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안전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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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은 트라우마 회복의 4단계를 제시했다. 첫 단계는 안전감와 안정감의 회복이다.

지금도 위험을 겪고 살며 신경계가 압도되는 상황에서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외부 세계가 안전해지는 방법을 찾는 동시에 자기 몸, 정신, 영혼이 안전하다고 느껴져야 한다.

(기존에는 안전하지 않았다. 내가 다른 모습을 보이면 나에게 적대적으로 변할수 있는 사람들과 지냈다. 최소한 내가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과 지냈다. 그리고 취업해야한다는 문제가 있어서 그 불확실성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 남자친구와 친구가 있어서 내가 멀쩡하고 괜찮다는 증거가 되어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4-6년 전에 맺은 관계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는 이상하고 그때가 괜찮았던건데 내가 착각하는 걸수도 있다는 불확실성도 존재했다. 내가 나인채이면 연구실에서는 확실히 사람들이 경계하고 본인들 사이처럼 대해주지 않았다. 사실 본인들 사이처럼 안대해주고 적당히 불편해해도 괜찮은거였는데 그 집단에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대인 기피증을 조금 갖고 있다가 처음 접한 사회인데다, 5년정도의 우울 터널을 지나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강하게 먹고 실천한거라 여기서 잘 적응하지 못하면 정말 내가 이전에 두려워하던것이 실체화된다는 생각에 나를 과도하게 지운 경향도 있었던것같다. 어쩔수없긴하다..)

안전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감정 조절의 ABC인 주체성, 유대감, 과도한 감정의 억제로 내적 안전감을 강화할 수 있다.

흔히들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야 안전한 기분이 든다고 생각하지만, 허먼은 트라우마가 두려움만이 아니라 수치심으로도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수치심은 사람을 향한 신뢰를 뒤흔듭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 대인관계에 대한 감각, 이 세상에서 느끼는 안전감에도 영향을 줍니다.”

지진처럼 대인관계와 무관한 물리적인 일로 스트레스를 겪으면 다음에 또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놓치지 않도록 두려움 경보가 더 민감하게 발달한다. 그와 달리, 사람에게서 해를 입으면 수치심 경보가 영향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수치심 경보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알게 되면, 즉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사람들이 거부하거나 해를 가할 수 있으므로 안전하지 않다고 경고한다. 사람에게 해를 입고 수치심 경보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끔 적응한 사람은, 남들이 자신을 거부할 기색이 나타나는지 아주 실낱같은 단서까지 살핀다. 다른 사람이 알면 안전하지 않을 만한 자신의 취약한 면을 몽땅 감춰 자신을 방어한다.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자신에게 결점이 있어서 남들에게 사랑받거나, 어딘가에 속하거나, 유대를 형성할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믿는 극히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원래 수치심 경보는 사람들에게 거부당할수 있는 상황이나 안전하지 않은 상황을 경고하려고 발달한 기능이지만, 우리는 자신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하지만 수치심은 우리의 실제 가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현재 주변에 있는 사람들, 또는 과거에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알려줄 뿐이다.

(뭔가 이때까지 수치심 관련 글을 읽은 중에 처음으로 납득이 되면서 위로되는 문장이다 ‘아무 상관이 없다‘는게… 내가 나랑 비슷한 사람 아무도 없는 너무나 특별한 사람은 아닐거니까?)

인간의 정신은 수치심 경보가 울리면 자신을 비난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여기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되므로 주체성이 강화되는 탓이다. 이렇게 사실과 다른 서사를 지어내서 자신을 방어함으로써, 생존하려면 의존해야 하는 사람들과 인간성 자체에 대한 믿음을 잃는 괴로움을 피한다.

(사실은 괜찮은 이유는 내가 바꿀수 있어서가 아니라, 저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저들의 특성이고 나는 저들에게 저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는것 그리고 저들의 반응이 세상의 반응이 아니며 설령 세상의 반응이라 할지라도 지금 시기가 아닌 어느 시기에서 나와 비슷하고 나를 이해하주고 공감해줄 사람이 있을것이며 설령 없다 해도! 큰 틀에서의 정의 앞에서 쪽수만 밀릴뿐 나의 특성은 그냥 여느 특성인 것이다)

안전한 사람들과 살고 있고, 공정한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감각이 있어야 수치심 경보가 잦아들고 트라우마에서 회복될 수 있다. 자신의 약한 부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안전하게 드러내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면, 자신이 본질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마찬가지로 남들을 비난하며 스스로 분열을 조장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약한 면과 인간성도 볼수있게 된다.

#2

사람들은 해로운 환경이나 관계에서 마침내 벗어나거나, 중대한 슬트레스 요인이 사라진 후에, 또는 기댈 수 있는 동반자나 공동체, 안정적인 주거 환경, 여유로운 시간이 생긴 경우에 ‘갑자기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증상을 겪는다. 이는 마침내 안전하다고 느낀다는 의미이다.

과거의 일을 다시 꺼내려면 현재 안전하다고 느끼고, 감정 조절도 가능한 상태여야 한다. 허먼은 트라우마의 회복을 느린 통합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회복은 트라우마로 남은 과거의 기억을 슬퍼하고, 그 일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억으로 바꾸는 과정입니다. 삶 전체를 지배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의 이야기 중 한 부분으로 만드는 것이죠.”

(나에게 슬퍼할만했던 일들은 뭐가 있었을까? 엄마를 실망시켰던 기억? 엄마는 나에게 예전에 그 소현이 어디갔냐는 말을 많이 했다. 그 말은 나에게 네가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줬던것같다. 그리고 또 슬퍼할만한 일은 내가 의대에 갈만큼 똑똑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의대에 못가서 슬펐던 기억 아래에는 내가 그정도가 아니라는 수치스러운 마음과, 왜냐하면 내가 의대를 못간 애들을 무시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더해서 주변에서 얼마나 실망할까 하는데서 오는 수치심이었다. 그리고 다른걸 할줄 몰라서, 의대 가는것 외에 어떻게 잘사는 지를 몰라서, 정확히는 그 외에 잘사는 길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감이 세번째였던것같다. 그치만 n수를 하고 수능을 못치는 애들은 매우 많다. 다들 자신이 추구하던 다른것들을 곁에두면서 잘 살던데, 나는 왜 2016-17년의 입시를 지나 18년부터 21년말까지 자신을 자책하고 슬퍼했을까? 나에 대한 실망이 남들에 비해서 그렇게나 컸던것일까? 내가 특별히 그런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걸까?)

처리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트라우마의 파편은 일상생활에서 자극을 받을 때마다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과 정신의 고삐를 쥐고 흔든다. 트라우마 기억을 인식의 범위로 가져와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또는 감정 조절의 ABC를 활용해서 안전하고 주체적으로 다루는 법을 익힌다면, 트라우마의 파편이 삶의 이야기로 다시 통합될 수 있다. 이로써 트라우마 기억도 다른 모든 기억처럼 예측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장된다.

트라우마 기억을 재통합하는 과정은 한 가지로 정해져 있지 않다. 사람마다 고유한 기질이 있고 각기 다른 문화와 공동체 속에 살아간다. 글, 음악, 예술 활동, 명상이나 문화/종교적 의식, 심리치료가 도움이 되기도 하고 공동체 안에서 통합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나는 공부!! 그리고 심리치료? 심리치료도 일종의 공부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글 읽기와 글쓰기 정도인것같다. 음악은… 잘 모르겠다 그냥 즐기는 정도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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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 정신 나간 세상에서 아픈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