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5 ⋯ 나이들고 가난한 이들의 연애
몇주 전에 눈이 펑펑 내린 날, 노가다 하고 와서 온 몸이 쑤신다는 중년의 남자친구 등을 밟아주며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읽어줬어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 남자친구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눈은 푹푹 내리고 저는 조근조근 밟고... 제가 예전에 결혼생활을 했을때, 신혼을 낡은 아파트에서 시작했었죠. 겨울이면 추워서 창문에 비닐을 둘렀는데 창틀이 워낙 낡아서 바람이 불면 비닐이 붕붕 부풀어 올랐어요. 둘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그걸 보고 있음 한숨이 나왔죠. 전남편은 평생 이런 집에서 살면 어쩌냐고 우울해 했지만 제가 그랬어요. '걱정마. 우린 아주 좋은 집에 살게 될거야. 그때가 되면 지금이 그리울지 몰라.' 훗날 우린 정말 좋은 집에 살게 됐지만 제일 좋은 집에 살 때 우리 결혼은 끝이 났어요. 이혼을 하고 만난 남자친구는 사업이 안 풀려 요즘 형편이 어려운데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이 사람과 이 상황이 그리 싫지 않습니다. 일이 잘돼서 돈이 많아지면 또 변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럴듯하게 좋아 보이는 것들이 그리 간절하지도 않고요. 그냥 나이 들면 둘이 어디 한적한 곳에 가서 작은 집을 사서 고쳐 살면 어떨까 싶어요. 백석의 시처럼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서... 그런데 남친은 도시가 좋다네요. 그 나이에 해도 잘 안 들어오는 집으로 이사를 가 놓고는 그래도 도시가 좋다네요. 흠냐. 어쨌든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나이 들면 나이든대로, 어떤 삶이든 다 저대로의 즐거움이 있고 낭만도 있더라고요. 그냥 다 살아지는거 아닌가 싶어요. 눈이 푹푹 내리는 날 백석의 시를 읽는 정도의 마음이 있으면요. 산골엔들 왜 못 살겠어요. (댓글) 삽시간에 이만큼 댓글이 달려 깜짝 놀랐어요. 자녀는 없고 동거 아니고 저는 제집이 있어요. 남친 집에 갔다가 좀 밟아달라길래 밟아줬어요 ㅎ 남친은 백석을 모르고 지극히 현실주의잡니다. 어떻게든 상황을 개선하려고 애쓰고있고요. 남친을 생각할때 한숨이 나올때도 있지만 우린 결국 찰나를 사는 존재라 생각하기에 오늘 좋으면 됐다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달관한건 아니고 달관했다한들 그것조차 삶의 수많은 지점중 한지점일 뿐이겠죠. 이게 또 깨달음의 끝도 아니고요. 저도 백석평전 읽어서 그의 현실이 어땠는지 알아요. 근데 제가 지금 북에서 재산 몰수당하고 강제노역중인건 아니니까요 ㅎ 사실 게시판 글을 읽다가 저 아래 60대 들어선 분이 오십 괜찮은 나이니 너무 절망하지말란 글을 읽고 나이들어가는데 가진것없는 삶이 그냥 추레하기만한가 그런생각하다가 눈오던밤에 제가 느꼈던 행복을 공유하고파서 써봤어요. 제가 82에 글을 종종 썼는데 돌아보니 주제가 한결같아요. 이혼해도 괜찮더라. 망해봐도 괜찮더라 ㅎ 다 저마다 괜찮아요. 우리가 가난에대해 늙음에 대해 실패애 대해 조금만 더 예의를 가졌음 좋겠어요. 어쨌든 저는 지금 괜찮습니다. 모두 그러시길. 생각 인스타보다가 남겨두고싶은글을 읽어서 남겨봤다. 가치를 어디두느냐? 돈에 가치를 두는게 나쁜가? '나'에 대한 고찰없이 남들이 좇는 가치를 나도 좇아서 행복이 부족하다면 행복이 부족한 선택일뿐 좋고 나쁨은 없다. 대부분이 좇는 가치를 좇았을때 행복이 체감될정도로 부족할만큼 '내'가 정말 선명한 사람일까? 멈춰서 생각하는건 얼마나 자주하는게 적당한가? 생각한답 - 몸과 마음의 신호를 잘 캐치하는게 중요하다. 규칙을 정해두기보다 블랙박스 자체로 두고 부셔지거나 흠집나지않게 환경을 잘 만들어두는게 최선이다. 출처 원문-https://www.82cook.com/entiz/read.php?num=3367161 캡쳐본 인스타-https://www.instagram.com/p/DS3rplXEpB9/?igsh=dzlla2ZienRoc3Vt
2025-09-02 ⋯ 혼돈후의 고요
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리스는 뚜렷이 기억한다. 당시의 통증은 뱃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듯했다. 어머니에게 이렇게 고통스러운 게 정상이냐고 묻자, 어머니는 그렇다고 답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무래도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의사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다. "자궁 내막증입니다." 의사는 그것이 염증성 여성 질환이며 전 세계 여성 10퍼센트에게 발생하는 만큼 비교적 흔한 병이라고 설명했다. 그중 다수가 사춘기부터 갱년기까지 질환을 안고 살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증상을 다스린다고 덧붙였다. 위로하려는 양, 매릴린 먼로 역시 그 병을 앓았지만 그래도 온 세상이 찬사를 바치는 여자가 되지 않았냐고 하기까지 했다. '멍청한 소리도 다 있지! 매릴린 먼로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비극적으로 사망했는데.' 진료가 끝나자 아직 10대였던 알리스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난 평생 동안 고통을 겪을 거야. 난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지 못할 거야. 난 아마 아이를 갖지 못할 거야.' 그때부터 알리스는 홀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견디기 어렵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고통은 고립을 추구하는 성향과 고독감의 주된 원인이었다. 자신의 문제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스는 금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질병maladie이라는 단어는 <말하지 못하는 고통mal à dire>에서 온 게 아닐까?' 그러나 탈출구를 찾아보지도 않은 채 자궁 내막증을 감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알리스는 과학에 몰두했고 가능성 있는 설명을 찾았다. 한 이론에 따르면 자궁 내막증을 일으키는 것은 유전자 속 특정 배열, 남아 있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DNA라고 했다. 먼 옛날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서로 짝을 짓고, 사랑을 나눠 반은 사피엔스, 반은 네안데르탈인인 혼종 자식을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더 이상 두 종의 결합으로 자손을 남길 수 없는 새로운 시기가 왔다.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여전히 남아 있으니,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 코드에는 평균적으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유전자 1.8퍼센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가설을 확인하려고 알리스는 자기 게놈을 분석해 봤다. 그리하여 자신의 DNA에는 네안데르탈인 조상에서 유래한 서열이 1.8퍼센트가 아닌 2.7퍼센트나 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문제의 원인이 이거였군. 머나먼 내 사피엔스 조상님들은 네안데르탈인과 <좀 지나치게> 사랑을 많이 나누었던 거야. 내 고통의 근원은 거기 있고 내가 열쇠를 찾을 곳도 거기야.' 그때부터는 병을 길들이는 게 인생의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이 나올 수도 있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이 강렬한 동기가 되어, 알리스는 성과를 냈고 동 세대 가장 촉망받는 젊은 과학자들 반열에 올랐으며, 국립 과학 연구 센터의 장학금을 얻어 〈자궁 내막증과 고대 다른 인류들의 유전자 흔적의 관련성〉이라는 주제로 첫 박사 논문을 썼다. 그 연구로 국제적으로 명망 높은 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알리스에게 메달이나 영광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더 이상 아프지 않고, 그 끔찍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전 세계 2억 명의 여자들을 치료할 방법을 찾는 것, 원하는 것은 그뿐이었다. '내 인생 전체의 방향을 좌우한 것은 고통이었어*.'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뱃속의 불길이 갑자기 잠잠해진다. 알리스는 깊은 숨을 들이켠다. '됐어, 지나갔어. 한바탕 폭풍처럼.' 알리스 카메러는 로켓의 둥근 창 바깥을 내다본다. **'그리고 지금 난 전속력으로 대기권을 가르고 있지.'** 알리스는 회상에 잠긴다. 하늘을 나는 열정을 전해 준 것은 아버지였다. 그 환상적인 감각을 처음 맛본 날이 기억난다. 열여섯 살 때였을 것이다. 어느 일요일, 친구들끼리 놀러 갔다가 발목에 탄력 있는 줄을 묶고 다리 꼭대기에서 허공으로 뛰어내렸다. 감각은 강렬했지만 너무 빨리 지나갔다. 그럼에도 그 경험 이후 병 생각을 덜 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경험을 되풀이했다. '비행은 내 자질구레한 신체적 문제들을 잊게 해줘.' '비행은 육체와 영혼의 상처를 일시적으로나마 치료해 주는 특효약이야.' 알리스는 또한 자연 속 모든 날아다니는 것들을 몰입하여 관찰했다. 잠자리, 나비, 새, 물론 박쥐도. 방학 때면 아침 일찍부터 망원 렌즈가 달린 카메라와 지향성 마이크를 들고 집을 나서 날아다니는 동물들을 찍고 그 노랫소리를 녹음했다. 그러다가 알리스는 한층 수준 높은 경험을 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함께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했다. 카이로 근처 기자 고원의 피라미드들 위로 뛰어내리던 감명 깊은 추억이 가슴에 남아 있다. 1분 30초의 자유 낙하. 마술적인 장소 위에서 겪은 마술 같은 경험. 하지만 자유 낙하에서는 비행의 감각이 바람의 굉음에 방해받았다. 낙하산을 펼친 후 하강이 느려지고 안정화될 때에야 소음은 멎었다. 그때 알리스는 생각했다. '상황에서 멀찍이 떨어져 높이서 볼 때에야 충분히 거리를 두고 지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 있구나.' 알리스는 덜 시끄럽게 날 방법을 계속해서 찾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느 날 인도양의 레위니옹섬 상공에서 패러글라이딩을 가르쳐 주었다. 둘은 함께 생뢰만 위로 튀어나온 언덕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 고요히 하늘을 미끄러지는 믿기 어려운 감각을 맛볼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레위니옹섬에 서식하는 놀라운 새 열대조들이 가까이 와서 짹짹거리며 인사하는 장면까지 목격했다. 다음에 손댄 것은 글라이더였지만, 엄청난 소리를 내며 뒤흔들리는 플라스틱 조종실에서는 비좁은 느낌이 들었다. 소형 비행기와 헬리콥터도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그 잠시의 도피는 며칠간 고통에서 놓여나게는 해주었지만 결코 새처럼 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던 중 배에 장착한 예비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았다. 그는 즉사했다. '높이 오르고자 하는 열망 끝에 날개가 불타 추락한 이카로스 같아.' 알리스는 돌연 비행 체험을 그만두었다. 생각 *고통은 사람을 약하게 만들어서 손에힘이풀리니까 쥐고있던것들이 많이없어지는데 오히려 좋은게 시간이지나서다시펴봣을때도있는것들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이건잡아야겟다고생각햇던거니까 나한테더중요했던게뭔지 알수있다. 근데 역효과는 ... 그이유로 맹목적이게되는게있다 왜냐면 explainable이 아니니까?? 나에게 중요한것 리스트를 대전제로 몇개 박아놓으면 판단이 엄청 쉬워진다. 그래서 하나만 추가돼도 난이도가확내려간다. 근데 잘못박아놓으면 파내기가좀어렵다. 특히 나의 생각(논리)으로 넣지 않은 항목이 많은 경우에 리스트중에 멀빼야대는지를 판단하는게 굉장히 어렵다. 출처 책 키메라의 땅
2025-08-04 ⋯ 결단
머스크는 로켓이 산소가 희박한 높이로 충분히 솟아올라 불꽃이 꺼지길 바랐다. 그러나 로켓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비디오 피드에서 오멜렉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더 이상 화면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그리고 불타는 파편들이 바다로 떨어졌다. “위장이 뒤틀렸지요.” 머스크의 말이다. 1시간 후, 머스크는 뮬러, 쾨니스만, 부자, 톰슨 등 수석 팀원들과 함께 잔해를 둘러보기 위해 육군 헬리콥터에 올랐다. 그날 밤 모두가 콰즈의 야외 바에 모여 조용히 맥주를 마셨다. 몇몇 엔지니어는 눈물을 흘렸다. 머스크는 돌처럼 굳은 얼굴과 먼 곳을 응시하는 눈빛으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아주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처음 시작할 때 우리 모두는 첫 번째 임무에서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로켓을 만들어 다시 시도할 것입니다. 머스크와 수석 엔지니어들은 비행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오는 길에 녹화 영상을 틀어놓고 분석에 들어갔다. 뮬러가 멀린 엔진에서 화염이 발생한 순간을 가리켰다. 연료 누출이 원인인 것이 분명했다. 머스크는 잠시 끙끙 앓더니 뮬러를 향해 소리쳤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해고해야 한다고 내게 말했는지 알아요?” “그냥 해고하지 그래요?” 뮬러가 받아쳤다. “근데 내가 염병할 당신을 해고했소? 염병할 당신은 아직 여기 있잖소.” 머스크가 대꾸했다. 그런 다음 머스크는 긴장을 풀려는 듯 코믹 액션 풍자 영화 〈팀 아메리카: 세계 경찰〉을 틀었다. 그렇게 어둠을 실없는 유머로 바꾸는 것은 머스크에게 흔한 일이었다. 그날 늦게 그는 성명을 발표했다. “스페이스X는 장기적인 시각으로 이 일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우리는 이 일을 해낼 것입니다.” 마크스는 제조공정의 모든 측면을 통제함으로써 얻는 이익과 관련하여 머스크의 판단이 옳았음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그는 또한 머스크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 즉 그를 성공으로 이끈 ‘올인’ 방식의 추진력과 그의 나쁜 행동방식이 분리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도 고민한다. “나는 그를 스티브 잡스와 같은 범주의 사람이라고 여기게 됐는데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냥 개자식이지만, 그들은 또한 너무 대단한 것을 성취해서 그냥 물러앉아 ‘그게 패키지인 것 같아’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과 같은 거죠.” 내가 머스크가 이뤄낸 것이 그의 행동방식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고 묻자, 마크스는 이렇게 답했다. “만약 이런 종류의 성취를 위해 세상 사람들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진짜 개자식을 리더로 삼아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아요.” 마크스가 떠난 후 머스크는 보다 냉정하고 강인한 느낌의 CEO를 영입했다. 전투 경험이 있는 이스라엘 낙하산부대 장교 출신으로 반도체 분야에서 기업가로 성공한 제브 드로리였다. 머스크는 말한다. “실제로 테슬라의 CEO가 되는 데 흔쾌히 동의한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두려워해야 할 것이 많았던 탓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었지요.” 하지만 드로리는 자동차 제작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몇 달 후, 스트로벨이 이끄는 고위임원 대표단은 더 이상 그의 지휘 아래 일하기 어렵다고 말했고, 이사회 멤버인 아이라 에렌프라이스는 머스크에게 직접 지휘권을 잡으라고 앞장서서 설득했다. “내가 운전대를 잡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네요. 둘이 같이 운전대를 잡을 수는 없다는 점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머스크가 드로리에게 말했다. 드로리는 우아하게 물러났고, 머스크는 2008년 10월에 테슬라의 공식 CEO가 됨으로써 약 1년 사이에 네 번째로 그 직함을 보유한 인물이 되었다. 아들 네바다의 죽음 이후 저스틴과 일론은 가능한 한 빨리 다시 아이를 갖으려 했다. 그들은 체외수정 클리닉에 다니기 시작했고, 2004년 쌍둥이인 그리핀과 자비에를 낳았다. 2년 후 그들은 다시 체외수정으로 세쌍둥이 카이, 색슨, 데미안을 낳았다. 실리콘밸리의 작은 아파트에서 룸메이트 세 명, 온순하지 않은 닥스훈트 소형견과 함께 결혼생활을 시작했던 부부는 이제 로스앤젤레스 벨에어 언덕 구역의 170평 저택에서 톡톡 튀는 아들 다섯 명, 유모와 가정부로 구성된 직원 다섯 명,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닥스훈트 한 마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사납고 거친 성격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에 다정함이 넘쳐나던 순간들도 있었다. 부부는 서로의 허리를 감싸 안고 팰로앨토 근처의 서점 케플러스 북스까지 걸어가서 책을 구입한 후 카페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곤 했다. “그 얘기를 하자면 목이 메여요.” 저스틴은 말한다. “완전한, 거의 완전한 만족감을 느끼던 순간들이었지요.”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그러듯이 머스크는 아내 앞에서도 순식간에 밝음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모욕을 퍼붓다가 잠시 멈추곤 표정을 풀며 즐거운 미소를 짓기도 했고, 엉뚱한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저스틴은 <에스콰이어>의 톰 주노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곰처럼 의지가 강하고 힘이 센 사람이에요. 그는 재미나게 장난치고 함께 뛰어놀아주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여전히 곰을 상대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죠.” 2008년 봄, 로켓이 폭발하고 테슬라의 혼란이 가중되던 와중에 저스틴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가 있고 얼마 후 그녀는 부부의 침대에서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올려 앉은 채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일론에게 둘의 관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백만 달러의 장관이 펼쳐지는 남편의 인생에서 열외로 취급되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녀는 말한다. “남편이 수백만 달러를 벌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어요.” 일론은 상담을 받는 데 동의했지만, 그가 한 달 동안 세 번의 상담을 받고 난 시점에 두 사람은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저스틴은 일론이 최후통첩을 했다는 입장이다. 현재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혼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말이다. 반면 일론은 저스틴이 이혼하고 싶다고 반복해서 말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이 “나는 결혼생활을 계속할 의향이 있지만, 당신이 이렇게 나에게 못되게 굴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해”라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저스틴이 지금 그대로의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자, 그는 이혼을 신청했다.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왔지만,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밀려왔어요.” 저스틴의 회상이다. 당시 스물두 살이던 탈룰라 라일리는 그림책에 나올 법한, 허트포드셔의 전형적인 영국 마을에서 자랐으며, 머스크를 만났을 때 이미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각색한 작품에서 베넷 가의 다섯 자매 중 셋째인 음치 메리 역을 맡는 등 작지만 연기력을 요하는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큰 키에 길게 생머리를 늘어뜨린 그 미녀는 기민한 성격에 두뇌가 명석한 것이 머스크의 성향과 매우 흡사했다. 닉 하우스와 또 다른 친구 제임스 패브리컨트의 소개로 그녀는 머스크와 함께 앉게 되었다. “그는 수줍음이 많고 약간 어색해 보였어요.” 그녀는 말한다. “그는 로켓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것들이 그의 로켓인 줄 몰랐어요.” 어느 순간 그가 “무릎에 손을 올려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약간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자리가 끝날 무렵, 머스크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런 일에 아주 서툴지만, 다시 만나고 싶으니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라일리가 돌아갈 때가 되었을 무렵 머스크가 그녀에게 청혼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반지는 미처 준비하지 못했소.” 그녀는 악수로 대신하자고 했고, 두 사람은 그렇게 악수를 했다. “호텔의 옥상 수영장에서 그와 함께 수영하면서 마냥 들뜬 가운데 서로를 알게 된 지 2주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약혼을 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기한지 이야기한 기억이 납니다.” 라일리는 그에게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무엇일까요?” 그녀가 농담처럼 물었다. 머스크는 갑자기 진지한 태도로 “우리 중 한 명이 죽는 거겠지요”라고 답했다. 왠지 그 순간 그녀는 그 말이 매우 로맨틱하다고 느꼈다. 머스크는 자금이 바닥나고 있었고, 테슬라는 적자를 내고 있었으며, 스페이스X는 로켓 세 대를 연달아 추락시킨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말 그대로 파산까지 갈 각오를 했다. 그는 발사 실패 몇 시간 후에 이렇게 발표했다. “스페이스X는 앞으로 나아가는 실행에 있어 결코 걸음을 멈추거나 늦추지 않을 것입니다. 스페이스X가 궤도 진입에 성공할 것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하지만 그는 로스앤젤레스 공장에 네 번째 로켓을 위한 부품이 있다고 말했다. 가능한 한 빨리 로켓을 만들어서 콰즈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현실성이 거의 없는 기한을 제시했다. 6주 후에 네 번째 발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그냥 계속 진행하라고 말했고, 나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지요.” 쾨니스만의 말이다. 돌연 낙관적인 분위기가 본사 전체에 퍼졌다. 그 당시 인사책임자로 일했던 돌리 싱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태도를 보고 우리 대부분은 지옥의 문이라도 선탠오일을 들고 따라 들어갈 마음이 생긴 것 같았어요. 순식간에 사옥의 기운이 절망과 패배의 분위기에서 다들 결의를 다지는 분위기로 바뀌었지요.” 머스크와 함께 2차 발사 실패를 지켜봤던 <와이어드>의 칼 호프먼 기자가 머스크에게 연락해 어떻게 낙관론을 유지할 수 있는지 물었다. 머스크는 답했다. “낙관론, 비관론, 다 집어치우라고 하쇼. 우리는 해낼 거요. 염병할 신께 맹세컨대,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성공시킬 작정이오.” 모두 수작업으로 완성된 몇 대의 차량을 출시한 것은 작은 승리에 불과했다. 오래전에 파산하여 잊힌 많은 자동차 회사들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다음 도전은 자동차를 수익성 있게 생산할 수 있는 제조공정을 갖추는 것이었다. 지난 세기에 파산하지 않고 이를 성공시킨 유일한 미국 자동차 회사는 포드뿐이었다. 테슬라는 과연 그 두 번째 기업이 될 수 있을까? 당시에 그것은 불분명해 보였다.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어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테슬라의 공급망은 통제하기 힘들었고, 회사는 자금이 부족했다. 게다가 스페이스X는 아직 로켓을 궤도에 진입시키지 못했다. 머스크는 말한다. “로드스터를 손에 넣었음에도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해로 기록될 1년이 시작되고 있었을 뿐이었지요.” 머스크는 종종 합법과 위법의 경계선 근처까지 내달렸다. 그는 아직 제작되지 않은 로드스터에 대한 고객들의 예치금을 털어 2008년 상반기를 버텼다. 테슬라 경영진 및 이사회 멤버 일부는 예치금을 운영비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조건부 날인 증서로 보관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머스크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을 거예요”라고 주장했다. 탈룰라는 매일 밤 머스크가 거칠게 잠꼬대를 중얼거리거나 때로는 팔을 마구 휘두르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공포에 질려 지켜보았다. “그가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그녀는 말한다. “머스크는 야경증에 시달렸어요. 자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저를 할퀴기도 하고 그랬어요. 정말 끔찍했어요. 그런 필사적 몸부림을 지켜보면서 저는 정말 겁이 났어요.” 때때로 그는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속이 뒤집어지는지 화장실로 달려가 비명을 지르며 구역질을 하곤 했어요. 저는 변기 옆에 서서 그의 머리를 잡아주곤 했죠.” 머스크는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 강하지만 2008년에는 거의 한계를 넘어설 지경에 이르렀다. “묘책을 찾아 해결책을 내놔야 하고, 또 해결책을 내놔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매일 밤낮으로 일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머스크는 말한다. 그는 체중이 많이 늘었다가 갑자기 다 빠지고 추가로 더 빠졌다. 자세는 구부정해졌고, 걸을 때는 발가락이 뻣뻣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활력이 솟구쳤고 집중력이 고도로 높아졌다. 교수형 올가미가 눈앞에 아른거리며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자극했기 때문이다. 머스크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반드시 한 가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8년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머스크는 스페이스X와 테슬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았다. 점점 줄어드는 자원을 한 곳에 집중하면, 그 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원을 계속 분산시키면 둘 다 살아남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느 날 그의 열정적인 소울메이트 마크 준코사가 스페이스X의 칸막이 방에 들어섰다. “저기요, 둘 중 하나는 포기하는 쪽으로 가는 게 어때요?” 그가 물었다. “스페이스X에 더 애착이 가면 테슬라는 버리자고요.” “안 돼. 그러면 ‘전기차는 안 된다’라는 푯말에 또 한 줄이 추가될 것이고, 우리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에 도달할 수 없을 거야.” 머스크가 답했다. 그렇다고 스페이스X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 우리는 영영 다행성종이 될 수 없을지도 몰라.” 더 많은 사람이 선택을 강요할수록 그는 더욱 저항했다. “나는 감정적으로 두 명의 아이가 있고 식량은 부족한 상황에 놓인 것 같았어요. 두 아이에게 식량을 절반씩 나눠주면 두 아이 모두 죽을 수도 있고, 한 아이에게 음식을 몰아주면 적어도 그 아이는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죠. 하지만 내가 과연 내 아이 중 한 명은 죽게 놔두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그래서 나는 둘 다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했지요.”
2025-07-05 ⋯ 파인만 공부법
정전기학에 관한 내용처럼 어려운 부분을 만나면 저만의 요령이 하나 있었습니다. 뭐냐면 처음 두세 문단이 이해가 안 되더라도 내용 전체를 읽어요. 처음에는 전체를 흐릿하게 이해하지만 다시 읽으면 조금 나아지고 계속 그러다 보면 전부 이해가 되지요(예외도 있는데 그건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그다음 책에다 요점을 적어놓으면 완성됩니다. 가령 타원형 축전기의 정전용량 계산 같은 건 건너뛰는데, 내용 전체를 읽어보면 그런 기능이나 복잡한 계산은 뒤에 다시 나오지 않는 지엽적인 사안임을
이미 알기 때문이지요. 복잡한 책들을 많이 읽다 보니, 배워야 할 핵심 부분과 응용이나 지엽적인 부분(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과는 무관한 부분)을 본능적으로 구분할 줄 알게 되었어요. 이런 독창적인 방법 덕분에, 책에서 흥미로운 주제가 무언지를 늘 스스로 간파해냈죠. 하지만 미적분은 달랐습니다. 저로서는 이해불가였어요! “네가 공부를 많이 했으니 내가 오랫동안 잘 이해를 못했던 문제가 있는데, 네가 설명해주면 좋겠구나.” 제가 그러겠다니까, 아버지는 말을 이었습니다. “원자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이할 때 광자라는 빛 입자를 방출한다고 알고 있다.” 저는 맞는 말씀이라고 했지요. 아버지는 다시 말씀하길, “그럼 원자에는 미리 광자가 있다가 나오는 거니? 아니면 원자에 처음엔 광자가 없는 거니?” 저는 광자의 개수는 보존되지 않고 전자의 운동에 의해 생겨난다는 걸 설명해드렸습니다. 설명이 잘 되진 않았어요. 내가 내는 소리가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는 식으로 설명했지요. 어린애가 ‘낱말 가방’에 낱말이 바닥나서 더는 어떤 낱말, 가령 ‘고양이’를 말하지 못하는 상황과는 다릅니다. 원자에는 그런 낱말 가방 같은 ‘광자 가방’이 없습니다. 더는 잘 설명하기 어려웠지요. 아버지는 당신께서 이해하지 못하는 걸 제가 설명하지 못한다며 아쉬워하시더군요. 아버지가 실패한 셈이죠. 그런 걸 알아내라고 아들을 그 잘난 대학에 보내놨더니만, 알아내질 못했으니! 로스알라모스에 가서 유명한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과학자들을 만나서 정말 기뻤어요. 로스알라모스는 매우 민주적이었어요. 오펜하이머의 연구실에서 열리는 회의에선 누구든 아무에게나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거든요. 자기 위치를 알아야 하는 위계질서와는 거리가 멀었죠. 매우 훌륭한 조직이었어요. 새로운 환경에서 그처럼 많은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은 일찍이 없었는데도, 그 분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그 많은 사람을 로스알라모스로 모아 놓았을 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비밀을 어떻게 지킬지 등등 그 거대한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또한 세부사항에도 신경을 썼으니까요. 가령, 저를 부르기에 아내가 결핵 환자라고 말했더니 아내를 잘 돌봐줄 병원을 직접 찾아줬어요. 로스알라모스에 모인 사람이 아주 많았는데도, 그는 늘 그런 식이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을 챙겼죠. 또한 매우 깊이가 있었습니다. 누가 무슨 연구를 하든 훤히 꿰뚫고 있었어요. 그러니 무엇이든 전문적인 논의를 함께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요약해서 결론을 내리는 데도 뛰어났죠. 우리는 그의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멋진 사람이었어요. 윤리 문제라면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원래 이유, 즉 독일의 위협을 막겠다는 이유에서 저는 이 시스템을 개발하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프린스턴에서, 이어서 로스알라모스에서 폭탄 제조에 뛰어들었죠. 폭탄을 재설계하려는(원한다면 ‘더 나쁜’ 폭탄을 만들려는) 온갖 시도도 했는데, 우리는 늘 그게 실현되는지 보려고 연구했습니다. 전부 힘을 합쳐 무척 열심히 참여한 프로젝트였는데, 다른 여느 프로젝트처럼 추진하기로 한 이상 성공하기 위해 계속 노력했어요. 그런데 제가 비윤리적이었던 건 처음 시작했던 이유를 그만 잊었던 거예요. 독일이 패망해서 이유가 바뀌었는데도 그 일을 왜 계속해야 하는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전 그냥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시겠어요? 거기서 교훈을 하나 얻었습니다. 어떤 걸 하는 이유를 계속 되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상황이 바뀔 수 있으니까요. 미국의 베트남 전쟁도 윤리적 실수의 마찬가지 사례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이유가 옳았던 그르던 전쟁이 진행되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해요. 원래 목적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저의 윤리적 약점이었습니다. *현시대의 엄청난 곤경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감을 느끼십니까? 인류 전체를 여러 번 멸망시킬 수 있는 폭발물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입니다.*
저로서는 어떤 걸 느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올바른 질문인 것 같습니다. 느낌은 어떤 행동을 시작하기 위해 중요하긴 합니다. “이렇게 느끼니까 이러저러하게 해야 한다.”고 우린 여기니까요. 하지만 저는 지난날을 후회하면서 고민하진 않아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죠. 선한 의도로 많은 일을 했지만 지옥에 간 사람한테 윤리적 책임감을 느끼는지 물으면 어떻게 답할까요? 글쎄요, 각 단계마다 그는 옳은 일을 한다고 여겼을 겁니다. 인간이 불행해지는 건 무지와 이해의 부족이에요. 심각한 문제인데, 인간사에서 아주 흔한 일이고요. 저라고 남달리 그걸 더 깊게 이해하고 있지도 않아요. 한 가지 잘못한 게 있다면 앞서 말했듯이 제가 독일이 패망했을 때 다시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겁니다. 설령 다시 생각했더라도 어떤 결론을 내렸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다시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는 옳지 않았어요. *대부분 젊은 시절이지 않았나요?*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가 스물넷이었고 떠날 때는 스물여덟이었습니다. 출처 책 리처드 파인만
2025-07-04 ⋯ 나눔과 버팀
짧고 평범한 인생이지만 그래도 살면서 한 가지 명확해진 사실이 있다. 인생은 그야말로 운의 상승과 하락의 반복이라는 점이다. 언뜻 보면, 모든 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선택에 달려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떤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것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반대로 마치 모든 일이 잘될 운명인 듯 일이 술술 풀리기도 한다.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이 잘 풀리는 운의 상승기에 있을 때야말로 주위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모든 것이 잘 풀리는 순간, 흔히 사람들은 자신만의 성과와 행복에 집중하기 쉽다. 자만하기도 쉽다. 정상에 오르면 기분이 좋고,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게 된다. 하지만 이제 곧 내려가야 할 준비를 해야 되는 때이기도 하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주위를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혼자 잘나가는 것에 몰두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정상에서 여유를 즐기는 시간조차 단축시킨다. 정상에서의 여유를 즐기고 싶을수록 주위에 베풀고 잘해야 한다. 내가 상승세에 있을 대 주변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잘해 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들에게 나의 행복과 성과를 나누고, 작은 도움이라도 손을 내밀어 주는 것. 이렇게 베푸는 태도는 결국 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쌓이기 시작하고, 이들은 내가 내리막길을 걸을 때 중요한 안전망 역할을 해 주기도 한다. 운이 하락하는 시기에 있을 때, 힘들고 고독한 그 순간에 나를 도와줄 사람들은 결국 내가 상승세에 있을 때 베풀고 쌓아 온 관계들이다. 내가 잘나갈 때 쌓아 둔 선의와 나눔이 운이 하락하는 시기에서의 나를 지탱해 준다. 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격려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 순간이 오면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상승세가 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나의 좋은 에너지를 나누고, 내가 가진 것을 베풀고자 한다. 이들이 결국 내 인생의 굴곡을 함께 견뎌 줄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생에서 운의 상승기를 맞이할 때 베풀면서도 내게 주어진 성과와 행복 그 모든 것을 만끽할 필요가 있다. 그저 해야 할 일들만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베풀고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해서도 그 순간의 기쁨을 진정으로 느끼고 내 삶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 운의 상승기에서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것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운의 하락기를 견딜 수 있는 내적 에너지를 충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상승에 있을 때는 그 에너지를 아낌없이 만끽하고, 주위에 베풀고 하고 싶은 일, 해 보지 못했던 일들에 도전하며 경험을 쌓는다. 여유가 있을 때 다양한 활동을 해 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순간들이 쌓여 힘든 시간의 나에게 큰 도움을 준다. 반대로, 하락세에 접어들 때는 행동을 다르게 해야 한다. 이때는 오히려 내 삶을 잠시 걸어 잠그고, 해야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반드시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하면서,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고 상황을 극복해 나간다. 이 내리막길을 견디는 동안 내가 필요한 것은 꾸준함과 인내다.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면서 나의 기본적인 일상에 충실하는 것. 그렇게 인생의 굴곡을 견디다 보면 어느새 다시 상승세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처럼 인생의 상승과 하락은 단순히 나를 흔드는 상황이 아니라, 나에게 인생의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상승세가 오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나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하락세가 찾아올 때는 그때를 지탱해 줄 내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담담하게 그 시간을 견뎌 내며 다시 한번 상승의 때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반복되는 이 굴곡 속에서 계속해서 성장하는 법, 나누는 법, 버티는 법을 배워 나갈 것이다. 결국, 인생의 굴곡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내가 꼭대기에 있을 때 나의 기쁨을 나누며 누군가를 돕고, 또 내가 밑바닥에 있을 때는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돕고 사는 것이 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인생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다. 혼자 모든 것을 이겨 내는 것이 아니라, 이 굴곡 속에서 함께 성장하고 서로의 의지가 되는 존재들을 곁에 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살아가는 나만의 방식이자, 인생의 깊이를 더해 주는 삶의 지혜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굴곡 속에서 더 많은 지혜를 배우고자 한다. 실패의 가능성에 직면할 때마다 나는 불안감을 느꼈고 그래서인지 나의 도전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실패하지 않을 것'에 한정되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열심히 하는 사람', '똑똑하게 계획한 목표를 이루는 사람'으로 보였겠지만, 사실 나는 언제나 내가 잘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움직였고, 그 한계를 넘는 도전에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무모하게 도전하다 실패한다면, 내가 쌓아 온 이미지나 성과가 모두 무너질 것 같았고, 그런 생각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내 약한 멘탈은 나를 독하게 만들었다. 독한 게 강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겉으로는 늘 강해 보이려고 노력했고, 목표에 집착하면서도 철저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겉모습이 나의 진정한 모습이라면 좋았겠지만, 사실 그 속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스로 멘탈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려는 강박에 시달렸다. 스스로를 약하다고 인정하지 않는 대신, 나는 강해지려고 더 독하게, 더 완벽하게 살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 강박은 나를 점점 더 약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느끼는 불안정, 불확실성,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난관들 속에서 나는 더 이상 강한 척할 수가 없었다. 이미 수많은 아픔을 겪고 이직한 후에는 더 이상 내가 완벽한 사람, 강한 사람으로 보일 필요도 없었고,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타의적으로 일종의 자유가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는 기존의 강박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내 내면의 불안을 누군가에게 숨길 필요가 없었지만, 그 불안과 무기력감을 감당하는 것 역시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몫이 되었다. 나는 멘탈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약한 나 자신을 감싸안아야 한다는 것을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약한 멘탈을 인정한 후에야 비로소 나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전까지 나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실패할 때도, 불안할 때도, 그것이 내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강해지기 위해 무리할 필요가 없었고, 스스로의 감정과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오히려 나의 내면이 더욱 강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약함은 내가 극복해야 할 결점이 아니라, 나를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멘탈이 약한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유연하고, 더 인간적이며, 더 회복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나의 약한 멘탈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 도구가 되었다. 나는 가끔 인생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저자이자 독자인 책 말이다. 개인의 삶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는 세상에 오직 한 권뿐인 책 말이다. 내가 내 삶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이 책은 매일이 매 문장이 다르게 쓰인다. 나의 행동, 마음가짐, 주위 환경에 따라 이 책은 몇 년이 지나도 한 줄도 쓰이지 않을 수도 있고, 하루에 몇 페이지도 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내가 공직에서 보낸 4년 동안 내 인생이란 책은 단 한 문단도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내면이 단단해지고 깨달음이 있긴 했지만 내게는 분명한 아픔과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은 내 인생이란 책에 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의식중에도 담기지 않았다. 실제로 그때를 돌이켜보면 일상이나 어떠한 사건들이 명확하게 기억나는 경우가 잘 없다. 그냥 그날이 그날 같고 공무원 시절이라는 단어 하나로 통칭되어 기억이 난다. 세부적으로 빛나고 이야기가 꽃피는 기억이나 추억이 아니다. 나는 시간의 밀도가 다르다는 것이 무엇인지 체감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내 인생의 밀도를 높게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항상 바랄 것이다. 내 하루는 언제나 충실한 하루였으면 한다. 그렇게 매일매일 내 인생이란 책이 충실하게 써내려져 갔으면 한다. 물론 매일이 이럴 수는 없다. 기억에 남지 않는 하루를 보낼 수도 있고, 지워 버리고 싶은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오늘은 책이 쓰이지 않고 쉬어 가야 하는 날일 수도 있다. 현실이 그러하고 인생이란 것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현실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방향성만이라도 이와 같이 가져가고 싶다는 말이다. 그렇게 나중에 시간이 지나 내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최선을 다해 써 내려간 내 책을 읽으며 흐뭇하게 웃음 짓고 싶다. 남이 보기엔 비루해 보일지라도 스스로 최선을 다해 써 내려간, 세상에 하나뿐인 빛바랜 책을 보면서 말이다. 후기 내가최근에 나자신한테한질문이 전부 2부 제목에 들어가있어서 뭔가웃겼고 운명같았던 독서였다 ㅎㅎ 출처 책 5급 사무관을 때려치우다
2025-07-03 ⋯ 비정상성, 궤도의 이탈과 행복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보면 어떠한 생각이 드는가? 너무 닳고 닳은 질문이면서 질문 자체가 명확할 수 없는 난제다. 사실 행복한 순간에는 이 질문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불만 없고 행복한데 저런 쓰잘머리 없는 질문이 떠오를 이유가 없다. 저 질문이 떠올랐다는 건 애초에 지금 행복하지 않고 불만이 많은 것이다. 사실 이 답도 없는 질문은 평생 죽을 때까지 내 곁에 있을 것 같다. 답을 쉽게 내릴 수도 답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질문이라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행복은 사랑인가, 만족인가, 감사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건가, 불편함이 없는 상태인가, 건강인가, 인정받음인가. 수많은 답과 의견들이 있지만 무엇 하나 맞는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완전히 틀렸다고도 느껴지지 않는다. 맞지만 맞지 않는 그 찝찝함도 사실 이 질문을 다루기 싫은 이유 중에 하나다. 모두가 의견이 다르니까 엄청난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기 딱 좋은 질문이다. 나는 행복을 ‘삶의 자각’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하다’라는 말은 ‘삶을 자각하고 있다’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불행하다’라는 말은 ‘삶을 자각하고 있지 못하다’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무의미한 삶이지만 우리는 가끔 어느 순간에 삶을 살고 있다고 자각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양감과 흥분에 휩싸인다. 나는 이것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할 때,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할 때, 시험에서 붙었을 때, 고민하던 문제가 풀렸을 때, 운동이 잘되었을 때 등 삶의 다양한 순간에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한다. ‘아, 이게 사는 거지’, ‘크, 살맛 난다’와 같은 순간이 이런 순간 중 하나다. 이렇게 스스로 무의미한 삶 속에서 삶을 살고 있다고 자각할 때 느끼는 감정을 우리는 행복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쁘진않은데 납득안되는 부분도 있다. 일단 '삶을 자각한다'라는건 삶을 계속 살고싶다 혹은 삶을 이제 그만 살고싶다 같이 삶의 존재여부를 신경쓰게되면서 존폐여부를 생각하게되는게 '삶을 자각'하는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측면에서 보면 '행복'과 '불행'이 존재하는 차원 자체가 갖는 특성이 '삶에 대한 자각'이 아닐까 싶음. 난 오히려 '너무 행복해서 평생 이렇게 살고싶다'라는 기분보다는 '너무 불행해서 삶이 무겁고 귀찮아 그만살고샆다'가, 동일선상에서 부호만 반대라고 치면 절댓값은 오히려 후자쪽이 더 컸어서... 정리하자면 삶을 자각하는게 행복이라고 했는데 난 오히려 삶을 자각, 즉 생각없이살다가 삶을 유지하고싶은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이 드는 시점은 행복할때보다 불행할때가 더 잦고 그 강도도 셌어서 그게 행복의 정의는 못될거같음. 그렇지만 삶을 자각한다는게 행복과 불행이 존재하는 차원이 갖는 특성은 맞는거같다! 평소엔 삶을 유지하고싶다 아니다 이런생각을 안하는데 행복할때랑 불행할때만 드는건 맞으니깐. 합격 후 모든 것이 새로워지면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의 본질은 여전히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는 내향적 성격이지만, 이 기간 동안만큼은 외향적인 사람처럼 행동해 보고자 했다. 나는 마치 사회적 실험을 하는 사람처럼,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먼저 다가가 인사도 하고, 작은 농담도 던지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 결과로 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언제나 조용하고 분석적인 사람으로만 보았던 사람들이 나를 에너제틱하고 밝은 사람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MBTI로 설명하자면 INTJ인 내가 ENFJ라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 이때 나는 모종의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사람들에게 이런 이미지로 다가갈 수도 있구나 하는 점에서였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느낀 것은, 내 외형이 바뀐다고 해서 내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겉모습만 바꾸는 것이 이렇게 큰 스트레스를 유발할 줄은 몰랐다. 하루 종일 사람들과 어울리며 웃고 떠드는 것 자체가 내게는 고역이었다. 나는 사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시간을 보내며 책을 읽거나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나와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 자체가 큰 에너지 소모를 불러일으켰다. 내 안에서 쌓여 가는 피로는 매일매일 조금씩 더 커졌다. 처음에는 내가 잘해 낼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나도 남들처럼 어울릴 수 있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분위기를 맞추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실제로 능력은 가득했으나 내가 그 행동을 하는 것이 힘들고 싫은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런 모순된 내 모습을 느낄 때면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왜 나는 이토록 나 자신을 바꾸고 싶은 걸까?” 사실 나는 내가 내향적이라고 자각했지만 앞으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대되는 면도 필요하다고 느껴서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러니 가능한 한도까지는 이러한 실험을 계속해서 내 능력과 실제 모습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나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처럼 이 사회적 활동들을 강행했다. 아니, 다르게 표현하면 그냥 스스로를 실험체로 쓰는 미친 과학자였다. 내가 싫어했던 단체 친목에 뛰어들고, 어색한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높여 가며 사람들과 섞여 보려 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즐겁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증명해야 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있어서 내게 필요한 능력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스스로 내성적이라 판단했던 나의 성격이 진짜인지, 혹은 그 동안 그냥 그렇게 알고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이런사람이 또있네 .. 난내가너무뒤틀린줄알았는데 아니 뒤틀렷다해도 암튼 related study가있네 찾으니까 맘좀편해짐 그러나 이러한 끔찍한 사회실험 끝에 남은 것은 공허함뿐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들어와 혼자 있을 때마다, 나는 끊임없는 소모감과 함께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열심히 사람들과 어울리고 떠들면서 에너지를 쏟아붓고 난 뒤, 나에게 남은 것은 텅 빈 공허함뿐이었다. 더불어 내 진정한 자리, 나의 본모습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민과 실험의 시간을 약 1년 반 동안 지속하고 나서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나는 미래에 필요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충분히 사람들과 어울리고 재미있게 잘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지속할 수는 없다. 그리고 스스로를 소모하면서까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필요는 없다. 나와 맞지 않는 환경에서 억지로 행동하려 하는 것은 결국 나를 지치게 만들고, 내 안의 평온을 깨뜨리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필요한 능력이지만 결국 내가 힘들고 불행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게 유예 기간 동안 나와 맞지 않는 ‘새로운 나’를 시도해 본 결과, 나는 더욱 확실하게 내 본래의 성격과 에너지를 알게 되었다. 나를 숨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나다운 모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능력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그것이 나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시켜 나를 방황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나는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그저 내 모습대로, 내 속도대로, 내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나를 더욱 온전하게 만들어 주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알던 세상은 명확했다. 아니, 세상은 명확해야만 했다.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틀렸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 사회에는 그 중간 지대가 너무나 많았고, 흑백으로 구분할 수 없는 수많은 회색 지대가 있었다. 아니, 전부 회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이때부터 나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인생은 내 시뮬레이션대로 흘러가는 곳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나는 부족하다. 이런 삶 속에서 확실한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던 나의 신중함은 나에게 독이었다 나는 이런 사고방식을 벗어던져 나가고 있다. 나는 이제는 행동이 말을 앞서도록 하고 싶다. 언행일치가 아니고 아예 행동이 말을 앞서 나가고 싶다.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보다 먼저 발을 움직이고, 상황에 부딪히며 스스로를 발견해 가고 싶다. 이론적 완벽함을 추구하던 나에서 벗어나, 불완전한 상태로라도 나아가며 내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다. 행동이 앞선다고 해서 무모하게 덤비겠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행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 또한 깨달았기 때문이다. 행동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계획을 세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그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나는 이제 생각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실제 상황에 맞게 변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능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내가 구축한 이론과 분석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고자 한다. 행동을 앞세운 삶은 나에게 불편하고 불안한 부분이 많겠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생각과 말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행동으로 직접 경험하면서 쌓여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일단 해 보고, 그 속에서 배워 가자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잘못된 선택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행동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 소중한 의미를 줄 것임을 믿는다. 삶이 계획대로 된다면 계획이 맞았음에 행복을 느끼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예상치 못한 것들에 설렘과 행복을 느끼면 된다. 그러나 보통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말을 알고 있는 책이나 영화는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가. 살아가며 내가 특별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사회에 나가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점점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었고, 스스로 느끼기에도 낯설고 당황스러운 깨달음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특별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이 꼭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무언가 나쁜 뜻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망므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그 다름을 숨기고, 사람들에게 맞추며, 스스로를 '더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스스로를 속이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나를 힘들게 만들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 사는 것이 정상적이고 그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나의 진짜 모습을 숨겨야 한다면 나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다. cf *행복과 불행은 궤도의 이탈이다. 행복, 불행같은 추상적인 척도 대신에 재산, 사회적지위, 친구수, 자기관리 등 현실적인 수많은 수치들을 종합해봤을때 나에게 적절하다고 이미 정의된 수치가 있다고 가정하고. 특정 피쳐에서 그 최대/최소치를 넘어가면 갑자기 삶을 자각하게 되는것이다. 삶을 자각하지 않고 평생 살고 싶다거나 그만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게 생명체의 본질값인데 인간이 너무 지능이 높아서 한번씩 자기가 행동하고 사고함으로써 본인의 한도를 넘어가는 일이 생기고 생명체의 본질에 어긋나는 생각을 할때마다(너무큰만족, 너무큰불행) 즉 생명체로서 응당 지켜야할 궤도에서 이탈함에 따라 갑자기 삶을 자각한다 라는 오류가 발생하게 되는것임. 개나 고양이는 자살하지 않는다. 근데 인간만큼 행복하지도 않을것이다. 몇몇 매체에서 극단적인상황에 자살하는 침팬지나 돌고래 같은 사례가 나오는데? << 이 말에서 이미 인간이기 이전에 생명체로서 극도의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게 왜 오류인지를 알수있음. 사람들이 흔히 정상이라고 여기는 기준에서 벗어나니, 오히려 편안해졌다. 더이상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나를 억누르지 않아도 되었고, 내가 느끼는 감정에 솔직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비정상성은 사실 내가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남들과 똑같이 살지 않는다는 것, 남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느나는 것이 나를 진정한 나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으며, 스스로 세운 나만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고자 한다. 내가 비정상이라는 사실은 오히려 나의 고유함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요소였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정상, 비정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나댭냐 나답지 않냐가 있을 뿐이다. 나는 정상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비정상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상관없다. 나는 그냥 나이기 때문에 괜찮다. 출처 책 5급 사무관을 때려치우다
2025-07-02 ⋯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다는 두려움
이직을 고민할 때마다 내 머릿속을 짓눌렀던 의문이 하나 있었다. “내가 이 일을 그만두고 아예 새로운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비슷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직을 생각하며 내가 겪어 본 다양한 경험과 그로부터 얻은 깨달음은 나의 두려움을 조금씩 덜어 주었다. 나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조금씩 알아차렸다. 세상에서 완벽하게 돌아가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속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준비보다는 오히려 부딪히며 배우고 적응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처음에는 내게 익숙하지 않은 일을 맡으며 큰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되었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사실 완벽히 준비된 인재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일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고, 그 과정에서 성실하게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내가 이직을 결심하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였다. 세상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능성도 열어 주었다. 내가 가진 것은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발전 가능성'이었다. 이를 깨달으니 비로소 나는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 내가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다는 두려움은 결국 '완벽주의'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나는 내가 완벽히 준비된 상태에서 일을 시작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일을 하면서 필요한 부분들을 조금씩 배워 나가고 스스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이직에 대한 결심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전까지는 내가 모든 것을 갖추어야 이직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 상태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사라졌다. 이 역시 내가 이직을 결심하게 된 큰 계기 중 하나였다. 실제로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주어야 하는 건 자책이 아니라 격려였다.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그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고, 앞으로 조금씩 배우며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만 있다면 계속 도전할 수 있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매일 노력하고 성장하려는 사람에게는 길이 열린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출처 책 5급 사무관을 때려치우다
2025-07-01 ⋯ 지키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난 그냥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 이동했을 뿐이다. 내 주관적인 적성 그 외에는 어떠한 의미 부여도 가치 판단도 하고 싶지 않다. 이직을 고민하면서 가장 핵심으로 생각한 질문은 이것이다. ‘내 인생에서 직장과 관련하여 단 하나를 잡는다면 무엇을 잡을 것이냐?’ 돈인가, 명예인가, 여유인가, 전문성인가, 꿈인가. 난 신이 아니기에 일을 하면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 돈도 명예도 여유도 전문성도 꿈도 모든 것을 갖고 싶지만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당연히 무엇인가는 놓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잡지도 못하면서 돈도 명예도 시간도 안정성도 이것저것 다 가져가려고 억지로 잡고 버티다가 고통받고 넘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정말 여유가 없고 힘들고 생존이 위기인 상황이라도 일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인문계를 가긴 싫고 영어를 못하니 외고는 못 가고 과고를 목표로 준비했는데 운이 좋아서 붙었다. 아니, 그만큼 간절하기도 했다. 과학이 하고 싶어서라는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아닌 ‘인문계 가기 싫다’라는 현실적이고 쫓기는 압박이었기 때문에 그런 단기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목숨이 걸려 있을 때 기적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하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학교도 가지 않고 하루에 3시간씩만 자면서 공부했던 이 단기적 성공의 경험은 내 인생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큰 독으로 작용하게 된다. *사람은 좋아하는걸 쫓아갈때보다 끔찍한것에서부터 도망칠때 제일 강해지는것같다고 느꼈는데 이사람두 그렇게 적었네.. 실제 대학교 입시 때가 되니 꿈과 희망이 없이 자라 온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다들 직업적 꿈을 따라 목표를 따라 자기소개서 쓰고 스펙을 쌓고 가고 싶은 과를 넣는데, 나는 이러한 것들이 아무것도 없었다. 진로와 적성과 관련해서 꿈도 희망도 없는 나는 대학이 원하는 인재가 아니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는 입시에서 실패와 고통을 겪고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휴학은 예상치도 못하게 1년 반으로 늘어났고, 인생을 허비하고 있단 생각에 군대조차 못 가는 병신이란 생각에 내 자존감을 바닥을 기었다. 친구들은 이미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헌혈을 해서 가산점을 받고 나서야 14년 6월에 입대를 할 수 있었다. 당시의 나는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 조급했다. 군대에서 빨리 나약한 정신머리를 고치고 내 길을 찾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하였고, 글씨체 연습도 하고, 독서도 다시 열심히 하면서 내 모든 것을 갈아엎었다. 그러나 결국은 또다시 선택에 있어서 비겁한 선택을 하고 말았다. 생각의 시작부터가 너무 현실적이었고 어떻게 보면 비겁했다.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것 그리고 한 방에 끝날 수 있는 것을 선택하자. 하지만 그 당시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경험이 부족했다 생각한다. 내 인생 자체가 저렇게 살아왔으니까.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노력만큼 투자해서 성과를 내 왔으니까. 그렇게만 목표를 잡아 왔고 그러한 성공의 맛만 봤으니까. 이번에도 그러고 싶었다. 계속해서 꾸준하게 하는 것이 아닌 한 방! 한 번만 또 열심히 올인해서 끝내고 싶었다. 이 진로의 고민을 아니 앞으로의 인생의 고민을…. 그 결과 정말 나에게 어울리는 고시를 보기로 결심했다. 내 학창 시절을 곁에서 접한 사람이면 모두가 이해 못 할 결정이었다.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 생활에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그런 적성과 관련한 문제는 뒤로 밀어 두었다. 내가 노력하면 고시는 붙을 것 같으니까. 대한민국에서 공부로 인생 역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들었으니까. 앞서가는 친구들을 따라잡을 유일한 방법이니까. 비싼 로스쿨 등록금, 의전 등록금 없이도 빠르게 사회적 계급을 얻을 수 있으니까. 붙으면 안 잘리고 연금도 나온다니까. 공부는 자신 있었고 공무원이 어떤 직업인지는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사무관이 뭔지도 모르고 공무원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닌 합격자가 되고 싶은 괴상한 고시생이 탄생했다. 지금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한심해서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다. 아니, 그 수준을 넘어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앞으로 평생을 할 직업인데, 무슨 일을 하는지, 생활은 어떠한지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그냥 공부가 할 만하니까 결정한 상황. 그런데 슬프게도 한 번 더 생각하니 어이가 없지 않고 너무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나는 학교에서 자라면서 한 번도 내 적성에 관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거나 멘토링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시험기간이라서 공부하고, 고등학교 가야 해서 공부하고, 대학교 가야 해서 공부했을 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도 직장을 얻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그럼 공부를 할 만한 직장을 택한 것뿐이다. 너무나도 합리적이고 너무나도 이성적이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떠한 성향이 옳고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 이 단체는 이러한 성향이었는데 나는 그와 다른 성향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실제로 현실에서 누군가는 직장에 잘 다니고 누군가는 힘들어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사람의 성향이 그만큼 다양하고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각 조직마다 메인 특성이 존재하고 이와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무언가 맞지 않아 직장을 다니는 데 고통을 느끼기 마련이다. 연수원 입교 전 맞지 않는 점을 말하며, 나열한 특징들이 모두 연수원 입교 후 공무원이라는 단체가 되면서 엄청나게 더 강해졌다. 분명 300명이 넘는 동기들은 각양각색의 특색을 지니고 있을 테고 일부가 저러한 거지 전부 저러한 것이 아닐 텐데 왜 더 강해지고 그쪽으로 극단적으로 발달했을까.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으며 눈치를 많이 보고 이미지 관리를 중요시한다’, ‘관습과 규칙을 중요시하고 의문 없이 일단 따른다’ 이 두 가지 특성 때문이다. 공무원이라는 단체가 되니 개인의 색깔이 더욱 지워지고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단체의 특성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와 맞지 않는 단체의 특성을 받아들일 만한 성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힘들었다. 밖에서 1대1로 만났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적절한 관계가 형성되었을 수도 있는 사이이지만 연수원에서 ‘나’와 ‘공무원 집단’으로 만나게 되니 그 누구와도 친해지기가 힘들었다. 그러한 의심마저 들었다. 지금 친한 사람들도 만약 연수원에서 만나게 되었어도 친해졌을까. 이러한 상황에 대해 그래프로 설명을 드리는 게 편할 것 같다. 사람의 성향을 나타내는 가상의 X축 그래프를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자. 나는 좌측 끝단에 있는 사람이다. 내가 연수원 입교 전에 만난 사람들은 그래프의 중앙 정도에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와 놀아 주느라 내가 있는 좌측으로 더욱 다가왔었을 것이다. 그들의 성향은 어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느 정도 물론 중앙 쪽으로 다가갔다. 그렇기에 친해질 수 있었고 큰 고통은 없었다. 하지만 공직이란 단체에 들어가게 되었고 단체의 특성은 우측 끝단에 존재했다. 중앙에 있던 사람조차 모두 우측으로 흡수가 되었다. 그리고 집단이기에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좌측 끝단에 있기에 집단과 나는 이제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연수원 때 있던 재밌는 일화도 있다. 연수원 중 우즈베키스탄으로 해외 연수를 간 적이 있다. 당시 심정은 국외추방 당하는 기분이었다. 맞지 않는 조원들과 10일간 해외에서 같이 생활해야 한다니 너무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실제로 스트레스로 현지에서 장염에 걸려 고열과 설사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아무튼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해서 현지 유적지를 탐방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무리와 떨어져 있었고, 혼자 구경하다가 나무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곳에서 일하시는 현지인 3분 정도가 내 주위로 다가와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도 그분들도 짧은 영어로 겨우겨우 의사소통을 했지만 너무나도 즐거웠고, 서로 소리 내며 웃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조원 중에 기존부터 친하던 친구가 ‘영어 잘하나 보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친해지냐? 넌 참 신기하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같은 언어를 써도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이렇게 마음속으로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 것이다. ‘사람의 성향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구나’라고 더더욱 체감한 순간이었다. *진짜외로웠을듯 글만봣는데도 느껴짐 .. 아직까지 나는 속으로 ‘그냥 적당히 일하고 안정적으로 살면 되겠지’, ‘뭐 내가 언제나 여러 사람하고 친하게 지냈나. 대학 때도 친구 없었는데 혼자 잘 지내면 되지’ 하고 있었다. 스스로 외로움을 타지 않고 혼자서 잘 놀고 또 놀면서 잘 살 수 있을 거라 너무 편하게 생각했다. 진짜 외로움이 얼마나 힘든지 몰랐고 나 스스로의 적성과 욕망을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정이란 '변하지 않음'에서 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매력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처음에는 변하지 않는 일상, 변하지 않는 수입, 변하지 않는 직책 속에서 위안을 얻으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진정한 안정이란 단지 외부 조건이 바뀌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나 스스로를 지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임을.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것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이 없이는 진정한 안정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왜 안정적 조건이 나를 불안하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지 점차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안정과 불안정을 고민하던 중, 나는 한 문구가 떠올랐다.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그 문장은 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키고,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더 큰 변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것이 내가 공직을 떠나기로 한 이유 중 하나였다. 안정된 환경 속에서 나를 정체시키기 보다는, 불안정한 도전 속에서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 훨씬 나답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게 나에게 있어 진정한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 불안정이란, 세상과 비교해 변화할 수 없어 뒤처지는 그 상태였고, 반대로 나에게 있어 안정이란 끊임없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성장할 수 있는 상태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나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부담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나만의 안정감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나에게 안정이란 이제 정해진 조건이나 자리가 아니다. 나의 가치관과 성장, 그리고 나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도전이 안정의 또 다른 형태임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이 변해도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힘, 그것이 내가 찾은 새로운 안정이었다. 출처 책 5급 사무관을 때려치우다