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29

혼돈과 관점 #

#2025-01-30


#1

나는 그에게 통쾌하게 반박해줄 말이 있었으면 싶었다. 우리는 중요하다고, 우리는 사실 아주 중요하다고 말해줄 방법. 그러나 주먹이 올라가는 게 느껴지자마자 내 뇌가 주먹을 다시 잡아당겼다. 왜냐하면 당연히, 우리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주의 냉엄한 진실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이 진실을 무시하는 것은 정확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2

천천히 그것이 초점 속으로 들어왔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다정하게 흔들어주는 손, 연필로 그린 스케치, 나일론 실에 꿴 플라스틱 구슬들-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점이 내가 우생학자들에 대해 그토록 격노하는 이유다. 그들은 이런 그물망의 가능성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3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 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4

분기학자들이 등장하던 시기에 “수리분류학"이라는 방법이 유행하고 있었다. 이는 컴퓨터가 그 무지막지한 계산 능력으로 진화적 친연성을 판단해줄 거라는 희망에 기초한 방법이다. 종들을 비교할 때 생각해낼 수 있는 특징들(예를 들어 새들을 비교한다면 부리의 유형, 알의 크기, 깃털 색깔, 척추골의 수, 내장의 길이 등)을 그냥 최대한 많이 입력하면, 컴퓨터가 개연성 있는 관계의 패턴을 뽑아내주는 것이다. 이는 두 종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을수록 둘이 가까운 관계일 거라는 생각에 기초한 방법이다. 그러나 컴퓨터는 전혀 말이 안되는 관계를 제안할 때도 많았다. 인간의 직관을 완전히 제거했더니… 혼돈만 남은 것이다.

그러나 분기학자들은 어떤 특징들이 다른 특징보다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종들이 거쳐 간 시간의 흐름을 가장 신빙성 있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공통의 진화적 참신함"이라고 부른 특징들, 그러니까 새롭게 추가된 특징들이었다. 이를테면 완전히 새로운 더듬이라든가 반짝이는 노란 지느러미 같은 것들 말이다. 모델에 추가된 참신한 업그레이드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면, 그 새로운 특징을 따라 생물들이 거쳐 간 다양한 버전을 추적할 수 있고, 시간의 화살이 어느 길을 가리키고 있는지 (좀 더 자신 있게) 추측할 수 있고, 더 큰 확신을 갖고 누가 누구를 낳았는지 단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발견은 단순했고, 미묘했고, 특출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아주 놀라운 관계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박쥐는 날개가 달린 설치류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낙타와 훨씬 더 가깝고, 고래는 실제로 유제류(발굽이 있는 동물로, 사슴이 속한 과)라는 사실이 그렇다.

#5

“어류"라는 범주가 모든 차이를 가리고 있다. 그 범주는 가까운 사촌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떼어놓음으로써 잘못된 거리 감각을 만들어낸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6

반세기 동안 분류학자로 일해온 데이브 스미스는 애매하게 얼버무리는 몇 마디를 뱉어내다가 결국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인정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의 일, 생명의 진정한 상호 연관을 밝혀내는 일을 정말로 할 마음이 있다면, 그들이 하는 말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류"라는 것은 그것을 제대로 직시한다면 사실 틀린 범주라는 것을 말이다. 명료하지 않고 날림으로 만든 이 범주-분류학자들의 용어로는 측계통군-에는 그 구성원들의 일부가 빠져 있다. 나중에 나는 미국자연사박물관의 어류분과 수석 큐레이터인 멜라니 스티아스니에게 전화해 긍게서도 어류라는 범주가 사라졌는지 물었다. 멜라니는 “어이쿠” 하고 운을 떼더니 “널리 그렇게 받아들여지죠"라고 말했다. 당신도 상상할 수 있듯이 무덤덤하게.

“맞아요. 직관에 어긋납니다!” 자칭 “횡설수설하는 분기학자"인 릭 윈터바텀이 내게 한 말이다. 그는 30년 넘게 학생들에게 실제 자연 세계가 우리가 설정한 범주대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려 노력해왔다. 그리고 그 관념이 학계 밖으로는 도저히 퍼져나가지 않는 것을 보면서 크게 실망했다. 그는 자기가 대적하기에 너무 센 적수를 상대하고 있는 것 같다고 걱정스러워했다. 그 센 적수는 바로 직관이다. 그는 사람들이 결코 편안함을 진실과 맞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7

우주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서 그가 사랑하는 물고기를 빼앗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낀 약간의 병적인 만족감을 제외하면, 내게 그것이 중요한 일인가? 조금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표본들을 유리단지에 정리하는 것이 직업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범주로서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한 일일까?

헤더는 코페르니쿠스를 예로 들었다. 그 시대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움직이고 있는 게 별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그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에 관해 생각하고, 별들이 매일 밤 그들 머리 위에서 빙빙 돌고 있는 천구의 천정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이 서서히 놓아버릴 수 있도록 수고스럽게 복잡한 사고를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별들을 포기하면 우주를 얻게 되니까"라고 헤더는 말했다.

물고기를 포기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순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물고기의 반대편에 다른 뭔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 물고기를 놓아주는 일은 그 결과로 또 다른 어떤 실존적 변화를 불러온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8

나의 아버지는 “어류"라는 단어를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다는 건 이해하지만 유용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세계를 경험하는 제한된 방식에 자신을 가두게 되는 것이 걱정되지 않으냐고 내가 묻자, 아버지는 불만스럽게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그게 뭐든, 아직 내가 해방되기에는 너무 늙었어.” 큰언니는 물고기를 놓아버리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언니는 어류라는 범주 전체를 바로 손에서 놓아버렸다. 왜 언니한테는 그게 그렇게 쉬운 거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인간은 원래 곧잘 틀리잖아.” 언니는 평생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늘 반복적으로 오해해왔다고 말했다. 의사들에게는 오진을 받고, 급우들과 이웃들, 부모, 나에게서는 오해를 받았다고 말이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정말로 이 물음은 모든 사람마다 다 다르다.

#9

나는 시카고를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더이상 나의 연옥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나는 내 인생을 계속 살아가야 했고 혼돈 속으로 다시 들어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봐야 했다.

#10

‘나는 이 사람이 없는 인생은 결코 원하지 않아.’ 이건 내가 그려왔던 인생이 아니었다. 체격이 아주 작고, 나보다 일곱 살이 어리며, 자전거 경주에서 나를 이기고, 툭하면 나를 향해 어이없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는 여자를 쫓아다니는 것은. 그러나 이건 내가 원하는 인생이다.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 자연이 프린트된 커튼 뒤를 들춰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았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었다.

#11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

#요약

우리가 지어낸 질서를 무너뜨리고 그 짜임을 풀어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라고 하는데, ‘진실이 아닌 모든 것을 믿지 않기’ 또한 맹목적으로 느껴짐. 유용하다면 취하기 vs 진실이 아닌 모든 것을 믿지 않기. 이 둘 사이를 왔다갔다,, 물고기를 놓아주는 일이 사람에 따라 다 다르듯이 ‘사실’의 중요도는 내게 엄연히 다르다. 어떤 사실에 대한 태도를 둘 사이의 어느 지점에 할당할지는 나만의 기준으로 정하면 되는 것이다.

#출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