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예측 #

#2025-02-21


#1

시간과 공간은 고정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며, 서로 독립적인 것도 아니다. 우주를 이해하려면 이들을 합쳐서 4차원, 즉 공간을 나타내는 세 축과 시간을 나타내는 한 축으로 시각화해야 한다.

호킹 박사는 ‘시공(spacetime)’ 이라는 개념을 시각화할 때 광원뿔(light cone) 이미지를 활용해 과거와 미래의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었다. 빛은 발산될 때 연못의 물결처럼 퍼져나가면서 원뿔 형태를 형성한다. 빛의 속도보다 빠른 것은 없으므로 (과거에) 기여하거나 (미래에서) 시작된 현재 순간의 모든 사건은 이 원뿔 안에서 빛의 속도나 그보다 느린 속도로 일어나야만 한다.

호킹은 원뿔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 사건들은 현재를 바꿀 수 없고 현재에 의해 바뀔 수도 없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호킹은 어느 날 갑자기 태양이 죽는다는 시나리오를 얘기했다. 이 사건은 과거의 광원뿔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이 도착하려면 8분이 걸리기 때문에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직 이 지점에서만, 미래의 광원뿔까지의 어느 정도 거리에서만 이 사건이 우리의 현실과 교차하고 현실을 변화시킨다. 우리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가 아니라 우리으 ㅣ의식을 가로지르기 시작한 순간에 그 사실을 인정한다.

우리는 모두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 배우고 다음에 일어날 일을 바꿀 방법을 찾는다. 우리는 확실성을 원하지만 기회도 원한다. 미래가 안전하다고 느끼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가능성에 고무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다. 우리는 목표를 설정하고, 판단에 따른 결정을 내리고, 우선순위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더 나은 방법을 바란다. 미래를 효율적으로 계획할 도구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도 필요하다.

다행히 이런 질문은 잠들지 못해 깨어있는 밤이나, 올해 목표와 다짐을 적는 새해 아침에만 고민하는 질문이 아니다. 이론물리학은 우리를 위해 어려운 부분을 상당히 많이 해결했다. 이론물리학은 삶의 사건을 시각화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계획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심지어 더 좋은 점은 내가 여덟 살의 나를 안심시켰듯이, 이론물리학이 알려주는 방법은 이진법 모델과 냉혹한 광원뿔의 경계선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장에서 소개할 개념인 네트워크이론, 토폴로지, 경사하강법을 활용하면 인간만큼이나 유연하고 변하기 쉬운 삶을 계획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아마도 삶의 계획과 목표를 세울 때 마주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에 집중할까?‘일 것이다. 현재와 미래, 어느 쪽에 집중해야 할까? 지금 느낄 만족감인가, 아니면 뒤로 미룰 기쁨인가? 끊임없이 장기 계획을 세우느라 현재의 삶을 즐기지 못하는가? 아니면 현재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가올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가?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을까? 현재에도 행복하고 미래도 이상적으로 계획할 수 있을까?

#2

이 딜레마를 두고 너무 고심하느라 걱정한 적이 있다면, 양자역학이 당신을 안심시켜줄 것이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아는 한 가장 작은 입자인 아원자입자(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를 연구하는 이론물리학의 한 분야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아원자입자의 위치를 더 정확하게 측정할수록 입자의 운동량을 측정하기는 더 어려워진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역의 명제도 똑같이 적용된다. 다시 말하면 물리학은 우리에게 위치와 운동 속도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고 말해준다. 한쪽에 집중할수록 다른 쪽의 측정은 부정확해진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가?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입자에 관해 썼겠지만, 같은 원리가 거시 세계인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되는 듯하다. 정밀 측정 장비에도 한계가 있듯이, 집중하고 우선순위를 매기는 우리의 능력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파티를 주최하는 동시에 파티를 즐길 수는 없다. 파티에 대해 고민하든지 파티를 즐기든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든지 다른 사람은 어떤지 걱정하든지 둘 중 하나다. 하나를 하면 다른 하나를 하는 능력이 억제된다. 특히 나처럼 ‘재미있게 노는 법’을 준비하려고 구글에 검색해야 한다몀ㄴ 말이다.

이는 성인의 딜레마로, 우리는 끊임없이 모순되는 두 개의 욕구를 인식한다. 현재를 즐기거나, 미래를 계획하거나. 동시에 두 가지 모두 챙기려는 욕망은 둘 중 하나를 적절하게 성취할 능력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우리는 앞으로 무엇이 다가올지 걱정하느라 현재를 즐기지 못하거나, 너무나 즐겁게 지내느라 미래를 대비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 정보 중심의 연구에 기반을 둔 삶을 즐기는 나조차, 그저 배움을 멈추고 세계에 무지한 채 행복에 젖어 진실로 순간을 살아가는 아이로 되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아빠와 부엌에서 생선을 요리하거나 정원에서 놀고, 마음 가는 대로 수많은 모래성을 만들고, 멋지고 다채로운 색상의 수영복을 입은 채 루 해변의 ‘밀리의 바위’에 앉아있기도 했다. 일곱 살에는 체크무늬를 좋아했고, 엄마의 푸른색 덴마크산 그릇으로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하거나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남성과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좋아했다. 물론 그 남성은 스티븐 호킹이었다. 모든 기억의 색, 맛, 냄새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내 마음에 남아있다.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고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것을 했던 시절, 즐거운 삶이었다.

온갖 취미가 뒤섞인 이 주머니는 무작위였을 수도 있고 일정한 형태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모두 과거의 광원뿔을 형성하는 일부로서 지금 여기까지 나를 이끌어왔다. 내 흥미와 독자성, 개성을 강화하는 경험의 축적이다. 이 기억들은 대세에서 나만 소외되리라는 두려움이나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걱정이 없었던 때를 상기시킨다.

#3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던 나는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파동을 연구하는 또 다른 양자역학 분야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는 전통적인 하이젠베르크 문제, 즉 특정 순간에는 파동의 운동량이나 파동의 위치 둘 중 하나만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다는 문제를 가리킨다. 양손 손가락을 동시에 마주 대려 해보라. 자꾸 어긋나서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확률파동(wave packet)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확률파동은 수많은 다양한 파동을 합성해서 시각화한 것으로, 과학자들은 파동들이 나타내는 총체적 행동을 연구한다. 하나의 파동은 분명하게 정의하기 힘들지만, 여러 파동 ‘뭉치(packet)‘은 더 효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삶의 계획을 세우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하나하나의 결정이나 목표가 올바른지 알기 힘들다. 이럴 때는 큰 그림과 맥락, 즉 전체 ‘뭉치’를 살펴야 지금 이 순간뿐만 아니라 미래 전체의 최상의 결과와 비교해서 우리가 가능한 최고의 선택을 하는지 알 수 있다.

#4

가상의 확률파동을 만들면서 나는 삶을 숙고하는 두 가지 사고방식이 이루는 또 다른 균형에 부딪혀야 했다. 모멘텀 사고(momentom thinking)는 시간에 따라 살면서 한 시간에서 다른 시간으로 옮겨 가도록 하며, 이 사고에 따르면 행복은 우리가 성취하고 계획한 것으로 정의된다(즉, 책임이라는 어른의 세계다). 반면, 포지션 사고(position thinking)는 현재를 살면서 현재 순간과 현재가 주는 느낌에 사로잡혀 다른 모든 것을 차단하고 그저 존재하게 하는데, 여기에는 죄책감까지 따른다. 포지션 사고를 받아들이기는 매우 힘든데, 그것이 ‘제대로 된 어른’이 되려면 해야 한다고 들어왔던 것과 완전히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꼭 필요하다. 가만히 서 있다고 해서 멈춰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더 창의적이고, 현재 거치는 과정을 재평가하며, 감각의 힘을 통해 살아가고, 미래를 위해 더 많은 가능성을 탐색한다.

다음에 무엇을 할지 집착하고 거의 모든 삶의 순간에 끼어들며 현재 이 순간의 즐거움을 부정하는 모멘텀 사고의 연결 고리를 끊을 방법이 필요했다. 나는 명확한 미래에 대하 ㄴ끊임없는 욕구를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순간을 살아가는 능력을 회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2013년, 변화가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시기인 사순절(부활절 전 40일 동안의 기간. 단식을 하기도 한다) 직전에 특별한 팬케이크 한 접시를 먹으며 실험을 개시했다. 완벽하고 엄격하게 해야 할 일을 확인하고 모든 우선 사항을 처리했다. 나머지 절반은 포지션 사고를 하며 살았다. 모든 순간을 즐기고 미래에 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제 당신은 아마 이 계획이 잘되지 않았으리라고 짐작할 만큼은 나를 잘 알 것이다*. 지금의 나를 만든, 지극히 중요하지만 실패한 또 하나의 실험이었다. 실험하면서도 현재의 즐거움이든 미래의 명확성이든, 실험을 침식하는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파티를 열고도 파티가 끝난 후 해야 할 설거지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관찰자가 근본적으로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또 다른 양자역학 교리, 즉 관찰자 효과의 희생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드는 예시로는 현미경으로 전자를 관찰하는 사례가 있다. 관찰자가 광자를 투사하는 데 의존하면 이 행위가 광자의 운동 방향을 바꿀 것이다. 이처럼 내가 내 실험을 관찰하는 행위는 당연히 결과를 왜곡했다. 나는 무엇을 빠뜨렸는지 생각하느라 너무 바빠서 그 순간의 나를 즐길 수 없었다.

실패한 실험 덕분에 나는 포지션 사고와 모멘텀 사고, 현재와 미래 사이의 어디쯤에서 타협할 수 있었다. 평범한 날의 각기 다른 순간에, 나는 바로 그 특정 순간에 내게 가장 필요한 사고로 전환되기를 바라면서 두 사고 사이를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할 것이다. 나는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원하며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ADHD와 싸우면서, 현재를 사는 것과 미래를 계획하는 것 사이에서 적당히 춤출 것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알기만 해도 올바른 균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발견했듯이 이 둘을 완벽하게 구분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저 이 둘이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지금 하지 않는 일을 할 시간이 나중에 있을 것이며, 오후에 햇볕을 쬐면서, 혹은 모두가 밖에서 즐기는 동안 안에서 계획을 세우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깨달으면, 우리가 하지 않는 일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다.

그러나 현재를 사는 것과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두 사고방식이 정확히 맞물리게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시각화할 방법도 필요하다. 그러면 목표를 설정하는 방법을 명확하게 선택하고 우리의 여행 속도에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내 삶에서 가장 신뢰하는 동맹인 네트워크이론이 진가를 발휘한다.

*사실 저자를 이해한 것이 아님. 나도 계획은 항상 어그러지는 쪽이었다. a와 b중 a 로 방향을 틀자마자 세상은 b 방향으로 휘어진다. 왜일까? a를 선택하자마자 갑자기 세상에서 a에 대한 반례가 속출하고 다시 양 갈래 길로 돌아오게 된다. 관찰자 효과였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5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를 읽은 후, 나는 광원뿔의 고정된 경계선보다 내 요구를 더 잘 충족해줄 예측 모델을 찾아 헤맸다. 나는 전통적인 인간의 모순, 즉 확실성에 대한 욕구와 정해진 한계에 대한 좌절감의 모순에 사로잡혔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을 제외하면 내게 주어진 계획의 한계만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없다. 이런 두꺼운 직선을 필요에 따라 구부리고 주변을 탐색할 구불구불한 선으로 바꾸려면 유연성이 필요하다.

나는 집을 나서는 데만 다섯 시간이 걸리는 끝없는 준비의 필요성과, 오랜 시간 신중하게 생각해 온 것을 극심한 조바심이 폭발하는 순간 모두 파기해버리는 성향, 두 가지 픅면 모두를 고려한 계획법이 필요했다. 이런 성향은 일종의 심리적인 뇌 정지 상태로, 오늘 하루가 레몬 셔벗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더 비슷해지는 것과 같다. 현재와 미래를 조화시키려는 나의 하이젠베르크식 전투는, ADHD의 시간 왜곡과 나를 계속 바닥으로 짓누르는 정신 가속기 덕분에 더 치열해진다.

이 모든 것을 처리하는 데 네트워크이론이 나의 구원자가 되었다. 이 이론은 상당히 단순한 개념이다. 연결된 대상을 그래프로 나타내고, 총체적으로 형성되는 네트워크를 시각화하며, 이런 연결성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무엇인지 연구한다. 네트워크이론과 그래프 이론이라는 연관된 기술을 이용해서, 우리는 복잡하고 밀접하며 동적인 계를 분석할 수 있다.

네트워크는 대상이나 사람들이 연결된 연속체다. 당신과 친구, 이웃은 여러 사회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런던 지하철은 서로 다른 노선으로 연결된 정거장 네트워크다. 토스터 플러그 속에 든 전기회로도 네트워크다. 와이파이와 무선 근거리통신망 일부에 연결된 채 여러분 옆에 놓여 있을 스마트폰은 아마 현재 네트워크의 일부일 것이다. 인터넷은 그 자체가 물리적으로나 무선으로 연결된 컴퓨터들의 메가 네트워크로, 그를 통해 방대한 양의 자료가 움직인다.

물질세계에서 디지털 세계까지, 사회에서 과학까지, 네트워크는 어디에나 있다. 네트워크는 무형이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구조이며, 우리가 수십 년에 걸쳐 경력을 쌓는 과정부터 지금 우리가 인터넷에 연결되는 방법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네트워크는 장기간 및 단기간의 삶을 계획하고 시각화하는 이상적인 방법을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에 영향받으며 사방으로 밀고 밀리므로, 미리 계획을 세우는 투두 리스트보다 더 복잡하고 반복적이며 적용하기 쉬운 모델이 필요하다. 네트워크이론이 바로 이것을 제공하며, 특히 토폴로지는 네트워크 구성 요소인 노드(node, 컴퓨터과학의 기초 단위. 보통 네트워크에 연결된 하나의 기기를 뜻한다)가 연결되는 방식과 형성되는 구조를 알려준다. 토폴로지(네트워크의 요소들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방식)는 경직된 직선을 유동성 있는 가능성의 네트워크로 바꿔준다. 어둠 속에 감춰진 것을 밝은 곳으로 끌어내고, 정점에 이른 내 불안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한때는 유용했던 원리가 더는 쓸모없을 때나, 싹트는 생각이 이제 번성할 준비가 되었을 때를 알아차리게 돕기도 한다.

토폴로지의 본질은 매우 중요하다. 여섯 개의 단추로 패턴을 만들 때, 당신은 선이나 원, V자를 만들 수 있다. 토폴로지는 네트워크의 기능, 즉 역량과 한계를 결정한다. 우리가 살면서 의사 결정을 하고 우선순위를 설정할 때도 똑같은 일을 한다. 즉, 단기간 및 장기간의 결과를 결정할 유용한 증거와 선택을 패턴으로 배열한다.

미래의 삶을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생각해보면 이 네트워크의 노드는 사람부터 희망, 두려움, 목표까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것은 내가 발견한 계획법 중에서 너무 단순하지도, 불편할 정도로 제한적이지도 않은 최고의 방법이다. 역동적으로 당신의 환경이 그렇듯 적응력이 있어서 유용하다. 게다가 무엇이 정말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알 수 있도록 도와주므로 명확하다. 또 연결성에 초점을 맞추므로, 연결된 노드를 확인하여 어떤 노드가 영향을 주고받는지 살피며 특정 경로가 어디로 이어질지 알려준다.

네트워크는 호킹이 알려준 대로 시간과 공간의 맥락에서 광원뿔의 궤도에 한정되지 않고 생각하게 해준다. 또 우리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이중 캔버스에서 사람, 특정 목표, 삶의 단계 사이의 근접성과 거리를 탐색하게 돕는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야 하는지, 그 사건이 일어나게 하려면 언제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호킹의 다이어그램에 선이 존재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소음에서 신호를 찾아내고, 길이나 자기 삶을 잃을 것 같은 불안을 극복하려면 우리에게 방향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트워크는 이런 직선을 구불구불한 선으로 부드럽게 바꾸며, 시간이 흐르면서 고정된 광원뿔을 다른 면이 빛에 노출되도록 스스로 접히고 돌돌 말리는 잎사귀 모양으로 바꾼다. 우리에게 구조를, 따라갈 길을, 유연성 있는 움직임을 준다**.

시간과 공간에 걸쳐서 네트워크를 만들 때 필요한 능력, 즉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명확하게 인식하는 능력이 있어야만 현재에 대한 과도한 불안을 피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 목표 목록 자체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목록에는 맥락이 없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도 없으며, 선호도를 설정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의 선형성에는 적절할 수 있지만 의사 결정에는 목표와 함께 사람과 장소를 계획하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며, 이 네트워크는 특정 형태를 고수할 필요 없이 오직 당신의 의도에만 맞으면 된다. 그러나 이 중 어느 것도 우리가 자신의 토폴로지를 친구나 동료의 것과 비교하면서 불안해하거나 부러워하지 않을 거라고, 갖고 싶은 것과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궁금해하지 않을 거라고, 대열의 끝으로 밀려날 것을 걱정하지 않을 거라고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네트워크이론은 당신을 자신만 뒤쳐지거나 소외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구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당신이 유연하게 형태를 만들어나가면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할 방향과 목적은 알려줄 수 있다.

일단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면 탐색을 시작해서, 대량의 정보와 구성 요소 중에서 어떤 것이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는지 알아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최적의 경로를 발견하고 발전시켜서, 상황이 바뀔 때마다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을 계속 뒤섞을 수 있을까?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기준이 필요하다. 중요하고 필요한 요소들은 선으로 정해두기.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규정하지 않고 존재하는 그대로 건드리지 말고 두기. 그 상태 그대로도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려면 중요하고 필요한 요소들이 선명하게 배경을 형성해줘야한다.

**열심히 생각해서 가장 적절한 해를 내놓는 식을 통해 결과를 내야 하는 일이 있고, “결정” 방법을 “식” 같은게 아니라 그 사안만의 결정하는 방법대로 두고 어느순간 결정할만큼 선명해졌을때, 그 시점이 정답이라고 믿고 그 시점에서의 위치를 결과로 내야하는일도 있고. 그런것같네

#6

경사하강법은 머신러닝에서 가장 기본적인 기술의 하나이며, 삶의 네트워크를 탐색하는 우리 모두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주는 개념이다. 첫 번째 교훈은 우리는 경로 전체를 미리 볼 수 없으며, 심지어 대부분을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노드를 연결하고 군집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결국 길을 따라 아래로, 즉 미래로 갈수록 우리의 시야는 흐릿해진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경사하강법의 두 번째 교훈은 현재의 전후 사정이 당신이 지금 당장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이 결정 과정에서 경사도를 시험하듯이, 우리도 우리만의 기준에 따라 특정 경로의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 이 길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는가, 성취감이 더 큰가, 더 의미 있는가? 우리는 미래에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할 수 없지만, 여행의 방향을 시험해보고 삶의 비용함수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 여기서 가치와 목적에 대한 감각을 개발하고, 매슬로의 욕구 단계의 상층을 충족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는 일단 음식과 쉼터처럼 가장 기본적인 인간 욕구를 충족하면 우리의 관심은 더 덧없는 문제, 즉 성취감을 느끼고 존경받고 문제를 해결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능력 같은 것으로 이동한다고 말한다.

만약 그 방향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즉 경사도가 차츰 감소하면 당신의 모멘텀도 줄어들면서 침체되거나 멍해지거나 그저 뭔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변화하게 된다.* 경사하강법 알고리즘은 선택에 한해서는 감상적이지 않다. 만약 가장 가파른 하강 경로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기꺼이 두 단계 뒤로 물러난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도 경로를 선택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며, 언제든 목표와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면 경로를 바꿔야 한다.** 또한 곧고 완벽하고 유일한 길은 없으며, 다만 발견해서 따라가기까지 기꺼움, 흥미,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 길만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이 선택하는 최고의 경로는 항상 객관적인 안정성 보다는 여러 요인에 좌우될 것이다. 이는 선택 사항을 탐색할 시간이 얼마나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어느 정도의 완벽주의자인가에 달렸다.***

목표를 설정하고 추구하는 일은 두려울 수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스포츠인 암벽 등반처럼 이것도 그저 적절한 장비와 개인의 노력 문제다. 하이젠베르크는 우리에게 빌레이(암벽 등반에서 등반자의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로프 조작 기술)를, 네트워크이론은 밧줄을, 경사하강법은 경로를 제공한다.

*학습에서 멈춰야할 지점은 어디일까? 학습의 목표가 되는 적용 분야에의 적합성보다는 학습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어느 지점에서 멈춰야 할 것이다. 그 말은? 너무 정확해지면. 또는 너무 어디서 본것같아지면. 그럼 학습을 멈추고 남은 역량은 어디에 써야하는가? 목표에 안전하게 도착하는데 써야한다. 역량은 조금 남아야 제대로 분배한거다.

**그리디 알고리즘의 반대 발명하면 좋을듯. 대인배 알고리즘: 너무 멀어질때만 수정하면됨.

***“동전 던지기 결과"를 예측하기 위한 학습을 수행한다고 하자. 1/2 라는 답보다 아주 적절한 양의 적은 오차를 넣는게 정답에 더 가까울 때도 있을 것이다. 아닐 때도 있ㅇ르 것이다. 고장난 시계가 하루에 두번 맞듯이. 그렇다고 해서 “동전"이 앞면과 뒷면 말고 다른 면을 갖고있는 것은 아니다. 동전은 정확히 앞면과 뒷면만 존재하며 1을 둘에 할당하면 (미묘한 무게차이 같은걸 신경쓰지 않으면) 1/2 를 할당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상식적으로) 억지이다. 하지만 10번 던졌을때 정확히 5번이 나오는가 하면, 10번 던지기를 10번 해보면 5번이 나오는 게 더 적을 것이다. 목적을 확실히 해야한다. “동전"의 특성을 알아내는 것인가? 아니면 “동전 던지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인가? “동전"의 특성을 알아내는게 목적이라면 10번을 10번 한 뒤 smoothing을 해서 1/2 로 결정하면 된다. “동전 던지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더 정확히는 “동전 던지기 결과를 누구보다 가장 정확히 맞히는것” 이 목적이며 다른 결과는 무의미하다면, 1/2에 난수를 더하는게 목적에는 더 부합할지 모른다. 예측이란 그런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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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