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2 ⋯ 혼돈후의 고요
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리스는 뚜렷이 기억한다. 당시의 통증은 뱃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듯했다. 어머니에게 이렇게 고통스러운 게 정상이냐고 묻자, 어머니는 그렇다고 답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무래도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의사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다. "자궁 내막증입니다." 의사는 그것이 염증성 여성 질환이며 전 세계 여성 10퍼센트에게 발생하는 만큼 비교적 흔한 병이라고 설명했다. 그중 다수가 사춘기부터 갱년기까지 질환을 안고 살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증상을 다스린다고 덧붙였다. 위로하려는 양, 매릴린 먼로 역시 그 병을 앓았지만 그래도 온 세상이 찬사를 바치는 여자가 되지 않았냐고 하기까지 했다. '멍청한 소리도 다 있지! 매릴린 먼로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비극적으로 사망했는데.' 진료가 끝나자 아직 10대였던 알리스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난 평생 동안 고통을 겪을 거야. 난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지 못할 거야. 난 아마 아이를 갖지 못할 거야.' 그때부터 알리스는 홀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견디기 어렵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고통은 고립을 추구하는 성향과 고독감의 주된 원인이었다. 자신의 문제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스는 금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질병maladie이라는 단어는 <말하지 못하는 고통mal à dire>에서 온 게 아닐까?' 그러나 탈출구를 찾아보지도 않은 채 자궁 내막증을 감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알리스는 과학에 몰두했고 가능성 있는 설명을 찾았다. 한 이론에 따르면 자궁 내막증을 일으키는 것은 유전자 속 특정 배열, 남아 있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DNA라고 했다. 먼 옛날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서로 짝을 짓고, 사랑을 나눠 반은 사피엔스, 반은 네안데르탈인인 혼종 자식을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더 이상 두 종의 결합으로 자손을 남길 수 없는 새로운 시기가 왔다.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여전히 남아 있으니,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 코드에는 평균적으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유전자 1.8퍼센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가설을 확인하려고 알리스는 자기 게놈을 분석해 봤다. 그리하여 자신의 DNA에는 네안데르탈인 조상에서 유래한 서열이 1.8퍼센트가 아닌 2.7퍼센트나 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문제의 원인이 이거였군. 머나먼 내 사피엔스 조상님들은 네안데르탈인과 <좀 지나치게> 사랑을 많이 나누었던 거야. 내 고통의 근원은 거기 있고 내가 열쇠를 찾을 곳도 거기야.' 그때부터는 병을 길들이는 게 인생의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이 나올 수도 있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이 강렬한 동기가 되어, 알리스는 성과를 냈고 동 세대 가장 촉망받는 젊은 과학자들 반열에 올랐으며, 국립 과학 연구 센터의 장학금을 얻어 〈자궁 내막증과 고대 다른 인류들의 유전자 흔적의 관련성〉이라는 주제로 첫 박사 논문을 썼다. 그 연구로 국제적으로 명망 높은 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알리스에게 메달이나 영광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더 이상 아프지 않고, 그 끔찍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전 세계 2억 명의 여자들을 치료할 방법을 찾는 것, 원하는 것은 그뿐이었다. '내 인생 전체의 방향을 좌우한 것은 고통이었어*.'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뱃속의 불길이 갑자기 잠잠해진다. 알리스는 깊은 숨을 들이켠다. '됐어, 지나갔어. 한바탕 폭풍처럼.' 알리스 카메러는 로켓의 둥근 창 바깥을 내다본다. **'그리고 지금 난 전속력으로 대기권을 가르고 있지.'** 알리스는 회상에 잠긴다. 하늘을 나는 열정을 전해 준 것은 아버지였다. 그 환상적인 감각을 처음 맛본 날이 기억난다. 열여섯 살 때였을 것이다. 어느 일요일, 친구들끼리 놀러 갔다가 발목에 탄력 있는 줄을 묶고 다리 꼭대기에서 허공으로 뛰어내렸다. 감각은 강렬했지만 너무 빨리 지나갔다. 그럼에도 그 경험 이후 병 생각을 덜 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경험을 되풀이했다. '비행은 내 자질구레한 신체적 문제들을 잊게 해줘.' '비행은 육체와 영혼의 상처를 일시적으로나마 치료해 주는 특효약이야.' 알리스는 또한 자연 속 모든 날아다니는 것들을 몰입하여 관찰했다. 잠자리, 나비, 새, 물론 박쥐도. 방학 때면 아침 일찍부터 망원 렌즈가 달린 카메라와 지향성 마이크를 들고 집을 나서 날아다니는 동물들을 찍고 그 노랫소리를 녹음했다. 그러다가 알리스는 한층 수준 높은 경험을 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함께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했다. 카이로 근처 기자 고원의 피라미드들 위로 뛰어내리던 감명 깊은 추억이 가슴에 남아 있다. 1분 30초의 자유 낙하. 마술적인 장소 위에서 겪은 마술 같은 경험. 하지만 자유 낙하에서는 비행의 감각이 바람의 굉음에 방해받았다. 낙하산을 펼친 후 하강이 느려지고 안정화될 때에야 소음은 멎었다. 그때 알리스는 생각했다. '상황에서 멀찍이 떨어져 높이서 볼 때에야 충분히 거리를 두고 지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 있구나.' 알리스는 덜 시끄럽게 날 방법을 계속해서 찾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느 날 인도양의 레위니옹섬 상공에서 패러글라이딩을 가르쳐 주었다. 둘은 함께 생뢰만 위로 튀어나온 언덕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 고요히 하늘을 미끄러지는 믿기 어려운 감각을 맛볼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레위니옹섬에 서식하는 놀라운 새 열대조들이 가까이 와서 짹짹거리며 인사하는 장면까지 목격했다. 다음에 손댄 것은 글라이더였지만, 엄청난 소리를 내며 뒤흔들리는 플라스틱 조종실에서는 비좁은 느낌이 들었다. 소형 비행기와 헬리콥터도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그 잠시의 도피는 며칠간 고통에서 놓여나게는 해주었지만 결코 새처럼 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던 중 배에 장착한 예비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았다. 그는 즉사했다. '높이 오르고자 하는 열망 끝에 날개가 불타 추락한 이카로스 같아.' 알리스는 돌연 비행 체험을 그만두었다. 생각 *고통은 사람을 약하게 만들어서 손에힘이풀리니까 쥐고있던것들이 많이없어지는데 오히려 좋은게 시간이지나서다시펴봣을때도있는것들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이건잡아야겟다고생각햇던거니까 나한테더중요했던게뭔지 알수있다. 근데 역효과는 ... 그이유로 맹목적이게되는게있다 왜냐면 explainable이 아니니까?? 나에게 중요한것 리스트를 대전제로 몇개 박아놓으면 판단이 엄청 쉬워진다. 그래서 하나만 추가돼도 난이도가확내려간다. 근데 잘못박아놓으면 파내기가좀어렵다. 특히 나의 생각(논리)으로 넣지 않은 항목이 많은 경우에 리스트중에 멀빼야대는지를 판단하는게 굉장히 어렵다. 출처 책 키메라의 땅
#책 #키메라의땅
2025-08-04 ⋯ 결단
머스크는 로켓이 산소가 희박한 높이로 충분히 솟아올라 불꽃이 꺼지길 바랐다. 그러나 로켓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비디오 피드에서 오멜렉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더 이상 화면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그리고 불타는 파편들이 바다로 떨어졌다. “위장이 뒤틀렸지요.” 머스크의 말이다. 1시간 후, 머스크는 뮬러, 쾨니스만, 부자, 톰슨 등 수석 팀원들과 함께 잔해를 둘러보기 위해 육군 헬리콥터에 올랐다. 그날 밤 모두가 콰즈의 야외 바에 모여 조용히 맥주를 마셨다. 몇몇 엔지니어는 눈물을 흘렸다. 머스크는 돌처럼 굳은 얼굴과 먼 곳을 응시하는 눈빛으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아주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처음 시작할 때 우리 모두는 첫 번째 임무에서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로켓을 만들어 다시 시도할 것입니다. 머스크와 수석 엔지니어들은 비행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오는 길에 녹화 영상을 틀어놓고 분석에 들어갔다. 뮬러가 멀린 엔진에서 화염이 발생한 순간을 가리켰다. 연료 누출이 원인인 것이 분명했다. 머스크는 잠시 끙끙 앓더니 뮬러를 향해 소리쳤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해고해야 한다고 내게 말했는지 알아요?” “그냥 해고하지 그래요?” 뮬러가 받아쳤다. “근데 내가 염병할 당신을 해고했소? 염병할 당신은 아직 여기 있잖소.” 머스크가 대꾸했다. 그런 다음 머스크는 긴장을 풀려는 듯 코믹 액션 풍자 영화 〈팀 아메리카: 세계 경찰〉을 틀었다. 그렇게 어둠을 실없는 유머로 바꾸는 것은 머스크에게 흔한 일이었다. 그날 늦게 그는 성명을 발표했다. “스페이스X는 장기적인 시각으로 이 일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우리는 이 일을 해낼 것입니다.” 마크스는 제조공정의 모든 측면을 통제함으로써 얻는 이익과 관련하여 머스크의 판단이 옳았음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그는 또한 머스크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 즉 그를 성공으로 이끈 ‘올인’ 방식의 추진력과 그의 나쁜 행동방식이 분리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도 고민한다. “나는 그를 스티브 잡스와 같은 범주의 사람이라고 여기게 됐는데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냥 개자식이지만, 그들은 또한 너무 대단한 것을 성취해서 그냥 물러앉아 ‘그게 패키지인 것 같아’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과 같은 거죠.” 내가 머스크가 이뤄낸 것이 그의 행동방식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고 묻자, 마크스는 이렇게 답했다. “만약 이런 종류의 성취를 위해 세상 사람들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진짜 개자식을 리더로 삼아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아요.” 마크스가 떠난 후 머스크는 보다 냉정하고 강인한 느낌의 CEO를 영입했다. 전투 경험이 있는 이스라엘 낙하산부대 장교 출신으로 반도체 분야에서 기업가로 성공한 제브 드로리였다. 머스크는 말한다. “실제로 테슬라의 CEO가 되는 데 흔쾌히 동의한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두려워해야 할 것이 많았던 탓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었지요.” 하지만 드로리는 자동차 제작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몇 달 후, 스트로벨이 이끄는 고위임원 대표단은 더 이상 그의 지휘 아래 일하기 어렵다고 말했고, 이사회 멤버인 아이라 에렌프라이스는 머스크에게 직접 지휘권을 잡으라고 앞장서서 설득했다. “내가 운전대를 잡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네요. 둘이 같이 운전대를 잡을 수는 없다는 점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머스크가 드로리에게 말했다. 드로리는 우아하게 물러났고, 머스크는 2008년 10월에 테슬라의 공식 CEO가 됨으로써 약 1년 사이에 네 번째로 그 직함을 보유한 인물이 되었다. 아들 네바다의 죽음 이후 저스틴과 일론은 가능한 한 빨리 다시 아이를 갖으려 했다. 그들은 체외수정 클리닉에 다니기 시작했고, 2004년 쌍둥이인 그리핀과 자비에를 낳았다. 2년 후 그들은 다시 체외수정으로 세쌍둥이 카이, 색슨, 데미안을 낳았다. 실리콘밸리의 작은 아파트에서 룸메이트 세 명, 온순하지 않은 닥스훈트 소형견과 함께 결혼생활을 시작했던 부부는 이제 로스앤젤레스 벨에어 언덕 구역의 170평 저택에서 톡톡 튀는 아들 다섯 명, 유모와 가정부로 구성된 직원 다섯 명,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닥스훈트 한 마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사납고 거친 성격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에 다정함이 넘쳐나던 순간들도 있었다. 부부는 서로의 허리를 감싸 안고 팰로앨토 근처의 서점 케플러스 북스까지 걸어가서 책을 구입한 후 카페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곤 했다. “그 얘기를 하자면 목이 메여요.” 저스틴은 말한다. “완전한, 거의 완전한 만족감을 느끼던 순간들이었지요.”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그러듯이 머스크는 아내 앞에서도 순식간에 밝음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모욕을 퍼붓다가 잠시 멈추곤 표정을 풀며 즐거운 미소를 짓기도 했고, 엉뚱한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저스틴은 <에스콰이어>의 톰 주노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곰처럼 의지가 강하고 힘이 센 사람이에요. 그는 재미나게 장난치고 함께 뛰어놀아주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여전히 곰을 상대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죠.” 2008년 봄, 로켓이 폭발하고 테슬라의 혼란이 가중되던 와중에 저스틴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가 있고 얼마 후 그녀는 부부의 침대에서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올려 앉은 채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일론에게 둘의 관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백만 달러의 장관이 펼쳐지는 남편의 인생에서 열외로 취급되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녀는 말한다. “남편이 수백만 달러를 벌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어요.” 일론은 상담을 받는 데 동의했지만, 그가 한 달 동안 세 번의 상담을 받고 난 시점에 두 사람은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저스틴은 일론이 최후통첩을 했다는 입장이다. 현재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혼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말이다. 반면 일론은 저스틴이 이혼하고 싶다고 반복해서 말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이 “나는 결혼생활을 계속할 의향이 있지만, 당신이 이렇게 나에게 못되게 굴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해”라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저스틴이 지금 그대로의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자, 그는 이혼을 신청했다.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왔지만,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밀려왔어요.” 저스틴의 회상이다. 당시 스물두 살이던 탈룰라 라일리는 그림책에 나올 법한, 허트포드셔의 전형적인 영국 마을에서 자랐으며, 머스크를 만났을 때 이미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각색한 작품에서 베넷 가의 다섯 자매 중 셋째인 음치 메리 역을 맡는 등 작지만 연기력을 요하는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큰 키에 길게 생머리를 늘어뜨린 그 미녀는 기민한 성격에 두뇌가 명석한 것이 머스크의 성향과 매우 흡사했다. 닉 하우스와 또 다른 친구 제임스 패브리컨트의 소개로 그녀는 머스크와 함께 앉게 되었다. “그는 수줍음이 많고 약간 어색해 보였어요.” 그녀는 말한다. “그는 로켓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것들이 그의 로켓인 줄 몰랐어요.” 어느 순간 그가 “무릎에 손을 올려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약간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자리가 끝날 무렵, 머스크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런 일에 아주 서툴지만, 다시 만나고 싶으니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라일리가 돌아갈 때가 되었을 무렵 머스크가 그녀에게 청혼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반지는 미처 준비하지 못했소.” 그녀는 악수로 대신하자고 했고, 두 사람은 그렇게 악수를 했다. “호텔의 옥상 수영장에서 그와 함께 수영하면서 마냥 들뜬 가운데 서로를 알게 된 지 2주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약혼을 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기한지 이야기한 기억이 납니다.” 라일리는 그에게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무엇일까요?” 그녀가 농담처럼 물었다. 머스크는 갑자기 진지한 태도로 “우리 중 한 명이 죽는 거겠지요”라고 답했다. 왠지 그 순간 그녀는 그 말이 매우 로맨틱하다고 느꼈다. 머스크는 자금이 바닥나고 있었고, 테슬라는 적자를 내고 있었으며, 스페이스X는 로켓 세 대를 연달아 추락시킨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말 그대로 파산까지 갈 각오를 했다. 그는 발사 실패 몇 시간 후에 이렇게 발표했다. “스페이스X는 앞으로 나아가는 실행에 있어 결코 걸음을 멈추거나 늦추지 않을 것입니다. 스페이스X가 궤도 진입에 성공할 것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하지만 그는 로스앤젤레스 공장에 네 번째 로켓을 위한 부품이 있다고 말했다. 가능한 한 빨리 로켓을 만들어서 콰즈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현실성이 거의 없는 기한을 제시했다. 6주 후에 네 번째 발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그냥 계속 진행하라고 말했고, 나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지요.” 쾨니스만의 말이다. 돌연 낙관적인 분위기가 본사 전체에 퍼졌다. 그 당시 인사책임자로 일했던 돌리 싱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태도를 보고 우리 대부분은 지옥의 문이라도 선탠오일을 들고 따라 들어갈 마음이 생긴 것 같았어요. 순식간에 사옥의 기운이 절망과 패배의 분위기에서 다들 결의를 다지는 분위기로 바뀌었지요.” 머스크와 함께 2차 발사 실패를 지켜봤던 <와이어드>의 칼 호프먼 기자가 머스크에게 연락해 어떻게 낙관론을 유지할 수 있는지 물었다. 머스크는 답했다. “낙관론, 비관론, 다 집어치우라고 하쇼. 우리는 해낼 거요. 염병할 신께 맹세컨대,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성공시킬 작정이오.” 모두 수작업으로 완성된 몇 대의 차량을 출시한 것은 작은 승리에 불과했다. 오래전에 파산하여 잊힌 많은 자동차 회사들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다음 도전은 자동차를 수익성 있게 생산할 수 있는 제조공정을 갖추는 것이었다. 지난 세기에 파산하지 않고 이를 성공시킨 유일한 미국 자동차 회사는 포드뿐이었다. 테슬라는 과연 그 두 번째 기업이 될 수 있을까? 당시에 그것은 불분명해 보였다.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어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테슬라의 공급망은 통제하기 힘들었고, 회사는 자금이 부족했다. 게다가 스페이스X는 아직 로켓을 궤도에 진입시키지 못했다. 머스크는 말한다. “로드스터를 손에 넣었음에도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해로 기록될 1년이 시작되고 있었을 뿐이었지요.” 머스크는 종종 합법과 위법의 경계선 근처까지 내달렸다. 그는 아직 제작되지 않은 로드스터에 대한 고객들의 예치금을 털어 2008년 상반기를 버텼다. 테슬라 경영진 및 이사회 멤버 일부는 예치금을 운영비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조건부 날인 증서로 보관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머스크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을 거예요”라고 주장했다. 탈룰라는 매일 밤 머스크가 거칠게 잠꼬대를 중얼거리거나 때로는 팔을 마구 휘두르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공포에 질려 지켜보았다. “그가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그녀는 말한다. “머스크는 야경증에 시달렸어요. 자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저를 할퀴기도 하고 그랬어요. 정말 끔찍했어요. 그런 필사적 몸부림을 지켜보면서 저는 정말 겁이 났어요.” 때때로 그는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속이 뒤집어지는지 화장실로 달려가 비명을 지르며 구역질을 하곤 했어요. 저는 변기 옆에 서서 그의 머리를 잡아주곤 했죠.” 머스크는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 강하지만 2008년에는 거의 한계를 넘어설 지경에 이르렀다. “묘책을 찾아 해결책을 내놔야 하고, 또 해결책을 내놔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매일 밤낮으로 일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머스크는 말한다. 그는 체중이 많이 늘었다가 갑자기 다 빠지고 추가로 더 빠졌다. 자세는 구부정해졌고, 걸을 때는 발가락이 뻣뻣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활력이 솟구쳤고 집중력이 고도로 높아졌다. 교수형 올가미가 눈앞에 아른거리며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자극했기 때문이다. 머스크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반드시 한 가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8년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머스크는 스페이스X와 테슬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았다. 점점 줄어드는 자원을 한 곳에 집중하면, 그 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원을 계속 분산시키면 둘 다 살아남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느 날 그의 열정적인 소울메이트 마크 준코사가 스페이스X의 칸막이 방에 들어섰다. “저기요, 둘 중 하나는 포기하는 쪽으로 가는 게 어때요?” 그가 물었다. “스페이스X에 더 애착이 가면 테슬라는 버리자고요.” “안 돼. 그러면 ‘전기차는 안 된다’라는 푯말에 또 한 줄이 추가될 것이고, 우리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에 도달할 수 없을 거야.” 머스크가 답했다. 그렇다고 스페이스X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 우리는 영영 다행성종이 될 수 없을지도 몰라.” 더 많은 사람이 선택을 강요할수록 그는 더욱 저항했다. “나는 감정적으로 두 명의 아이가 있고 식량은 부족한 상황에 놓인 것 같았어요. 두 아이에게 식량을 절반씩 나눠주면 두 아이 모두 죽을 수도 있고, 한 아이에게 음식을 몰아주면 적어도 그 아이는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죠. 하지만 내가 과연 내 아이 중 한 명은 죽게 놔두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그래서 나는 둘 다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했지요.”
#책 #일론머스크
2025-07-05 ⋯ 파인만 공부법
정전기학에 관한 내용처럼 어려운 부분을 만나면 저만의 요령이 하나 있었습니다. 뭐냐면 처음 두세 문단이 이해가 안 되더라도 내용 전체를 읽어요. 처음에는 전체를 흐릿하게 이해하지만 다시 읽으면 조금 나아지고 계속 그러다 보면 전부 이해가 되지요(예외도 있는데 그건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그다음 책에다 요점을 적어놓으면 완성됩니다. 가령 타원형 축전기의 정전용량 계산 같은 건 건너뛰는데, 내용 전체를 읽어보면 그런 기능이나 복잡한 계산은 뒤에 다시 나오지 않는 지엽적인 사안임을
이미 알기 때문이지요. 복잡한 책들을 많이 읽다 보니, 배워야 할 핵심 부분과 응용이나 지엽적인 부분(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과는 무관한 부분)을 본능적으로 구분할 줄 알게 되었어요. 이런 독창적인 방법 덕분에, 책에서 흥미로운 주제가 무언지를 늘 스스로 간파해냈죠. 하지만 미적분은 달랐습니다. 저로서는 이해불가였어요! “네가 공부를 많이 했으니 내가 오랫동안 잘 이해를 못했던 문제가 있는데, 네가 설명해주면 좋겠구나.” 제가 그러겠다니까, 아버지는 말을 이었습니다. “원자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이할 때 광자라는 빛 입자를 방출한다고 알고 있다.” 저는 맞는 말씀이라고 했지요. 아버지는 다시 말씀하길, “그럼 원자에는 미리 광자가 있다가 나오는 거니? 아니면 원자에 처음엔 광자가 없는 거니?” 저는 광자의 개수는 보존되지 않고 전자의 운동에 의해 생겨난다는 걸 설명해드렸습니다. 설명이 잘 되진 않았어요. 내가 내는 소리가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는 식으로 설명했지요. 어린애가 ‘낱말 가방’에 낱말이 바닥나서 더는 어떤 낱말, 가령 ‘고양이’를 말하지 못하는 상황과는 다릅니다. 원자에는 그런 낱말 가방 같은 ‘광자 가방’이 없습니다. 더는 잘 설명하기 어려웠지요. 아버지는 당신께서 이해하지 못하는 걸 제가 설명하지 못한다며 아쉬워하시더군요. 아버지가 실패한 셈이죠. 그런 걸 알아내라고 아들을 그 잘난 대학에 보내놨더니만, 알아내질 못했으니! 로스알라모스에 가서 유명한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과학자들을 만나서 정말 기뻤어요. 로스알라모스는 매우 민주적이었어요. 오펜하이머의 연구실에서 열리는 회의에선 누구든 아무에게나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거든요. 자기 위치를 알아야 하는 위계질서와는 거리가 멀었죠. 매우 훌륭한 조직이었어요. 새로운 환경에서 그처럼 많은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은 일찍이 없었는데도, 그 분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그 많은 사람을 로스알라모스로 모아 놓았을 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비밀을 어떻게 지킬지 등등 그 거대한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또한 세부사항에도 신경을 썼으니까요. 가령, 저를 부르기에 아내가 결핵 환자라고 말했더니 아내를 잘 돌봐줄 병원을 직접 찾아줬어요. 로스알라모스에 모인 사람이 아주 많았는데도, 그는 늘 그런 식이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을 챙겼죠. 또한 매우 깊이가 있었습니다. 누가 무슨 연구를 하든 훤히 꿰뚫고 있었어요. 그러니 무엇이든 전문적인 논의를 함께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요약해서 결론을 내리는 데도 뛰어났죠. 우리는 그의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멋진 사람이었어요. 윤리 문제라면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원래 이유, 즉 독일의 위협을 막겠다는 이유에서 저는 이 시스템을 개발하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프린스턴에서, 이어서 로스알라모스에서 폭탄 제조에 뛰어들었죠. 폭탄을 재설계하려는(원한다면 ‘더 나쁜’ 폭탄을 만들려는) 온갖 시도도 했는데, 우리는 늘 그게 실현되는지 보려고 연구했습니다. 전부 힘을 합쳐 무척 열심히 참여한 프로젝트였는데, 다른 여느 프로젝트처럼 추진하기로 한 이상 성공하기 위해 계속 노력했어요. 그런데 제가 비윤리적이었던 건 처음 시작했던 이유를 그만 잊었던 거예요. 독일이 패망해서 이유가 바뀌었는데도 그 일을 왜 계속해야 하는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전 그냥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시겠어요? 거기서 교훈을 하나 얻었습니다. 어떤 걸 하는 이유를 계속 되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상황이 바뀔 수 있으니까요. 미국의 베트남 전쟁도 윤리적 실수의 마찬가지 사례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이유가 옳았던 그르던 전쟁이 진행되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해요. 원래 목적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저의 윤리적 약점이었습니다. *현시대의 엄청난 곤경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감을 느끼십니까? 인류 전체를 여러 번 멸망시킬 수 있는 폭발물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입니다.*
저로서는 어떤 걸 느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올바른 질문인 것 같습니다. 느낌은 어떤 행동을 시작하기 위해 중요하긴 합니다. “이렇게 느끼니까 이러저러하게 해야 한다.”고 우린 여기니까요. 하지만 저는 지난날을 후회하면서 고민하진 않아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죠. 선한 의도로 많은 일을 했지만 지옥에 간 사람한테 윤리적 책임감을 느끼는지 물으면 어떻게 답할까요? 글쎄요, 각 단계마다 그는 옳은 일을 한다고 여겼을 겁니다. 인간이 불행해지는 건 무지와 이해의 부족이에요. 심각한 문제인데, 인간사에서 아주 흔한 일이고요. 저라고 남달리 그걸 더 깊게 이해하고 있지도 않아요. 한 가지 잘못한 게 있다면 앞서 말했듯이 제가 독일이 패망했을 때 다시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겁니다. 설령 다시 생각했더라도 어떤 결론을 내렸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다시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는 옳지 않았어요. *대부분 젊은 시절이지 않았나요?*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가 스물넷이었고 떠날 때는 스물여덟이었습니다. 출처 책 리처드 파인만
#책 #리처드파인만
2025-07-04 ⋯ 나눔과 버팀
짧고 평범한 인생이지만 그래도 살면서 한 가지 명확해진 사실이 있다. 인생은 그야말로 운의 상승과 하락의 반복이라는 점이다. 언뜻 보면, 모든 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선택에 달려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떤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것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반대로 마치 모든 일이 잘될 운명인 듯 일이 술술 풀리기도 한다.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이 잘 풀리는 운의 상승기에 있을 때야말로 주위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모든 것이 잘 풀리는 순간, 흔히 사람들은 자신만의 성과와 행복에 집중하기 쉽다. 자만하기도 쉽다. 정상에 오르면 기분이 좋고,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게 된다. 하지만 이제 곧 내려가야 할 준비를 해야 되는 때이기도 하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주위를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혼자 잘나가는 것에 몰두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정상에서 여유를 즐기는 시간조차 단축시킨다. 정상에서의 여유를 즐기고 싶을수록 주위에 베풀고 잘해야 한다. 내가 상승세에 있을 대 주변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잘해 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들에게 나의 행복과 성과를 나누고, 작은 도움이라도 손을 내밀어 주는 것. 이렇게 베푸는 태도는 결국 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쌓이기 시작하고, 이들은 내가 내리막길을 걸을 때 중요한 안전망 역할을 해 주기도 한다. 운이 하락하는 시기에 있을 때, 힘들고 고독한 그 순간에 나를 도와줄 사람들은 결국 내가 상승세에 있을 때 베풀고 쌓아 온 관계들이다. 내가 잘나갈 때 쌓아 둔 선의와 나눔이 운이 하락하는 시기에서의 나를 지탱해 준다. 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격려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 순간이 오면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상승세가 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나의 좋은 에너지를 나누고, 내가 가진 것을 베풀고자 한다. 이들이 결국 내 인생의 굴곡을 함께 견뎌 줄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생에서 운의 상승기를 맞이할 때 베풀면서도 내게 주어진 성과와 행복 그 모든 것을 만끽할 필요가 있다. 그저 해야 할 일들만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베풀고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해서도 그 순간의 기쁨을 진정으로 느끼고 내 삶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 운의 상승기에서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것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운의 하락기를 견딜 수 있는 내적 에너지를 충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상승에 있을 때는 그 에너지를 아낌없이 만끽하고, 주위에 베풀고 하고 싶은 일, 해 보지 못했던 일들에 도전하며 경험을 쌓는다. 여유가 있을 때 다양한 활동을 해 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순간들이 쌓여 힘든 시간의 나에게 큰 도움을 준다. 반대로, 하락세에 접어들 때는 행동을 다르게 해야 한다. 이때는 오히려 내 삶을 잠시 걸어 잠그고, 해야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반드시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하면서,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고 상황을 극복해 나간다. 이 내리막길을 견디는 동안 내가 필요한 것은 꾸준함과 인내다.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면서 나의 기본적인 일상에 충실하는 것. 그렇게 인생의 굴곡을 견디다 보면 어느새 다시 상승세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처럼 인생의 상승과 하락은 단순히 나를 흔드는 상황이 아니라, 나에게 인생의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상승세가 오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나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하락세가 찾아올 때는 그때를 지탱해 줄 내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담담하게 그 시간을 견뎌 내며 다시 한번 상승의 때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반복되는 이 굴곡 속에서 계속해서 성장하는 법, 나누는 법, 버티는 법을 배워 나갈 것이다. 결국, 인생의 굴곡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내가 꼭대기에 있을 때 나의 기쁨을 나누며 누군가를 돕고, 또 내가 밑바닥에 있을 때는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돕고 사는 것이 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인생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다. 혼자 모든 것을 이겨 내는 것이 아니라, 이 굴곡 속에서 함께 성장하고 서로의 의지가 되는 존재들을 곁에 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살아가는 나만의 방식이자, 인생의 깊이를 더해 주는 삶의 지혜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굴곡 속에서 더 많은 지혜를 배우고자 한다. 실패의 가능성에 직면할 때마다 나는 불안감을 느꼈고 그래서인지 나의 도전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실패하지 않을 것'에 한정되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열심히 하는 사람', '똑똑하게 계획한 목표를 이루는 사람'으로 보였겠지만, 사실 나는 언제나 내가 잘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움직였고, 그 한계를 넘는 도전에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무모하게 도전하다 실패한다면, 내가 쌓아 온 이미지나 성과가 모두 무너질 것 같았고, 그런 생각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내 약한 멘탈은 나를 독하게 만들었다. 독한 게 강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겉으로는 늘 강해 보이려고 노력했고, 목표에 집착하면서도 철저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겉모습이 나의 진정한 모습이라면 좋았겠지만, 사실 그 속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스로 멘탈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려는 강박에 시달렸다. 스스로를 약하다고 인정하지 않는 대신, 나는 강해지려고 더 독하게, 더 완벽하게 살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 강박은 나를 점점 더 약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느끼는 불안정, 불확실성,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난관들 속에서 나는 더 이상 강한 척할 수가 없었다. 이미 수많은 아픔을 겪고 이직한 후에는 더 이상 내가 완벽한 사람, 강한 사람으로 보일 필요도 없었고,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타의적으로 일종의 자유가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는 기존의 강박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내 내면의 불안을 누군가에게 숨길 필요가 없었지만, 그 불안과 무기력감을 감당하는 것 역시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몫이 되었다. 나는 멘탈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약한 나 자신을 감싸안아야 한다는 것을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약한 멘탈을 인정한 후에야 비로소 나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전까지 나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실패할 때도, 불안할 때도, 그것이 내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강해지기 위해 무리할 필요가 없었고, 스스로의 감정과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오히려 나의 내면이 더욱 강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약함은 내가 극복해야 할 결점이 아니라, 나를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멘탈이 약한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유연하고, 더 인간적이며, 더 회복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나의 약한 멘탈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 도구가 되었다. 나는 가끔 인생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저자이자 독자인 책 말이다. 개인의 삶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는 세상에 오직 한 권뿐인 책 말이다. 내가 내 삶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이 책은 매일이 매 문장이 다르게 쓰인다. 나의 행동, 마음가짐, 주위 환경에 따라 이 책은 몇 년이 지나도 한 줄도 쓰이지 않을 수도 있고, 하루에 몇 페이지도 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내가 공직에서 보낸 4년 동안 내 인생이란 책은 단 한 문단도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내면이 단단해지고 깨달음이 있긴 했지만 내게는 분명한 아픔과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은 내 인생이란 책에 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의식중에도 담기지 않았다. 실제로 그때를 돌이켜보면 일상이나 어떠한 사건들이 명확하게 기억나는 경우가 잘 없다. 그냥 그날이 그날 같고 공무원 시절이라는 단어 하나로 통칭되어 기억이 난다. 세부적으로 빛나고 이야기가 꽃피는 기억이나 추억이 아니다. 나는 시간의 밀도가 다르다는 것이 무엇인지 체감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내 인생의 밀도를 높게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항상 바랄 것이다. 내 하루는 언제나 충실한 하루였으면 한다. 그렇게 매일매일 내 인생이란 책이 충실하게 써내려져 갔으면 한다. 물론 매일이 이럴 수는 없다. 기억에 남지 않는 하루를 보낼 수도 있고, 지워 버리고 싶은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오늘은 책이 쓰이지 않고 쉬어 가야 하는 날일 수도 있다. 현실이 그러하고 인생이란 것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현실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방향성만이라도 이와 같이 가져가고 싶다는 말이다. 그렇게 나중에 시간이 지나 내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최선을 다해 써 내려간 내 책을 읽으며 흐뭇하게 웃음 짓고 싶다. 남이 보기엔 비루해 보일지라도 스스로 최선을 다해 써 내려간, 세상에 하나뿐인 빛바랜 책을 보면서 말이다. 후기 내가최근에 나자신한테한질문이 전부 2부 제목에 들어가있어서 뭔가웃겼고 운명같았던 독서였다 ㅎㅎ 출처 책 5급 사무관을 때려치우다
#책 #5급사무관을때려치우다
2025-07-03 ⋯ 비정상성, 궤도의 이탈과 행복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보면 어떠한 생각이 드는가? 너무 닳고 닳은 질문이면서 질문 자체가 명확할 수 없는 난제다. 사실 행복한 순간에는 이 질문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불만 없고 행복한데 저런 쓰잘머리 없는 질문이 떠오를 이유가 없다. 저 질문이 떠올랐다는 건 애초에 지금 행복하지 않고 불만이 많은 것이다. 사실 이 답도 없는 질문은 평생 죽을 때까지 내 곁에 있을 것 같다. 답을 쉽게 내릴 수도 답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질문이라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행복은 사랑인가, 만족인가, 감사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건가, 불편함이 없는 상태인가, 건강인가, 인정받음인가. 수많은 답과 의견들이 있지만 무엇 하나 맞는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완전히 틀렸다고도 느껴지지 않는다. 맞지만 맞지 않는 그 찝찝함도 사실 이 질문을 다루기 싫은 이유 중에 하나다. 모두가 의견이 다르니까 엄청난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기 딱 좋은 질문이다. 나는 행복을 ‘삶의 자각’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하다’라는 말은 ‘삶을 자각하고 있다’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불행하다’라는 말은 ‘삶을 자각하고 있지 못하다’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무의미한 삶이지만 우리는 가끔 어느 순간에 삶을 살고 있다고 자각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양감과 흥분에 휩싸인다. 나는 이것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할 때,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할 때, 시험에서 붙었을 때, 고민하던 문제가 풀렸을 때, 운동이 잘되었을 때 등 삶의 다양한 순간에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한다. ‘아, 이게 사는 거지’, ‘크, 살맛 난다’와 같은 순간이 이런 순간 중 하나다. 이렇게 스스로 무의미한 삶 속에서 삶을 살고 있다고 자각할 때 느끼는 감정을 우리는 행복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쁘진않은데 납득안되는 부분도 있다. 일단 '삶을 자각한다'라는건 삶을 계속 살고싶다 혹은 삶을 이제 그만 살고싶다 같이 삶의 존재여부를 신경쓰게되면서 존폐여부를 생각하게되는게 '삶을 자각'하는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측면에서 보면 '행복'과 '불행'이 존재하는 차원 자체가 갖는 특성이 '삶에 대한 자각'이 아닐까 싶음. 난 오히려 '너무 행복해서 평생 이렇게 살고싶다'라는 기분보다는 '너무 불행해서 삶이 무겁고 귀찮아 그만살고샆다'가, 동일선상에서 부호만 반대라고 치면 절댓값은 오히려 후자쪽이 더 컸어서... 정리하자면 삶을 자각하는게 행복이라고 했는데 난 오히려 삶을 자각, 즉 생각없이살다가 삶을 유지하고싶은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이 드는 시점은 행복할때보다 불행할때가 더 잦고 그 강도도 셌어서 그게 행복의 정의는 못될거같음. 그렇지만 삶을 자각한다는게 행복과 불행이 존재하는 차원이 갖는 특성은 맞는거같다! 평소엔 삶을 유지하고싶다 아니다 이런생각을 안하는데 행복할때랑 불행할때만 드는건 맞으니깐. 합격 후 모든 것이 새로워지면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의 본질은 여전히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는 내향적 성격이지만, 이 기간 동안만큼은 외향적인 사람처럼 행동해 보고자 했다. 나는 마치 사회적 실험을 하는 사람처럼,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먼저 다가가 인사도 하고, 작은 농담도 던지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 결과로 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언제나 조용하고 분석적인 사람으로만 보았던 사람들이 나를 에너제틱하고 밝은 사람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MBTI로 설명하자면 INTJ인 내가 ENFJ라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 이때 나는 모종의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사람들에게 이런 이미지로 다가갈 수도 있구나 하는 점에서였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느낀 것은, 내 외형이 바뀐다고 해서 내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겉모습만 바꾸는 것이 이렇게 큰 스트레스를 유발할 줄은 몰랐다. 하루 종일 사람들과 어울리며 웃고 떠드는 것 자체가 내게는 고역이었다. 나는 사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시간을 보내며 책을 읽거나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나와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 자체가 큰 에너지 소모를 불러일으켰다. 내 안에서 쌓여 가는 피로는 매일매일 조금씩 더 커졌다. 처음에는 내가 잘해 낼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나도 남들처럼 어울릴 수 있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분위기를 맞추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실제로 능력은 가득했으나 내가 그 행동을 하는 것이 힘들고 싫은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런 모순된 내 모습을 느낄 때면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왜 나는 이토록 나 자신을 바꾸고 싶은 걸까?” 사실 나는 내가 내향적이라고 자각했지만 앞으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대되는 면도 필요하다고 느껴서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러니 가능한 한도까지는 이러한 실험을 계속해서 내 능력과 실제 모습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나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처럼 이 사회적 활동들을 강행했다. 아니, 다르게 표현하면 그냥 스스로를 실험체로 쓰는 미친 과학자였다. 내가 싫어했던 단체 친목에 뛰어들고, 어색한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높여 가며 사람들과 섞여 보려 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즐겁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증명해야 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있어서 내게 필요한 능력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스스로 내성적이라 판단했던 나의 성격이 진짜인지, 혹은 그 동안 그냥 그렇게 알고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이런사람이 또있네 .. 난내가너무뒤틀린줄알았는데 아니 뒤틀렷다해도 암튼 related study가있네 찾으니까 맘좀편해짐 그러나 이러한 끔찍한 사회실험 끝에 남은 것은 공허함뿐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들어와 혼자 있을 때마다, 나는 끊임없는 소모감과 함께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열심히 사람들과 어울리고 떠들면서 에너지를 쏟아붓고 난 뒤, 나에게 남은 것은 텅 빈 공허함뿐이었다. 더불어 내 진정한 자리, 나의 본모습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민과 실험의 시간을 약 1년 반 동안 지속하고 나서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나는 미래에 필요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충분히 사람들과 어울리고 재미있게 잘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지속할 수는 없다. 그리고 스스로를 소모하면서까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필요는 없다. 나와 맞지 않는 환경에서 억지로 행동하려 하는 것은 결국 나를 지치게 만들고, 내 안의 평온을 깨뜨리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필요한 능력이지만 결국 내가 힘들고 불행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게 유예 기간 동안 나와 맞지 않는 ‘새로운 나’를 시도해 본 결과, 나는 더욱 확실하게 내 본래의 성격과 에너지를 알게 되었다. 나를 숨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나다운 모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능력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그것이 나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시켜 나를 방황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나는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그저 내 모습대로, 내 속도대로, 내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나를 더욱 온전하게 만들어 주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알던 세상은 명확했다. 아니, 세상은 명확해야만 했다.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틀렸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 사회에는 그 중간 지대가 너무나 많았고, 흑백으로 구분할 수 없는 수많은 회색 지대가 있었다. 아니, 전부 회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이때부터 나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인생은 내 시뮬레이션대로 흘러가는 곳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나는 부족하다. 이런 삶 속에서 확실한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던 나의 신중함은 나에게 독이었다 나는 이런 사고방식을 벗어던져 나가고 있다. 나는 이제는 행동이 말을 앞서도록 하고 싶다. 언행일치가 아니고 아예 행동이 말을 앞서 나가고 싶다.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보다 먼저 발을 움직이고, 상황에 부딪히며 스스로를 발견해 가고 싶다. 이론적 완벽함을 추구하던 나에서 벗어나, 불완전한 상태로라도 나아가며 내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다. 행동이 앞선다고 해서 무모하게 덤비겠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행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 또한 깨달았기 때문이다. 행동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계획을 세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그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나는 이제 생각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실제 상황에 맞게 변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능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내가 구축한 이론과 분석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고자 한다. 행동을 앞세운 삶은 나에게 불편하고 불안한 부분이 많겠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생각과 말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행동으로 직접 경험하면서 쌓여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일단 해 보고, 그 속에서 배워 가자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잘못된 선택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행동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 소중한 의미를 줄 것임을 믿는다. 삶이 계획대로 된다면 계획이 맞았음에 행복을 느끼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예상치 못한 것들에 설렘과 행복을 느끼면 된다. 그러나 보통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말을 알고 있는 책이나 영화는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가. 살아가며 내가 특별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사회에 나가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점점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었고, 스스로 느끼기에도 낯설고 당황스러운 깨달음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특별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이 꼭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무언가 나쁜 뜻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망므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그 다름을 숨기고, 사람들에게 맞추며, 스스로를 '더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스스로를 속이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나를 힘들게 만들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 사는 것이 정상적이고 그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나의 진짜 모습을 숨겨야 한다면 나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다. cf *행복과 불행은 궤도의 이탈이다. 행복, 불행같은 추상적인 척도 대신에 재산, 사회적지위, 친구수, 자기관리 등 현실적인 수많은 수치들을 종합해봤을때 나에게 적절하다고 이미 정의된 수치가 있다고 가정하고. 특정 피쳐에서 그 최대/최소치를 넘어가면 갑자기 삶을 자각하게 되는것이다. 삶을 자각하지 않고 평생 살고 싶다거나 그만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게 생명체의 본질값인데 인간이 너무 지능이 높아서 한번씩 자기가 행동하고 사고함으로써 본인의 한도를 넘어가는 일이 생기고 생명체의 본질에 어긋나는 생각을 할때마다(너무큰만족, 너무큰불행) 즉 생명체로서 응당 지켜야할 궤도에서 이탈함에 따라 갑자기 삶을 자각한다 라는 오류가 발생하게 되는것임. 개나 고양이는 자살하지 않는다. 근데 인간만큼 행복하지도 않을것이다. 몇몇 매체에서 극단적인상황에 자살하는 침팬지나 돌고래 같은 사례가 나오는데? << 이 말에서 이미 인간이기 이전에 생명체로서 극도의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게 왜 오류인지를 알수있음. 사람들이 흔히 정상이라고 여기는 기준에서 벗어나니, 오히려 편안해졌다. 더이상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나를 억누르지 않아도 되었고, 내가 느끼는 감정에 솔직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비정상성은 사실 내가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남들과 똑같이 살지 않는다는 것, 남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느나는 것이 나를 진정한 나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으며, 스스로 세운 나만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고자 한다. 내가 비정상이라는 사실은 오히려 나의 고유함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요소였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정상, 비정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나댭냐 나답지 않냐가 있을 뿐이다. 나는 정상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비정상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상관없다. 나는 그냥 나이기 때문에 괜찮다. 출처 책 5급 사무관을 때려치우다
#책 #5급사무관을때려치우다
2025-07-02 ⋯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다는 두려움
이직을 고민할 때마다 내 머릿속을 짓눌렀던 의문이 하나 있었다. “내가 이 일을 그만두고 아예 새로운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비슷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직을 생각하며 내가 겪어 본 다양한 경험과 그로부터 얻은 깨달음은 나의 두려움을 조금씩 덜어 주었다. 나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조금씩 알아차렸다. 세상에서 완벽하게 돌아가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속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준비보다는 오히려 부딪히며 배우고 적응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처음에는 내게 익숙하지 않은 일을 맡으며 큰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되었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사실 완벽히 준비된 인재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일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고, 그 과정에서 성실하게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내가 이직을 결심하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였다. 세상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능성도 열어 주었다. 내가 가진 것은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발전 가능성'이었다. 이를 깨달으니 비로소 나는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 내가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다는 두려움은 결국 '완벽주의'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나는 내가 완벽히 준비된 상태에서 일을 시작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일을 하면서 필요한 부분들을 조금씩 배워 나가고 스스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이직에 대한 결심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전까지는 내가 모든 것을 갖추어야 이직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 상태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사라졌다. 이 역시 내가 이직을 결심하게 된 큰 계기 중 하나였다. 실제로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주어야 하는 건 자책이 아니라 격려였다.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그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고, 앞으로 조금씩 배우며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만 있다면 계속 도전할 수 있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매일 노력하고 성장하려는 사람에게는 길이 열린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출처 책 5급 사무관을 때려치우다
#책 #5급사무관을때려치우다
2025-07-01 ⋯ 지키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난 그냥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 이동했을 뿐이다. 내 주관적인 적성 그 외에는 어떠한 의미 부여도 가치 판단도 하고 싶지 않다. 이직을 고민하면서 가장 핵심으로 생각한 질문은 이것이다. ‘내 인생에서 직장과 관련하여 단 하나를 잡는다면 무엇을 잡을 것이냐?’ 돈인가, 명예인가, 여유인가, 전문성인가, 꿈인가. 난 신이 아니기에 일을 하면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 돈도 명예도 여유도 전문성도 꿈도 모든 것을 갖고 싶지만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당연히 무엇인가는 놓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잡지도 못하면서 돈도 명예도 시간도 안정성도 이것저것 다 가져가려고 억지로 잡고 버티다가 고통받고 넘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정말 여유가 없고 힘들고 생존이 위기인 상황이라도 일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인문계를 가긴 싫고 영어를 못하니 외고는 못 가고 과고를 목표로 준비했는데 운이 좋아서 붙었다. 아니, 그만큼 간절하기도 했다. 과학이 하고 싶어서라는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아닌 ‘인문계 가기 싫다’라는 현실적이고 쫓기는 압박이었기 때문에 그런 단기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목숨이 걸려 있을 때 기적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하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학교도 가지 않고 하루에 3시간씩만 자면서 공부했던 이 단기적 성공의 경험은 내 인생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큰 독으로 작용하게 된다. *사람은 좋아하는걸 쫓아갈때보다 끔찍한것에서부터 도망칠때 제일 강해지는것같다고 느꼈는데 이사람두 그렇게 적었네.. 실제 대학교 입시 때가 되니 꿈과 희망이 없이 자라 온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다들 직업적 꿈을 따라 목표를 따라 자기소개서 쓰고 스펙을 쌓고 가고 싶은 과를 넣는데, 나는 이러한 것들이 아무것도 없었다. 진로와 적성과 관련해서 꿈도 희망도 없는 나는 대학이 원하는 인재가 아니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는 입시에서 실패와 고통을 겪고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휴학은 예상치도 못하게 1년 반으로 늘어났고, 인생을 허비하고 있단 생각에 군대조차 못 가는 병신이란 생각에 내 자존감을 바닥을 기었다. 친구들은 이미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헌혈을 해서 가산점을 받고 나서야 14년 6월에 입대를 할 수 있었다. 당시의 나는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 조급했다. 군대에서 빨리 나약한 정신머리를 고치고 내 길을 찾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하였고, 글씨체 연습도 하고, 독서도 다시 열심히 하면서 내 모든 것을 갈아엎었다. 그러나 결국은 또다시 선택에 있어서 비겁한 선택을 하고 말았다. 생각의 시작부터가 너무 현실적이었고 어떻게 보면 비겁했다.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것 그리고 한 방에 끝날 수 있는 것을 선택하자. 하지만 그 당시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경험이 부족했다 생각한다. 내 인생 자체가 저렇게 살아왔으니까.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노력만큼 투자해서 성과를 내 왔으니까. 그렇게만 목표를 잡아 왔고 그러한 성공의 맛만 봤으니까. 이번에도 그러고 싶었다. 계속해서 꾸준하게 하는 것이 아닌 한 방! 한 번만 또 열심히 올인해서 끝내고 싶었다. 이 진로의 고민을 아니 앞으로의 인생의 고민을…. 그 결과 정말 나에게 어울리는 고시를 보기로 결심했다. 내 학창 시절을 곁에서 접한 사람이면 모두가 이해 못 할 결정이었다.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 생활에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그런 적성과 관련한 문제는 뒤로 밀어 두었다. 내가 노력하면 고시는 붙을 것 같으니까. 대한민국에서 공부로 인생 역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들었으니까. 앞서가는 친구들을 따라잡을 유일한 방법이니까. 비싼 로스쿨 등록금, 의전 등록금 없이도 빠르게 사회적 계급을 얻을 수 있으니까. 붙으면 안 잘리고 연금도 나온다니까. 공부는 자신 있었고 공무원이 어떤 직업인지는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사무관이 뭔지도 모르고 공무원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닌 합격자가 되고 싶은 괴상한 고시생이 탄생했다. 지금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한심해서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다. 아니, 그 수준을 넘어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앞으로 평생을 할 직업인데, 무슨 일을 하는지, 생활은 어떠한지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그냥 공부가 할 만하니까 결정한 상황. 그런데 슬프게도 한 번 더 생각하니 어이가 없지 않고 너무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나는 학교에서 자라면서 한 번도 내 적성에 관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거나 멘토링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시험기간이라서 공부하고, 고등학교 가야 해서 공부하고, 대학교 가야 해서 공부했을 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도 직장을 얻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그럼 공부를 할 만한 직장을 택한 것뿐이다. 너무나도 합리적이고 너무나도 이성적이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떠한 성향이 옳고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 이 단체는 이러한 성향이었는데 나는 그와 다른 성향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실제로 현실에서 누군가는 직장에 잘 다니고 누군가는 힘들어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사람의 성향이 그만큼 다양하고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각 조직마다 메인 특성이 존재하고 이와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무언가 맞지 않아 직장을 다니는 데 고통을 느끼기 마련이다. 연수원 입교 전 맞지 않는 점을 말하며, 나열한 특징들이 모두 연수원 입교 후 공무원이라는 단체가 되면서 엄청나게 더 강해졌다. 분명 300명이 넘는 동기들은 각양각색의 특색을 지니고 있을 테고 일부가 저러한 거지 전부 저러한 것이 아닐 텐데 왜 더 강해지고 그쪽으로 극단적으로 발달했을까.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으며 눈치를 많이 보고 이미지 관리를 중요시한다’, ‘관습과 규칙을 중요시하고 의문 없이 일단 따른다’ 이 두 가지 특성 때문이다. 공무원이라는 단체가 되니 개인의 색깔이 더욱 지워지고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단체의 특성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와 맞지 않는 단체의 특성을 받아들일 만한 성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힘들었다. 밖에서 1대1로 만났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적절한 관계가 형성되었을 수도 있는 사이이지만 연수원에서 ‘나’와 ‘공무원 집단’으로 만나게 되니 그 누구와도 친해지기가 힘들었다. 그러한 의심마저 들었다. 지금 친한 사람들도 만약 연수원에서 만나게 되었어도 친해졌을까. 이러한 상황에 대해 그래프로 설명을 드리는 게 편할 것 같다. 사람의 성향을 나타내는 가상의 X축 그래프를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자. 나는 좌측 끝단에 있는 사람이다. 내가 연수원 입교 전에 만난 사람들은 그래프의 중앙 정도에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와 놀아 주느라 내가 있는 좌측으로 더욱 다가왔었을 것이다. 그들의 성향은 어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느 정도 물론 중앙 쪽으로 다가갔다. 그렇기에 친해질 수 있었고 큰 고통은 없었다. 하지만 공직이란 단체에 들어가게 되었고 단체의 특성은 우측 끝단에 존재했다. 중앙에 있던 사람조차 모두 우측으로 흡수가 되었다. 그리고 집단이기에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좌측 끝단에 있기에 집단과 나는 이제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연수원 때 있던 재밌는 일화도 있다. 연수원 중 우즈베키스탄으로 해외 연수를 간 적이 있다. 당시 심정은 국외추방 당하는 기분이었다. 맞지 않는 조원들과 10일간 해외에서 같이 생활해야 한다니 너무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실제로 스트레스로 현지에서 장염에 걸려 고열과 설사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아무튼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해서 현지 유적지를 탐방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무리와 떨어져 있었고, 혼자 구경하다가 나무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곳에서 일하시는 현지인 3분 정도가 내 주위로 다가와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도 그분들도 짧은 영어로 겨우겨우 의사소통을 했지만 너무나도 즐거웠고, 서로 소리 내며 웃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조원 중에 기존부터 친하던 친구가 ‘영어 잘하나 보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친해지냐? 넌 참 신기하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같은 언어를 써도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이렇게 마음속으로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 것이다. ‘사람의 성향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구나’라고 더더욱 체감한 순간이었다. *진짜외로웠을듯 글만봣는데도 느껴짐 .. 아직까지 나는 속으로 ‘그냥 적당히 일하고 안정적으로 살면 되겠지’, ‘뭐 내가 언제나 여러 사람하고 친하게 지냈나. 대학 때도 친구 없었는데 혼자 잘 지내면 되지’ 하고 있었다. 스스로 외로움을 타지 않고 혼자서 잘 놀고 또 놀면서 잘 살 수 있을 거라 너무 편하게 생각했다. 진짜 외로움이 얼마나 힘든지 몰랐고 나 스스로의 적성과 욕망을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정이란 '변하지 않음'에서 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매력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처음에는 변하지 않는 일상, 변하지 않는 수입, 변하지 않는 직책 속에서 위안을 얻으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진정한 안정이란 단지 외부 조건이 바뀌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나 스스로를 지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임을.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것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이 없이는 진정한 안정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왜 안정적 조건이 나를 불안하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지 점차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안정과 불안정을 고민하던 중, 나는 한 문구가 떠올랐다.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그 문장은 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키고,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더 큰 변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것이 내가 공직을 떠나기로 한 이유 중 하나였다. 안정된 환경 속에서 나를 정체시키기 보다는, 불안정한 도전 속에서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 훨씬 나답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게 나에게 있어 진정한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 불안정이란, 세상과 비교해 변화할 수 없어 뒤처지는 그 상태였고, 반대로 나에게 있어 안정이란 끊임없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성장할 수 있는 상태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나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부담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나만의 안정감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나에게 안정이란 이제 정해진 조건이나 자리가 아니다. 나의 가치관과 성장, 그리고 나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도전이 안정의 또 다른 형태임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이 변해도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힘, 그것이 내가 찾은 새로운 안정이었다. 출처 책 5급 사무관을 때려치우다
#책 #5급사무관을때려치우다
2025-04-21 ⋯ 목표를 이루는 확실한 방법
오늘의 세상 모습이 어떻든, 무엇이 당연해 보이든, 내일이 되면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작은 우연 때문에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다. 돈과 마찬가지로 사건도 복리 효과를 낸다. 그리고 복리 효과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미약하게 시작된 뭔가가 나중에 얼마나 거대해질 수 있는지를 처음에는 직관적으로 느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정보로 넘쳐난다. 사람들은 그 모든 정보를 꼼꼼하고 차분하게 살펴보면서 가장 합리적의고 옳은 답을 찾기 어렵다. 완벽한 세상에서라면 정보의 중요성이 그 정보 전달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은 쉽게 지루함을 느끼고, 인내심이 부족하며, 감정에 쉽게 지배당하고, 복잡한 정보가 마치 스토리의 한 장면처럼 이해하기 쉬워지기를 원한다. 비극은 우리에게 고통과 괴로움, 충격, 슬픔, 혐오감을 안겨 준다. 그러나 마법 같은 변화를 초래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똑같은 지적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라도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잠재적 발휘 수준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가장 큰 혁신이 일어나는 것은 대개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 상황, 해결책 발견에 미래가 달려 있어서 빨리 행동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끼는 상황이다. 쇼퍼파이 창립자 토비 뤼트게는 말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아무 문제가 없을 때는 진정한 회복력을 키울 수 없다." 나심 탈레브는 말했다. "역경에 과잉 반응할 때 분출되는 엄청난 에너지가 혁신을 만들어낸다." 고통은 평화와 달리 우리의 집중력을 발휘시킨다. 늑장과 망설임을 허용하지 않는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우리의 턱밑에 들이밀어 당장 그리고 모든 역량을 동원해 해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모든 측면'에서 완벽하도록 진화하는 종은 없다. 하나의 능력이나 특성이 완벽해지면 결국 생존에 필수적인 다른 능력이나 특성을 잃기 때문이다. 진화 논리는 자연 세계의 모든 종이 완벽하지는 않되 생존에 필요한 적당한 수준의 특성들을 갖게 만들어놓았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일이 될 수 있다.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는 "훌륭한 연구 성과를 내는 비결은 항상 조금씩 덜 일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창의력을 발휘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공원을 거닐거나 소파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빈둥거리는 시간이 대단히 중요할 수 있다. 알베르토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간을 내서 해변을 오래 산책한다.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다. 연구가 풀리지 않을 때는 방 안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응시하면서 머릿속 상태를 마음속에 시각적으로 그려본다." 찰리 멍거는 워런 버핏의 성공 비결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그는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그저 휴식을 취하며 책을 읽는 데 보냅니다." 버핏은 생각할 시간이 무척 많았다. 나심 탈레브는 "나는 성공의 유일한 지표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정확성을 추구하면 할수록 큰 그림을 보여주는 원칙에 집중할 시간이 줄어든다. 정확성보다는 원칙이 더 중요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말이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로렌스가 뜨거운 성냥불을 아무렇지 않게 손가락으로 잡아서 끈다. 그러자 그걸 지켜본 다른 사내가 똑같이 따라 했다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른다. "뜨겁잖아요! 대체 어떻게 한 거죠?" 그가 묻는다. 그러자 로렌스가 대답한다. "뜨거워도 개의치 않는 거지." 이는 인생에 꼭 필요한 능력 중 하나다. 고통을 피해갈 쉬운 해결책이나 지름길부터 찾기보다는 필요한 때에 고통을 참아내는 능력 말이다. 우리는 빠르고 쉬운 길에 혹하기 쉽다. 고생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그런 길은 거의 없다. 찰리 멍거는 이렇게 말했다. "원하는 것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것을 누릴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간단하다. 이것은 황금률이다. 사람들에게 뭔가 제공할 때는 당신이 상대방이라 해도 만족할 만한 것을 제공하라." 목표로 삼을 가치가 있는 것 중에 공짜는 없다. 모든 것에는 비용이 따르며, 대개 그 비용은 잠재적 보상의 크기와 비례한다. 출처 책 불변의 법칙
#책 #불변의법칙
2025-04-10 ⋯ 가혹한 현실과 확고한 믿음
"크리스마스에는 집에 돌아갈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은, 크리스마스가 왔다 지나가면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지곤 했다. 스톡데일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죽을 만큼 괴로워했다"고 한다. 스톡데일은 상황이 나아지고 성공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지니는 동시에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아 한다고 말했다. '결국 상황은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크리스마스 때까지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심리학자 로런 앨로이와 린 이본 에이브럼슨은 '우울한 현실주의'라는 인상적인 개념을 소개했다. 이는 우울한 사람이 삶이 얼마나 위험하고 위태로운지에 관해 더 현실적인 감각을 지니기 때문에 세상을 더 정확하게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울한 현실주의의 반대는 '무지한 낙관론'이다. 무지한 낙관론에 빠진 많은 이들은 현실 파악은 불완전할지언정 긍정적인 감정상태를 유지한다. 그리고 그런 긍정적 관점은 객관적 현실이 암울하고 도처에 비관주의가 가득할 때도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가게 해주는 연료가 된다. 스티븐 프레스필드는 30년 동안 글을 쓴 후에야 첫 책 <베가 번스의 전설>을 출간했다. 그전까지의 삶은 암울하기만 했다. 한때는 집세를 아끼기 위해 정신병원 퇴원자들이 사회로 복귀하기 전에 지내는 시설에서 살기도 했다. 언젠가 프레스필드는 이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만나본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그들은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엉터리를 꿰뚫어 본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프레스필드는 "그들은 엉터리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에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들을 쓸모없는 불량품으로 여겼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세상의 엉터리 같은 모습을 견딜 수 없었던 천재였을 뿐이라고 프레스필드는 말했다. 비효율성이 사방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하면 그것을 피할까?"가 아니다. "혼란스럽고 불완전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비효율성을 견디는 것이 최선일까?"라고 물어야 한다. 만일 그것을 견디는 능력이 '제로'라면, 즉 의견 충돌, 개인적 인센티브, 비효율적인 일, 의사소통 오류 같은 것들을 극도로 혐오한다면, 타인과의 교류나 협력이 필요한 일에서 성공할 확률도 제로에 가깝다. 프레스필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신은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없다. 그 반대, 즉 엉터리 같은 일이나 성가신 문제, 불편함을 무조건 참고 받아들이는 것 역시 나쁘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면 당신은 세상에 산 채로 잡아먹힐 것이다. 이렇듯 성가신 문제나 불편함을 얼마만큼 견디는 것이 최선인지 판단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이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깨닫지 못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였지만 하반신이 마비된 탓에 화장실에 갈 때도 보좌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다리를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 오렌지주스를 먹고 싶지만 사람들이 우유를 가져다줄 때 '괜찮습니다'라고 말하고 우유를 마실 줄 알아야 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얼마만큼의 비효율성과 불편함을 견뎌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 책 불변의 법칙
#책 #불변의법칙
2025-03-29 ⋯ 취약성
"기분이 최고로 좋았을 때를 10이라고 하면, 지금 기분은 1에서 10 중 몇 정도인가요?" 그녀는 조용히 내 답을 기다렸다. "6에서 7 정도요." 정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환자들에게 생각하지 말고 직감적으로 답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7'이란 건 내 솔직한 느낌이었을까, 아니면 일반 환자 대신 상담 시간을 차지한 내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의도였을까? 난 내 우울증의 원인을 오랫동안 탐구했다. 어떤 힘든 일이 닥치면 며칠도 안 되어 극심한 절망에 빠지는 이유가 뭘까. 정신역동치료는 과거의 인간관계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통찰해보려는 쪽이다. 반면 인지행동치료는 현실을 자신에게 해로운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서' 우울해진다고 보고 그런 관점을 개선하려는 쪽이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 개인의 역사도 불변의 존재가 아니다. 남에게 이야기하고 반복해 서술하는 과정에서 유기체처럼 변한다. 어느 시점에서건, 내가 '진짜' 아는 건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뿐이다. 1년 전 느꼈던 감정, 품었던 고민이 아무리 해도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쩌면 일부러 잊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지금의 나에 대해 내가 아는 이야기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되는 이야기다. 이 일을 하면서 배웠지만, 의사는 환자가 안고 있는 문제의 '이력을 알아내는' 데 그치지 말고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아버지의 폭력에 몸만 다친 게 아니었다. 10대 시절 우울증을 앓았던 것도, 20대 중반인 지금 기분이 심하게 침체되어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는 성장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했지만, 어릴 때부터 앓았던 당뇨병이 합병증을 일으키면서 그간 노력해 얻은 것들을 다 잃게 되었다고 느꼈다. 어머니도 당뇨병이 있었다. 리처드는 최근 시력이 나빠졌고, 어린 시절 경험 때문에 우울증에도 대단히 취약해진 상태였다. 물론 충분히 이해는 된다. 그럴 수 있다. 당뇨병처럼 큰 병을 앓는 게 얼마나 힘들지도 짐작이 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심각할 정도로 기분이 침체되지는 않는다. 알아서 살 길을 찾아나간다. 리처드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이 가끔 하는 실수는, 환자가 현재 처한 상황에 비추어볼 때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고 넘겨짚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으면 누구든 기분이 처지는 게 당연하죠. 저라도 그러겠어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환자는 우울한 것일 수도 있다. 우울은 불행한 감정과는 다르다. 우울은 불행보다 훨씬 더 깊고 큰 절망감으로, 세상을 보는 눈에 색을 덧입히고 일상생활을 해나가기 어렵게 만든다. 출발점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엉엉 울고 있었다. 아빠는 먼저 훌쩍 내렸다. 나와 일행이 아닌 척 하는 것 같았다. '이 울보 여자애 내 딸 아니야' 하고 말하는 듯했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아빠의 기질을 파악했다. 우리 둘은 여러모로 많이 닮았으면서도 또 달랐다. 나는 쉽게 불안해하고 겁이 많았지만, 아빠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힘이 세고 용감했다. "뭐가 문제야?" 아침마다 학교 가기 전에 티셔츠를 몇 번이나 입었다 벗었다 하는 앨런에게 나는 묻곤 했다. 엄마 아빠 둘 다 7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해서, 내가 두 남동생을 아침마다 준비시켜야 했다. 나보다 열한 살 어린 막내 이언은 골치를 썩이지 않았다. 알아서 시리얼을 우걱우걱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나의 일곱 살 터울인 앨런은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늘 괴로워했다. "저리 가! 나 좀 가만 놔둬." 앨런이 소리쳤다. "왜 그러는 건데." 나는 이유를 말해달라고 구슬렸다. "주름이 너무 많아." 앨런은 중얼거리거나 울면서 외치곤 했다. "우리 늦었어." "상관없어! 나 좀 놔둬." 동생은 그렇게 옷과 씨름하다가 화를 못 이겨 옷을 갈가리 찢기도 했다. 밤에도 쉽지 않았다. 깜깜한 방에서 침대에 눕지도 않고 몇 시간을 서 있었다. 자기 전에 치러야 하는, 자신도 설명하지 못하는 어떤 복잡한 절차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절망감에 빠졌다. "앨런, 제발 잠옷 좀 입어, 응?" "싫어." "여보, 이제 자정이야." 엄마가 문간에 서서 애걸했다. "그냥 놔둬. 서 있다가 알아서 불 끄고 자라고 해."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동생은 자기 침대 옆에 돌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러다 문이 꽝 닫혔고, 방 안에서는 흐느끼는 울음소리만 흘러나왔다. 결국 아빠도 포기하고, 실망과 분노로 피폐해진 채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앨런은 여러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강박 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때는 병명을 몰랐지만, 아빠는 사회공포증이 점점 심해졌다. 구체적으로는 공공장소에서 남들과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가 살 만한 옷이나 신발 따위를 집에 가져가서 먼저 좀 입혀보겠다고 가게 주인에게 사정해야 했다. 심지어 아빠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지도 못할 정도로 불안이 심했다. 술을 마시면 불안이 좀 가라앉긴 했지만 아빠는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대신 담배를 하루에 40개비까지 피웠다. 부모님은 앨런과 함께 가족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아빠는 의사가 자기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고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며 질색했다. "뭘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죄책감만 잔뜩 주고." 의사가 나도 함께 오라고 했지만 나는 거부했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난 학교 공부에 너무 바빴다. 당시엔 정신질환의 생물학적 근거라는 것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뇌의 배선 결함이 아닌 양육의 문제로 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지금은 유전과 양육 어느 한 쪽의 문제라기보다 둘이 복잡하게 얽힌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동생 앨런이 불안 장애 성향을 부모 양쪽에게서 물려받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동생은 난산 끝에 태어났다. 생사의 갈림길을 걷던 몇 분 동안 심장박동이 잡히지 않았는데, 그때 경미한 저산소성 뇌 손상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다. 크면서는 엄마 아빠를 애먹여 두 사람 사이에 긴장을 조성했고, 그로 인해 자신도 더 불안해졌다. 이는 옷 입기나 취침과 관련된 이상행동과 분노와 반항, 또다시 이상행동의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았다. 나는 유전적으로 신경증적 성향을 타고나기도 했지만, 안전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성장 터전을 가족에게서 제공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늘 괴로웠다. 아이가 자신 있게 세상에 부딪칠 줄 아는 사람으로 커나가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엄마는 불안이 있음에도 천성적으로 매사에 태도가 당당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아빠의 과묵한 내향성을 더 많이 물려받은 것 같다. 어릴 때 엄마보다 아빠와 훨씬 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애착은 10대 시절 점점 불안과 두려움으로 바뀌어갔다. 그러한 변화는 인생의 시련을 버티는 내 능력의 한계를 더욱 낮추는 구실을 했다. 나는 모종의 이유로 인해 점점 취약성이 높아졌다. 마음에 안드는 옷을 입고 외출하는 것, 책상에서 볼펜을 떨어뜨려서 허리를 숙여야 하는 것, 침대에 누워서 과자를 먹고 봉지를 휴지통에 버리기 위해 팔을 뻗는 것, 문 밖의 누군가의 발소리를 듣는 것. 생각하기에 따라 큰 불행이 아닐 수도 있는 것들이 나에겐 견디기 힘든 큰 불행처럼 느껴졌다. 어제는 밤에 불행해서 죽고싶어서 울었다. 그 이유는 엄마 아빠와 평생 함께 있고 싶은데 미래의 어느 날은 죽을 것임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한참 울은 뒤에 나는 한 가지 처방을 내리고 마음이 편안해져서 잠이 들었다. 내가 내린 처방은 엄마 아빠가 죽을 때 같이 죽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언제 어린애처럼 울었냐는듯이 나는 짐을 챙겨 할일을 하러 집을 나섰다. 출근 전 카페에 와서 읽고 싶던 책도 읽고 맛있는 커피도 마셨다. 기분이 최고로 좋았을 때를 10이라고 하면, 지금 기분은 1에서 10 중 몇 정도인가요? 같은 질문에 7 같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사실 알고있다. 나는 엄마 아빠가 죽는다고 해서 죽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어제 죽고싶어 울었던 것은 엄마 아빠가 나보다 일찍 죽기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큰 불행이지만 그 사건이 갖는 '시간'이라는 특성 때문에 지금의 나에겐 불행의 본질적 크기에 비해 그만한 영향을 주지 못한다. 사실 어제 불행해서 죽고싶어서 울었던 이유는 미팅에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이다. 의아한 점은 그 피드백을 온전히 이해했으며 더 안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던 상황을 성공적으로 회피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피드백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작은 불행 하나가 내 안의 기폭제를 밀었고 벼랑을 구르며 점점 커졌으며 우울한 감정이 발생했다. 만약 덧입혀질 불행이 없다면 그대로 축적되어 다음 발생할 우울을 조금 당길 예정이었으나, 어제는 먼 미래의 불행이 떠오름에 따라 감정이 덧입혀져 발현될 수 있었으며 그렇기에 나는 죽을 듯이 울었던 것이다. 출처 책 당신의 특별한 우울
#책 #당신의특별한우울
2025-03-20 ⋯ 수용
지금까지 의사로 일하면서, 인생 계획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 사람은 자녀들 인생까지도 그런 식으로 계획하려고 한다. 그리 생각하는 게 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살면서 정말 나쁜 일을 당해본 적이 한 번도 없고 모든 일이 기대한 대로 풀린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다가 상실을 경험하게 되면 그것이 본인의 자아정체감이나 인생의 이정표와 관련이 클수록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어진다. 나는 시험에 떨어지면서 계획이 일시적으로 틀어졌다. 주도면밀하게 그려놓았던 인생 계획이 어그러졌다. 누가 만들어준 계획은 분명히 아니었다. 오로지 내 생각만으로 만든 계획이라고 믿었다. 나도 어쩌면 대니얼처럼, 아버지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무시했다. 게다가 이미 돌아가시고 세상에 있지도 않은 아버지였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계속 나타나고 있던 균열을 적당히 땜질만 하며 수습하고 있었다. 그때는 길을 잠깐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고만 생각했고,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게 정말 필요했던 약은, 운명이라 생각했던 길에서 완전히 탈선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후에 깨달았지만, 삶이라는 열차가 탈선하여 내달리는 그 혼돈의 순간에는 때로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앞으로 무엇을 바꾸면서 살아야 할지, 너무 늦기 전에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다. 그런 의문에 답할 수 있다면,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이 스스로 정한 목표는 이룰 가능성도 더 높은 법이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나는 깨닫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모든 결점과 허물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심리치료사들은 자기애에 대해 이야기한다. 간혹 자기애를 이기심과 같은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둘은 다르다.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진정으로 남을 아껴줄 수 있으려면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백 번 틀리지 않다. 자신만의 장점을 인정하고, 단점을 시인하고, 받아들이며, 그 모든 것을 평온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미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온 선택들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차츰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선택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건 물론 아니었다. 특히 연애에 성급히 빠져드는 문제는 고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듯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 결혼 생활의 부족한 점을 직시하지 못했던 건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차츰 깨달았다. 내 삶도 정서적으로 '보류된' 상태였던 것이다. 미래가 뒤로 미루어진 상태였다. 나는 물방앗간 집 옆 바위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며 제니퍼를 생각했다. 바람에 이는 파도의 물보라, 바다 건너편에 수면과 맞닿아 있는 자줏빛 산들, 넋을 빼앗길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나는 외로움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 안다. 그것은 남은 평생을 혼자 살게 되리라는 두려움이었다. 아침에 옆에서 자는 연인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눈을 뜰 일이 없게 되리라는 두려움이었다. 이제 저녁 식탁에서 내가 정치인들이 의료제도를 개악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릴 때 공감해줄 사람도, 나를 안아주면서 일 이야기는 그만하고 어서 식기 전에 먹으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으리라는 두려움이었다. 고독사가 두려웠다. 혼자 사는 할머니가 집 주방에서 몇 주 만에 발견되었는데 '자연사'한 것으로 보이지만 배고픈 고양이들이 물어뜯어서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알 수 없다는 따위의 이야기가 남 이야기가 아닐 것 같았다. 내 환자들이 많이 그랬듯, 나도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단절될까봐 두려웠다. 고립, 외로움, 우울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들과 떨어지면 그로 인해 우울해질 수 있고 회복 또한 더뎌질 수 있다. 문제는 우울해지면 남들과 대화하기도, 함께 있기도 힘들고 남들을 믿지도 못하니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고립시키곤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고립이 심해지고 그에 따라 기분이 더 가라앉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이럴 때는 단순히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이 꼭 해결책이라고도 볼 수 없다. 천성이 사교적인 사람은 다시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상대적으로 크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상호작용 과다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회복하려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내 경우도 물론 후자 쪽이다. 우울한 사람은 세상 속에 나가 남들과 어울린다는 것에 대단히 양면적인 감정을 갖기 쉽다. 숙소 밖에 앉아 주변 경관을 응시하면서, 혼자라는 두려움과 맞닥뜨릴 방법을 조금씩 알 것 같았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 끌어안고 견뎌내고, 이해해야 할지 조금씩 깨달았다. 글을 읽거나 쓰거나 창작하는 등의 활동을 하려면 꼭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앤서니 스토는 '고독의 위로'라는 책에서 창작을 하는 사람이건 아니건 혼자 있는 능력이야말로 그 사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징표이며, 모든 사람이 인간관계를 훌륭하게 영위해야만 삶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불교의 사상과 수행에서 유래한 '마음챙김'이라는 개념이 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우리 내면의 자아를 좀 더 잘 알기 위해, 괴로운 생각을 억누르려 하지 말고 그대로 관찰하면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마음챙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그날그날 반복되는 일과에 집중하다 보니 -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들고, 3킬로미터 거리의 가게를 걸어서 다녀오고, 창가 책상에 앉아 독서하고 글 쓰고, 바다 풍경을 스케치하고 하면서 - 나도 모르게 마음챙김 기법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혼자라는 게 사실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많은 사람이 외로움을 두려워한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남들과 어울리면서 감정을 나누고 걱정과 근심을 터놓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러지 못한다면 제니퍼처럼 우울해지고, 또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고독이라는 것 역시 끌어안을 수 있고, 심지어 즐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법을 배운다면 가능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내가 남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더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친밀과 고독 사이에서 누구나 각자의 이상적인 균형점을 찾아내야 한다. 나는 마지못해 그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했지만, 그런 공포스러운 감정에 사로잡힐 때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가끔 기분이 가라앉고 몸이 녹초일 때는, 무거운 추가 가슴을 짓눌러 몸을 옴싹달싹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존의 말이 맞았다. 그럴 때 나는 정말로 통제력을 잃고 현실을 벗어나 버리는 듯 했다. 대개는 잠깐이었지만, 그럴 때면 자살 충동도 다시 느껴졌다. 나는 엘리자베스 워첼이 '프로작 네이션'이라는 책에서 묘사한, 끝없는 정서적 혼돈 상태가 무엇을 말하는지 너무나 잘 안다. 내가 특히 공감한 부분은, 저자가 원하는 치료사란, 어른답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 그리고 우울증이 심해 전화 요금도 내지 못하는 이용자의 사정 따위는 전화 회사가 신경쓰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갈 방법을 알려줄 사람이라고 한 대목이었다. "지금 어머니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이세요?" 내가 물었다. "제 어머니예요. 그러니까 물론 사랑하지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밉기도 해요. 정말, 진짜 미워요." 그리고 나를 보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 "제가 어떻게 그런 나쁜 말을... 신부님에게 고해성사해야 할 것 같아요."
"아니요, 전혀 나쁜 말 같지 않은데요. 본인의 감정인 걸요. 이제 그 감정을 안고 살아갈 방법을 찾아봐야죠." 세상에 단일한 진실이란 없다. 저마다 몇 개의 안경 너머로 각자의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을 뿐이다. 남들의 기억과 인식과 가치관을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할 이유는 없다. 사람은 자기 필요에 맞는 진실을 만들어간다. 좋건 나쁘건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스토리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일기를 쓰면서,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만들어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과거를 조금씩 되돌아볼 수 있고, 과거가 어떻게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는지 차츰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는, 지금도 우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과거의 횡포에 맞서 그 힘을 무력화할 수 있다. 3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후 존과 함께 다시 찾은 그곳은, 회청색 갈매나무와 가시금작화 수풀 사이로 새로 깔린 판잣길이 모래언덕까지 이어져 있었다. 마침내 깨끗한 모래사장에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에 이르자, 나는 워시만의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차갑지만 상쾌했다. 어찌 보면 모질고 변덕스러운 바다였지만 나는 이곳에 오면 늘 기분이 새로웠다. 아이 때도 10대 때도 여름날 저녁이면 아빠와 함께 자주 와서, 바다에서 수영하는 아빠를 지켜보았던 바로 그곳이었다. 그때의 장면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빠가 항상 저 모래언덕에 앉았어." 내가 존에게 외쳤다. "아빠가 여기를 정말 좋아했어. 수영을 워낙 잘했거든."
힘차게 바다로 헤엄치던 아빠의 검게 탄 어깨가 떠올랐다. 그때는 아빠와 함께 있으면 무척 안전하게 느껴졌다. 아빠가 너무 좋았다. 잠시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는 바다 저쪽, 아빠가 좋아했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힘찬 모습으로 살아서, 검게 탄 긴 팔을 석양에 번들거리며 나를 향해 흔들고 있었다. 그러고는 다시 물에 들어가더니 거센 물살을 헤치며 나를 향해 헤엄쳐왔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랫동안 아버지를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아버지를 그리워할 것이다. 애통해한다는 것은, 놓아주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애통해할 수 있게 되면 잃어버린 사람을 그 사람 그대로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이상화된 성자도, 분노와 실망을 쏟아부을 표적도 아닌, 복잡하고 현실적이면서도 매우 인간적인 존재로.
내가 가진 아빠 사진은 한 장 뿐이다. 내가 집을 떠나 대학에 가기 얼마 전에 찍은 사진이다. 아빠는 구겨진 셔츠 차림으로 서서 한 팔을 엄마 어깨에 두르고 있고, 엄마는 아빠 손을 꼭 잡아 허리에 붙인 모습이다. 나는 아빠 왼쪽으로 살짝 뒤에 서서 해를 쏘아보고 있고, 동생 이언은 우리 앞에 서 있다. 앨런은 아마 카메라를 들고 있었을 것이다. 아빠는 마치 우리가 모르고 있는 비밀을 알고 있기라도 한듯 묘한 미소를 엷게 짓고 있다. 엄마는 방금 전까지 다들 싸우기라도 한 듯 억지스러운 미소를 활짝 짓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진도 점점 빛이 바래 흑백에 가까워져가고, 내 애통한 마음도 흐릿해져간다. 지금은 알 수 있다. 나라는 사람은 결국 아빠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아빠는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행동으로 내게 변치 않는 사랑의 힘을 가르쳐주었고, 내가 지금 모습이 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중요한 건 애통한 마음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상실의 기억을 떠올릴 때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괴롭고 아픔이 생생하다면 진전이 없는 것이다. 감정이 잦아들지 않고 점점 커진다면 그 역시 심각한 신호다. 애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우울증이 된다. 애통한 마음의 크기를 1에서 10까지의 숫자로 생각해볼 때 그날그날 아주 미미하게라도 줄어들고 있따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다. 조금씩 다시 일상을 마주하고 앞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 일을 조금씩 손에서 놓아가는 것이다. 출처 책 당신의 특별한 우울
#책 #당신의특별한우울
2025-02-21 ⋯ 예측
시간과 공간은 고정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며, 서로 독립적인 것도 아니다. 우주를 이해하려면 이들을 합쳐서 4차원, 즉 공간을 나타내는 세 축과 시간을 나타내는 한 축으로 시각화해야 한다. 호킹 박사는 '시공(spacetime)' 이라는 개념을 시각화할 때 광원뿔(light cone) 이미지를 활용해 과거와 미래의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었다. 빛은 발산될 때 연못의 물결처럼 퍼져나가면서 원뿔 형태를 형성한다. 빛의 속도보다 빠른 것은 없으므로 (과거에) 기여하거나 (미래에서) 시작된 현재 순간의 모든 사건은 이 원뿔 안에서 빛의 속도나 그보다 느린 속도로 일어나야만 한다. 호킹은 원뿔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 사건들은 현재를 바꿀 수 없고 현재에 의해 바뀔 수도 없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호킹은 어느 날 갑자기 태양이 죽는다는 시나리오를 얘기했다. 이 사건은 과거의 광원뿔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이 도착하려면 8분이 걸리기 때문에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직 이 지점에서만, 미래의 광원뿔까지의 어느 정도 거리에서만 이 사건이 우리의 현실과 교차하고 현실을 변화시킨다. 우리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가 아니라 우리으 ㅣ의식을 가로지르기 시작한 순간에 그 사실을 인정한다. 우리는 모두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 배우고 다음에 일어날 일을 바꿀 방법을 찾는다. 우리는 확실성을 원하지만 기회도 원한다. 미래가 안전하다고 느끼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가능성에 고무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다. 우리는 목표를 설정하고, 판단에 따른 결정을 내리고, 우선순위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더 나은 방법을 바란다. 미래를 효율적으로 계획할 도구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도 필요하다. 다행히 이런 질문은 잠들지 못해 깨어있는 밤이나, 올해 목표와 다짐을 적는 새해 아침에만 고민하는 질문이 아니다. 이론물리학은 우리를 위해 어려운 부분을 상당히 많이 해결했다. 이론물리학은 삶의 사건을 시각화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계획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심지어 더 좋은 점은 내가 여덟 살의 나를 안심시켰듯이, 이론물리학이 알려주는 방법은 이진법 모델과 냉혹한 광원뿔의 경계선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장에서 소개할 개념인 네트워크이론, 토폴로지, 경사하강법을 활용하면 인간만큼이나 유연하고 변하기 쉬운 삶을 계획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아마도 삶의 계획과 목표를 세울 때 마주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에 집중할까?'일 것이다. 현재와 미래, 어느 쪽에 집중해야 할까? 지금 느낄 만족감인가, 아니면 뒤로 미룰 기쁨인가? 끊임없이 장기 계획을 세우느라 현재의 삶을 즐기지 못하는가? 아니면 현재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가올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가?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을까? 현재에도 행복하고 미래도 이상적으로 계획할 수 있을까? 이 딜레마를 두고 너무 고심하느라 걱정한 적이 있다면, 양자역학이 당신을 안심시켜줄 것이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아는 한 가장 작은 입자인 아원자입자(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를 연구하는 이론물리학의 한 분야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아원자입자의 위치를 더 정확하게 측정할수록 입자의 운동량을 측정하기는 더 어려워진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역의 명제도 똑같이 적용된다. 다시 말하면 물리학은 우리에게 위치와 운동 속도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고 말해준다. 한쪽에 집중할수록 다른 쪽의 측정은 부정확해진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가?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입자에 관해 썼겠지만, 같은 원리가 거시 세계인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되는 듯하다. 정밀 측정 장비에도 한계가 있듯이, 집중하고 우선순위를 매기는 우리의 능력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파티를 주최하는 동시에 파티를 즐길 수는 없다. 파티에 대해 고민하든지 파티를 즐기든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든지 다른 사람은 어떤지 걱정하든지 둘 중 하나다. 하나를 하면 다른 하나를 하는 능력이 억제된다. 특히 나처럼 '재미있게 노는 법'을 준비하려고 구글에 검색해야 한다몀ㄴ 말이다. 이는 성인의 딜레마로, 우리는 끊임없이 모순되는 두 개의 욕구를 인식한다. 현재를 즐기거나, 미래를 계획하거나. 동시에 두 가지 모두 챙기려는 욕망은 둘 중 하나를 적절하게 성취할 능력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우리는 앞으로 무엇이 다가올지 걱정하느라 현재를 즐기지 못하거나, 너무나 즐겁게 지내느라 미래를 대비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 정보 중심의 연구에 기반을 둔 삶을 즐기는 나조차, 그저 배움을 멈추고 세계에 무지한 채 행복에 젖어 진실로 순간을 살아가는 아이로 되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아빠와 부엌에서 생선을 요리하거나 정원에서 놀고, 마음 가는 대로 수많은 모래성을 만들고, 멋지고 다채로운 색상의 수영복을 입은 채 루 해변의 '밀리의 바위'에 앉아있기도 했다. 일곱 살에는 체크무늬를 좋아했고, 엄마의 푸른색 덴마크산 그릇으로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하거나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남성과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좋아했다. 물론 그 남성은 스티븐 호킹이었다. 모든 기억의 색, 맛, 냄새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내 마음에 남아있다.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고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것을 했던 시절, 즐거운 삶이었다. 온갖 취미가 뒤섞인 이 주머니는 무작위였을 수도 있고 일정한 형태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모두 과거의 광원뿔을 형성하는 일부로서 지금 여기까지 나를 이끌어왔다. 내 흥미와 독자성, 개성을 강화하는 경험의 축적이다. 이 기억들은 대세에서 나만 소외되리라는 두려움이나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걱정이 없었던 때를 상기시킨다.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던 나는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파동을 연구하는 또 다른 양자역학 분야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는 전통적인 하이젠베르크 문제, 즉 특정 순간에는 파동의 운동량이나 파동의 위치 둘 중 하나만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다는 문제를 가리킨다. 양손 손가락을 동시에 마주 대려 해보라. 자꾸 어긋나서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확률파동(wave packet)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확률파동은 수많은 다양한 파동을 합성해서 시각화한 것으로, 과학자들은 파동들이 나타내는 총체적 행동을 연구한다. 하나의 파동은 분명하게 정의하기 힘들지만, 여러 파동 '뭉치(packet)'은 더 효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삶의 계획을 세우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하나하나의 결정이나 목표가 올바른지 알기 힘들다. 이럴 때는 큰 그림과 맥락, 즉 전체 '뭉치'를 살펴야 지금 이 순간뿐만 아니라 미래 전체의 최상의 결과와 비교해서 우리가 가능한 최고의 선택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가상의 확률파동을 만들면서 나는 삶을 숙고하는 두 가지 사고방식이 이루는 또 다른 균형에 부딪혀야 했다. 모멘텀 사고(momentom thinking)는 시간에 따라 살면서 한 시간에서 다른 시간으로 옮겨 가도록 하며, 이 사고에 따르면 행복은 우리가 성취하고 계획한 것으로 정의된다(즉, 책임이라는 어른의 세계다). 반면, 포지션 사고(position thinking)는 현재를 살면서 현재 순간과 현재가 주는 느낌에 사로잡혀 다른 모든 것을 차단하고 그저 존재하게 하는데, 여기에는 죄책감까지 따른다. 포지션 사고를 받아들이기는 매우 힘든데, 그것이 '제대로 된 어른'이 되려면 해야 한다고 들어왔던 것과 완전히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꼭 필요하다. 가만히 서 있다고 해서 멈춰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더 창의적이고, 현재 거치는 과정을 재평가하며, 감각의 힘을 통해 살아가고, 미래를 위해 더 많은 가능성을 탐색한다. 다음에 무엇을 할지 집착하고 거의 모든 삶의 순간에 끼어들며 현재 이 순간의 즐거움을 부정하는 모멘텀 사고의 연결 고리를 끊을 방법이 필요했다. 나는 명확한 미래에 대하 ㄴ끊임없는 욕구를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순간을 살아가는 능력을 회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2013년, 변화가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시기인 사순절(부활절 전 40일 동안의 기간. 단식을 하기도 한다) 직전에 특별한 팬케이크 한 접시를 먹으며 실험을 개시했다. 완벽하고 엄격하게 해야 할 일을 확인하고 모든 우선 사항을 처리했다. 나머지 절반은 포지션 사고를 하며 살았다. 모든 순간을 즐기고 미래에 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제 당신은 아마 이 계획이 잘되지 않았으리라고 짐작할 만큼은 나를 잘 알 것이다*. 지금의 나를 만든, 지극히 중요하지만 실패한 또 하나의 실험이었다. 실험하면서도 현재의 즐거움이든 미래의 명확성이든, 실험을 침식하는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파티를 열고도 파티가 끝난 후 해야 할 설거지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관찰자가 근본적으로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또 다른 양자역학 교리, 즉 관찰자 효과의 희생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드는 예시로는 현미경으로 전자를 관찰하는 사례가 있다. 관찰자가 광자를 투사하는 데 의존하면 이 행위가 광자의 운동 방향을 바꿀 것이다. 이처럼 내가 내 실험을 관찰하는 행위는 당연히 결과를 왜곡했다. 나는 무엇을 빠뜨렸는지 생각하느라 너무 바빠서 그 순간의 나를 즐길 수 없었다. 실패한 실험 덕분에 나는 포지션 사고와 모멘텀 사고, 현재와 미래 사이의 어디쯤에서 타협할 수 있었다. 평범한 날의 각기 다른 순간에, 나는 바로 그 특정 순간에 내게 가장 필요한 사고로 전환되기를 바라면서 두 사고 사이를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할 것이다. 나는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원하며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ADHD와 싸우면서, 현재를 사는 것과 미래를 계획하는 것 사이에서 적당히 춤출 것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알기만 해도 올바른 균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발견했듯이 이 둘을 완벽하게 구분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저 이 둘이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지금 하지 않는 일을 할 시간이 나중에 있을 것이며, 오후에 햇볕을 쬐면서, 혹은 모두가 밖에서 즐기는 동안 안에서 계획을 세우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깨달으면, 우리가 하지 않는 일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다. 그러나 현재를 사는 것과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두 사고방식이 정확히 맞물리게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시각화할 방법도 필요하다. 그러면 목표를 설정하는 방법을 명확하게 선택하고 우리의 여행 속도에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내 삶에서 가장 신뢰하는 동맹인 네트워크이론이 진가를 발휘한다. *사실 저자를 이해한 것이 아님. 나도 계획은 항상 어그러지는 쪽이었다. a와 b중 a 로 방향을 틀자마자 세상은 b 방향으로 휘어진다. 왜일까? a를 선택하자마자 갑자기 세상에서 a에 대한 반례가 속출하고 다시 양 갈래 길로 돌아오게 된다. 관찰자 효과였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를 읽은 후, 나는 광원뿔의 고정된 경계선보다 내 요구를 더 잘 충족해줄 예측 모델을 찾아 헤맸다. 나는 전통적인 인간의 모순, 즉 확실성에 대한 욕구와 정해진 한계에 대한 좌절감의 모순에 사로잡혔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을 제외하면 내게 주어진 계획의 한계만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없다. 이런 두꺼운 직선을 필요에 따라 구부리고 주변을 탐색할 구불구불한 선으로 바꾸려면 유연성이 필요하다. 나는 집을 나서는 데만 다섯 시간이 걸리는 끝없는 준비의 필요성과, 오랜 시간 신중하게 생각해 온 것을 극심한 조바심이 폭발하는 순간 모두 파기해버리는 성향, 두 가지 픅면 모두를 고려한 계획법이 필요했다. 이런 성향은 일종의 심리적인 뇌 정지 상태로, 오늘 하루가 레몬 셔벗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더 비슷해지는 것과 같다. 현재와 미래를 조화시키려는 나의 하이젠베르크식 전투는, ADHD의 시간 왜곡과 나를 계속 바닥으로 짓누르는 정신 가속기 덕분에 더 치열해진다. 이 모든 것을 처리하는 데 네트워크이론이 나의 구원자가 되었다. 이 이론은 상당히 단순한 개념이다. 연결된 대상을 그래프로 나타내고, 총체적으로 형성되는 네트워크를 시각화하며, 이런 연결성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무엇인지 연구한다. 네트워크이론과 그래프 이론이라는 연관된 기술을 이용해서, 우리는 복잡하고 밀접하며 동적인 계를 분석할 수 있다. 네트워크는 대상이나 사람들이 연결된 연속체다. 당신과 친구, 이웃은 여러 사회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런던 지하철은 서로 다른 노선으로 연결된 정거장 네트워크다. 토스터 플러그 속에 든 전기회로도 네트워크다. 와이파이와 무선 근거리통신망 일부에 연결된 채 여러분 옆에 놓여 있을 스마트폰은 아마 현재 네트워크의 일부일 것이다. 인터넷은 그 자체가 물리적으로나 무선으로 연결된 컴퓨터들의 메가 네트워크로, 그를 통해 방대한 양의 자료가 움직인다. 물질세계에서 디지털 세계까지, 사회에서 과학까지, 네트워크는 어디에나 있다. 네트워크는 무형이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구조이며, 우리가 수십 년에 걸쳐 경력을 쌓는 과정부터 지금 우리가 인터넷에 연결되는 방법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네트워크는 장기간 및 단기간의 삶을 계획하고 시각화하는 이상적인 방법을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에 영향받으며 사방으로 밀고 밀리므로, 미리 계획을 세우는 투두 리스트보다 더 복잡하고 반복적이며 적용하기 쉬운 모델이 필요하다. 네트워크이론이 바로 이것을 제공하며, 특히 토폴로지는 네트워크 구성 요소인 노드(node, 컴퓨터과학의 기초 단위. 보통 네트워크에 연결된 하나의 기기를 뜻한다)가 연결되는 방식과 형성되는 구조를 알려준다. 토폴로지(네트워크의 요소들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방식)는 경직된 직선을 유동성 있는 가능성의 네트워크로 바꿔준다. 어둠 속에 감춰진 것을 밝은 곳으로 끌어내고, 정점에 이른 내 불안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한때는 유용했던 원리가 더는 쓸모없을 때나, 싹트는 생각이 이제 번성할 준비가 되었을 때를 알아차리게 돕기도 한다. 토폴로지의 본질은 매우 중요하다. 여섯 개의 단추로 패턴을 만들 때, 당신은 선이나 원, V자를 만들 수 있다. 토폴로지는 네트워크의 기능, 즉 역량과 한계를 결정한다. 우리가 살면서 의사 결정을 하고 우선순위를 설정할 때도 똑같은 일을 한다. 즉, 단기간 및 장기간의 결과를 결정할 유용한 증거와 선택을 패턴으로 배열한다. 미래의 삶을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생각해보면 이 네트워크의 노드는 사람부터 희망, 두려움, 목표까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것은 내가 발견한 계획법 중에서 너무 단순하지도, 불편할 정도로 제한적이지도 않은 최고의 방법이다. 역동적으로 당신의 환경이 그렇듯 적응력이 있어서 유용하다. 게다가 무엇이 정말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알 수 있도록 도와주므로 명확하다. 또 연결성에 초점을 맞추므로, 연결된 노드를 확인하여 어떤 노드가 영향을 주고받는지 살피며 특정 경로가 어디로 이어질지 알려준다. 네트워크는 호킹이 알려준 대로 시간과 공간의 맥락에서 광원뿔의 궤도에 한정되지 않고 생각하게 해준다. 또 우리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이중 캔버스에서 사람, 특정 목표, 삶의 단계 사이의 근접성과 거리를 탐색하게 돕는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야 하는지, 그 사건이 일어나게 하려면 언제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호킹의 다이어그램에 선이 존재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소음에서 신호를 찾아내고, 길이나 자기 삶을 잃을 것 같은 불안을 극복하려면 우리에게 방향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트워크는 이런 직선을 구불구불한 선으로 부드럽게 바꾸며, 시간이 흐르면서 고정된 광원뿔을 다른 면이 빛에 노출되도록 스스로 접히고 돌돌 말리는 잎사귀 모양으로 바꾼다. 우리에게 구조를, 따라갈 길을, 유연성 있는 움직임을 준다**. 시간과 공간에 걸쳐서 네트워크를 만들 때 필요한 능력, 즉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명확하게 인식하는 능력이 있어야만 현재에 대한 과도한 불안을 피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 목표 목록 자체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목록에는 맥락이 없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도 없으며, 선호도를 설정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의 선형성에는 적절할 수 있지만 의사 결정에는 목표와 함께 사람과 장소를 계획하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며, 이 네트워크는 특정 형태를 고수할 필요 없이 오직 당신의 의도에만 맞으면 된다. 그러나 이 중 어느 것도 우리가 자신의 토폴로지를 친구나 동료의 것과 비교하면서 불안해하거나 부러워하지 않을 거라고, 갖고 싶은 것과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궁금해하지 않을 거라고, 대열의 끝으로 밀려날 것을 걱정하지 않을 거라고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네트워크이론은 당신을 자신만 뒤쳐지거나 소외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구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당신이 유연하게 형태를 만들어나가면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할 방향과 목적은 알려줄 수 있다. 일단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면 탐색을 시작해서, 대량의 정보와 구성 요소 중에서 어떤 것이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는지 알아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최적의 경로를 발견하고 발전시켜서, 상황이 바뀔 때마다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을 계속 뒤섞을 수 있을까?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기준이 필요하다. 중요하고 필요한 요소들은 선으로 정해두기.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규정하지 않고 존재하는 그대로 건드리지 말고 두기. 그 상태 그대로도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려면 중요하고 필요한 요소들이 선명하게 배경을 형성해줘야한다. **열심히 생각해서 가장 적절한 해를 내놓는 식을 통해 결과를 내야 하는 일이 있고, "결정" 방법을 "식" 같은게 아니라 그 사안만의 결정하는 방법대로 두고 어느순간 결정할만큼 선명해졌을때, 그 시점이 정답이라고 믿고 그 시점에서의 위치를 결과로 내야하는일도 있고. 그런것같네 경사하강법은 머신러닝에서 가장 기본적인 기술의 하나이며, 삶의 네트워크를 탐색하는 우리 모두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주는 개념이다. 첫 번째 교훈은 우리는 경로 전체를 미리 볼 수 없으며, 심지어 대부분을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노드를 연결하고 군집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결국 길을 따라 아래로, 즉 미래로 갈수록 우리의 시야는 흐릿해진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경사하강법의 두 번째 교훈은 현재의 전후 사정이 당신이 지금 당장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이 결정 과정에서 경사도를 시험하듯이, 우리도 우리만의 기준에 따라 특정 경로의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 이 길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는가, 성취감이 더 큰가, 더 의미 있는가? 우리는 미래에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할 수 없지만, 여행의 방향을 시험해보고 삶의 비용함수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 여기서 가치와 목적에 대한 감각을 개발하고, 매슬로의 욕구 단계의 상층을 충족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는 일단 음식과 쉼터처럼 가장 기본적인 인간 욕구를 충족하면 우리의 관심은 더 덧없는 문제, 즉 성취감을 느끼고 존경받고 문제를 해결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능력 같은 것으로 이동한다고 말한다. 만약 그 방향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즉 경사도가 차츰 감소하면 당신의 모멘텀도 줄어들면서 침체되거나 멍해지거나 그저 뭔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변화하게 된다.* 경사하강법 알고리즘은 선택에 한해서는 감상적이지 않다. 만약 가장 가파른 하강 경로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기꺼이 두 단계 뒤로 물러난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도 경로를 선택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며, 언제든 목표와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면 경로를 바꿔야 한다.** 또한 곧고 완벽하고 유일한 길은 없으며, 다만 발견해서 따라가기까지 기꺼움, 흥미,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 길만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이 선택하는 최고의 경로는 항상 객관적인 안정성 보다는 여러 요인에 좌우될 것이다. 이는 선택 사항을 탐색할 시간이 얼마나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어느 정도의 완벽주의자인가에 달렸다.*** 목표를 설정하고 추구하는 일은 두려울 수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스포츠인 암벽 등반처럼 이것도 그저 적절한 장비와 개인의 노력 문제다. 하이젠베르크는 우리에게 빌레이(암벽 등반에서 등반자의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로프 조작 기술)를, 네트워크이론은 밧줄을, 경사하강법은 경로를 제공한다. *학습에서 멈춰야할 지점은 어디일까? 학습의 목표가 되는 적용 분야에의 적합성보다는 학습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어느 지점에서 멈춰야 할 것이다. 그 말은? 너무 정확해지면. 또는 너무 어디서 본것같아지면. 그럼 학습을 멈추고 남은 역량은 어디에 써야하는가? 목표에 안전하게 도착하는데 써야한다. 역량은 조금 남아야 제대로 분배한거다. **그리디 알고리즘의 반대 발명하면 좋을듯. 대인배 알고리즘: 너무 멀어질때만 수정하면됨. ***"동전 던지기 결과"를 예측하기 위한 학습을 수행한다고 하자. 1/2 라는 답보다 아주 적절한 양의 적은 오차를 넣는게 정답에 더 가까울 때도 있을 것이다. 아닐 때도 있ㅇ르 것이다. 고장난 시계가 하루에 두번 맞듯이. 그렇다고 해서 "동전"이 앞면과 뒷면 말고 다른 면을 갖고있는 것은 아니다. 동전은 정확히 앞면과 뒷면만 존재하며 1을 둘에 할당하면 (미묘한 무게차이 같은걸 신경쓰지 않으면) 1/2 를 할당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상식적으로) 억지이다. 하지만 10번 던졌을때 정확히 5번이 나오는가 하면, 10번 던지기를 10번 해보면 5번이 나오는 게 더 적을 것이다. 목적을 확실히 해야한다. "동전"의 특성을 알아내는 것인가? 아니면 "동전 던지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인가? "동전"의 특성을 알아내는게 목적이라면 10번을 10번 한 뒤 smoothing을 해서 1/2 로 결정하면 된다. "동전 던지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더 정확히는 "동전 던지기 결과를 누구보다 가장 정확히 맞히는것" 이 목적이며 다른 결과는 무의미하다면, 1/2에 난수를 더하는게 목적에는 더 부합할지 모른다. 예측이란 그런것.. 출처 책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책 #자신의존재에대해사과하지말것
2025-02-18 ⋯ 상자와 지도
더 나은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 정보에 접근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더 체계화할 필요는 없다.
머신러닝이 우리를 그런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고 예상하게 되지만 사실 그 반대다. 알고리즘은 복잡성과 무작위성 속에서 역할을 수행하며, 환경의 변화에 효율적으로 반응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단순한 패턴을 추구하는 경향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사고방식에서 나타난다. 기계는 복잡한 현실을 전체적인 데이터 집합의 또 다른 일부로 여겨 단순하게 접근하는 데 반해, 정작 그로부터 도피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다. 단순하거나 직접적이지 않은 대상을 더 복잡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통찰력과 자발성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다. 비지도 학습 머신러닝 중 클러스터링은 데이터를 A, B, C로 분류하려는 선입견 없이 "공통점"을 기준으로 분류한다. 미리 정한 결론에 꿰맞추기보다 데이터 자체가 말해주기를 바랄 때 특히 유용하다. 상자는 유용한 증거와 대안을 모아 정돈된 형태로 만든 것이다. 상자 속 사고방식은 깔끔하기 때문에 선택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나무는 유기적으로 자란다. 나무는 우리를 사방으로 이끌 수 있고, 그중 상당수는 의사 결정의 막다른 길이나 완벽한 미궁으로 밝혀진다.
그러면 어느 쪽이 나을까? 상자, 아니면 나무? 정답은 '둘 다 필요하다'이다. 상자 속에서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나는 내 주변 세상과 사람들에 관해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내가 더 많은 데이터를 모을수록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모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방법이 없었기에 쓸모없는 잡동사니로 가득 찬 상자만 점점 늘어났다. 나는 이 과정 때문에 거의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때로는 몸을 어느 각도로 유지해야 하는지에 집중하느라 침대에서 벗어날 때조차 고군분투 해야했다. 물론 분류는 강력한 도구이며 어떤 옷을 입을지, 무슨 영화를 볼지 같은 문제에서 즉각적으로 결정하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정보를 처리하고 해석하며, 미래를 알기 위해 과거의 증거를 이용해서 까다로운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심각하게 억압한다. 우리는 모두 모순과 불가측성, 무작위성을 헤쳐나간다. 이들은 삶을 현실로 만드는 요소다.
우리는 둘 이상의 선택지 중에서 골라야 하며, 고려해야 할 증거들은 파일로 정리되어있지 않다. 깔끔한 상자 모서리는 든든하지만 환상일 뿐이다. 현실의 그 무엇도 그렇게 딱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자는 고정되어 있고 휘어지지도 않지만, 우리의 삶은 역동적이며 계속 변한다. 좋은 의사 결정은 보통 확실성을 가정하는 데서 나오지 않으며 혼돈, 다른 말로는 증거라는 것에서 나온다. 의사 결정을 둘러싼 데이터 집합을 충분히 깊이 탐색하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과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다양한 의사 결정으로 이어지는 나뭇가지가 일제히 닫히거나 열리지 않는다면 사실상 눈가리개를 한 채 선택하는 셈이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데이터 포인트를 충분히 수집하고 가능성이 큰 계획을 구상하면 대부분 상황에서 제대로 된 지도를 손에 쥘 수 있다. 관행이나 미리 정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증거가 의사결정을 이끌 것이고, 다양한 결과와 각 결과가 미치는 영향을 스스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책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책 #자신의존재에대해사과하지말것
2025-01-30 ⋯ 혼돈과 관점
나는 그에게 통쾌하게 반박해줄 말이 있었으면 싶었다. 우리는 중요하다고, 우리는 사실 아주 중요하다고 말해줄 방법. 그러나 주먹이 올라가는 게 느껴지자마자 내 뇌가 주먹을 다시 잡아당겼다. 왜냐하면 당연히, 우리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주의 냉엄한 진실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이 진실을 무시하는 것은 정확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천천히 그것이 초점 속으로 들어왔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다정하게 흔들어주는 손, 연필로 그린 스케치, 나일론 실에 꿴 플라스틱 구슬들-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점이 내가 우생학자들에 대해 그토록 격노하는 이유다. 그들은 이런 그물망의 가능성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 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분기학자들이 등장하던 시기에 "수리분류학"이라는 방법이 유행하고 있었다. 이는 컴퓨터가 그 무지막지한 계산 능력으로 진화적 친연성을 판단해줄 거라는 희망에 기초한 방법이다. 종들을 비교할 때 생각해낼 수 있는 특징들(예를 들어 새들을 비교한다면 부리의 유형, 알의 크기, 깃털 색깔, 척추골의 수, 내장의 길이 등)을 그냥 최대한 많이 입력하면, 컴퓨터가 개연성 있는 관계의 패턴을 뽑아내주는 것이다. 이는 두 종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을수록 둘이 가까운 관계일 거라는 생각에 기초한 방법이다. 그러나 컴퓨터는 전혀 말이 안되는 관계를 제안할 때도 많았다. 인간의 직관을 완전히 제거했더니... 혼돈만 남은 것이다. 그러나 분기학자들은 어떤 특징들이 다른 특징보다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종들이 거쳐 간 시간의 흐름을 가장 신빙성 있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공통의 진화적 참신함"이라고 부른 특징들, 그러니까 새롭게 추가된 특징들이었다. 이를테면 완전히 새로운 더듬이라든가 반짝이는 노란 지느러미 같은 것들 말이다. 모델에 추가된 참신한 업그레이드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면, 그 새로운 특징을 따라 생물들이 거쳐 간 다양한 버전을 추적할 수 있고, 시간의 화살이 어느 길을 가리키고 있는지 (좀 더 자신 있게) 추측할 수 있고, 더 큰 확신을 갖고 누가 누구를 낳았는지 단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발견은 단순했고, 미묘했고, 특출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아주 놀라운 관계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박쥐는 날개가 달린 설치류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낙타와 훨씬 더 가깝고, 고래는 실제로 유제류(발굽이 있는 동물로, 사슴이 속한 과)라는 사실이 그렇다. "어류"라는 범주가 모든 차이를 가리고 있다. 그 범주는 가까운 사촌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떼어놓음으로써 잘못된 거리 감각을 만들어낸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반세기 동안 분류학자로 일해온 데이브 스미스는 애매하게 얼버무리는 몇 마디를 뱉어내다가 결국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인정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의 일, 생명의 진정한 상호 연관을 밝혀내는 일을 정말로 할 마음이 있다면, 그들이 하는 말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류"라는 것은 그것을 제대로 직시한다면 사실 틀린 범주라는 것을 말이다. 명료하지 않고 날림으로 만든 이 범주-분류학자들의 용어로는 측계통군-에는 그 구성원들의 일부가 빠져 있다. 나중에 나는 미국자연사박물관의 어류분과 수석 큐레이터인 멜라니 스티아스니에게 전화해 긍게서도 어류라는 범주가 사라졌는지 물었다. 멜라니는 "어이쿠" 하고 운을 떼더니 "널리 그렇게 받아들여지죠"라고 말했다. 당신도 상상할 수 있듯이 무덤덤하게. "맞아요. 직관에 어긋납니다!" 자칭 "횡설수설하는 분기학자"인 릭 윈터바텀이 내게 한 말이다. 그는 30년 넘게 학생들에게 실제 자연 세계가 우리가 설정한 범주대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려 노력해왔다. 그리고 그 관념이 학계 밖으로는 도저히 퍼져나가지 않는 것을 보면서 크게 실망했다. 그는 자기가 대적하기에 너무 센 적수를 상대하고 있는 것 같다고 걱정스러워했다. 그 센 적수는 바로 직관이다. 그는 사람들이 결코 편안함을 진실과 맞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주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서 그가 사랑하는 물고기를 빼앗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낀 약간의 병적인 만족감을 제외하면, 내게 그것이 중요한 일인가? 조금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표본들을 유리단지에 정리하는 것이 직업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범주로서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한 일일까? 헤더는 코페르니쿠스를 예로 들었다. 그 시대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움직이고 있는 게 별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그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에 관해 생각하고, 별들이 매일 밤 그들 머리 위에서 빙빙 돌고 있는 천구의 천정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이 서서히 놓아버릴 수 있도록 수고스럽게 복잡한 사고를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별들을 포기하면 우주를 얻게 되니까"라고 헤더는 말했다. 물고기를 포기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순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물고기의 반대편에 다른 뭔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 물고기를 놓아주는 일은 그 결과로 또 다른 어떤 실존적 변화를 불러온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아버지는 "어류"라는 단어를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다는 건 이해하지만 유용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세계를 경험하는 제한된 방식에 자신을 가두게 되는 것이 걱정되지 않으냐고 내가 묻자, 아버지는 불만스럽게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그게 뭐든, 아직 내가 해방되기에는 너무 늙었어."
큰언니는 물고기를 놓아버리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언니는 어류라는 범주 전체를 바로 손에서 놓아버렸다. 왜 언니한테는 그게 그렇게 쉬운 거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인간은 원래 곧잘 틀리잖아." 언니는 평생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늘 반복적으로 오해해왔다고 말했다. 의사들에게는 오진을 받고, 급우들과 이웃들, 부모, 나에게서는 오해를 받았다고 말이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정말로 이 물음은 모든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나는 시카고를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더이상 나의 연옥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나는 내 인생을 계속 살아가야 했고 혼돈 속으로 다시 들어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봐야 했다. '나는 이 사람이 없는 인생은 결코 원하지 않아.' 이건 내가 그려왔던 인생이 아니었다. 체격이 아주 작고, 나보다 일곱 살이 어리며, 자전거 경주에서 나를 이기고, 툭하면 나를 향해 어이없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는 여자를 쫓아다니는 것은. 그러나 이건 내가 원하는 인생이다.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 자연이 프린트된 커튼 뒤를 들춰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았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었다.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요약 우리가 지어낸 질서를 무너뜨리고 그 짜임을 풀어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라고 하는데, '진실이 아닌 모든 것을 믿지 않기' 또한 맹목적으로 느껴짐. 유용하다면 취하기 vs 진실이 아닌 모든 것을 믿지 않기. 이 둘 사이를 왔다갔다,, 물고기를 놓아주는 일이 사람에 따라 다 다르듯이 '사실'의 중요도는 내게 엄연히 다르다. 어떤 사실에 대한 태도를 둘 사이의 어느 지점에 할당할지는 나만의 기준으로 정하면 되는 것이다. 출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 #물고기는존재하지않는다
2025-01-28 ⋯ 운명의 형태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은 아버지의 모든 걸음, 베어 무는 모든 것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아버지는 수년 동안 오토바이를 몰고,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마시고, 물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 때마다 큰 배로 풍덩 수면을 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에 한계를 설정하는 자기만의 도덕률을 세우고 또 지키고자 자신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반세기 동안 거의 매일 아침 어머니에게 커피를 만들어주었고, 자기 학생들에게 헌신적이었다. 그들은 명절 때 우리 집에 식사하러 오고, 때로는 우리 집에서 살기도 했다. 우리 집 식탁에는 아버지가 떨리는 손으로 새긴 수천 개의 작은 숫자들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우리 세 자매에게 수학의 논리를 이해시키려 노력하며 보낸 무수한 밤들의 물리적 기록이다. 암울한 현실일 수도 있는 것들이 아버지에게는 오히려 인생에 활력을 가득 불어넣고, 아버지가 크고 대범하게 살도록 만들었다. 나는 평생 광대 신발을 신은 허무주의자 같은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려 노력해왔다. 우리의 무의미함을 직시하고, 그런 무의미함 때문에 오히려 행복을 향해 뒤뚱뒤뚱 나아가려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그것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내 주의를 끌었던 이유다. 결코 승리하지 못할 거라는 그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혼돈을 향해 계속 바늘을 찔러 넣도록 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가 우연히 어떤 비법을, 무정한 세상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어떤 처방을 발견한 게 아닐까 궁금했다. 게다가 그는 과학자였으므로, 나는 무엇이든 끈질기게 지속하는 일에 대한 그의 정당화가 내 아버지가 심어준 세계관에도 들어맞을 수 있을 거라는 작은 가능성을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무언가 핵심적인 비결을 찾아냈을지도 몰랐다.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 가장 암울한 날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비결, 신앙 없이도 믿음을 갖는 비결 말이다. “낮이나 밤이나 호스로 물을 뿌려. 낮이나 밤이나.” 해는 뜨고 지고, 뜨고 지고, 데이비드의 동료 두 사람은 고무 덧신을 신고서 물고기들의 살덩이를 향해 호스로 물을 뿌렸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불굴의 기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창밖에는 그들의 선지자가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있고, 공기 중에는 먼지가 희부옇게 드리워 있으며, 이 난장판을 어떻게 다시 수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차가운 물과 불확실성을 정면으로 고스란히 받아내며 적어도 당장은 이것들을 마르지 않게 하겠다는 단호한 의지.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어떤 말을 속삭였을까? 자기가 평생 해온 작업의 파편들을 쓸어 담을 때,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 물고기들을 던져버릴 때, 이튿날 밤 작은아들 에릭을 침대에 뉘일 때, (영원히 끝나지 않을, 엄청난 양의) 번개와 세균과 지각변동이 잠복한 채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을 때, 자신에게 계속 박차를 가하기 위해, 그 모든 일의 허망함에 짓눌려 으스러지지 않기 위해 그는 정확히 어떤 말을 자신에게 들려주었을까? 나는 시카고로 옮겨 갔다. 친구 헤더가 몇 주 동안은 자기 집 남는 방에서 지내도 되니 거기서 앞으로 뭘 할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친절한 제안이었다. 나는 시카고가 좋았다. 시카고의 추위가, 시카고의 익명성이. 나는 누구든 될 수 있었다. 컨버스 스니커즈를 신고, 탄산화 생성물이 약간 포함되어 있는 듯한 까끌까끌한 보도를 따라 걸었다. 나는 폴짝 뛰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람둥이가 아니라,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 우주적 정의가 실행되는 대상이 아니라, 고향에 행복한 가정이 있는 사람이. 그러나 헤더가 남자친구와 시내로 외출한 밤, 도시의 자주색 불빛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올 때면 나는 그 모든 것의 현실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내 인생에 생긴 공백을, 내가 품은 희망의 빛이 나를 더 따뜻이 데워줄수록 점점 더 넓어지고 차가워지기만 하는 그 공백을 말이다. 그래서였다. 나는 절박했다. 단순하게 말하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책에서,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일을 정당화하는 그 정확한 문장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절박했다. 그는 갈수록 더욱더 내 아버지와 비슷한 소리를 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매번 숨 쉴 때마다 자신의 무의미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거기서 자기만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심지어 절제에 관한 에세이에서도 그것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왜 그토록 약에 반대했을까? 그건 약이 사람을 실제보다 더 강력하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혹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약이 “신경계가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8 예를 들어 알코올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로는 몸이 차가울 때도 따뜻하게 느끼도록 하고, 아무 근거 없이 기분 좋아지게 하며, 인격 수양의 핵심을 차지하는 제한과 자제에서 해방되었다고 느끼게 한다.” 달리 말하면, 자신에 대한 낙관적인 관점은 자기 발전에 대한 저주라는 것이다. 자신을 정체시키고 자기 발달을 저해하고 도덕적으로 미숙하게 만드는 길이자 멍청이가 되는 지름길이다. 이런 게 정말 그의 세계관이라면, 그가 그렇게 자기 과신을 경계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그런 집요함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모든 게 사라지고 부서지고 희망이라곤 없는 최악의 날에조차 어떻게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밖으로 나가게 한 것일까? 마침내 나는 가장 유의미한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손에 넣었다. 그것은 《절망의 철학》이라는 제목의 작고 검은 책이다. 책에서 데이비드는 과학적 세계관이 골치 아픈 점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 그 세계관이 보여주는 것은 허망함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우리가 붙인 불은 숯을 남기고 죽는다. 우리가 지은 성들은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다. 강은 바닥을 드러내고 사막의 모래만 남긴다. (…) 어느 쪽으로 눈을 돌리든 생명의 과정을 묘사하려면 기운 빠지게 하는 은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데이비드는 청교도답게 손을 게으름에서 벗어나게 하라고 권한다. “활동적인 야외 생활과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건강과 함께” “영혼의 고통은 사라진다.” 그는 우리 몸이 일으키는 전기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시기에 쓴 한 강의 요강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행하고, 돕고, 일하고, 사랑하고, 싸우고, 정복하고, 실제로 실행하고, 스스로 활동하는 데서 온다.” 내 생각에는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그가 말하려는 요점 같다. 여정을 즐기고 작은 것들을 음미하라고 말이다. 복숭아의 “감미로운” 맛, 열대어의 “호화로운” 색깔, “전사가 느끼는 준엄한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운동 후 쇄도하는 쾌감 등. 그러면 나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면 어떻게 하라는 걸까? 데이비드는 나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동정심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절망의 철학》의 최종 결론은 절망이 선택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절망이 청소년기에 자연스럽게 거쳐 가는 단계라고 생각하기는 해도 그런 감정을 떨쳐내지는 못하는 사람들은 경멸한다. 나는 익숙한 수치심이 나를 덮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버지가 엄청 차가운 호수에 풍덩 뛰어들었다가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만면에 띠고 큰 숨을 내쉬며 수면으로 치솟는 모습을 볼 때 느꼈던 바로 그 감정이었다. 나는 왜 아버지처럼 저렇게 살 수 없는 걸까?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뭘까? 그 답을 찾으려는 필사적인 마음에 나는 계속 책을 읽으며, 위생과 유머, 외교, 평화주의에 관한 그의 비판문과 시, 강의 노트, 알코올과 립스틱과 전쟁에 관한 논쟁을 뒤졌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오후 나는 발견했다. 공포에 대한 해독제, 희망에 대한 처방을 말이다. 그것은 그가 ‘진화의 철학’이라 이름 붙인 강의 요강의 제일 밑에 묻혀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그날 하루의 강의를 내가 풀고자 했던 그 난제, 바로 과학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바쳤다. “이러한 인생관은 염세주의로 이어지는가?” 강의가 끝나갈 무렵 그는 학생들에게 일종의 마술 같은 주문을 걸었다. 혼돈이 주는 냉기를 떨쳐버리는 한 가지 방법을 말이다. 특별한 활자체로 된 여덟 개의 단어.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나는 경악했다. 이거였다. 내 아버지가 즐겨 쓰는 바로 그 비법. 오늘날까지도 아버지 책상 위 액자 속에 담겨 있는 바로 그 단어들. 다윈이 외친 투쟁의 권유. 내 아버지와는 다르게—반항적이고, 희망과 신념이 가득한 사람으로—보였던 데이비드지만, 결국 그에게도 내게 알려줄 새로운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늘 들어왔던 말을 또다시 상기시키는 것밖에는. 장엄함은 *존재*해. 네가 그걸 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 나는 스탠지에게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그 지진과 바늘에 대한 나의 집착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건 왜 그러는지에 관한 집착이야”라고 나는 말했다. “한 사람을 계속 나아가도록 몰아대는 건 뭘까?” 그때 그 친구가 한 말은 “흠”이 다여서 나는 맥이 좀 빠졌지만, 다음 날 오후 이메일을 통해 좀 더 긴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네가 말한 그 이야기 말이야.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정교한 뭔가를 쌓아 올렸다가… 그 모든 게 다 무너지는 걸 목격한 그 사람… 그 사람은 계속 나아갈 의지를 어디서 다시 찾았을까 하는 그 질문.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파괴되지 않는 것은 낙관주의와는 전혀 무관해. 낙관주의에 비하면 훨씬 더 심오하고 자의식은 훨씬 덜하지. 우리는 그 파괴되지 않는 것을 온갖 종류의 다른 상징과 희망과 야심 등으로 가리고 있어. 이런 상징과 희망과 야심은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인정하라고 강요하지 않으니까. 음… 만약 그 모든 잉여를 제거한다면(혹은 제거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파괴되지 않는 그것을 찾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가 일단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카프카는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 그는 우리가 파괴되지 않는 것을 낙관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해주지 않아), 그것은 실제로 우리를 찢어발기고 파괴할 수도 있어.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거지…. 나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경이로운 개념이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비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밀고 나아가는 것이 미친 짓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해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 개념은 단지 내가 그것을 거역한다면 나를 부숴버리겠다고만 약속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잘 들어맞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그의 회고록으로 돌아갔다.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는, 아마도 그전까지는 내게 불활성 상태로 있었을 개념에 생기를 불어넣은 이 새로운 단어로 무장한 채, 나는 그 개념이 데이비드가 쓴 글들 속 어딘가에 잠복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 증거를 찾아 나섰다. 그 증거는 긴 발췌문 속에 묻혀 있었다. 지진이 있고 겨우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샌프란시스코가 입은 피해의 규모를 조사하려 애쓰고 있을 때 데이비드 본인이 쓴 개인적인 에세이○에서 발췌한 글이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창조하기 시작한 이래, 사람이 노력해서 이룬 결과가 그토록 처참하게 파괴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엄청난 규모의 재앙 앞에서 그렇게 푸념하지 않는 인간을 만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평범한 한 남자가 자기 자신에게 그토록 희망차고, 그토록 용감하며, 그토록 자신과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는 모습을 보여준 일은 그전엔 결코 없었다. 왜냐하면 결국 살아남는 것은 사람이고,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도 사람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불에 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 지진과 화재가 준 교훈이다. 그가 지은 집은 무너지기 쉬운 카드로 지은 집이지만, 그는 집 밖에 서 있고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다. 위대한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그보다 더 경이로운 일은 도시가 되는 것이다. 도시란 사람들로 이루어지며, 사람은 영원히 자신이 창조한 것들보다 높이 올라가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보다 더 위대하다.이 얼마나 경이롭고 분발을 요구하는 투쟁의 권유인가.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위로이자, 어깨를 움켜쥐는 손길인가. 그런데 작은 문제가 하나 있다. 그가 쓴 단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신도 그 문제를 발견할 것이다. 그 진주알을 만든 최초의 작은 모래알 하나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이 말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 결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다. 사악함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그가 경고했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 자기 경력을 바쳐 맞서 싸워왔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자, 그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가치가 있다고 말했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다.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까! 그조차도 절망에 완전히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면 그 거짓말이 진실이기를 믿어야만 했던 것이다. 출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 #물고기는존재하지않는다
2024-12-31 ⋯ 좀비를 줄 세우는 방법
일론 머스크가 물려받은 유산과 혈통은 그의 뇌 배선과 어우러져 때때로 그를 냉담하게도, 충동적이게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리스크에 대한 극도로 높은 수준의 내성으로 이어졌다. 그는 리스크를 냉정하게 계산할 수도 있었고, 열정적으로 수용할 수도 있었다. “일론은 리스크 그 자체를 원합니다.” 페이팔PayPal 초창기에 머스크의 파트너로 일했던 피터 틸은 말한다. “그는 리스크를 즐기는 듯합니다. 때로는 정말 리스크에 중독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머스크는 태풍이 몰려올 때 가장 강력한 생기를 느끼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나는 폭풍을 위해 태어났어요. 그러니 고요함은 나에게 적합하지 않지요.”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이 한 말이다. 일론 머스크도 마찬가지다. 그는 일과 연애 양 측면에서 폭풍과 드라마를 끌어당기는 힘, 때로는 갈망을 발달시켰다(그래서 그가 그렇게 부부 또는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이리라). 그는 위기나 데드라인, 할 일의 폭증과 같은 상황에서 번성했다. 복잡하고 난해한 도전에 직면하면, 그로 인한 긴장으로 종종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심지어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그에게 활력도 불어넣었다. “형은 드라마를 끄는 자석과 같아요.” 킴벌이 말한다. “드라마가 그의 강박이자 삶의 주제입니다.” 예전에 내가 스티브 잡스에 관해 취재하던 당시, 그의 파트너였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꼭 그렇게 비열하게, 꼭 그렇게 거칠고 잔인하게, 꼭 그렇게 매번 드라마틱하게 굴었어야 했을까?” 인터뷰 말미에 해당 질문과 관련해 본인은 어떻게 다른지를 묻자, 워즈니악은 만약 자신이 애플을 경영했더라면 그보다는 좀 더 온화하게 처신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직원 모두를 가족처럼 대했을 것이고, 즉결로 해고하거나 그러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후 잠시 멈추었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만약 내가 애플을 경영했더라면, 매킨토시 같은 것은 결코 만들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일론 머스크에 대해서도 유사한 질문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괴팍하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를 전기차의 미래로, 그리고 화성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2022년 초, 스페이스X에서 31차례나 로켓을 성공적으로 발사했고, 테슬라의 자동차가 100만 대 가까이 팔렸으며, 머스크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등극한 기념비적인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으며 머스크는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자신의 충동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사고방식을 위기 모드에서 다른 것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가 나에게 한 말이다. “대략 지난 14년 동안 위기 모드로 살아왔거든요. 아니 거의 평생을 그랬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그것은 새해 결심이라기보다는 아쉬움을 담은 말이었다. 그런 맹세를 했음에도 그는 세계 최상의 놀이터라 할 수 있는 트위터의 주식을 비밀리에 사들이고 있었다. 머스크는 나중에 자신이 아스퍼거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밝히고 심지어 농담까지 하곤 했다. 아스퍼거증후군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한 형태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으로, 사회성과 인간관계, 정서적 연결, 자기 조절 능력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렸을 때 실제로 그런 진단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어머니의 말이다. “하지만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그 말이 맞겠지요.” 그의 그런 상태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악화되었다. 그의 절친한 친구 안토니오 그라시아스에 따르면,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는 괴롭힘을 당하거나 위협을 받는다고 느낄 때면 어린 시절에 얻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가 뇌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부분인 변연계를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그 결과 그는 사회적 신호를 잘 포착하지 못했다. “나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말하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곤 했어요.” 그의 말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이 항상 진심은 아니라는 것을 오로지 독서를 통해 배웠어요.” 그는 공학, 물리학, 코딩과 같은 보다 정확한 주제를 선호했다. 모든 심리적 특성이 그렇듯이 머스크의 특성 역시 복합적이고 개별화되어 있었다. 그는 특히 자녀와 관련해서는 매우 따뜻해질 수 있었고, 혼자 있게 되면 불안감을 심하게 느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일상적인 친절이나 따뜻함,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만들어내는 감정 수용기가 없었다. 그는 공감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다. 덜 전문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그는 개자식처럼 굴 수도 있었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이 더 돈독했던 아버지는 일론에게 우리의 제한된 감각과 머리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조종사 중에는 무신론자가 없는 법이지요.” 그의 말이다. 일론은 나중에 이렇게 덧붙였다. “시험 시간에는 무신론자가 없는 법이지요.” 하지만 일론은 일찍부터 과학이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있으므로 창조주나 신성을 불러내 삶에 개입시킬 필요가 없다고 믿게 되었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일론은 무언가 빠졌다는 생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존재에 대한 종교적 설명과 과학적 설명 모두 ‘우주는 어디에서 왔으며 왜 존재하는가?’와 같은 정말 중요한 질문을 다루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물리학은 우주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었지만, 그 존재의 이유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가 스스로 ‘청소년기의 실존적 위기’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어졌다. “나는 삶과 우주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란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우울해졌지요.” 훌륭한 책벌레들이 그러하듯이, 그는 독서를 통해 이런 의문을 해결했다. 처음에 그는 불안한 청소년의 전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니체나 하이데거, 쇼펜하우어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책을 읽은 것이다. 이것은 일론의 혼란을 절망으로 바꾸어놓았다. “십대들에게는 니체를 읽으라고 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론은 말한다. 머스크의 그런 청소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공상과학 소설은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였다. 유쾌함과 풍자가 넘치는 이 이야기는 머스크가 나름의 철학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그의 진지한 표정에 익살스러운 유머를 더해주었다. “그 책은 내가 실존적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었어요. 그 책을 읽는 순간 모든 부분에서 미묘한 방식으로 놀랄 만큼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이 소설에는 초공간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외계 문명에 의해 지구가 파괴되기 몇 초 전에 지나가는 우주선에 의해 구조되는 아서 덴트라는 인간이 등장한다. 덴트는 자신을 구해준 외계인과 함께 “불가해성을 예술로 바꾼” 머리 두 개 달린 대통령이 통치하는 은하계의 다양한 구석구석을 탐험한다. 은하계의 주민들은 “생명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며 슈퍼컴퓨터를 만들지만, 그 컴퓨터는 700만 년 이상이 지난 후 그 질문에 대해 ‘42’라는 답을 내놓는다. 당황한 외계인들이 어리둥절해하며 법석을 떨자 컴퓨터는 응답한다. “확실히 답이 그렇게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문제는 여러분이 질문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교훈은 머스크에게 그대로 각인되었다. “나는 그 책을 통해 의식의 범위를 확장해야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을 더 잘 던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우리 의식의 범위를 우주로 확장해야 하는 거지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일론은 때때로 다소 거칠고 쓴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지와 비슷한 웃음이었다. 일론이 사용하는 일부 단어와 그가 응시하는 방식, 빛에서 어둠으로 그리고 다시 빛으로 갑작스럽게 변하는 모습은 그의 가족들에게 그의 내부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에롤을 떠올리게 한다. “일론이 나에게 들려준 끔찍한 이야기의 그림자가 자신의 행동방식에서 드러나는 것을 보곤 했어요.” 일론의 첫 번째 부인인 저스틴의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신이 성장한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해주었지요.” 이따금 그녀는 감히 “당신이 아버지로 변하고 있어요”와 같은 말을 입에 올렸다. “사실 그것은 그가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경고하는 우리의 암호였어요”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그러나 저스틴은 항상 자녀에게 감정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일론이 아버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에롤을 보면 정말로 주변에서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반면에 좀비가 창궐하는 대재앙이 발생한다면 일론의 팀에 속하고 싶을 거예요. 일론이라면 좀비를 줄 세우는 방법을 알아낼 것이기 때문이죠. 그는 매우 냉혹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승리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에요.” 출처 책 일론 머스크
#책 #일론머스크
2024-12-31 ⋯ 인터넷, 지속 가능한 에너지, 우주여행
머스크는 여름이 끝날 무렵 스탠퍼드대학원에 진학하여 재료과학을 공부할 계획을 세웠다. 여전히 커패시터에 매료된 그는 그것으로 전기자동차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었다. “첨단 칩 제조 장비를 활용하여 자동차의 주행거리를 늘리기에 충분한 에너지 밀도를 가진 고체 소자 울트라 커패시터를 만들어볼 생각이었어요.” 그는 말한다. 하지만 등록기간이 가까워지면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스탠퍼드에서 몇 년을 보내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는데 그 커패시터가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지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사실 대부분의 박사학위는 무의미해요. 실제로 그 부류 가운데 세상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머스크의 말이다. 그 무렵 그는 마치 ‘만트라’처럼 되새기고 되새길 인생의 비전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인류에게 진정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어요. 그리고 세 가지를 떠올렸지요. 인터넷, 지속 가능한 에너지, 우주여행.” 1995년 여름, 머스크는 그중 첫 번째인 인터넷이 그가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 전 웹이 상업용으로 개방되었으며, 8월 초에 브라우저 스타트업 넷스케이프Netscape가 IPO를 단행해 하루 만에 시가총액 29억 달러의 기업으로 날아오른 상황이었다. 머스크는 사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졸업반 시절에 구상한 인터넷 기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하나 갖고 있었다. 뉴욕 및 뉴잉글랜드 지역 전신전화 회사인 나이넥스NYNEX의 한 임원이 학교 강연회에 와서 옐로페이지(미국의 업종별 전화번호부-옮긴이)의 온라인 버전 출시 계획에 대해 밝혔을 때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빅옐로Big Yellow’라는 이름의 그 온라인 버전은 인터랙티브 기능을 갖추어 사용자들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정보를 맞춤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임원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머스크는 나이넥스가 진정한 인터랙티브의 구현 방법을 전혀 모른다고 생각했다(결과적으로 그것은 올바른 판단이었다). 그는 킴벌에게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게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킴벌은 사업체 목록과 지도 데이터를 결합할 수 있는 코드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버추얼 시티내비게이터Virtual City Navigator’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탠퍼드대학원 등록 마감일 직전, 머스크는 노바스코샤 은행의 피터 니콜슨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토론토로 갔다. 버추얼 시티내비게이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계속 추구해야 할까요, 아니면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게 나을까요? 스탠퍼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니콜슨은 애매하게 둘러말하지 않았다. “인터넷 혁명 같은 것은 일생에 단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니콜슨은 머스크와 함께 온타리오 호숫가를 따라 걸으며 말했다. “대학원은 나중에라도 뜻만 있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지.” 머스크는 팰로앨토로 돌아와 렌에게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다른 모든 것은 보류하기로 했어. 지금은 인터넷의 물결에 올라탈 때야.” 하지만 그는 사실 자신의 베팅에 보험을 들었다. 스탠퍼드에 정식 등록하고 즉시 휴학을 신청한 것이다. “실은 제가 최초로 인터넷 지도와 전화번호부를 갖춘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습니다.” 머스크는 재료과학과 담당교수인 빌 닉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마 실패할 겁니다. 실패하는 경우 다시 돌아오고 싶습니다.” 닉스는 머스크가 학업을 연기하는 것은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렇지만 머스크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머스크 형제는 수익금 가운데서 아버지에게 30만 달러를, 어머니에게 100만 달러를 드렸다. 일론은 50평짜리 콘도를 구입하고 당시 가장 빠른 양산차인 맥라렌 F1 스포츠카를 100만 달러에 구입하는 등 나름대로 궁극의 사치를 부렸다. 그는 그의 집에서 차가 배달되는 모습을 촬영하게 해달라는 CNN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YMCA에서 샤워를 하고 사무실 바닥에서 잠을 자던 제가 이제 100만 달러짜리 차를 갖게 되었습니다.” 머스크는 트럭에서 차가 내려지는 동안 이렇게 말한 후 거리를 이리저리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충동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분출한 이후, 그는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부에 대한 취향을 경솔하게 과시하는 것이 꼴사나운 짓임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차를 구입한 것을 보고 건방진 제국주의자의 전형적인 행동방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제 가치관이 변했을지 모르지만, 저는 제 가치관이 변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가 변한 걸까? 새롭게 얻은 부로 그는 자신의 욕망과 충동에 거의 제약을 받지 않게 되었지만, 그런 상황은 항상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진지하고 사명감 넘치는 강렬함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작가 마이클 그로스는 실리콘벨리에서 티나 브라운의 번지르르한 잡지인 <토크>에 새로 부자가 된 테크노브랏techno-brat, 즉 기술 열풍을 타고 벼락부자가 된 젊은 리더들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었다. “날카롭게 비판해도 될 만한 허세 가득 찬 주인공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로스는 몇 년 후 이렇게 회상했다. “하지만 2000년에 만난 머스크는 삶의 환희가 넘치는, 너무 호감 가는 인물이라 비판할 수가 없었지요. 그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기대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심했지만, 편하고 개방적이며 매력적이고 재미난 인물이었어요.” 출처 책 일론 머스크
#책 #일론머스크
2024-12-31 ⋯ 인적 네트워크
머스크는 러시아인들이 받아내려 했던 터무니없는 가격을 곱씹으면서, 제 1원리(First Principles-다른 경험적 데이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명한 진리')에 입각한 사고를 동원해 그 상황에 대한 기본 물리학을 파고들었고 거기서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려나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완제품이 기본 재료비보다 얼마나 더 비싼지 계산하는 '바보 지수idiot index'를 개발했다. 제품의 '바보 지수'가 높으면 보다 효율적인 제조기술을 고안하여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로켓은 '바보 지수'가 극도로 높았다. 머스크는 로켓에 들어가는 탄소섬유와 금속, 연료 및 기타 재료의 원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방법을 사용한 완제품의 제작비용은 머스크가 계산한 원가보다 최소 50배 이상 비쌌다. 인류가 화성에 가려면 로켓 기술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했다. 중고 로켓, 특히 러시아의 오래된 로켓에 의존해서는 기술을 발전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는 노트북을 꺼내 중형 로켓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모든 재료와 비용을 세세히 나열하며 스프레드시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뒷자리에 앉은 캔트렐과 그리핀은 술을 주문하며 웃었다. “우리의 저 천재백치께서는 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요?” 그리핀이 캔트렐에게 물었다. 머스크가 몸을 돌려 “이것 좀 봐요, 여러분”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만든 스프레드시트를 보여주었다. “이런 로켓을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캔트렐은 숫자를 살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헐, 내 책을 다 빌려가더니만 결국 이러려고 그랬군.” 그러고는 승무원에게 술을 한 잔 더 달라고 했다. 킴벌은 일론과 저스틴, 아기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네바다는 뇌사 판정을 받은 상태로 3일 동안 생명유지장치를 달고 생을 유지했다. 마침내 호흡기를 끄기로 결정했을 때, 일론은 아기의 마지막 심장 박동을 느꼈고 저스틴은 아기를 품에 안고 죽음의 떨림을 느꼈다. 일론은 주체할 수 없이 흐느꼈다. “마치 늑대처럼 울었어요.” 그의 어머니는 말한다. “늑대처럼….” 일론이 도저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다고 해서 킴벌은 부부가 베벌리윌셔 호텔에 머물도록 조처했다. 호텔 지배인은 그들에게 프레지덴셜 스위트를 내주었다. 일론은 그에게 호텔로 가져왔던 네바다의 옷과 장난감을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일론이 가까스로 집에 가서 한때 아들의 방이었던 곳을 보기까지 3주가 걸렸다. 일론은 슬픔을 조용히 감내했다. 퀸스대학교에서 사귄 친구 나베이드 패룩은 그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로스앤젤레스로 날아와 곁을 지켰다. 패룩은 말한다. “저스틴과 나는 그간의 일에 대한 대화에 일론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그는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들은 대신 영화를 보고 비디오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랜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패룩이 물었다. “기분은 어때? 잘 견디고 있는 거지?” 하지만 일론은 그런 대화 자체를 완전히 차단했다.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그를 알고 지내온 사이였기에 그가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패룩의 말이다. 반대로 저스틴은 자신의 감정에 매우 솔직했다. “남편은 내가 네바다의 죽음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말한다. “그는 내가 감정을 숨김없이 털어놓으면서 감정적으로 자기를 조종하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저스틴은 그가 그렇게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 어린 시절에 발달된 방어기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어두운 상황에 처하면 감정을 차단해버려요. 그에게는 그것이 생존을 위한 방법인 것 같아요.” 요하네스버그에서 출발한 비행의 첫 번째 구간을 마치고 노스캐롤라이나 주 랠리에 도착했을 때, 에롤은 델타항공 담당자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아드님께서 손자 네바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일론은 그 내용을 직접 말할 자신이 없었기에 항공사 담당자에게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에롤이 전화를 받자 킴벌은 상황을 설명하며 말했다. "아버지, 오시면 안돼요." 킴벌은 아버지에게 발길을 돌려 남아공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했지만, 에롤은 거부했다. "아니다, 이미 미국에 도착했으니 로스앤젤레스에 가봐야 되겠다." 에롤은 베벌리윌셔 호텔 펜트하우스의 규모를 보고 놀랐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마도 그때까지 내가 본 호텔 방 중 가장 놀랍지 않았나 싶어요." 일론은 넋이 나간 듯 보였지만, 복잡한 심정으로 애정에 목말라 있기도 했다. 그는 거칠고 거만한 성격의 아버지가 그런 나약한 모습의 자신을 보는 것이 불편했지만, 아버지가 떠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결국 그는 아버지와 그의 새 가족이 로스앤젤레스에 머물 것을 종용하기에 이르렀다. "남아공으로 돌아가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가 말했다. "제가 여기에 집을 사드릴게요." 킴벌은 깜짝 놀랐다. "아냐, 아냐, 좋은 생각이 아니야." 그가 일론에게 말했다. "형은 아버지가 얼마나 음흉한 인간인지 벌써 잊었어? 그러지 마, 형. 이건 자학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동생이 설득하려고 애쓸수록 일론은 더욱 슬퍼졌다. 수년 후, 킴벌은 어떤 갈망이 형에게 그런 동기를 부여했는지 다시 한 번 되짚었다. "아들이 죽는 것을 지켜본 일이 아버지가 곁에 있기를 원하도록 이끈 게 분명해요." 그가 내게 말했다. 어느 날 에롤이 보트에 올라 있을 때 일론으로부터 메시지 한 통이 날아왔다. “상황이 좋아지기는커녕 엉망이 되고 있으니” 에롤에게 남아공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이었다. 에롤은 그렇게 했다. 몇 달 후, 그의 아내와 아이들도 남아공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 협박도 하고 보상도 하고 논쟁도 벌이고 별의별 시도를 다 했지요.” 일론이 나중에 한 말이다. “그런데 그는…” 머스크는 오랜 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말도 안 되게도, 더 나빠졌어요.” 인적 네트워크는 디지털 네트워크보다 복잡하기 마련이다. 출처 책 일론 머스크
#책 #일론머스크
2024-12-31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소피.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할 것이 남았어. 내가 처음으로 마을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던 계기, 그 오두막 뒤에 있던 귀환자 말야. 정해진 성년식보다 조금 더 빨리 지구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그 남자에게 몰래 찾아가 물었어. 혹시 지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그는 슬픈 진실을 말해주었지. 지구에서 그가 사랑했던 사람과 그의 쓸쓸한 죽음에 관해. 그가 남겼던, 행복해지라는 유언에 관해. 나는 말했어. 당신의 마지막 연인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겠냐고. 나는 그에게 지구로 다시 함께 가겠냐고 물었어. 떠나겠다고 대답할 때 그는 내가 보았던 그의 수많은 불행의 얼굴들 중 가장 나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소피, 이제 내가 먼저 떠나는 이유를 이해해줄 거라고 믿어. 그럼 언젠가 지구에서 만나자. 그날을 고대하며, 데이지가. 스펙트럼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때의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너무나 괴롭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숨기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지막 이야기에는 거짓이 있다. 할머니는 그 행성에서 구조 신호를 발신한 적이 없다. 할머니의 셔틀이 구조된 장소는 망망대해 같은 우주의 진공 한가운데였다. 할머니는 무리인들의 행성에서 10년을 보냈다고 했지만, 실제로 할머니가 구조된 건 조난 이후 40년 만이었다. 시공간 여행의 시차를 고려하더라도 할머니는 20년 이상을 다시 혼자가 되어 떠돌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오랜 시간동안 할머니는 대체 무엇을 한 걸까? 어쩌면 할머니는 어떻게든 행성에서 멀리 떠날 방법을 찾아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구도 그 행성의 위치를 추적할 수 없을 장소에 도달한 다음에야 마침내 구조 신호를 보낸 것인지도. 어쨌든 모든 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할머니는 단 한 번도 그 시간의 빈틈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준 적이 없다. “루이는 정말로 죽었을까요?” 그런 질문에도 할머니는 빙긋 미소만 지었을 뿐이다. 행성의 위치에 대해 어떤 단서조차 내놓지 않겠다는 할머니의 고집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완고했다. 정부와 기업, 연구소에서 수도 없이 사람을 보내 할머니를 설득했지만 할머니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수십 년의 고독과 외로움에 지쳐 상상 속에서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던 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만은 아닌 셈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다시 만날 때는, 우리는 더는 유약한 이방인이 아닐 것이다. 루이와 할머니의 관계는 재현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 탈출 때 할머니가 협곡에서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 뭉치의 종이뿐이었다. 할머니의 말대로 종이 위의 색채들은 마치 누군가 수백 종의 물감을 흩뿌려놓은 것처럼 다채로웠다. “이건 루이가 나를 기록하고 관찰한 일기였어. 일종의 연구노트라고 할까. 내가 그들을 관찰하고 탐색한 것처럼 루이에게도 나는 연구대상이었던 셈이지. 어쩌면 그들은 내가 아주 먼 곳에서 온, 도구가 없어 무력한 학자임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할머니는 나에게 루이가 쓴 기록의 내용을 읽어주셨다. 지구에 돌아온 이후로 할머니는 여생을 색채 언어의 해석에만 몰두했다. 내용의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시간을 들여가며 알아낼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평범한 관찰 기록이었다. 그러나 그중 잊히지 않는 한 문장만큼은 지금도 떠오른다. “이렇게 쓰여 있구나.” 할머니는 그 부분을 읽을 때면 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숨을 거두기 전 할머니는 연구노트의 처분을 나에게 맡겼다. 나는 기록의 사본을 남기고, 원본은 할머니와 함께 화장했다. 찬란했던 색채들이 한 줌의 재로 모였다. 나는 할머니의 유해를 우주로 실어 보내 별들에게 돌려주었다. 공생 가설 만약에 뇌 속의 ‘그들’이 인간에게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유입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마치 기생충이나 미생물이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전염되듯 말이다. 그들은 공기 중에 분포해 있거나, 바이러스처럼 환경에 널리 퍼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감염을 위한 최초의 접촉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상자 속의 아이들이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그들’을 받아들일 기회가 없었던 것이라면? 어쩌면 가장 중요한 특성은 인간 밖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빈은 그 증거를 확인하려 하고 있었다. 수빈은 영상에서 소리 데이터를 추출해서 전환기에 넣었다. 그냥 듣기에는 다른 평범한 아기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울음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의 유무가 아기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여기서는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들의 대화가 아닌 아기들의 욕구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배고파」 「졸려」 「무서워」 수빈은 다음에 일어난 일 역시 알고 있었다. 그 아기들은 사람들이 기대한 대로 성장하지 않았다. 상자 속의 아기들은 이타성을 획득하지 못했다. *재밌게 읽어서 하는 말이지만 인간의 '이타성'이 '그들' 즉 외부로부터 온다는 가정을 증명하는 위 부분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상자 속에 집어넣는 실험> 설정은 좀 거슬린다. <태어난 아이들을 충분히 빨리 상자 속에 집어넣음 -> 접촉이 일어나지 않음>인건데 거슬리는 부분은 '충분히'이다. 얼마나 빨리 집어넣었길래 혹은 접촉이 어떻게 일어나길래? 미토콘드리아처럼 공생한다고 했으면 의문이 안들었을것 같음. 빈틈없는 논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인데 내 눈에 보이는거면 매끄럽지 않은 진행이 맞는 듯하지만. 뭐 중요한가? 사실 이 말도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ㅎ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기술 발전만 보고 달리니까 다른 중요한 가치를 인간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판. 예전에 유튜브에서 돌고래와 소통하는 실험을 봤던 게 생각났다. https://youtu.be/1NfgR7LZ3sI?si=q9eMkyp5v9k_bI03 로 인해 어느 한 회사만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따라서 ‘모탈 컴뱃’ 게임식의 경쟁으로 치닫는 것보다는 합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머스크와 신임 CEO 빌 해리스는 팰로앨토에 있는 그리스 레스토랑 에비아의 별실에서 틸과 레브친을 만났다. 양측은 각자의 고객 보유 현황을 적은 메모를 교환했는데, 머스크는 거기에 평소처럼 나름의 과장을 섞어 넣었다. 틸은 머스크에게 잠재적 합병조건을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 물었다. 머스크는 “합병된 회사의 90퍼센트는 우리가 소유하고 10퍼센트는 당신들이 소유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레브친은 머스크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진담인가? 두 회사의 고객 기반은 거의 비슷했다. 레브친은 말한다. “머스크는 농담하는 게 아니라는 듯 매우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 무언가 아이러니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았어요.” 머스크는 나중에 레브친의 말을 인정하며 말했다. “사실 우리는 게임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점심을 먹고 나오며 레브친은 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거래는 절대 성사될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냥 우리끼리 다음 행보를 밟기로 하죠.” 하지만 틸은 사람을 읽는 데 더 능숙했다. 그래서 레브친에게 말했다.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에요. 머스크 같은 친구는 인내심을 갖고 상대해야 해요.” 밀고당기는 협상 과정은 2000년 1월 내내 계속되었고, 머스크는 저스틴과의 신혼여행을 연기해야 했다. 엑스닷컴의 주요 투자자였던 마이클 모리츠는 샌드힐로드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양측이 만나도록 주선했다. 틸은 머스크의 맥라렌을 함께 타고 샌드힐로드로 향했다. “그래서, 이 차의 특별한 장점은 무엇인가요?” 틸이 물었다. “한번 보시죠.” 머스크는 그렇게 답하곤 추월차선으로 들어가 가속페달을 있는 힘껏 밟았다. 갑자기 뒷차축이 부러졌고 차가 빙글빙글 돌다가 갓길 경사면에 부딪힌 후 비행접시처럼 공중을 날았다. 차체 일부가 찢어졌다. 평소 자유주의를 실천하던 틸은 안전벨트를 매고 있지 않았지만, 다친 데 없이 빠져나왔다. 그는 지나가던 차를 얻어 타고 샌드힐로드의 세쿼이아 사무실까지 갈 수 있었다. 머스크도 다치지 않았고, 차를 견인시키기 위해 30분 정도 그 자리에 머물렀다가 세쿼이아로 왔다. 그는 해리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고 회의에 참석했다. 나중에 머스크는 웃으며 말했다. “적어도 내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틸에게 보여준 거죠.” 틸은 동의한다. “맞아요, 그가 좀 미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죠.” 머스크는 여전히 합병에 반대했다. 두 회사 모두 이베이의 전자결제를 위해 등록한 약 20만 명의 고객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는 좀 더 광범위한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엑스닷컴이 더 가치 있는 회사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해리스와 갈등을 빚었고, 해리스는 만약 머스크가 합병 협상을 무산시키려 들면 사임하겠다고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해리스가 그만두면 재앙이 닥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인터넷 시장이 위축되고 있던 터라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거든요.” 머스크의 말이다. 머스크가 틸과 레브친과 다시 한번 점심식사를 하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번에 그들은 팰로앨토에 있는, 하얀 식탁보가 인상적인 이탈리아 레스토랑 일포르나이오에서 만났다.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해리스가 주방으로 뛰어들어가 어떤 요리부터 나올 수 있는지 살폈다. 머스크와 틸, 레브친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나누었다. 레브친은 말한다. “해리스는 극도로 외향적인 사업개발자 유형이었어요. 마치 가슴에 S자를 새긴 슈퍼맨처럼 행동했지요. 반면에 우리 셋은 뭐랄까, 비사교적인 괴짜들 같았다고나 할까요. 우리는 절대로 해리스처럼 나서서 설치진 않을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유대감을 느꼈습니다.” 양측은 엑스닷컴이 합병회사의 지분 55퍼센트를 갖는 조건에 합의했지만, 머스크가 곧이어 레브친에게 도둑질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바람에 상황이 크게 꼬여버렸다. 격분한 레브친은 없던 일로 하자고 위협했다. 해리스는 레브친의 집으로 차를 몰고 가 빨래 개는 것을 도와주며 그를 진정시켰다. 계약 조건은 다시 한번 수정되어 기본적으로 50대 50으로 합병하되, 엑스닷컴이 존속법인으로 남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2000년 3월, 거래가 성사되었고 최대 주주였던 머스크가 의장으로 취임했다. 몇 주 후, 그는 레브친과 함께 해리스를 몰아내고(ㅋㅋ) CEO 자리도 되찾았다. 어른들의 지휘는 더 이상 환영받지 못했다. 출처 책 일론 머스크
#책 #일론머스크
2024-12-31 ⋯ 리스크 중독
레브친은 머스크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고민이 됐다. 그의 팔씨름 제안은 진담이었을까? 바보 같은 유머와 게임 플레이로 간간이 중단되곤 하는 일련의 광적인 격렬함은 계산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발광일 뿐인가? 레브친은 말한다.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아이러니가 있어요. 그는 11까지 올라가지만 4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 아이러니 설정 상태에서 움직입니다.” 머스크의 힘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아이러니 서클로 끌어들여 자기들만 아는 농담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이러니 화염방사기를 켜고 일론 클럽의 회원이라는 배타적인 의식을 만들어내죠.” 하지만 레브친에게는 그런 방식이 잘 먹히지 않았다. 그는 진지함이라는 자신의 방패로 머스크의 아이러니 화염방사기를 막아내고 있었다. 그는 머스크의 과장을 탐지하는 데 탁월한 레이더를 보유했다. 합병 과정에서 머스크는 엑스닷컴의 사용자가 2배 가까이 많다고 계속 주장했고, 레브친은 엔지니어들에게 확인하여 실제 사용자 수를 알아내곤 했다. “머스크는 단순히 과장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없는 얘기를 지어내기도 했어요.” 레브친의 말이다. 그의 아버지가 종종 보여주던 행태였다. 하지만 레브친은 그에 반하는 사례를 접하면서 경탄하기도 했다. 머스크가 박학다식으로 그를 놀라게 했을 때가 대표적인 경우다. 어느 날 레브친과 그의 엔지니어들은 사용 중인 오라클 데이터베이스와 관련한 어려운 문제로 씨름하고 있었다. 다른 일로 그 방에 들어선 머스크는 자신의 전문 분야는 오라클이 아닌 윈도였지만, 대화의 맥락을 즉시 파악하고 정확한 기술적인 답변을 내놓은 후 확인을 기다리지도 않고 방을 나갔다. 레브친과 그의 팀은 오라클 매뉴얼로 돌아가 머스크가 설명한 내용을 찾아보았다. “하나씩 하나씩 들여다보며 우리 모두 ‘젠장, 머스크 말이 맞네’라고 했지요.” 레브친의 회상이다. “머스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의 전문 분야에 대해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하죠. 나는 그가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 중 상당 부분이 바로 때때로 드러내는 그런 예리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헛소리꾼이나 바보로 잘못 알고 있던 사람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다가 그런 면모에 세게 한 방 맞은 기분이 드는 거지요.” 이사회에서 투표를 통해 머스크의 해임을 결정했을 때, 머스크는 지금까지 그의 격렬한 투쟁을 지켜본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차분하고 품위 있게 대응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 이렇게 썼다. “엑스닷컴을 다음 단계로 끌어올릴 경험 많은 CEO를 영입할 때가 되었다고 결정했습니다. 그 작업이 완료되면 3~4개월 정도 안식 기간을 갖고 몇 가지 아이디어를 검토해본 다음 새로운 회사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머스크는 길거리 싸움꾼이었음에도 의외로 패배에 현실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나중에 옐프Yelp를 창업하는 머스크의 추종자 제러미 스토플먼이 이사회 결정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자신과 다른 몇몇이 사직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을 때, 머스크는 아니라고 답했다. “회사는 나의 아기였고, 솔로몬 이야기에 나오는 어머니처럼 나는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기꺼이 포기할 수 있었어요.” 머스크는 말한다. “나는 틸 및 레브친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기로 결심했어요.” 머스크는 3년 만에 두 번째로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선지자였다. 페이팔의 동료들이 머스크의 가차 없고 거친 스타일에 더하여 놀랐던 것은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그의 의지, 심지어 욕망이었다. “기업가는 사실 리스크를 감수하는 사람이 아니지요.” 로로프 보타는 말한다. “기업가는 리스크를 완화하는 사람이에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번창하려 하지도 않고 리스크를 증폭시키려 하지도 않죠. 대신 통제 가능한 변수를 파악해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지요.” 하지만 머스크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리스크를 증폭시키고 우리가 물러설 수도 없게 배를 불태워버리는 데 몰두했어요.” 보타가 보기에 머스크의 맥라렌 사고는 그런 성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가속페달을 있는 대로 밟고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보려다 난 사고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항상 리스크를 제한하는 데 집중하던 틸과 머스크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었다. 한번은 틸과 호프먼이 페이팔에서의 경험을 담은 책을 집필할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머스크에 관한 장의 제목을 “‘리스크’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남자”로 잡기로 했다. 하지만 그의 리스크 중독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도록 사람들을 이끈다는 면에서는 유용할 수도 있었다. 호프먼은 말한다. “머스크는 놀랍도록 성공적으로 사람들이 사막을 가로질러 행진하게 만들곤 하지요. 그는 모든 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수년 후 레브친은 한 독신 친구의 아파트에서 머스크 등과 함께 어울렸다. 몇몇 사람들은 판돈을 크게 걸고 텍사스 홀덤이라는 포커 게임을 하고 있었다. 머스크는 카드 플레이어가 아니었음에도 테이블로 다가갔다. “카드를 외우고 확률을 계산하는 데 능한 컴퓨터광들과 타짜 수준의 꾼들이 모여 있었지요.” 레브친의 설명이다. “일론은 모든 판에서 올인을 걸었고, 당연히 졌지요. 그러자 칩을 더 사서 더블 다운을 하고, 계속 그런 식으로 플레이했어요. 그렇게 여러 판에서 돈을 잃은 후에 마침내 올인을 걸고 이겼지요. 그랬더니 ‘좋아, 여기까지’라고 하면서 일어서더군요.” 칩을 테이블에서 거두지 않고 계속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 그것은 그의 인생의 주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좋은 전략인 것으로 드러났다. 틸은 말한다. “그가 이어서 설립한 두 회사, 스페이스X와 테슬라를 보세요. 실리콘밸리의 통념에 따르면 이 두 회사는 모두 엄청나게 미친 도박이었지요. 하지만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두 개의 미친 회사가 성공한다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 들까요? ‘일론은 리스크와 관련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이해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출처 책 일론 머스크
#책 #일론머스크
2024-12-31 ⋯ 그릿을 획득하기 또는 진실로의 창을 열어놓기
나는 전문가들은 이 문제에 관해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자기기만이 데이비드와 내 아버지가 경고한 것만큼 그렇게 위험한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20세기에는 의학 전문가들이 일치된 의견을 내놓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에이브러햄 매슬로, 에릭 에릭슨 같은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들은 자기기만을 정신적 결함이자 시각에 생긴 문제여서 치료로 교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반면 정확한 시각은 "정신의 건강을 보여주는 표지"라고 여겼다. 그러나 20세기가 기운차게 달려가는 동안, 임상심리학자들은 이상한 일들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볼 때 더 건강한 환자들, 인생을 더 쉽게 살아가는 사람들, 좌절을 겪은 뒤에도 재빨리 회복하는 사람들, 직업과 친구, 연인을 얻고 인생이라는 회전목마에서 황금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장밋빛 자기기만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 그토록 칭송받던 정확한 인식이라는 미덕을 가진 사람들은 어떨까? 짐작했겠지만 그들은 병적인 수준의 우울증에 걸렸다. 살아가는 일을 힘들어했고, 좌절을 겪은 뒤에는 회복이 더 어려웠으며, 일과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종종 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내가 느꼈던 바랑 어느정도 일치하는 듯하다. 갖고 싶어 노력했던 것들은 얻지 못하고, 우연찮게 얻게 된 것들은 후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들이 되었다. 이렇게나 내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게 내 삶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는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대다수는 내 존망과 직결되는 문제라서 좀 중요했다. 나는 답을 찾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많은 감정과 시간을 쏟았지만 해답은 엉뚱한 곳에서 찾았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 섞여 살아야 한다. 사람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야 한다. 혼자서는 답을 찾기 어려운 일들은 다른 머리로 생각했을 땐 의외로 쉬운 질문일 수 있다. 답은 더 엉뚱한 곳에서 나오기도 한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문제 같던 일을 어느 새 잊고 사는 것이다. 문제는 문제를 삼아서 문제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 질문은 답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괜찮을까요?” 내가 윌슨에게 물었다. “해로울 게 뭔가요? 두려움을 잠재워주고, 미래에 적응을 방해하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 문제 될 게 없다고 봐요.” 더크워스는 왜 어떤 학생은 다른 학생들보다 공부를 더 힘들어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12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에게는 무슨 비밀이 있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몇 년 뒤 더크워스는 그 비밀의 요소라 여겨지는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하고 그 특징에 ‘그릿Grit’(끈질긴 투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릿. 끈질김을 뜻하지만 그보다 귀에 착 붙는 단어, 그릿. “긍정적 피드백”이 없는데도 “매우 장기적인 목표”에 로봇처럼 뛰어들게 해주는 것,13 그릿. 머리로 벽을 반복적으로 들이받을 수 있는 능력. 더크워스는 웨스트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 사관생, 최고경영자, 뮤지션, 운동선수, 셰프 등 거의 모든 직업에서 정상에 선 사람들에게서 그릿을 발견했다.14 재능, 창의력, 친절함, IQ는 다 잊어라. 순수한 그릿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바로 그것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떤 인지적 결함이 그릿을 획득하는 데 도움이 될까? 바로 긍정적 착각이다.15 다른 연구들도 마찬가지로 긍정적 착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좌절을 겪은 뒤에 낙담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보여주었다.16 그릿이란 여러 특성들이 섞인 칵테일 같은 것이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좌절을 겪은 뒤에도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능력,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능력, 또는 더크워스의 표현을 빌리면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노력과 흥미를 유지하는 것”17 말이다. 그릿의 가장 좋은 부분이자 가장 희망적인 속성이며, 아메리칸드림과도 가장 잘 들어맞는 지점은 이것이 생물학적 기반에서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그릿이라는 이 마술적인 특성은 가르쳐서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는 더크워스가 내린 그릿의 정의를 거의 그대로 복창하듯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바라는 목표를 향해 끈질기게 일하고 그런 다음 결과를 차분히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졌다. 나아가 나는 일단 일어난 불운에 대해서는 절대 마음 졸이지 않았다.”18 그런데 장밋빛 렌즈를 끼고 살아가는 일이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할까? 로빈스와 비어는 스스로 실망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즉 “단기적으로 혜택을 얻는 대신 장기적으로 비용을 치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29 다시 말해서 기만은 나중에라도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장밋빛 렌즈의 힘에는 한계가 수반된다. 그리고 그 힘이 떨어지면 자신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정말로 따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바우마이스터와 부시먼은 높은 자존감이 모두 나쁜 건 아니라는 점도 재빨리 덧붙였다. 그들은 높은 자존감도 아주 좋은 것일 수 있다며, 활짝 편 손바닥을 높이 들어 보이면서 해명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겪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아주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비판을 받아도 자기 가치가 위협받는다고 느끼지 않으므로 높은 자존감은 당사자를 기이할 정도로 평화롭게(그들의 표현으로는 “이례적으로 비공격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했다. 그들은 자존감이 높기는 하지만 자존감에 대한 위협을 쉽게 느끼는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위험한 이들이라고 생각했다. 바우마이스터와 부시먼은 이렇게 썼다. “쉽게 말해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 거창한 자기상을 확인받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비판당하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며 자기를 비판한 사람을 사납게 공격하는 것으로 보인다.”38 나는 스탠퍼드에서 보았던 그 오싹한 물고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직접 자신의 이름을 붙인 유일한 바닷물고기를 다시 떠올렸다. 서로 반대쪽에 위치한 두 면이 돌돌 말리듯 어디서 만나는지도 모르게 하나로 합쳐지는 뫼비우스 띠 모양의 그 가시 박힌 용 말이다. “모서리가 없는 조던.” 그가 선택한 이 물고기에 어떤 메시지가 숨어 있는 걸까? 그의 매력 아래 도사린 어두운 면에 대한 인정일까? 루서 스피어는 이렇게 썼다. “조던의 재능 중 특히 양날을 지닌 재능은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고, 그런 다음 무한해 보이는 에너지로 목표를 추구하는 능력이다. (…) 그는 자신의 관용과 관대함을 자랑스러워했다. (…) 하지만 조던은 파리 한 마리를 잡는 데 대포알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39 다윈은 《종의 기원》의 거의 모든 장에서 “변이”48의 힘을 칭송한다. 동질성은 사형선고와 같다. 한 종에서 돌연변이와 특이한 존재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그 종이 자연의 힘에 취약하게 노출되도록 만들어 위험을 초래한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당신의 유전자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라”가 될 것이다.52 상황이 바뀌면 그 상황에 어떤 특징이 더 유용하게 적용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다윈은 간섭하지 말라고 특별히 강력하게 경고한다.53 그가 보기에 위험한 것은 인간의 눈에서 비롯된 오류 가능성,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이다. “적합성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서는 불쾌하게”54 보일 수 있는 특징들이 사실 종 전체나 생태계에는 이로울 수도 있고, 혹은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면 이로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지력으로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는 생태의 복잡성에 대한 이러한 조심스러움과 겸손함, 공경하는 마음은 사실 대단히 오래된 것이다. 이는 때로 “민들레 원칙”58이라고도 불리는 철학적 개념이다. 우생학자들은 이런 단순한 상대성의 원칙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유전자 풀에서 “필수 불가결한”59 다양성을 제거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그들은 사실상 지배자 인종을 구축할 최선의 기회를 망쳐버리고 있었던 셈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죽는 날까지 열광적인 우생학자로 남았다. 데이비드의 정서적 해부도를 쫙 펼쳐놓고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원흉은 그 스스로 상당히 자랑스러워했던 두툼한 “낙천성의 방패”가 아닌가 싶다. 특히 시련의 시기에는 더욱더 자기기만에 의존했던 듯하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긍정적 착각은 견제하지 않고 내버려둘 경우 그 착각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공격할 수 있는 사악한 힘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한 그 심리학자들의 말이 옳았던 것 같다. 나는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가 경로를 이탈한 지점을, 그의 방향타를 슬쩍 밀어 그가 그토록 파멸적으로 경로를 벗어나게 만든 사건 혹은 개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나는 제비들이 원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페니키스 섬의 헛간에서 루이 아가시가 젊은 데이비드의 정신에 관념의 씨앗 하나를 심어놓는 순간에 다다랐다. 그것은 자연 속에 사다리가 내재해 있다는 믿음이었다. 자연의 사다리. 박테리아에서 시작해 인간에까지 이르는, 객관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는 신성한 계층구조. 이 관념이 데이비드의 세계를 다시 건축했다. 그것은 꽃을 수집하던 그의 부끄러운 습관을 “가장 높은 수준의 선교 활동”으로 바꿔놓았다. 그는 지느러미나 두개골의 형태 속에 도덕적 안내도가 담겨 있다는 믿음을 품고서, 나침반처럼 자연을 읽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충분히 꼼꼼하게 살펴보면 누구를 모방해야 할지, 누구를 비난해야 할지 알아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한마디로 깨달음으로, 평화로, 그 무엇이든 사다리의 꼭대기에 놓여 있을 열매를 향해 나아가는 진실한 경로를 알게 될 거라고. 그리고 인류가 쇠퇴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생각했을 때, 필요하다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인류를 구출해야 한다는 소명을 느꼈다. 그는 자연의 질서에 관한 믿음을 칼날처럼 휘두르며, 인류를 구원할 가장 건전한, 아니 유일한 방법은 불임화라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이 부분은 의사 결정에서 '상자'를 선택하는 대신에 '나무'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카밀라 팡의 의견과 일맥상통한다. *'상자 속에서 생각하는 방식은 대개 감정의 조합이나 배짱으로 의사를 결정한다. 감정이나 배짱은 둘다 신뢰할 수 없다.'* 동물은 인간이 스스로 우월하다고 가정하는 거의 모든 기준에서 인간보다 더 우수할 수 있다. 까마귀는 우리보다 기억력이 좋고,6 침팬지는 우리보다 패턴 인식 능력이 뛰어나며,7 개미는 부상당한 동료를 구출하고,8 주혈흡충은 우리보다 일부일처제 비율이 더 높다.9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을 실제로 검토해볼 때, 인간을 꼭대기에 두는 단 하나의 계층구조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상당히 무리해서 곡예를 해야 한다. 우리는 가장 큰 뇌를 갖고 있지도 않고 기억력이 가장 좋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가장 빠르지도, 가장 힘이 세지도, 번식력이 가장 좋지도 않다. 같은 배우자와 평생을 함께하고, 도구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심지어 우리는 지구에 가장 새롭게 나타난 생물도 아니다.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알려주려고 그토록 노력했던 점이다. 사다리는 없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다윈은 과학자의 입으로 외쳤다. 우리가 보는 사다리의 층들은 우리 상상의 산물이며, 진리보다는 “편리함”을 위한 것이다. 다윈에게 기생충은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경이였고, 비범한 적응성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크건 작건, 깃털이 있건 빛을 발하건, 혹이 있건 미끈하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그 어마어마한 범위 자체가 이 세상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는 데는 무한히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데이비드는 왜 그걸 보지 못한 걸까? 사다리에 대한 그의 믿음을 반증하는 증거들이 이렇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식물과 동물이 배열되는 방식에 관한 이 자의적인 믿음을 왜 그토록 보호하려 한 걸까? 그 믿음에 도전이 제기되면 왜 더욱 강하게 그 믿음을 고수하고 폭력적인 조치를 합리화하는 데 그 믿음을 사용했을까? 아마도 그 믿음이 그에게 진실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바다와 별들과 현기증 나는 그의 인생을 휘몰아가는, 소용돌이치는 늪을 깔끔하고 빛나는 질서로 바꾸는 방법이었다. 처음 다윈을 읽을 때부터 마지막으로 우생학을 밀어붙일 때까지 어느 시점에서든 그 믿음을 놓아버리는 것은 현기증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지독히도 방향감각을 앗아가는 일이었을 것이고 혼돈이었을 것이다.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진실을 흘낏 엿본 바로 그 느낌일 것이다. 그 사다리가 데이비드에게 준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의 해독제. 하나의 거점. 중요성이라는 사랑스럽고 따뜻한 느낌.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그가 자연의 질서라는 비전을 그토록 단단하게 붙잡고 늘어졌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도덕과 이성과 진실에 맞서면서까지 그가 그렇게 맹렬하게 그 비전을 수호한 이유를. 나는 살면서 내 인생의 많은 좋은 것들을 망쳐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 한다. 그 곱슬머리 남자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나를 아름답고 새로운 경험으로 인도해주지 않을 것이다. 혼돈을 이길 방법은 없고, 결국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보장해주는 안내자도, 지름길도, 마법의 주문 따위도 없다. 희망을 놓아버린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할까? 요약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는데 성공하면 무한해 보이는 에너지로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을 반증하는 증거가 나타났을 때도 맹목적으로 그 믿음을 보호하게 될수 있다. 그리고 근거가 *'실제로 옳은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깔끔한 질서를 잃고 이전의 혼돈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일 수 있다. 결국 긍정적 착각은 그릿을 획득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궁극적인 진실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출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 #물고기는존재하지않는다
2024-12-31 ⋯ 공부를 안해서 오는 스트레스는 사실 공부를 해야 없어진다.
카드 다섯 장을 쥐고 하는 포커판에서 나올 수 있는 카드패에는 2,598,960개 종류가 있다고 한다. 즉, 최고의 카드패를 쥘 사람은 약 260만명 중의 한 명이다. 하지만 포커에서 그런 카드패를 갖고 있지 않아도 당신은 이길 수 있다. 그저 포커 게임에 참석한 사람들보다 조금 더 좋은 패를 갖고 있으면 된다. 그러므로 최고의 카드를 받은 잘난 사람들은 무시해라. 그들의 포커판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몰려 있다. 현재의 위치에서 미래를 미리 계산하여 보고 미리 포기하는 사람들이 당신 주변 사람들이며 그들은 그저 일확천금을 꿈꾸면서 연예인이나 정치인, 스포츠 선수들, 컴퓨터 게임, 채팅, 명품 브랜드, 경마 등에 무지 관심이 많다. 당신이 하는 게임은 바로 그런 사람들과 하는 것이다. 기억하라. 이것 역시 당신에게는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기쁘고 다행한 사실이라는 것을. <미래의 결단>,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 미래학의 거두 피터 드러커 역시 높은 성과를 올리는 생산적인 사람, 끊임없이 혁신을 꾀하면서 계속 발전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비중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는 길은 오직 지속적인 관리와 노력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부자가 되는 데 있어서 경쟁자는 결국 천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이 지극히 간단한 사실이 독자들 마음 속에 각인되기를 바란다. "실패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 주말에는 교외로 나가 신선한 자연을 벗하라. 일에 쫓기지 말라. 오늘 못한다고 내일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란 없다. 긴장을 풀고 살아라. 경쟁심을 버려라. 그들은 그들이고 당신은 당신이다. 실력과 능력이 다가 아니다.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 건강을 생각하며 운동을 하라. 운동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한 것이다. 자주 친구들과 만나 웃고 떠들며 놀아라. 그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느긋하게 천천히 살아라. 그것이 스트레스를 피하는 길이다." 이런 조언에 충실히 따르며 살아간다면 장담하건데 몇년 후에 건강한 신체를 갖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하고 있는 일은 망한지 오래이거나, 아니면 직장에서 이미 해고되어 구직 이력서를 서너 통 언제나 준비하여 갖고 다니는 몸 튼튼한 실업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도 건강이 최고라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건강을 지키면 모든 것을 다 갖게 된다는 말은 아니지 않는가. 왜 스트레스가 생기는가? 어떤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어디서 발생하는 것인가?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한다. 스트레스는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다. 왜 문제가 안 풀리는 것일까? 푸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왜 모르는가? 책도 안 읽고 공부도 안 하기 때문이다. 왜 공부를 스스로 안 하는가? 게으르기 때문이며 스스로의 판단과 생각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최고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 달에 책 한 권도 안 보고 공부는 학원이나 학교에 가야만 하는 걸로 믿는다. 그러면서도 놀 것은 다 찾아다니며 논다. 그런 주제에 자기는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는데 주변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하며 그러면서도 수입이 적다고 투덜투덜댄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벼드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문제는 그대로 남겨둔 채 그 문제로 인하여 생긴 스트레스만을 풀어 버리려고 한다면 원인은 여전히 남아있는 셈 아닌가. 휴식을 충분히 갖고 쉬라고? 웃으로고? 한 달을 바닷가 해변에서 뒹굴어 보아라. 백날을 하하 호호 웃어 보아라. 문제가 해결되는가? 웃기는 소리들 그만해라. 기억하라. 제초제를 뿌리는 이유는 뿌리를 죽이기 위함이다. 뿌리를 살려 두는 한 잡초는 다시 살아난다. 스트레스를 없애는 가장 정확한 방법 역시 스트레스를 주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뿌리채 뽑아 버리는 것이다. 장담하건대 그 모든 원인은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야 하는지 모르는 당신의 무지 그 자체이다. 즉, 외부적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외부 상황을 어떻게 해야 헤쳐나가는지를 모르고 있는 당신의 두뇌 속 무지 대문에 생긴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무지함의 뿌리는 바로 게으름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한답시고 빈 맥주병을 쌓아가지 말고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라. 절대 회피하지 말라. 책을 읽고 방법론을 찾아내라. 그게 바로 스트레스를 없애는 제초제이다. 결국 스트레스는 문제를 해결하면 없어지는데 해결책을 찾는 법은? 아인슈타인은 "많은 문제가 무의식중에 해결된다"고 하고, "말이 아닌 이미지로 대부분 문제를 해결해 냈다", "쓰거나 말하는 단어나 언어는 내 생각의 메커니즘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생각의 요소를 받쳐 주는 듯 보이는 어떤 영적 존재들은 어떤 신호이거나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분명한 이미지들인데 그것들은 스스로 반복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결합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내가 문제 해결을 위해 꽤 오랫동안 사용하여 온 것은 인식 상태에서 미인식 영역을 건드리는 방식이다. 첫째, 샤워장 앞에서 옷을 벗을 때부터 두 눈을 감고 움직이며 샤워를 마칠 때까지 계속 눈을 감고 진행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평상시에 사용되지 않았던 신경과 감각이 일어나 마인드브레인의 전선들이 재배치되도록 한다. 둘째, 인식 상태에서 들어 본 적 없는 음악 소리를 듣는 것이다. 비록 파리넬리의 노래나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으면서 의식을 잃고 졸도한 사람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클래식으로는 안 된다. 최초로 시도했던 것은 아이언 버터플라이Iron Butterfly의 In-A-Gadda-Da-Vida(라이브가 아닌 1968년 스튜디오 녹음)였고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Echoes(1971년)가 그 뒤를 이었다가 탠저린 드림Tangerine Dream의 Phaedra(1974년), Rubycon과 Ricochet(1975년), Stratosfear(1976년), Force Majeure(1979년), Tangram(1980년), Logos(1982년) 등을 들었는데 각각 그 음반들이 발표되고 나서 몇 년 후에야 비로소 입수할 수 있었다. 유행가도 아니고 상당히 긴 그런 음악 소리(들어 보면 내가 왜 음악이라고 하지 않고 소리라고 하는지 알게 될 것이고 In-A-Gadda-Da-Vida는 중간 부분만 그렇다)를 듣다가 번쩍 힌트가 스쳐 가는 경험을 나는 아주 많이 했었기에, 적어도 나에게는 그 음악 소리들이 앞에서 설명한 만트라가 되어 전선 재배치를 도와주었다고 믿는다. 시도하여 보아라. 눈을 감고 편안한 자세로 크게 들어야 하며 운전 중에는 절대 듣지 말아라(예전에 지인이 운전 중에 듣다가 사고를 낼 뻔했다고 들었다. 탠저린 드림의 80년대 초반 이후 음반들은 대체로 별로였다). 아, 물론 나에게는 이 방법이 효과가 있었지만 당신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을 가능성도 높다. 요약 게으름 피우지 말고 스트레스를 제거해라. 천재는 쳐다보지 마라. 출처 책 세이노의 가르침
#책 #세이노의가르침
2024-12-31 ⋯ 공동창업자의 자격
2002년 1월의 어느 일요일, 창고를 빌려 그 아마추어 엔진의 제작에 열중하던 중 가비가 뮬러에게 일론 머스크라는 인터넷 백만장자가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머스크가 저스틴과 함께 도착했을 때, 뮬러는 줄에 매단 80파운드짜리 엔진을 어깨로 떠받친 채 프레임에 고정하기 위해 볼트를 조이고 있었다. 머스크는 다짜고짜 그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게 추력은 얼마나 되나요?" 뮬러는 1만 3,000파운드라고 답했다. "더 큰 것도 만들어본 적이 있나요?" 뮬러는 얼마 전부터 TRW에서 65만 파운드의 추력을 가진 TR-106의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추진 연료로는 무엇을 쓰나요?" 머스크가 또 물었다. 뮬러는 머스크의 속사포 질문에 집중하기 위해 마침내 볼트 결합 작업을 일시 중단했다. 머스크는 뮬러에게 TRW의 TR-106만큼 큰 엔진을 혼자서 만들 수 있는지 물었다. 뮬러는 자신이 인젝터와 점화기를 직접 설계했고, 펌프 시스템을 잘 알고 있으며, 나머지는 팀과 함께 해결할 수 있다고 답했다. 머스크는 물었다.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뮬러는 TRW가 1,200만 달러를 들여 그것을 제작하고 있다고 답했다. 머스크는 방금 전에 던진 질문을 재차 반복했다.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오, 이런, 그거 참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 대화가 너무 빨리 구체적인 사안으로 진행되어서 속으로 놀라고 있던 뮬러 역시 그 부분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때 긴 가죽 코트를 걸치고 있던 저스틴이 머스크를 쿡 찌르며 이제 갈 시간이 되었다고 말을 건넸다. 머스크는 뮬러에게 다음 일요일에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뮬러는 주저했다. "마침 슈퍼볼 일요일이었고, 나는 와이드스크린 TV를 막 구입했기에 친구들과 함께 경기를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는 거부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찾아오겠다는 머스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가 발사체 제작에 대해 얼마나 몰두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지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았지요." 뮬러의 기억이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다른 엔지니어 몇 명과 함께 최초의 스페이스X 로켓에 대한 계획을 계략적으로 세우기까지 했다. 발사체의 1단은 액체산소와 등유를 사용하는 엔진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제가 그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뮬러가 말했다. 머스크는 상단에는 과산화수소를 사용하자고 제안했지만, 뮬러는 그것을 다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산화질소를 제안했지만, 머스크는 그것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결국 두 사람은 2단에도 액체산소와 등유를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슈퍼볼은 잊혔다. 로켓이 더 흥미로웠다. 뮬러는 스페이스X의 첫 번째 주요 영입자가 되었다. 뮬러가 고집한 한 가지 조건은 머스크가 그의 2년 치 보수를 조건부 날인 증서로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인터넷 백만장자가 아니었기에 벤처가 실패할 경우 보수를 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머스크는 동의했다. 하지만 이 일로 머스크는 뮬러를 스페이스X의 공동창업자가 아닌 직원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것은 머스크가 페이팔 시절에도 중요하게 여겼고, 테슬라를 창업하면서도 마찬가지로 중시할 투자와 관련된 문제였다. 그는 회사에 투자할 의사가 없다면 창업자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2년치 월급을 조건부 날인 증서로 예치해달라면서 자신을 공동창업자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거지요." 머스크는 말한다. "공동창업자가 되려면 영감과 땀, 리스크가 어느 정도 조합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공장을 설계할 때 머스크는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제조 팀이 모두 함께 모여 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철학을 따랐다. "조립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디자이너나 엔지니어를 붙잡아 세우고 '대체 왜 이런 식으로 만든 거요?'라고 따질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머스크가 뮬러에게 설명했다. "가스레인지 위에 자기 손을 올려 놓으면 뜨거워지자마자 바로 떼어내지만, 다른 사람의 손이 올라가 있으면 무언가 조치를 하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마련이지요." 팀이 성장함에 따라 머스크는 자신의 리스크에 대한 내성과 의도적인 현실 왜곡 논리를 자신의 팀에도 불어넣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면 다음 회의에 초대받지 못했지요." 뮬러의 회상이다. "그는 그저 어떻게든 일을 해낼 사람들을 원했어요." 이는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내도록 유도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쁜 소식을 전하거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길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기에도 좋은 방법이었다. 멀린 엔진을 개발할 때, 뮬러는 버전 중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공격적인 일정을 제시했다. 하지만 머스크가 보기엔 충분히 공격적이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요? 이건 말도 안 돼. 반으로 줄이세요." 뮬러는 난색을 표했다. "이미 반으로 줄인 일정을 그렇게 다시 반으로 줄일 수는 없습니다." 머스크는 그를 차갑게 쳐다보며 회의가 끝난 뒤에 남으라고 말했다. 둘만 남았을 때 그는 뮬러에게 계쏙 엔진 책임자로 남고 싶은지 물었다. 뮬러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머스크는 "그럼 내가 뭔가를 요구하면, 염병할, 그냥 그렇게 해주시오"라고 했다. 뮬러는 이에 동의하고 임의로 일정을 반으로 줄였다. "그리고 어떻게 됐을까요?" 뮬러가 물었다. "결국 원래 일정에 잡혀 있던 시간을 거의 다 들인 후에야 완성이 되었지요." 머스크의 미친 스케쥴은 때대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매번 그러지는 못했다. 뮬러는 말한다. "머스크에게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지요. 그냥 해보겠다고 말하고 나중에 잘 안 되면 그 이유를 설명하면 되는 겁니다." (이거 우리 교수님이자나..) 머스크는 설계에 반복적 접근방식을 취했다. 로켓과 엔진의 프로토타입을 빠르게 만들어 테스트하고, 날려버리고, 수정하고, 다시 시도하는 식으로 마침내 제대로 된 게 나올 때까지 반복했다. 빠르게 움직이고, 날려버리고, 반복하라! 뮬러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얼마나 잘 피하느냐가 아니거든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얼마나 빨리 파악해서 해결하느냐가 진정으로 중요한 겁니다.” 예를 들면, 새로운 버전의 엔진을 여러 다양한 조건에서 몇 시간 동안 시험 발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련의 국방규격 표준이 있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비용도 많이 드는 접근방식이었지요.” 팀 부자의 설명이다. “일론은 그저 엔진 하나를 만들어서 테스트 스탠드에서 불을 붙여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작동하면 로켓에 장착해 날려보자는 거였지요.” 스페이스X는 민간기업이었고, 머스크는 기꺼이 규칙을 어기는 성향이었기에 그렇게 원하는 대로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었다. 부자와 뮬러는 엔진이 고장 날 때까지 밀어붙여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파악하곤 했다. 반복적 설계에 대한 이러한 신념은 곧 스페이스X에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자유로운 테스트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머스크는 2003년 말 엔진 연소실 내부의 열 확산 소재에 균열이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색다른 접근방식을 시도했다. “처음에 하나, 이어서 또 하나, 또 하나, 그렇게 우리가 만든 최초의 연소실 세 개에 균열이 생겼어요.” 뮬러의 회상이다. “말 그대로 재앙이었지요.” 나쁜 소식을 듣자 머스크는 뮬러에게 고칠 방법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그냥 버릴 수는 없어요.” 뮬러는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머스크를 격분하게 만드는 종류의 발언이었다. 그는 뮬러에게 비행기를 보낼 테니 그 세 개의 연소실을 싣고 로스앤젤레스의 스페이스X 공장으로 날아오라고 지시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에폭시 접착제를 균열에 스며들도록 도포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뮬러가 말도 안 되는 미친 아이디어라고 말했고, 둘 사이에는 고성이 오갔다. 그러다 마침내 뮬러가 물러섰다. 그는 팀원들에게 말했다. “그가 결정권자니까.” 연소실이 공장에 도착했을 때 머스크는 마침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던 터라 고급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는 파티에 가지 못했다. 대신 그는 밤새 에폭시 도포 작업을 도왔다. 멋진 부츠가 엉망이 되도록. 도박은 실패로 돌아갔다. 압력을 가하자마자 에폭시가 떨어져나갔다. 연소실을 다시 설계해야 했고 발사 일정은 4개월 뒤로 미뤄졌다. 하지만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추구하며 기꺼이 공장에서 밤을 새는 머스크를 보면서 엔지니어들은 두려움 없이 색다른 해결책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고무되었다. 그렇게 패턴이 형성되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기꺼이 날려버려라. 출처 책 일론 머스크
#책 #일론머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