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성

취약성 #

#2025-03-29


#1

“기분이 최고로 좋았을 때를 10이라고 하면, 지금 기분은 1에서 10 중 몇 정도인가요?” 그녀는 조용히 내 답을 기다렸다.

“6에서 7 정도요.”

정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환자들에게 생각하지 말고 직감적으로 답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7’이란 건 내 솔직한 느낌이었을까, 아니면 일반 환자 대신 상담 시간을 차지한 내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의도였을까?

난 내 우울증의 원인을 오랫동안 탐구했다. 어떤 힘든 일이 닥치면 며칠도 안 되어 극심한 절망에 빠지는 이유가 뭘까. 정신역동치료는 과거의 인간관계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통찰해보려는 쪽이다. 반면 인지행동치료는 현실을 자신에게 해로운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서’ 우울해진다고 보고 그런 관점을 개선하려는 쪽이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 개인의 역사도 불변의 존재가 아니다. 남에게 이야기하고 반복해 서술하는 과정에서 유기체처럼 변한다. 어느 시점에서건, 내가 ‘진짜’ 아는 건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뿐이다. 1년 전 느꼈던 감정, 품었던 고민이 아무리 해도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쩌면 일부러 잊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지금의 나에 대해 내가 아는 이야기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되는 이야기다. 이 일을 하면서 배웠지만, 의사는 환자가 안고 있는 문제의 ‘이력을 알아내는’ 데 그치지 말고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아버지의 폭력에 몸만 다친 게 아니었다. 10대 시절 우울증을 앓았던 것도, 20대 중반인 지금 기분이 심하게 침체되어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는 성장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했지만, 어릴 때부터 앓았던 당뇨병이 합병증을 일으키면서 그간 노력해 얻은 것들을 다 잃게 되었다고 느꼈다. 어머니도 당뇨병이 있었다. 리처드는 최근 시력이 나빠졌고, 어린 시절 경험 때문에 우울증에도 대단히 취약해진 상태였다. 물론 충분히 이해는 된다. 그럴 수 있다. 당뇨병처럼 큰 병을 앓는 게 얼마나 힘들지도 짐작이 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심각할 정도로 기분이 침체되지는 않는다. 알아서 살 길을 찾아나간다. 리처드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이 가끔 하는 실수는, 환자가 현재 처한 상황에 비추어볼 때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고 넘겨짚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으면 누구든 기분이 처지는 게 당연하죠. 저라도 그러겠어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환자는 우울한 것일 수도 있다. 우울은 불행한 감정과는 다르다. 우울은 불행보다 훨씬 더 깊고 큰 절망감으로, 세상을 보는 눈에 색을 덧입히고 일상생활을 해나가기 어렵게 만든다.

#2

출발점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엉엉 울고 있었다. 아빠는 먼저 훌쩍 내렸다. 나와 일행이 아닌 척 하는 것 같았다. ‘이 울보 여자애 내 딸 아니야’ 하고 말하는 듯했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아빠의 기질을 파악했다. 우리 둘은 여러모로 많이 닮았으면서도 또 달랐다. 나는 쉽게 불안해하고 겁이 많았지만, 아빠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힘이 세고 용감했다.

“뭐가 문제야?” 아침마다 학교 가기 전에 티셔츠를 몇 번이나 입었다 벗었다 하는 앨런에게 나는 묻곤 했다. 엄마 아빠 둘 다 7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해서, 내가 두 남동생을 아침마다 준비시켜야 했다. 나보다 열한 살 어린 막내 이언은 골치를 썩이지 않았다. 알아서 시리얼을 우걱우걱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나의 일곱 살 터울인 앨런은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늘 괴로워했다.

“저리 가! 나 좀 가만 놔둬.” 앨런이 소리쳤다.

“왜 그러는 건데.” 나는 이유를 말해달라고 구슬렸다.

“주름이 너무 많아.” 앨런은 중얼거리거나 울면서 외치곤 했다.

“우리 늦었어.”

“상관없어! 나 좀 놔둬.”

동생은 그렇게 옷과 씨름하다가 화를 못 이겨 옷을 갈가리 찢기도 했다. 밤에도 쉽지 않았다. 깜깜한 방에서 침대에 눕지도 않고 몇 시간을 서 있었다. 자기 전에 치러야 하는, 자신도 설명하지 못하는 어떤 복잡한 절차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절망감에 빠졌다. “앨런, 제발 잠옷 좀 입어, 응?”

“싫어.”

“여보, 이제 자정이야.” 엄마가 문간에 서서 애걸했다.

“그냥 놔둬. 서 있다가 알아서 불 끄고 자라고 해.”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동생은 자기 침대 옆에 돌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러다 문이 꽝 닫혔고, 방 안에서는 흐느끼는 울음소리만 흘러나왔다. 결국 아빠도 포기하고, 실망과 분노로 피폐해진 채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앨런은 여러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강박 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때는 병명을 몰랐지만, 아빠는 사회공포증이 점점 심해졌다. 구체적으로는 공공장소에서 남들과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가 살 만한 옷이나 신발 따위를 집에 가져가서 먼저 좀 입혀보겠다고 가게 주인에게 사정해야 했다. 심지어 아빠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지도 못할 정도로 불안이 심했다. 술을 마시면 불안이 좀 가라앉긴 했지만 아빠는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대신 담배를 하루에 40개비까지 피웠다.

부모님은 앨런과 함께 가족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아빠는 의사가 자기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고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며 질색했다. “뭘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죄책감만 잔뜩 주고.” 의사가 나도 함께 오라고 했지만 나는 거부했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난 학교 공부에 너무 바빴다.

당시엔 정신질환의 생물학적 근거라는 것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뇌의 배선 결함이 아닌 양육의 문제로 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지금은 유전과 양육 어느 한 쪽의 문제라기보다 둘이 복잡하게 얽힌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동생 앨런이 불안 장애 성향을 부모 양쪽에게서 물려받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동생은 난산 끝에 태어났다. 생사의 갈림길을 걷던 몇 분 동안 심장박동이 잡히지 않았는데, 그때 경미한 저산소성 뇌 손상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다. 크면서는 엄마 아빠를 애먹여 두 사람 사이에 긴장을 조성했고, 그로 인해 자신도 더 불안해졌다. 이는 옷 입기나 취침과 관련된 이상행동과 분노와 반항, 또다시 이상행동의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았다.

나는 유전적으로 신경증적 성향을 타고나기도 했지만, 안전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성장 터전을 가족에게서 제공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늘 괴로웠다. 아이가 자신 있게 세상에 부딪칠 줄 아는 사람으로 커나가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엄마는 불안이 있음에도 천성적으로 매사에 태도가 당당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아빠의 과묵한 내향성을 더 많이 물려받은 것 같다. 어릴 때 엄마보다 아빠와 훨씬 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애착은 10대 시절 점점 불안과 두려움으로 바뀌어갔다. 그러한 변화는 인생의 시련을 버티는 내 능력의 한계를 더욱 낮추는 구실을 했다.

#3

나는 모종의 이유로 인해 점점 취약성이 높아졌다. 마음에 안드는 옷을 입고 외출하는 것, 책상에서 볼펜을 떨어뜨려서 허리를 숙여야 하는 것, 침대에 누워서 과자를 먹고 봉지를 휴지통에 버리기 위해 팔을 뻗는 것, 문 밖의 누군가의 발소리를 듣는 것. 생각하기에 따라 큰 불행이 아닐 수도 있는 것들이 나에겐 견디기 힘든 큰 불행처럼 느껴졌다.

어제는 밤에 불행해서 죽고싶어서 울었다. 그 이유는 엄마 아빠와 평생 함께 있고 싶은데 미래의 어느 날은 죽을 것임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한참 울은 뒤에 나는 한 가지 처방을 내리고 마음이 편안해져서 잠이 들었다. 내가 내린 처방은 엄마 아빠가 죽을 때 같이 죽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언제 어린애처럼 울었냐는듯이 나는 짐을 챙겨 할일을 하러 집을 나섰다. 출근 전 카페에 와서 읽고 싶던 책도 읽고 맛있는 커피도 마셨다. 기분이 최고로 좋았을 때를 10이라고 하면, 지금 기분은 1에서 10 중 몇 정도인가요? 같은 질문에 7 같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사실 알고있다. 나는 엄마 아빠가 죽는다고 해서 죽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어제 죽고싶어 울었던 것은 엄마 아빠가 나보다 일찍 죽기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큰 불행이지만 그 사건이 갖는 ‘시간’이라는 특성 때문에 지금의 나에겐 불행의 본질적 크기에 비해 그만한 영향을 주지 못한다. 사실 어제 불행해서 죽고싶어서 울었던 이유는 미팅에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이다. 의아한 점은 그 피드백을 온전히 이해했으며 더 안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던 상황을 성공적으로 회피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피드백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작은 불행 하나가 내 안의 기폭제를 밀었고 벼랑을 구르며 점점 커졌으며 우울한 감정이 발생했다. 만약 덧입혀질 불행이 없다면 그대로 축적되어 다음 발생할 우울을 조금 당길 예정이었으나, 어제는 먼 미래의 불행이 떠오름에 따라 감정이 덧입혀져 발현될 수 있었으며 그렇기에 나는 죽을 듯이 울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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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당신의 특별한 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