다. “맞아요, 그가 좀 미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죠.”
#3
머스크는 여전히 합병에 반대했다. 두 회사 모두 이베이의 전자결제를 위해 등록한 약 20만 명의 고객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는 좀 더 광범위한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엑스닷컴이 더 가치 있는 회사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해리스와 갈등을 빚었고, 해리스는 만약 머스크가 합병 협상을 무산시키려 들면 사임하겠다고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해리스가 그만두면 재앙이 닥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인터넷 시장이 위축되고 있던 터라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거든요.” 머스크의 말이다.
머스크가 틸과 레브친과 다시 한번 점심식사를 하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번에 그들은 팰로앨토에 있는, 하얀 식탁보가 인상적인 이탈리아 레스토랑 일포르나이오에서 만났다.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해리스가 주방으로 뛰어들어가 어떤 요리부터 나올 수 있는지 살폈다. 머스크와 틸, 레브친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나누었다. 레브친은 말한다. “해리스는 극도로 외향적인 사업개발자 유형이었어요. 마치 가슴에 S자를 새긴 슈퍼맨처럼 행동했지요. 반면에 우리 셋은 뭐랄까, 비사교적인 괴짜들 같았다고나 할까요. 우리는 절대로 해리스처럼 나서서 설치진 않을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유대감을 느꼈습니다.”
#4
양측은 엑스닷컴이 합병회사의 지분 55퍼센트를 갖는 조건에 합의했지만, 머스크가 곧이어 레브친에게 도둑질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바람에 상황이 크게 꼬여버렸다. 격분한 레브친은 없던 일로 하자고 위협했다. 해리스는 레브친의 집으로 차를 몰고 가 빨래 개는 것을 도와주며 그를 진정시켰다. 계약 조건은 다시 한번 수정되어 기본적으로 50대 50으로 합병하되, 엑스닷컴이 존속법인으로 남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2000년 3월, 거래가 성사되었고 최대 주주였던 머스크가 의장으로 취임했다. 몇 주 후, 그는 레브친과 함께 해리스를 몰아내고(ㅋㅋ) CEO 자리도 되찾았다. 어른들의 지휘는 더 이상 환영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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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 일론 머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